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77화 (761/1,205)

<-- 강화 기간 -->

던전에서의 훈련은 상상 이상으로 잘 되어갔다.

앨리시아에게 잠깐이지만 던전에서의 전투 노하우를 배운 효과가 나오고 있는 건지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둘이서만 다니니 이동 속도가 빠른 것도 컸다.

인원수가 적어지니 안 그래도 이동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지금은 같이 있는 애가 우리 파티에서 민첩성 하나는 최고인 사라니까.

게다가 사라가 빠른 원거리 공격으로 몬스터를 몰고 오기까지 하니, 우리의 사냥 속도는 말도 안되게 불이 붙었다.

마을 주변의 몬스터들의 씨가 마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실제로 중간부터는 몬스터와의 조우율이 급격히 낮아지는 바람에, 우리는 점점 더 마을에서 떨어진 곳까지 이동을 하면서 사냥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렇게 급하게 사냥하며 다니느라 위기 상황이 있었느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고작 4계층의 몬스터한테 당할 나나 사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지금은 성자 스킬을 써서 사냥 중이었으니까 말이야.

성자 스킬을 쓰더라도 다른 직업 스킬과 병행해서 몬스터를 사냥하면, 전투로 직업 레벨이 오르지 않는 성자 대신 다른 직업에 온전히 경험치가 간다.

그러한 시스템은 이미 한참 전에 눈치챘었다.

이 시스템을 발견했을 당시에는 그냥 시스템의 허점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그런 게 아니겠지.

전에 디아나가 말했던 던전의 구조가 아래에 있는 무언가의 탈출을 막는 구조임과 동시에 내 성장을 이끌어내는 구조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경험치 시스템도 여신님이 성자를 위해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시스템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시스템을 이용해서 먼저 월영무사의 직업 레벨을 급속도로 올리고 있는 중이라는 얘기였다.

물론 이렇게 직업 레벨만 올려봤자 스킬 레벨이 낮아서 아래 계층에서 충분히 싸울 수 없는 건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나중에는 스킬 레벨을 올리는 작업을 따로 해야 하기는 했다.

그 때문에 성자 스킬을 써서 사냥을 할지 순수하게 전투 스킬만 사용하며 사냥을 할지 조금 고민하기는 했지만, 우선은 이렇게 사냥을 하기로 했다.

먼저 직업 레벨을 확 올려두면 그것만으로도 전투가 빨라져서 결국 나중에 스킬 레벨을 올리는 작업의 속도도 빨라지게 될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여신님이 굳이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준 거니까, 이러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전처럼 우리 애들과 다니면서 계속 아래를 향하는 도중이었다면 직업 레벨과 스킬 레벨의 밸런스를 생각해서 성자 스킬을 봉인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니까.

지금부터는 내 전투력이 충분한 수준으로 올라갈 때까지 내 성장에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밸런스가 무너지는 방식으로 성장을 하더라도, 딱히 해가 될 건 없었다.

직업 레벨처럼, 스킬 레벨도 비슷한 방식으로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서 올릴 수 있었다면 최고였겠지만 말이야.

일단 스킬 숙련도로도 실험을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

성자 직업 레벨과 달리, 성자 스킬 자체는 사용할 때마다 숙련도가 오르기 때문에 다른 직업 스킬과 동시에 사용해도 다른 직업 스킬 숙련도에 몰방 되거나 하지 않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뭐, 직업 레벨을 급속도로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이점이고, 너무 욕심을 부려도 어쩔 수 없겠지.

아무튼 그렇게 해서 오랜만에 성자 스킬을 펑펑 써가며 엄청난 속도로 사냥을 했던 나였지만,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마나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원래부터 성자 스킬은 힐링 섹스를 의식하고 설계된 건지 기본적으로 마나 소모가 큰 편인데, 이 정도 속도로 펑펑 써대기까지 하니 아무리 나라도 그 마나를 다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일단 위력을 조절하면서 마나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였는데도 말이야.

"읏?!"

"헉. 헉. 잠깐만 쉬자."

때문에 공기 방울을 만들어낼 마나 조차 아끼기 위해, 나는 사라의 뒷목을 잡아서 마스크를 사라의 마스크에 밀착시키고 그렇게 말했다.

열심히 싸우던 내가 갑자기 내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자 한순간이었지만 몸을 굳힌 사라가 귀여웠다.

