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86화 (77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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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세가 안 먹히면 아예 고자세로 나가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바넷사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서 내 얼굴을 똑바로 향하게 하고는 강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이름을 불렀다.

    "바넷사."

    "……."

    하지만 이번에도 바넷사의 대답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눈동자를 있는 힘껏 옆으로 돌려서 나와 절대 눈을 안 마주치려 하고 있었다.

    그, 그 정도냐? 좋아. 그렇다면.

    아주 조금만 더 강하게 나가보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이번엔 있는 힘껏 허리를 쳐올렸다.

    참고로 말하자면, 바넷사는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나와 연결되어있는 상태였다.

    사실 바넷사는 깨어나자마자 삽입을 풀어버리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다행히도 그 직전에 내가 깨어나 버렸다는 얘기다.

    그런 이유로 삽입을 풀지 못한 채 지금과 같은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우리였고, 내가 이런 식으로 허리를 움직이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바넷사의 입이 벌려지며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응흐읏?! 읏…크읏…!"

    그리고 자신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걸 자각하자마자, 바넷사는 반사적으로 차가운 눈빛으로 날 쏘아봤다.

    그리고는 자신이 나와 눈을 마주쳐버렸다는 걸 깨달았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다시 눈을 피해버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오히려 살짝 안심이 됐다.

    내 눈에는 바넷사의 그 모습이 화난 사람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저 단순히 어제 그런 모습을 보인 게 부끄러워서 나와 눈을 못 마주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한번 이러시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흐뭇해하고 있는 사이에, 바넷사가 여전히 눈도 안 마주친 채로 날 향해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응?"

    "……각오하십시오."

    바넷사는 할 말을 고르듯이 잠깐 주저하다가, 결국 그런 어정쩡한 말을 내뱉었다.

    다만 어정쩡한 단어 선정과는 달리, 바넷사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듬뿍 담겨있었다.

    …바, 바넷사씨? 진짜로 그냥 부끄러워하시는 거 맞죠? 내 눈이 틀린 게 아니죠?

    아니. 그보다 다시 한번 이러면 이라니.

    "…뭘 다시 한번 하면요?"

    지난밤처럼 막 몰아붙인 걸 말하는 거야? 아니면 방금 허리를 쳐올린 걸 말하는 거야?

    "……."

    내 질문에, 바넷사는 아무런 대답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디아나가 선수 교대를 위해 찾아올 때까지, 우리는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자네 대체 무엇을 한겐가?"

    그리고 디아나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제일 처음 내뱉은 말은 당연히 이런 말이었다. 그것도 완전히 질렸다는 표정을 하고는.

    에이. 그 표정을 보니까 이미 다 짐작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뭘 새삼스럽게.

    "대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하면 바넷사가 이렇게 되는 겐가?"

    "헤헷. 뭘 이정도가지고. 정 궁금하면 오늘 밤 디아나의 몸으로도…."

    "칭찬하는 것이 아닐세! 그리고 절대 안 할 걸세!"

    "……."

    내가 헤실헤실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이자, 디아나는 곧바로 귀엽게 조그만 주먹을 치켜들고는 내 머리를 콩콩 몇 번 내리쳤다.

    물론, 내 머리까지 주먹이 닿기 위해서 까치발을 하고는 있는 힘껏 팔을 뻗어서.

    그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모습에, 나는 반사적으로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두 가지 이유로 그럴 수는 없었지만.

    하나는 머리를 쓰다듬으면 디아나가 더 화를 낼 거라는 거였고, 나머지 하나는…디아나의 뒤에서 날 노려보고 있는 바넷사가 엄청나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쟤, 쟤 지금 손가락으로 자기 목을 그은 거 맞지?

    뭐야? 그 제스처는 대체 어떤 의미야? 호, 혹시…계속 기어오르면 진짜로 죽여버리겠다고요?

    바, 바넷사씨? 당신 아직 집사 아니니까요? 저택에 돌아갈 때까지는 아직 내 여자니까요?

    그 점 확실히 알고 계시는 거죠?

    "으음?"

    내가 살짝 겁먹은 반응을 보이자, 내 머리를 때리며 화를 내던 디아나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뒤로 돌려서 바넷사를 쳐다봤다.

    물론, 바넷사는 어느샌가 완벽한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으으음?"

    바넷사의 얼굴을 확인한 디아나는 이번에는 내 머리를 콩콩 두드리던 자신의 주먹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디아나야. 왜 그렇게 고민하는 건데?

    그냥 너한테 혼나서 내가 기죽은 거라고 생각해도 되잖아?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뭐, 평소 내 반응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의아해하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호, 혹시…아팠는가?"

