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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756화 (74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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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 초보의 오해

    이렇게 된 이상,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누님! 제발 일어나지 말아 주세요!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면서, 침대 위의 누님에게 조용히 접근했다.

    내가 침대 위에 눕혔던 모습 그대로, 고른 숨소리를 내뱉으며 잠들어있는 레이첼 누님.

    "레이첼."

    "으응…."

    일단 확인차 레이첼 누님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그 이름을 속삭여봤지만, 누님은 섹시한 소리를 흘리며 살짝 몸을 뒤척이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귀가 약점인 누님이 이 정도 반응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아직 충분히 깊게 잠들어있다는 얘기겠지.

    누님의 정신을 완벽하게 잃게 만든 내 절륜함에 다시 한번 건배다.

    아니. 그것 때문에 귀가가 늦어져서 아까 같은 일이 발생한 거지만.

    애초에 지금도 그것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거고.

    아무튼 나는 누님의 등과 다리 뒤에 팔을 집어넣고는, 그 몸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누님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천천히 방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간은 촉박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잖아.

    여기서 누님이 깨버리면 괜히 더 시간만 잡아먹게 된다.

    "바넷사! 바넷사…!"

    복도로 나온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황급히 우리 슈퍼 집사님의 이름을 불렀다.

    아까 식당에서 봤던 표정을 봐서는 여전히 나한테 살짝 삐졌다고 할까, 질투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결국 이럴 때에 제일 의지가 되는 건 우리 슈퍼 집사님밖에 없단 말이지.

    "…뭡니까."

    속삭이는 수준으로 그 이름을 불렀는데도 불구하고, 바넷사는 곧장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상당히 기분 나빠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레이첼 누님을 다른 방에 쉬게 하고 싶은데, 방 좀 하나 준비해 줄 수 있을까? 최대한 빨리."

    "……."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바넷사는 레이첼 누님의 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여기저기 옷이 흐트러져 상당히 섹시한, 누가 봐도 섹스하다 잠든 것 같은 모습의 레이첼 누님의 모습을.

    그러고 보니 아까는 로브 때문에 제대로 못 봤었지.

    그리고 레이첼 누님을 응시하는 바넷사의 무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살짝 짜증 난다는 느낌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아니. 여전히 무표정은 무표정이지만 말이야. 왠지 모르게 안다고.

    그리고 내 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주듯이, 바넷사의 눈썹이 두어 차례 움찔움찔 떨렸다.

    야. 그러다가 이마에 혈관까지 튀어나오겠다.

    아무리 디아나를 경애해도 그렇지, 화난 모습까지 닮을 필요는 없다고.

    디아나는 전생 덕분에 그런 모습이니까 그런 식으로 화가 나도 귀엽기라도 하지, 넌 그러면 진짜로 무섭다고. 무표정이랑 조합되니까 괜히 더.

    "…알겠습니다. 그럼 레이첼님은 제가 맡겠습니다."

    하지만 표정과는 달리, 바넷사는 결국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이쪽으로 팔을 뻗었다.

    잠깐 동안 이어진 침묵을 보아, 내적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이지만 말이다.

    화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집사로서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기로 결심한 거겠지.

    다행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아니. 사실 나에 대한 감정보다 집사 일을 더 중시하는 게 그다지 좋아할 일은 아니지만 말이야.

    그래도 지금만큼은 바넷사의 그런 선택이 고맙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사도 임명 전에는 저렇게 질투하거나 고민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을 테니, 많이 발전한 거기도 하고.

    "그럼…아, 아니! 내가 데리고 갈게!"

    긴장이 풀린 나는 그만 반사적으로 바넷사에게 레이첼 누님을 건네려고 했지만, 다행히도 직전에 정신을 차리고 멈출 수 있었다.

    크, 큰일 날뻔했네! 그러고 보니 지금 레이첼 누님 치마 밑에 입힌 속옷은 내 정액 범벅이었지!

    아직은 바넷사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레이첼 누님의 몸을 안게 되면 분명 뭔가 낌새를 느낄 거다.

    그리고 방금 전에 레이첼 누님의 흐트러진 모습만 보고도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던 걸 생각해 봤을 때, 지금 누님의 속옷이 어떤 상황인지 들키면 바넷사가 폭발할 우려가 있다.

    "……네?"

    하지만 그런 내 속내를 알 리가 없는 바넷사는, 내 대답에 다시 한번 눈썹을 움찔하고 떨었다.

