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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755화 (73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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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 초보의 오해

    "알겠는가! 요는 이 몸들의 넓은 마음씨를 이용해서 멋대로 행동하지 말라는 얘기일세!"

    현재, 나는 디아나에게 한바탕 설교를 듣는 중이었다.

    부끄러워한 나머지 살짝 힘 조절에 실패한 사라에게 얻어맞은 이마를 여전히 움켜쥔 채로.

    바닥에 꿇어앉은 그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얌전히 무릎을 꿇은 채.

    "네. 죄송합니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반박하고 싶기는 했지만, 지은 죄가 있는 나로서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뭐, 아마 그 정도는 말하지 않더라도 다들 알아줄 테고.

    "자네도 그런 최악의 낭군님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언제나 내 여자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남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것 봐.

    되고 싶은가? 라고 묻는 게 아니라 되고 싶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점에서, 역시 디아나는 내 마음을 잘 알아준단 말이야.

    "꾸중 듣는 중에 딴생각하지 말게! 자네는 반성이 부족하네! 반성이!"

    하지만 너무 잘 아는 것도 살짝은 문제라서, 디아나는 내가 아주 잠깐 딴 생각을 한 것까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손날 부분으로 탁탁하고 이마를 움켜쥐고 있는 내 손의 위를 때리는 디아나.

    "끄아윽?! 잠깐! 거기는! 미안! 죄송!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 공격은, 평소의 귀여운 토닥토닥하고는 달리 엄청난 데미지를 내게 선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디아나의 공격보다는 사라에게 맞은 곳이 자극당해서 아픈 것뿐이지만.

    "엄살피우지 말게!"

    "엄살 아니…아야! 아얏!"

    이, 이 녀석, 설마 처음으로 나한테 자기 물리 공격이 먹히니까 신나서 더 때리고 있는 거 아니겠지?

    젠장. 이거 절대 혹 생겼을 거야.

    뭐, 다행히도 이 세계에선 신성력으로 이런 것도 치유가 되니까 내 얼굴에 흠이 생길 일은 없지만.

    아무튼 뭐, 이런 식으로 나는 벌써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설교를 듣는 중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무척이나 긴 사연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요약하자면, 우리 애들의 태평한 분위기를 보고 생각보다 그다지 화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 내가 은근슬쩍 사라 놀리기에 끼어들었다가 집중포화를 받게 됐다. 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지.

    응. 그래 알아. 내가 멍청했어.

    "후우. 그래서, 레이첼양과 그렇게 됐다는 것은, 전에 이 몸이 해준 얘기가 도움이 됐다는 얘기인가?"

    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진 설교가 끝나고 나서, 디아나는 겨우 한숨을 돌리며 레이첼 누님의 얘기를 꺼냈다.

    과연. 디아나는 그렇게 생각한 건가.

    하긴, 애초에 레이첼 누님의 과거를 얘기해준 것도 디아나고, 나와 레이첼 누님의 관계가 갑자기 급진전했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렇다는 말은, 다들 디아나가 그 얘기를 해줬기 때문에 내 생각보다 화가 덜 난 건가?

    "아니. 아직 그 얘기는 안 했는데."

    "음? 얘기를 아예 안 한겐가? 그럼 오늘은…?"

    "오늘은 그냥 어쩌다 보니까…흐름을 타서?"

    아무리 얘들이 상대라도 레이첼 누님이 내가 자길 버릴 거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는 얘기는 하면 안 되겠지? 레이첼 누님의 명예를 위해서.

    "잠깐만 기다려. 그럼 사도 임명은? 사도 임명은 했지?"

    내 가벼운 대답에, 사라가 옆에서 끼어들어서는 그런 질문을 던졌다.

    응? 사도 임명은 갑자기 왜…아. 잠깐만. 얘들 설마 내가 레이첼 누님한테 사도 임명까지 했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 그래서 의외로 화를 안 내고 있었던 거였구나!

    자기들이 사도 임명을 받을 때의 그 기쁨을 알고 있고 그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알고 있는 만큼, 우리 애들이 사도 임명에 관해서는 엄청나게 관대하니까.

    실비아 때도 마틸다 때도 바넷사 때도 사도 임명에 관한 날만큼은 하룻밤을 양보해줬을 정도로.

    즉, 레이첼 누님과 연락도 없이 늦게 온 것도 그런 의미에서…망했다.