하지만 심각한 마나 부족으로 머리가 살짝 어지러워져서 나는 사라를 놀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온몸에 힘을 빼고 퍼질러졌다.

물 속이다 보니 아무렇게나 몸에 힘을 빼도 그대로 둥둥 떠서 유영하게 되니, 이거 하나는 좋네.

물론 보통 던전 안에서 이러고 있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지만, 근처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깡그리 없애버렸고, 만약 다른 몬스터가 다가오면 기본적으로 오감이 민감한 사라가 대응해주겠지.

"그렇게 힘들어?"

내가 그렇게 눈을 감고 공중에 둥둥 떠 있자, 마스크에 뭔가가 살짝 닿는 감각과 동시에 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을 것 같아."

"엄살은…그 정도면 괜찮나 보네."

처음에는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였지만, 내 대답을 듣자마자 곧바로 그 목소리는 밝게 변했다.

아니. 사라야. 죽을 것 같다는데 너무하지 않냐?

뭐, 엄살 맞지만.

"하지만 조금 의외네."

"응? 뭐가?"

"구원이 진짜로 열심히 사냥만 하는 게. 난 또…."

그렇게 말하면서, 사라는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살짝 말끝을 흐렸다.

아니. 이래 봬도 말이죠. 오랜만에 던전 공략의 의욕이 왕창 생겨서 불타오르고 있다고요.

게다가 의욕이 생긴 덕분인지, 간만에 사냥하면서 게임하던 때의 기분도 맛보고 있고.

그런데 그런 날 보면서 난 또 라니? 대체 무슨 의미인 거죠? 설마 그런 의미인 거냐?

"너 진짜 너무하지 않냐?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고?"

"매일 야한 생각만 하는 변태."

내 물음에, 사라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즉답하는 것이, 오히려 내게 반격의 실마리를 제공해줬다.

"변태는 너겠지. 단둘이 된 기회를 틈타서 내가 야한 짓을 할 거라고 잔뜩 기대했던 우리 사라씨."

"바보! 기대한 거 아니거든?!"

"그래. 그래. 그래서, 빠른 마나 회복을 위해 오빠랑 저기 그늘진 곳에 가서 힐링 섹스라도 발동시키고 있지 않을래?"

"역시 그런 생각 하고 있었잖아?! 그늘진 곳은 또 언제 봐둔 거야?"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확인하더니, 사라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훗. 너무 그렇게 칭찬하면 쑥스럽잖아.

그늘진 곳은 언제나 파악해두는 게 신사의 소양이라고.

"사라야."

"뭐, 뭐야."

나는 그런 사라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사라를 바라봤다.

마스크를 대고 말하고 있는 만큼 이미 우리 둘의 얼굴 거리는 마스크만 없으면 키스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서, 내 진지한 표정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효과가 있었을 거다.

그 증거로, 내가 진지하게 이름을 부르자 사라는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사라 얘도 날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 말이야. 힐링 섹스…."

"야. 구원. 너 자기가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면 모든 여자가 자기 말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내 이어지는 말에, 사라는 바로 차가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그렇게 내뱉었다.

젠자앙. 안 되는 건가. 어쩌면 먹힐지도 모르겠다고 살짝 기대했는데!

"하여간 요즘 조금 잘 나간다고 아주 그냥."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 나였지만, 이어지는 사라의 중얼거림에 그런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응? 내가 그렇게 잘 나가? 하긴 나 정도 되면 그럴 만 하지. 음."

헤헷. 아니. 뭐, 실은 전에 길드에서 레이첼 누님이랑 소동이 있었을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지만요.

아니. 글쎄 내가 그렇게 잘 나가더라니까.

"구원."

"응?"

"재수 없어."

하지만 좋아하는 내 명치에, 우리 파티의 공격을 담당하는 사라양께서는 극딜을 꽂아넣으셨다.

재수 없어…재, 재수….

"크헉! 야! 아무리 그래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그러니까 누가 바보같이 그러래?"

"안 되겠어! 사라 너 다시 한번 혼 좀 나야겠어! 요즘 은근슬쩍 막말할 때마다 오빠라고 말하기로 한 것도 안 지키고 있고!"

나는 일부러 잔뜩 화난 표정을 지으며 사라에게 호통을 쳤다.

하지만 우리 당돌한 사라는 그런 날 보면서 겁먹은 표정조차 지어 보이지 않고,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 어머, 조금 많이 불러버렸나? 그럼 미리 부른 건 나중에…."