    "아니. 널 못 믿어서가 아니야! 그냥 괜히 이런 식으로 옮기다가 깨버리기라도 할까봐 그래. 그러니까 제발 그냥 방으로 안내해주세요."

    "…따라오십시오."

    바넷사는 잠시동안 차가운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몸을 홱 돌려서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리고 바넷사가 안내해준 곳은, 바로 내 옆방이었다.

    "여기입니다. 이미 정리는 마쳤으니 침대 위에 눕히시면 됩니다."

    "……야. 바넷사."

    뻔뻔한 표정으로 옆방의 문을 열고는 정중하게 몸을 숙이며 말하는 바넷사.

    과연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날 놀려먹으니, 나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하시다고 하셨잖습니까?"

    하지만 내 부름에도, 바넷사는 냉랭한 무표정으로 그렇게 대꾸할 뿐이었다.

    알면 좀 일찍 알려달라고!

    시간 끌 것 없이 그냥 옆방을 가리키면서 저기로 가라고 말해줬으면 됐잖아!

    젠장.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급한 건 맞으니까 일단 할 일부터 하자!

    나는 황급히, 하지만 레이첼 누님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침대로 다가가서는, 그 위에 레이첼 누님의 몸을 살며시 눕혔다.

    그리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쪽지를 꺼내 누님이 여기 누워 있는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사랑 넘치는 문구들을 적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잘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이첼 누님의 뺨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 방을 나섰다.

    후우. 좋아. 이제 얼른 가서 몸만 씻으면….

    "지극 정성이시군요."

    하지만 방문 앞에는, 여전히 바넷사가 버티고 서있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질투하는 것 같은 발언을 했다.

    급하기는 했지만, 이걸 또 그냥 지나칠 수는 없잖아?

    "너 때도 마찬가지였잖아. 지금은 네가 제삼자의 눈으로 보니까 괜히 더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야."

    "그런…으읍?!"

    무표정으로 삐져있는 바넷사의 허리를 휘어잡고, 나는 그대로 그 입술에 진한 키스를 했다.

    방금 전에 레이첼 누님의 뺨에 했던 가벼운 키스와는 비교도 안 되는, 진하디진한 키스를.

    "넌 그렇게 생각 안 해?"

    "…갑자기 키스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집사입니다."

    내가 진지한 눈으로 질문하자, 바넷사는 살짝 시선을 피하면서 평소의 그 말을 했다.

    아까 전에 내가 그 말을 했을 때는 무서운 표정을 지었으면서.

    그리고 말이야, 내 여자가 아니라 집사면 지금처럼 질투하는 모습도 보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럼 집사가 아니라 내 여자로 만들면 된다는 거지? 표정을 보아하니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바넷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즉, 지난번에 바넷사와 같이 밤을 보내고 난 후의 아침처럼, 키스로 뿔이 나오게 만들겠다는 말이다.

    "그만두십시오. 급한 것…으응?! 음…으읏…응…흐읏…큿!"

    당연히 바넷사도 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채고 제지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에 신경 쓰지 않고 다시 한번 바넷사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아까보다도 더 농밀하게. 진심으로 뿔과 꼬리까지 나오게 할 생각으로.

    "아얏."

    바넷사 역시 허스키한 신음 소리를 섹시하게 흘리며 반응했지만, 정말로 뿔과 꼬리가 나오게 생기자 위기감이 들었는지 갑자기 내 혀를 깨물었다.

    물론 그냥 조금 따끔할 정도로 깨문 거였지만, 나는 황급히 입술을 뗄 수밖에 없었다.

    "…후웃. …이러려고, 용인족 모습일 때는 내 여자, 같은 말을 하신 겁니까?"

    "…부정은 못 하겠네."

    내 대답에, 바넷사는 살짝 눈에 힘을 줘서 날 노려봤다.

    하지만 이내 눈에 힘을 풀고는, 갑자기 바넷사 답지 않은 말을 던져왔다.

    "그러다가 제가 정말로 눈이 돌아가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응? 그야…물론…."

    아무리 그래도 그 바넷사의 태도가 갑자기 이렇게 돌변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깐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그야 화를 좀 풀어주려고 키스를 진하게 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레이첼님과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레이아님과의 밤이 짧아지는 것을 감수하고 저와 어울리실 겁니까?"

    그리고 바넷사는 이어서 그렇게 말하며, 내 두 팔을 붙잡고는 손에 강하게 힘을 줬다.

    마치 놓지 않겠다고 말하듯이.

    "저, 저기, 바넷사씨? 노, 농담이시죠?"

