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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794화 (77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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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 응?!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광경에 나는 살짝 당황했고, 그렇게 잠깐 멈칫하는 사이에 내 뒤에서 뭔가가 격돌한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거기엔 상어의 공격을 방패로 틀어막고 있는 실비아의 모습이 있었다.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마 괜찮냐고 묻고 있는 거겠지.

    크, 크흠. 젠장. 괜히 폼잡으면서 잡으려다가 이 무슨 실태를.

    아니. 단순히 폼만 잡으려고 했던 건 아니고, 며칠 동안 월영무사의 레벨을 올리면서 배운 여러 가지 스킬들을 시험해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쓸데없이 위험에 처한 건 사실이다.

    무안해진 나는 주먹에 살기를 집중시킨 후, 실비아의 방패에 막혀서 전진을 못 하고 멈춰 서있는 백상아리의 아가미에 강력한 펀치 한 방을 날렸다.

    퍼엉!

    그리고 그 순간, 물속에서조차 들릴 정도로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백상아리의 아가미가 피를 내뿜으며 터져나갔다.

    약점 타격으로 인한 크리티컬 확률 증가와 크리티컬 데미지 증가 패시브, 무자비로 인한 급소 공격 증뎀, 낙인으로 인한 증뎀, 그리고 후딜이 큰 필살의 일격의 데미지까지.

    솔직히 무자비를 제외한 스킬들의 레벨이 너무 낮아서 살짝 불안하기는 했지만, 내 무식하게 높은 스탯이 받쳐주니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됐다.

    그야말로 일격필살.

    크으. 그래. 이게 바로 암살자의 묘미지. 한 번 노린 적은 한 방에 끝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너무 데미지가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펑 하고 터져버려서, 그다지 암살자답지 않기는 했지만.

    하지만 뭐,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애초에 월영무사는 그냥 암살자의 상위직이 아니라, 무투가와 합쳐진 상위직이니까.

    굳이 분류하자면 조용하게 목표물의 처리하는 암살자보다는, 이름만 암살술인 권법을 쓰는 권법가에 더 가깝다는 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가슴에 7개의 흉터도 새기고 다닐까? 별자리 모양으로.

    그렇게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흡족해하면서 살짝 들떴던 나였지만, 아직 전투가 끝난 건 아니었다.

    내가 필살의 일격을 사용하고 생긴 후딜로 잠깐 멈칫하는 사이에, 한 마리 남은 백상아리가 다시 한번 날 공격해왔다.

    하지만 그 공격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실비아의 방패에 막혔고, 나는 실비아의 방패 뒤에서 안전하게 나머지 백상아리마저 처리하기로 했다.

    아까 출혈을 걸어둔 덕분에 남아있는 백상아리의 체력도 꽤나 줄어있었고, 나도 괜히 멋 부리려고 하지 않고 평범하게 공격 기술만 써서 처리했기 때문에, 나머지 한 마리까지 마무리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비아. 잠깐 바닥에 내려가자."

    이 정도면 이제부터는 스킬 레벨도 같이 올리면서 전투를 해도 충분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전투를 마치자마자 실비아를 데리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실비아의 도움 덕에 별문제 없이 끝나기는 했지만, 아까 그건 대체 어떻게 된 건지 파악을 해놔야 하지 않겠어?

    뭐,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검증은 필요하다.

    "잠깐 여기에 서 있어 봐."

    바닥으로 내려온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하고 있는 실비아를 가만히 세우고, 그 앞으로 쭈욱하고 바닥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선 옆에 일정 간격으로 숫자까지 써놓은 후, 다시 실비아에게 다가갔다.

    "좋아. 실비아, 내가 저기 가서 신호하면 바닥의 선을 따라 전속력으로 달려와 줘."

    "전속력으로…말입니까? 하지만 그러면…."

    "괜찮아. 부딪힐 일은 없을 거야. 아마 내 모습이 사라질 테니까,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면 바로 멈춰줘."

    나는 실비아의 정면 방향으로 조금 멀리 떨어진 후, 손을 들었다가 내려서 실비아에게 신호를 했다.

    물속에서 바닥을 박차고 달리는 거라고는 하지만, 실비아의 스탯이 뒷받침되니 그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실비아가 바닥에 새겨진 숫자의 10에 도착한 순간, 나는 실비아의 그림자로 그림자 이동을 사용했다.

    그리고 역시나, 다음 순간 내 시야에서 실비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바닥을 바라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은 정확히 숫자 10이 쓰여 있는 위치.

    뒤를 돌아 실비아를 바라보니, 실비아는 숫자 13이 쓰여 있는 곳에서 멈춰 서서는 갑자기 사라진 날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젠장. 역시나인가.

