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첼과의 하룻밤 -->
"딱히 숨길 필요 없는데. 어차피 저기…."
당황하는 누님을 보고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내 손은 낮에 유리관을 놨던 그 장소를 향했다.
하지만 거기에 이미 수건이 장식된 유리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아. 하긴. 그야 진작에 치워둔 게 당연한 건가.
낮에 얘기를 마치고 왔을 때도 날 쫓아내자마자 제일 먼저 그것부터 확인했었고.
"누, 누나는 대체 구원이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전혀! 전혀! 모르겠는데? 왜? 저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는 레이첼 누님이었지만.
누님. 그렇게 동요하시면 기껏 숨긴 것도 의미가 없어져 버리잖아요.
그렇게 생각한 나였지만, 누님의 노력을 봐서라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지금 계속 딴죽을 걸어봐야, 결국 이 상황에서는 나만 손해니까.
"아…응.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뭐, 상관없나. 그럼 레이첼 누나. 하던 거나 마저 부탁드립니다."
"정말…처음부터 그렇게 솔직하게 받아들이면 좋았잖니. 으응…."
레이첼 누님은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내 물건에 입을 맞춰주셨다.
그리고 나는 베개에 등을 기대고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누님이 주시는 기분 좋은 쾌감을 오롯이 만끽했다.
아침에 이런 식으로 눈을 뜨고, 그대로 쾌감을 만끽한다니. 이게 바로 극락이지.
잠이 덜 깬 머리 때문인지 누님이 주시는 쾌감은 강렬하다기보다는 더 마일드하게 느껴져서, 뭔가 이대로 있으면 잠드는 것처럼 부드럽게 사정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이첼. 슬슬…."
이대로 부드럽게 사정을 하며 그대로 다시 한번 잠이 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없겠지만, 나는 애써 몸을 일으켰다.
아마 내가 사정하고 나면 누님은 그대로 준비를 마치고 출근하실 테니까.
배웅도 안 하고 나만 이대로 다시 잠들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대로 누님의 입안에 쌀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고.
나는 그대로 누님의 입에서 물건을 빼냈다.
"응…쪽. 아…으응?"
설마 쌀 것 같다고 신호를 보낸 다음에 내가 이렇게 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는지, 누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빤히 올려다봤다.
"왜? 아쉬워?"
"무, 무슨 말을…! 누, 누나는 그런 거…!"
그리고 내가 놀리듯이 그렇게 말하자, 누님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이번에는 딱히 냄새 얘기라고는 안 했는데 말이야.
뭐, 정액 냄새를 직통으로 느낄 수 없게 돼서 아쉽냐는 뜻으로 말한 거 맞지만.
저도 되도록 누님 취향에 어울려주고 싶지만, 오늘만 참아주세요.
나는 그런 누님을 겨드랑이에 두 손을 집어넣고, 그대로 그 몸을 들어 올려서 누님을 내 위에 앉혔다.
물론, 내 물건이 누님의 안쪽에 삽입되는 각도로.
"으흐읏?!"
갑작스러운 삽입이었지만, 예상대로 누님은 내 물건을 아무런 무리 없이 받아들여줬다.
아니. 오히려 내 생각보다 더 젖어있었을 정도였다.
역시 이 누님은….
아무튼 그렇게 누님의 안쪽 깊숙이 단단히 삽입을 한 나는, 그대로 누님의 안쪽에 부드럽게 사정을 했다.
그대로 누워서 누님의 입에 사정하는 건 아니었지만, 역시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부드러운 쾌감을 지속적으로 받은 끝에 하는 사정은 역시나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뇌가 탈 것 같은 강렬한 쾌감은 아니지만, 이대로 잠들 것 같은 몽롱한 쾌감이라고 할까?
"응읏…! 흐읏…대, 대체 뭐니? 레벨을 생각해서?"
누님 역시도 취향을 만족시키며 달아올라 있었던 덕분인지, 삽입하자마자 시작된 내 사정에 그대로 가벼운 절정을 느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더 컸는지, 누님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잠깐만."
실은 어제, 결국 사도 임명 확인을 못 해봤거든.
중간부터는 나도 침착해져서 누님이 연기를 벗어던지도록 노력까지 했었지만, 실은 그것도 나 스스로 침착해졌다고 생각했을 뿐 그다지 침착한 상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도 임명을 까먹다니.