    "끄아아악! 머리가…! 머리가…!"

    디아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묻자마자, 나는 이마를 감싸 쥐고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바넷사야. 너 나한테 하나 빚진 거다? 주인 뒤에서 이상한 짓 한 거 무마해준 거니까.

    "엄살이었는가! 이 몸은 장난하는 것이 아닐세!"

    그런 날 보고 디아나가 다시 한번 주먹으로 콩콩 내 머리를 두드린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장난이 아니라니. 너 스스로도 혼내면서 내가 그걸로 기죽을 거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잖아.

    "호오…호오…. 정말로 자네라는 사람은…바넷사, 괜찮은가?"

    그렇게 내 머리를 적당히 두드리며 혼을 낸 디아나는, 자기가 때려놓고 자기가 아픈지 살짝 눈가에 눈물을 고이고 주먹에 입김을 호호 불면서 바넷사를 걱정했다.

    "…네. 문제없습니다."

    바넷사는 무표정으로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중간에 살짝 다리를 오므린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대답하면서 살짝 생각 나버린 걸까?

    나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었는지, 바넷사는 디아나에게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또다시 내게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그러니까 저도 폭주한 건 미안하다니까요.

    아무튼 최고 연장자가 중간에 끼어 들어준 덕분에, 대화하나 없이 어색했던 공간은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졌다.

    뭐, 바넷사는 돌아갈 때까지 디아나하고만 대화하고, 나하고는 눈도 잘 마주쳐주지 않았지만.

    "…이 몸이 기껏 양보를 해줬더니만. 이러기 위해 부탁했던 것인가?"

    그리고 바넷사가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돌아가자마자, 디아나는 다시 한번 내게 핀잔을 줬다.

    아무래도 아까는 바넷사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양보 얘기까지는 꺼내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최고 연장자. 배려심이 장난 아니라니까.

    "아니. 그건…하하. 미안."

    이번에는 나도 장난을 치지 않고, 솔직하게 사과를 했다.

    "앞으로는 주의하게나. 이 몸이 그러라고 자네와 바넷사의 관계를 인정한 것이 아니니 말일세."

    "그렇게 말하니까 꼭…."

    "…꼭, 뭔가?"

    "아니. 우리 사이를 질투하는 것 같아서."

    휴우. 큰일 날뻔했네. 하마터면 장모님 같다고 말할뻔했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응. 우리 깜찍한 디아나한테 내가 무슨 생각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사냥이나 가세."

    "부정은 안 하는구나."

    "…그러면 이 몸이 아예 질투를 안 할 것 같은가?"

    내 말에, 디아나는 살짝 입술을 삐죽이면서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으응?"

    "무, 뭔가?"

    역시 아무리 자기가 밀어준 바넷사가 상대라도, 질투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디아나의 얼굴을 빤히 보자, 디아나는 살짝 부끄러워졌는지 얼버무리려 했다.

    "아니. 예뻐서."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자, 디아나는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조그맣게 목을 움츠렸다.

    "그럼, 사냥이나 갈까? 디아나도 빨리 가고 싶은 모양이고."

    "이, 이 몸은 딱히 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말일세!"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디아나의 태도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응? 지금 내가 뭐 이상한 말 했던가?

    "안 가고 싶어?"

    "그, 그런 것은 아니네만…."

    "혹시 땡땡이치고 나랑 데이트나 하고 싶어? 그럴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다들 성실이 하는 와중에 연장자인 이 몸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 데이트가 싫다는 건 또 아닌 모양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이상한 반응은 그런 생각 때문에 나온 게 아닌 모양이다.

    "그럼?"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아무튼 사냥이나 가세!"

    그렇게 말하고, 디아나는 내 손을 이끌고 앞장서서 마을 밖을 향했다.

    하지만 사냥을 가고 나서도, 디아나의 묘한 행동은 계속됐다.

    "디아나."

    예를 들자면 한차례 전투를 마치고 내가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불렀을 때.

    디아나는 우리의 얼굴 사이를 잇는 공기 방울을 만드는 대신, 내게 다가와서는 자신의 마스크를 내 마스크에 찰싹 밀착시켰다.

    "무, 뭔가?"

    게다가 목소리도 뭔가 엄청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 혹시 말이야."

    "으, 음?"

    "사라한테 자랑이라도 들어서 일부러 이러는 거야?"

    "무, 무엇을 말인가아?!"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디아나가 갑작스레 과민반응을 보였다.

    역시나 그런 거였군.

    "뭐기는. 이렇게 일일이 마스크 붙이고 대화하는 거 말이야."