    그 이후로도, 나는 몇 번의 실험을 더 거쳤다.

    실비아의 대각선 쪽에 서서 실비아가 옆을 지나가는 순간 그림자 이동을 써본다든가, 바닥이 아닌 벽에 그림자가 생긴 곳에 그림자 이동을 해본다든가.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 그림자 이동이라는 스킬이 상당히 써먹기 곤란한 스킬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써먹지 못할 건 또 없지만, 생각과 조금 다르다고 할까?

    젠장. 실은 제일 기대하고 있는 스킬이 이거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멋지잖아.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를 오가며 적을 해치우는 거.

    월영무사라는 이름하고 엄청 잘 어울리기도 하고.

    하지만 이 그림자 이동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내 몸 방향이 스킬을 쓸 때 그대로 이동한다는 점.

    즉, 적 뒤에 늘어져 있는 그림자에 스킬을 사용하면 적과 서로 등을 지고 서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먼저 움직인 내가 주도권을 잡을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등 역시 한순간 위험에 노출된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나보다 반응 속도가 더 빠른 적을 상대할 땐 오히려 내가 위험해지는 기술이라는 말이다.

    아예 스킬 사용 전에 몸을 회전시키면서 써?

    가능은 하겠지만, 내가 보고 있는 그림자에만 스킬 사용이 가능하니 어차피 고개는 그쪽을 향하고 있어야 한단 말이지.

    게다가 단점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적을 상대할 때도 이 스킬은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내가 스킬을 사용하고 이동하는 사이에, 적의 위치도 변해버리니까.

    결국 내가 기대했던, 적의 등 뒤에서 신출귀몰하게 나타나며 암살하는 식의 전투는 무리라는 얘기다.

    뭐, 그래도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트릭키한 전투가 가능하기는 하겠지만…하아.

    아무튼 여기서 한숨이나 푹푹 쉬고 있는다고해서 스킬의 구조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계속해서 사냥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은 하루종일 전투 스킬들만을 사용하며 전투에 임했다.

    때문에 어제와 비교해도 확실히 월영무사의 레벨이 오르는 속도가 떨어졌지만, 전투력만 놓고 보면 오히려 오늘이 제일 강해졌다는 체감을 크게 느꼈다.

    어느 정도냐면, 기회가 될 때마다 적극적으로 그림자 이동을 쓰면서 스킬 레벨을 올려도 전투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잘 알겠어.

    하지만 말이야, 역시 전투에서 멋이라는 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특히나 이런 게임 시스템의 세계라면 더더욱.

    내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노가다를 할 수 있는 것도 게임을 플레이할 때처럼 즐기면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크니까, 동기부여 측면에서 좋은 거라고.

    게다가 월영무사잖아. 월영무사. 그런 거창한 이름을 달고 그림자 이동을 안 쓴다는 게 이상하지 않겠어?

    그리고 그림자 이동도 레벨을 많이 올리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잖아?

    아니. 바뀌지 않더라도, 그림자 이동에 조금 익숙해지니까 어설프게나마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역할로 써먹을 수 있겠더라고.

    …뭐, 너무 써먹다가 어그로가 풀려서 몬스터가 실비아를 노리러 가버리는 해프닝도 있기는 했지만.

    오늘같이 있었던 게 실비아였기에 망정이지.

    응. 다음부터는 조금 자중하자.

    "햐읏?! 아우으읏…."

    그렇게 오늘 하루를 반성하면서도, 나는 입가에 띈 웃음기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이것만으로도 그림자 이동을 적극적으로 쓴 보람은 충분히 있었거든.

    안 그래도 옆에서 바들바들 떨며 걷고 있는 실비아는, 내가 그 머리에 척하고 손을 얹자 나와 눈도 못 마주치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적의 그림자 사이를 누비며 화려하게 몬스터를 해치우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무래도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라서 말이야.

    매번 마나를 잔뜩 써가면서 쓸데없이 화려하게 적을 해치우고 마지막으로 멋지게 척 돌아서며 미소까지 날려줬더니, 마을에 완전히 돌아오기도 전에 결국 우리 실비아의 집중력이 깨져버리고 말았다는 얘기다.

    실비아의 집중력마저 깨버리다니, 나란 놈은 대체 얼마나 멋진 거야.

    "우으…지, 지금까지의 수행이…."

    뭐, 실비아로서는 평생 정진한 기사로서의 집중력이 깨져서 제법 쇼크를 받은 모양이었지만.

    나도 원래라면 다독여줘야 하는 입장인데, 쇼크를 받은 모습까지 귀여워서 그만 계속 놀리게 됐다.

    "그렇게 멋있었어?"

    "…네, 네에…."