뭐, 그만큼 누님이 준비해주신 이벤트가 엄청났다는 뜻이지만.
아무튼 누님의 안에 사정을 한 나는,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사도 임명을 시도했다.
그리고 결과는…아, 역시나. 역시 아직 안 되는 건가.
진지하게 대화를 했다고는 하지만, 나 스스로도 말하면서 그다지 누님을 안심시키지는 못했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역시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구원아…?"
"두고 봐."
아직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누님의 두 뺨을 손으로 감싸고 그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나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그렇게 말했다.
"이 몸에 반드시 내 것이라는 도장을 찍고 말 테니까."
"…응. 기대하고 있을게."
아마 누님은 사도 인장에 대해 아직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내 진심은 느껴진 모양이었다.
누님은 눈을 내리깔고는 뺨을 연분홍빛으로 상기시키면서, 수줍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뭐, 그렇게 됐으니, 어쩔래?"
"응? 뭘 말이니?"
"아니. 아까 결국 냄새…다시 빨래?"
"으읏! 구원이 너 정말…! 일부러 누나를 놀리는 거지?"
레이첼 누님 이제야 눈치채신 듯 그렇게 말하며 날 찌릿하고 노려보고는, 그대로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 진짜로 안 해?"
"안 해줄 거네요."
"잘못했습니다."
"후훗. 그래도 안 돼. 누나 이제 정말로 출근 준비해야 하니까."
"벌써? 이렇게 빨리?"
"안내원 일이란 건 생각보다 훨씬 바쁘답니다. 네가 길드에 올 때마나 누나가 항상 있었던 거 잊었니?"
"아니. 그래도 이제 근무시간 좀 줄인다고…."
"아직 길드에 말한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잖니? 적어도 오늘까지는 원래 시간대로 가지 않으면."
레이첼 누님은 그렇게 말하고, 물의 정령을 불러 가볍게 몸에 묻은 이물질만 닦아낸 후 옷을 입었다.
이대로 바로 출근하는 건 아니고, 아마 지금부터 욕실에 가서 씻고 오겠지.
"그러니까. 나중에 봐요. …남자친구씨."
누님은 손끝으로 내 코끝을 가볍게 한 번 콕 눌러주고는,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꺄악!"
문을 열자, 거기에는 우리 집사님이 서 있었다.
레이첼 누님은 상당히 놀랐던 모양인지, 방금 전까지의 누님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주저앉았다.
실은 나도 놀랐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다는 건, 우리가 나오는 걸 눈치채고 나타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럼 대체 언제부터 저기서 대기하고 있었던 거야?
게다가 방 안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을 텐데.
"바, 바넷사씨? 대체 무슨…."
"레이첼님은 아침이 빠르다고 들었으니까요. 다른 분들보다 먼저 아침 식사를 준비해놨습니다."
놀라는 레이첼 누님을 보면서도 눈썹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바넷사는 덤덤하게 자기 역할에만 충실했다.
"네? 하, 하지만 저 아침은…."
누님. 아침은 거르셨던 건가.
하긴 일하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안 됩니다."
하지만 그런 레이첼 누님의 사양을, 바넷사는 단칼에 거절했다.
아니. 바넷사야. 그야 누님에게 식사를 챙겨주는 건 나도 찬성이지만. 뭔가.
"네, 네에…?"
"아침 식사는 하셔야 합니다."
"하, 하지만 시간이…."
"그럼 도시락을 준비해놓겠습니다."
"네, 네에…? 아뇨. 그렇게까지…."
"준비해놓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사양하던 레이첼 누님이었지만, 바넷사의 압박감에 결국 굴하고 말았다.
아니. 진짜로. 진짜로 뭔가 이상하지 않냐?
"그럼."
바넷사는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연기처럼 자취를 감췄다.
"대, 대체 뭐였던 거니?"
"…자기 일에 심각하게 진지한 집사?"
바넷사가 사라진 후 내게 건네진 누님의 질문에, 나는 그렇게밖에 할 말이 없었다.
"쟤는 가끔 스펙이 너무 높아서 이상해 보일 때가 있어. 여기서 살려면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어."
실제로 난 이제 언제 어디서 조그만 목소리로 이름만 불러도 바넷사가 튀어나오는 상황에 전혀 놀라지 않게 됐고.