    "으, 으음! 음! 그렇구먼! 가끔은 이 몸도 이런 경험을 해도 좋지 않은가! 마나 절약도 되고 말일세!"

    응. 거짓말이네.

    아니. 가끔은 이런 식으로 마스크 붙이고 대화하는 게 좋다는 말은 사실 같지만, 적어도 그런 이유로 이렇게 이상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애초에 네 마나가 고작 이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아껴야 할 수준으로 적진 않잖아.

    하지만 그러면 대체 뭐지?

    방금 과민반응한 걸 생각해보면, 사라한테 무슨 얘기를 들은 건 맞는 것 같은데.

    사라 그 녀석, 디아나한테 대체 무슨 바람을 집어넣은 거야?

    "하긴, 입 쪽만 뚫려있었으면 그대로 키스도 할 수 있는데 말이야."

    미심쩍어하면서도, 디아나가 왜 이러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나는 일단 디아나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그렇게 만들면 위험하지 않은가."

    하긴. 언제 어떤 상대와 싸울지 모르는 모험가용으로 만든 거니, 여차할 때 입에 물이라도 들어오면 큰일이기는 하지.

    아무튼 그렇게 살짝 디아나의 태도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오늘도 사냥은 순조로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 마나가 바닥이 났을 때, 나는 잠깐 휴식을 요청했다.

    "마, 마나가 부족한 것인가?"

    "응. 죽을 것 같아. 그러니까 저기 구석에 가서 힐링…."

    아무 생각 없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나는 문득 어떤 사실을 눈치챘다.

    잠깐만. 혹시 디아나가 사라한테 들은 말이….

    "거, 걱정하지 말게! 이 몸이 당장 회복시켜주겠네!"

    내 말을 끊듯이 그렇게 외치고 나서, 디아나는 내 몸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와 동시에, 마나 부족으로 살짝 어지러웠던 머리가 순식간에 멀쩡해졌다.

    그리고 몸 구석구석에 활력이 도는 느낌이 들었다.

    디아나가 자신의 마나를 내게 전달해준 거다.

    역시나. 어쩐지 이상하게 마나를 아낀다 싶더라니.

    사라한테 이 얘기를 들었었구나.

    내가 분명 중간에 힐링 섹스로 마나를 채우자고 꼬실 테니까 조심하라고.

    응. 그래. 그랬구나. 응.

    …젠자아아아앙! 디아나하고는 어쩌면 진짜로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라 그 녀석! 이런 식으로 방해를 하다니!

    "…어째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겐가?"

    그런 내 속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디아나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런 표정 안 했는데?"

    물론, 나는 뚝 하고 시치미를 뗐다.

    "했네! 자네는 대체 무슨 생각인 겐가! 자네 혹시 사라양과는 못 했어도, 이 몸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과연 우리 디아나. 날카로우셔. 내 속마음을 완전히 꿰뚫고 있군.

    "물론이죠."

    "하지 않았는가아아!"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고, 두 주먹을 휘둘러 내 가슴을 사정없이 토닥토닥 때려댔다.

    하지만 여기는 물속. 안 그래도 가벼웠던 디아나의 주먹은 물속에서 더욱 느려져서, 내게는 그 행동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일 정도였다.

    "풉."

    "뭘 웃는 겐가?!"

    아니. 야. 네가 웃겨놓고 웃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

    너 그거 절대 일부러 그런 거지?

    "아무튼 마나도 채워졌겠다. 당장 다시 갈까! 빨리! 빨리!"

    "…무슨 생각인 겐가?"

    내가 황급히 디아나를 재촉하자, 디아나는 잔뜩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다 들킨 이상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어진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빨리 마나 소모해 버리려고."

    "그러니까 무슨 의미인가?! 어, 어차피 또 이 몸의 마나로 채워줄 것이니 말일세!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알아두게! 자네, 듣고 있는가?!"

    내 말을 듣고, 디아나는 상당히 초조해 보이는 얼굴로 빠르게 그렇게 내뱉었다.

    하지만 디아나야. 네 낭군님이 고작 그런 것도 생각을 안 했을까 봐?

    안심해. 다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말하는 거니까.

    "훗. 과연 사냥이 끝나기 전까지 네 마나가 다 남아있을까?"

    "무, 무슨 의미인가?!"

    "자, 가자! 빨리!"

    "기, 기다리게! 자네! 무슨 의미인가?!"

    디아나는 그 뒤로도 팔을 파닥파닥거리면서 뭔가를 외쳐댔지만, 우리 둘의 마스크가 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내 귀에는 디아나가 뭐라고 외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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