    "네."

    "…엥?"

    당황해서 묻는 내게, 바넷사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니. 너, 진짜, 아오!"

    "구원님을 본받아 저도 가벼운 농담을 던져본 것뿐입니다만, 의도치 않게 시간이 상당히 끌려버렸군요. 급하실 텐데 죄송합니다."

    그리고 열불 터져하는 내게, 바넷사는 계속해서 엿을 먹여댔다.

    "너 말이야! 아무리 질투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지 않냐?!"

    "질투 아닙니다. 복도 한복판에서 제 바지를 찢으려 한 대가입니다."

    "질투 맞잖아! 내가 언…!"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용인족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꼬리가 바지를 뚫고 나오기는 하지.

    "…급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말문이 막힌 내게, 바넷사는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그렇게 말했다.

    "제, 젠장! 너 나중에 두고 보자!"

    "경험상 그런 말을 내뱉은 사람 중에 정말로 나중이 무서웠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내 외침에도, 바넷사는 태연하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날 그런 평범한 놈들과 똑같이 보면 곤란하거든?! 섹스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읏…?!"

    과연 이런 대답은 예상 못 했는지, 이번에는 드디어 바넷사의 말문이 막혔다.

    "그래! 그 무표정이 무너져 내리고, 그 허스키한 목소리로 울면서 빌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겠어! 그러니까 너 내가 다음에 던전에 갈 때까지 하루는 나랑 있을 수 있도록…."

    "레이아님. 안녕하십니까."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에, 나는 더욱더 외설적인 말을 바넷사에게 던져댔다.

    그리고 내 말에 얼굴을 붉히고 굳어있던 바넷사가, 갑자기 내 뒤쪽을 보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뜨아악! 레이아! 아직 준비가 덜…! 없잖아!"

    화들짝 놀란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변명을 했지만, 거기에 레이아의 모습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뒤를 돌아 바넷사 쪽을 보자, 바넷사의 모습 역시도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아니. 암살자 스킬은 내가 가지고 있는데 왜 네가 더 암살자 같은 거야!

    집사는 저택 내에서 자유자재로 텔레포트라도 쓸 수 있냐?!

    젠장. 나중에 언제 한 번 시간 날 때 쟤 스킬을 꼼꼼히 살펴보든가 해야지.

    "바넷사 너 내가 다음에 던전에 갈 때까지 하루는 나랑 있을 수 있도록 스케줄 조절해놔! 꼭! 반드시!"

    나는 허공에 대고 아까 못했던 말을 마저 다 하고는, 황급히 방으로 돌아갔다.

    내가 자기 이름을 속삭이기만 해도 귀신같이 알아듣고 나타나는 애니까, 분명 이것도 들었겠지.

    아무튼 이걸로 위기 상황은 대충 넘겼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건, 레이아가 올 때까지 최대한 몸을 깨끗하게 씻는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얼마나 씻어야 레이아가 만족할만한 수준이 될지는 나도 알 길이 없었다.

    내 코에는 내 몸에서 레이첼 누님의 냄새가 안 나니까 말이야.

    과연 얼마나 씻어야 아까 레이아가 말했던 레이첼 누님의 냄새가 안 날지.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레이아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몸을 씻기로 했다.

    "어머, 구원씨. 아직도 씻고 계셨어요?"

    그리고 다시 한번 비누 거품을 내서는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를 비누칠을 시작했을 때, 방문이 열리며 레이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 응. 그렇지 뭐."

    "후훗.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죄송해요. 괜히 제가 한 말 때문에 너무 바쁘게 움직이신 건 아니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어딘가 모르게 레이아가 만족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얼굴에는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부드러운 미소만이 있었지만 말이다.

    "응. 괜찮아. 시간은 충분했어. 레이아도 일부러 느긋하게 와준 거잖아?"

    내 대답에 레이아는 씽긋하고 한 번 웃어 보인 후, 내가 있는 욕조로 천천히 다가왔다.

    도중에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가운을 스르르 벗어버려서, 그 환상적인 몸매를 드러내고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레이아는 두 손으로 살짝 욕조의 가장자리를 잡고는, 다리를 편 상태로 천천히 상체만을 숙였다.

    "후훗. 구원씨도 차암."

    내 시선이 자신의 가슴에 못 박히는 걸 눈치챘는지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해주고는,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해줬다.

    "…바넷사씨의 냄새."

    그리고 우리의 입술이 떨어진 직후, 레이아의 입에서 그런 말이 새어 나왔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실망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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