아무튼 그렇게 잠깐 사소한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누님은 목욕을 마친 후 바넷사의 도시락을 손에 들고 출근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런 누님을 정문까지 배웅해서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 방에서 했던 대화부터 지금 이 모습까지, 나 완전 전형적인 기둥서방 같지 않았어?
"…야. 바넷사."
깊게 생각해봐야 그다지 유익하지도 의미 있지도 않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나는 곧장 생각을 멈추고 바넷사와 대화나 하기로 했다.
"뭡니까."
"결국 아까 그건 뭐였던 거야?"
"뭐가 말입니까?"
"아니. 문 열자마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 말이야. 우리가 언제 나올 줄 알고."
그래. 누님한테는 그렇게 말하고 넘어가기는 했지만, 실은 나도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다.
평범하게 집사 일을 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단 말이지.
"전날에 미리 레이첼님의 출근 시간은 확인했기 때문에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래도 꽤 기다리기는 한 거 아냐?"
바넷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추측으로 그러고 있었다는 말은 다시 말해 기다리기는 했다는 말이다.
그것도 그렇게나 이른 시간에.
"…괜찮습니다. 실은 저."
내 추궁에, 바넷사는 잠깐 침묵했다가 뭔가 비밀을 밝히는 것 같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응?"
"분신술을 쓸 수 있습니다."
"진짜로?!"
"농담입니다."
젠장! 하마터면 믿을 뻔 했잖아!
난 이제 얘 스킬창까지 전부 볼 수 있으니까, 자세히 살펴보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도!
농담이 아니라 얘는 진짜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란 말이지.
…나중에 언제 한번 시간 날 때 얘 스킬창도 자세히 봐야겠어.
"…너 말이야. 혹시 네 뒤에 내 여자가 더 생긴 게 신경 쓰이는 거냐?"
아무튼 바넷사가 갑자기 이런 시답잖은 농담을 했다는 건, 은근슬쩍 말을 돌리려 했다는 거다.
그리고 나는 이런 바넷사의 이상 행동의 원인을 그렇게 추측했다.
그야 서로의 마음을 눈치챈 건 레이첼 누님이 더 빠르기는 했지만, 결국 누님과 밀당하는 사이에 바넷사랑 더 먼저 이어져 버렸으니까 말이야.
정식으로 내 여자가 된 건 바넷사가 먼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바넷사는, 자기보다 나중에 내 여자가 된 레이첼이 의식돼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거다.
지금 표정만 봐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어제부터 계속 레이첼 누님을 은근히 의식하는 것 같은 모습도 많이 보여줬고.
"…집사로서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또 나왔다. 불리하면 튀어나오는 집사 타령.
뭐, 신경 쓰이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말이야.
"딱히 특별히 더 의식할 필요 없이, 그냥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대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레이첼 누님이 내 여자가 됐다고 해서 딱히 널 향한 내 애정이 줄어들거나 하는 건 아니야."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집사로서 대답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조금 고민하는 것 같은 기색이 엿보이기는 했지만, 조금 길었던 침묵 끝에 바넷사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잖아. 그래서, 너 시간은 비워놨지?"
"네? 읏! 어제 분명 말씀 드렸…."
"그래. 그래. 비워둔 시간을 이사에 썼다고 한 건 들었어. 그런데 그러고 나서 할 일이 있다면서 황급히 나갔잖아. 내 여자로 지낼 시간을 만들려고 그런 거 아니야?"
결국 동행하기는 했지만, 펠리시아를 만나러 성에 갈 때도 뭔가 조금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었고.
"…왜 이런…."
그리고 내 추측이 맞았는지, 바넷사가 조그맣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내 여자는 잘 관찰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 그래서 대답은?"
실은 어제는 그럴 거라고 생각을 못 하다가, 지금 바넷사의 모습을 보고 문득 떠오른 거였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맞았으면 된 거 아니겠어?
"…조금이라면…있습니다만. 하지만 당장은 안됩니다. 아침 준비를…."
"나도 밥도 안 먹고 당장 널 침대에 끌고 가거나 할 생각은 없어. 아무튼, 된다는 거지? 그럼 씻고 밥이나 먹으러 갈까."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팔을 바넷사의 허리에 둘러….
탁.
두르기 전에, 손이 쳐내어 졌다.
"지금은 아직 집사입니다."
이럴 때까지 철벽일 필요는 없지 않냐?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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