    나 아직 사도 임명 안 했는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지만.

    레이첼 누님의 안에 사정을 하고 나서, 당연히 사도 임명을 하려는 시도는 해봤지.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사도 임명은 발동되지 않았다.

    사실 그때는 그냥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하고 있었으니까.

    레이첼 누님의 마음에 불안감이 커져서 흐름에 따라 섹스까지 가게 됐지만, 레이첼 누님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이 된 건 아니니까.

    즉, 아까 디아나가 말했던 그 얘기 말이다.

    그야 아까 레이첼 누님의 얘기를 생각해 보면 밀당을 할 생각 자체는 그 연애 경험이 진짜 있는 건지도 모를 모험가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낸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이첼 누님이 자신이 완전히 내 여자가 되는 조건으로 그런 말을 한 건 그냥 한 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자신에게 믿음을 달라는 그 말.

    처음에는 레이첼 누님이 둘러댄 대로 여러 여자 사이에서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니 믿음을 달라는 말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그 말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알고 있다.

    레이첼 누님은 또 다시 던전에서 소중한 누군가를 잃을까 봐 불안했던 거다.

    그래서 내가 자신에게 있어서 너무 소중한 존재가 되지 않도록, 그런 말로 시간을 벌며 나와 애매하게 거리를 둔 거다.

    내가 언제든 던전에서 무사히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나와 제대로 된 연인 관계가 되어서 날 소중한 사람으로 인정해버리면, 그때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으니까.

    내가 아무도 모르게 던전의 아래에서 목숨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뭐, 결국 내 사랑이 조금 식었다고 착각한 것만으로도 안절부절못하다가 내게 매달려버렸으니, 나와 애매하게 거리를 두고 날 관찰하려던 레이첼 누님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고 봐야겠지만.

    아무튼 요는, 레이첼 누님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절대 날 던전에 잃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뭘 해야 좋을지 몰랐던 바넷사 때와 비교해보면 사도 임명의 조건도 훨씬 명확한 만큼, 아까 사도 임명이 실패했을 때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그 스노우 볼이 굴러오게 될 줄이야.

    "…사실 사도 임명도 아직…헤헷."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애교 있는 웃음을 짓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사도 임명같이 중요한 일도 아니면서 외박을 하려고 했다?"

    "아, 아니. 잠깐만요. 외박은 안 했잖아요. 외박은."

    그야 물론 많이 늦어졌고, 평소보다 같이 밤을 지내게 될 시간도 조금은 짧아졌을지도 모르지만.

    "할뻔했으니까 마찬가지야!"

    너, 너무해! 뭐야 그 논리는?!

    "사라씨, 진정하세요."

    사라의 엉망진창 논리에 할 말을 잃은 나였지만, 다행히도 이번엔 사라의 폭주를 우리 천사님이 막아줬다.

    "하지만 레이아!"

    "괜찮으니까요."

    아무리 천사님이 상대라도 원래대로라면 사라가 이렇게 쉽게 제압될 애가 아니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오늘 밤의 주역은 레이아니까 말이야.

    게다가 레이아는 이미 직전에 바넷사에게 하루 양보를 해서 한 번 차례가 밀린 상황.

    그것도 상당히 길게 느껴지는 하룻밤을 양보한 거다.

    그도 그럴 게, 그날 딱 하루만 자고 다시 던전에 다녀온 거니까.

    그리고 그런 와중에, 오늘 사건으로 나와 같이 있을 시간이 아주 조금이라고는 하지만 짧아지게 되기까지 한 거다.

    그러니까 지금 이 중에 제일 화를 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레이아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사라도 오늘만큼은 레이아의 말에 따라 주는 거겠지.

    레이아조차도 가만히 있는데, 자신이 더 화를 내는 것도 이상하니까.

    …이렇게 놓고 보니까, 진짜로 레이아가 아직까지 폭발을 안 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과연 우리 대천사님. 자비심이 나 같은 범인의 머리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야.

    하지만 레이아 천사님은 그냥 사라를 말리기만 한 게 아니었다.

    "구원씨도 분명 사도 임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늦어지신 걸 거예요. 그렇죠, 구원씨?"

    이, 이상하다. 분명 평소와 같은, 상냥한 미소를 짓고 계시는데. 왜 이렇게 살이 떨리지?