"스택 쌓듯이 말하지 마! 아니. 애초에 막말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구원이 바보 같은 말을 안 할 리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정은 안 하는구나."

야. 어이없다는 표정 짓지 말라고.

난 그저 날 너무 잘 아는 것뿐이야.

네 말대로, 내가 바보 같은 말은 안 할 리가 없잖아?

"아무튼 사라 너 혼 좀 나야겠어. 당장 저기 그늘진 곳으로 가서…."

"이 변태. 역시 결국 그게 하고 싶었던 것뿐이잖아."

아, 어쩐지. 내가 화난 척해도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더니.

예상하고 있었던 거냐.

하여간 날 너무 잘 알아도 문제라니까.

"그렇다고도 말하지."

들킨 이상 어쩔 수 없지. 당당하게 요구하자.

"바보 오빠. 그걸 인정하면 안 되잖아."

야. 오빠라고 부르는 건 좋은데, 이제 아예 바보랑 붙여 부르는 거냐?

"난 파티의 리더로서, 효율적인 사냥을 위해 당장 저기 그늘진 곳으로 가서 마나 회복을 도와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없거든? 절대 안 할 거니까."

"칫."

"어차피 슬슬 어느 정도 회복됐잖아? 회복력 하나는 굉장하니까."

아, 그러고 보니.

수다 떠는 사이에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됐다.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라 전투에서 펑펑 써대면 금방 또다시 퍼져버리겠지만.

때문에 나는 조금 더 사라랑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내가 굉장한 건 회복력뿐?"

"이 바보. 또 그런 얘기 한다."

훗. 걸렸군.

"아니. 얼굴이나 성격 같은 걸 말한 건데요. 변태 사라씨."

"얼굴은 몰라도…성격?"

나는 회심에 반격기를 날렸지만, 사라는 거기에 또 카운터를 날렸다.

"야. 거기서 의아한 표정 지으면 진짜 상처받거든?! 너 나 성격 보고 좋아한 거잖아?!"

처음 봤을 때는 엄청 경계했었으면서!

그 말은 즉, 얼굴이 아니라 성격 보고 좋아하게 됐다는 뜻이잖아?!

"……."

"야. 뭐라도 말 좀 해라. 농담인 거 알아도 진짜로 상처받거든? 나 운다? 이래 봬도 유리같이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라고."

"알았어. 알았어. 우리 오빠가 바보 같긴 해도 착하긴 하지."

내가 진짜로 엉엉 우는 척을 하려고 하자, 사라가 하는 수 없다는 듯 그렇게 대답해줬다.

"야. 그것도 조금 이상하지 않냐?"

내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착한가? 아, 아니. 이게 아니지.

굳이 바보 같다는 말을 앞에 붙여야겠냐?

"그런 점 때문에 내가 반했다고 하면?"

"훗. 하여간 이놈의 매력이란."

"이 바보 오빠. 하여간 조금만 칭찬해주면 또 그렇게 금방 잘난체한다니까."

내가 바로 잘난 척을 하자, 사라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라야. 지금 마스크 맞대고 있는 상태라 그렇게 고개 흔들면 얼굴 부비부비하는 것 같거든?

뭐, 상관없기는 하다만.

"참고로 말하자면."

"응?"

"난 사라 네 얼굴 보고…."

"야. 구원. 죽는다?"

"죄송합니다. 알고 보니 얼굴 이상으로 성격이 최고라서 반했습니다."

이, 이 녀석…방금 전 살기는 진짜였어.

"응. 나도 알아."

내가 말을 바꾸고 나서야, 사라는 빙긋하고 날 향해 웃어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런 농담이 허용될 정도라는 건 우리 사이가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뜻이겠지.

사라가 내 여자 중 나랑 제일 친구처럼 지내는 성격인 것도 한몫하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사라랑 그렇게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에, 결국 내 마나는 전부 회복이 됐다.

"그럼 슬슬 회복도 됐고, 다시 사냥이나 하자."

그렇게 말하고, 나는 맵을 확인했다.

빠르게 주변 모든 몬스터를 전멸시키며 돌아다닌 탓에, 우리는 지금 마을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까지 온 상태였다.

"어쩔래? 멀리 오기도 했고, 지금부터는 슬슬 마을 쪽으로 돌아가면서 사냥하기로 할까?"

"그러네. 시간도 돌아가면 딱 맞을 시간이고."

"그럼 갈까."

"응."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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