    그리고 풀죽은 상황에서도, 이런 건 또 정직하게 대답하는 게 우리 실비아였다.

    하여간 귀여워 죽겠다니까.

    "그래? 다음에 다른 애들 앞에서도 해볼까."

    "…아, 아마…혼날 거라고 생각합니다아…."

    …아니. 야. 그런 것까지 정직하게 말하기냐.

    뭐, 나도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멋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안전을 위해서 전투 중에 쓸데없이 폼잡지 말라고 구박받겠지.

    "뭣이?! 그럼 폼잡아도 혼나지 않으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좋아! 실비아! 특훈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일부러 충격받은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외쳤다.

    "네헵?! 무, 무엇을…?"

    "뭐기는 뭐야! 당연히 더 멋져 보이는 특훈이지!"

    마침 여관방의 문 앞까지 도착했기 때문에, 나는 방에 들어가 곧바로 실비아를 침대에 앉히고 그 얼굴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흐얏?!"

    "우선 표정부터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실비아. 지금부터 내가 다양한 표정을 지을 테니까 어떤 표정이 더 멋진지 말해줘."

    "무, 무리입니다아!"

    실비아는 내 말에 울상을 지으며 외치고는, 조금이라도 얼굴 거리를 벌리려는 건지 상체를 살짝 뒤로 뺐다.

    하지만 그런 걸 용납할 내가 아니라서 나도 다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고, 실비아는 기겁을 하면서 다시 조금 상체를 뒤로 눕혔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한계가 있었고, 몇 번 반복하는 사이에 결국 실비아가 침대에 드러눕고 내가 그 위를 덮치는 자세가 됐다.

    "세상에 무리라는 건 없어! 하면 다 되는 거야! 기사 수행할 때 안 배웠어?!"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실비아의 갑옷을 하나씩 벗겨갔다.

    아니. 딱히 별다른 뜻은 없고, 둘 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 침대에 드러누우면 스프링이 꺼질 거 아냐.

    일단 4계층의 마을이니 여관 침대도 나름 튼튼한 소재로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말이야.

    "그, 그런 무식…그런 무모…아우…오, 옷은 왜애…?!"

    야. 너 지금 무식하고 무모하다고 말하려고 했지?

    상당히 말을 고르다가 결국 적당한 말을 고르지 못한 모양이지만.

    "왜? 실비아, 진심이야? 정말로 몰라서 물어?"

    내가 일부러 달콤한 목소리를 내면서 살짝 슬픈 표정을 짓자, 실비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 아읏…그, 그러니까…우우…아, 압니다아아…."

    알긴 뭘 알아. 딱 봐도 완전히 착각하고 있는데.

    아직 섹스하려고 벗기는 거 아니거든? 뭐, 어디까지나 아직이기는 하지만.

    "우읏…으으."

    내가 그 갑옷을 전부 벗겨서 인벤토리 안으로 가져가 버리자, 갑옷 안에 받쳐입은 옷만 남겨둔 실비아는 괜스레 옷 끝을 손으로 꽉 쥐어 잡고 몸을 배배 꼬았다.

    아무래도 튼튼함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옷이다 보니, 여자가 입기에는 많이 수수하니까 말이야.

    몸단장이라고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우리 실비아도, 우리 애들이랑 같이 지내다 보니 이제는 그런 걸 조금은 신경 쓰게 된 모양이었다.

    갑옷 안에 수수한 옷을 받쳐입고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아니. 애초에 난 평소에도 웬만하면 평범한 천옷만 입고 다니니까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데.

    …너야말로 평소에 좀 꾸미고 다니라고? 헤헷.

    "내 갑옷은 안 벗겨줄 거야?"

    "헵?! 아읏! 졔, 졔가하…마임니까아?!"

    실비아야. 혀 씹어서 아픈 거면 굳이 억지로 빨리 대답할 필요 없어.

    "그럼 난 이렇게 실비아를 벗겨줬는데, 실비아는 안 벗겨줄 거야? 나 혼자 쓸쓸하게 벗을까?"

    "우, 아, 아님니다아! 햐, 햐지마안…우으으…."

    혼자 옷을 벗는 게 대체 뭐가 쓸쓸하다는 건지 나로서도 의문이었지만, 실비아에게는 그 말이 또 먹힌 모양이었다.

    실비아는 두 손을 자신의 가슴께까지 올리고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거리더니, 결국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천천히 그 손을 내 쪽으로 뻗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 하루 공지도 없이 쉬어서 죄송합니다.

    간만에 술을 마셔야할 자리가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필름이 끊어져버려서 공지를 못 썼습니다.

    오후에 정신을 차리기는 했는데 하루가 다 가고 하루 쉰다고 올려봐야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요.

    기다리셨던 분들께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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