    천사님의 앞에서 뱀과 눈이 마주친 개구리의 심정을 맛보며,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선의의 거짓말을 할 것인가, 아니면 사실대로 실토할 것인가.

    "…그게 말이죠.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말이죠."

    "네. 듣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 사도 임명의 실마리가 될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했었던 건데 말이죠. 일이 어쩌다 보니 여러모로 꼬여서 그게, 제대로 얘기를 못 하고 관계를 맺게 되어서 말이죠.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관계를 맺게 된 시점에서는 사도 임명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하, 하지만 결코 늦을 생각은 없었어요! 이렇게 늦게 귀가하게 될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무서워! 천사님의 눈이 무서워! 웃고 있는데 웃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셔!

    화낸다! 분명 화낸다!

    드디어 처음으로 레이아의 분노가 폭발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젠장! 웬만하면 평생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는데!

    "…그럼, 지금부터 레이첼씨와 하룻밤을 더 보내면, 사도 임명을 할 수 있는 건가요?"

    "그야 물…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레이아가 다음으로 내뱉은 말은 분노에 찬 질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룻밤을 또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려고 하는, 평소의 레이아다운 상냥한 말이었다.

    아니. 이젠 평소의 레이아답다는 것도 잘 모르겠을 정도야.

    대체 얼마나 마음이 넓은 거야?

    정말로 세상에 이런 사람이 존재해도 괜찮은 거야?

    이건 천사 수준이 아니잖아.

    실은 여신님이 의태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오늘 하룻밤을 레이첼씨와…."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어머, 안 되는 건가요?"

    "돼!"

    아마도 되겠지.

    밤새 시간이 있으면 레이첼 누님의 과거에 관한 얘기도 충분히 할 시간이 있을 테니까.

    "그럼…."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야!"

    "네?"

    어딘지 맹하게 느껴질 정도로 태평한 레이아의 두 어깨를, 나는 두 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내가 오늘 밤을 같이 보내고 싶은 건 레이아 바로 너야! 그 외에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아…."

    내 외침에, 레이아는 뺨을 살포시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레이아는 천사님다운 배려심을 잃지 않았다.

    "하, 하지만 모처럼 레이첼씨가…."

    "레이아. 다시 한번 말할게. 지금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난 오늘 밤을 무조건 너랑 보낼 거야. 중요한 건 그것뿐이야. 알겠어?"

    "…네."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레이아는 겨우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럼, 저희는 먼저 가볼게요. 설교도 충분히 했고, 시간도 많이 늦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우리를 보고는, 마틸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해산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줬다.

    아까 사라한테 비슷한 행동을 했을 때는 망상만으로 핑크빛 모드까지 됐으면서,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멋진 말을 했다고 생각하는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역시 저 녀석, 핑크빛 모드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뭐, 아무튼 지금은 고마울 따름이지만.

    마틸다의 말을 계기로, 다른 애들도 분위기를 파악해서 하나둘 식당을 빠져나가 주기 시작했다.

    "그럼 구원씨. 전 씻고 올게요."

    "응? 아, 응."

    그리고 그런 다른 애들을 곁눈질로 보내준 후, 레이아는 살짝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우리는 오늘 던전에서 돌아온 거다.

    그리고 돌아와서 계속 저택에 있었을 레이아가 그 사이에 몸을 씻지 않았을 리가 없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철저하게 씻었으면 씻었겠지.

    실제로 레이아의 몸에서는 은은한 비누 향이 나고 있었다.

    그런데 씻으러 간다고?

    "그러니까 구원씨도 깨끗하게 씻고 기다려주세요."

    하지만 이어지는 레이아의 말에, 나는 드디어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난 정령으로 대충 씻기만 했지 제대로 씻지 않았지.

    그리고 코가 좋은 레이아가 굳이 깨끗하게 씻고 있으라고 강조한다는 건…역시 그런 의미겠지?

    천사 같은 모습만 보여준 레이아지만, 역시 내심 화나 있는 거 아닐까?

    살짝 그런 의문이 들면서도,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최대한 빨리 와야 돼? 나도 때 빼고 광내고 있을 테니까!"

    "후훗. 네."

    그렇게 미소짓는 레이아와 헤어진 후, 나는 스스로 말한 대로 열심히 몸을 닦기 위해 황급히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음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레이첼 누님이 아직 내 방 침대 위에 있잖아!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허니앙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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