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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초보의 오해
아무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정신을 차린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상당히 늦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외박을 하거나 한 건 아니니까.
물론 지금부터 아무리 빨리 가도 저녁 식사 시작 전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밤이 되기 전에라도 도착하면 어떻게든 정상 참작의 여지가…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몸을 일으킨 나는, 우선 정령부터 불러내 나와 레이첼 누님의 몸을 씻게 했다.
그리고 바닥에 벗어 던졌던 갑옷을 재빨리 주워입었다.
그냥 갑옷은 인벤토리에 넣고 가벼운 옷만 입으면 그만일 텐데 왜 굳이 다시 갑옷을 입냐고?
생각을 해봐. 헤어질 때 갑옷 차림이었던 놈이 돌아왔을 땐 가벼운 차림으로 돌아가면 우리 애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대놓고 섹스하고 왔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야 물론 갑옷을 입고 가도 바로 들키는 건 마찬가지인 건 맞아.
레이아의 코도 있고, 무엇보다도 뭐하다 왔냐고 물어보면 나 스스로 사실대로 말할 거니까.
그래도 굳이 겉모습부터 섹스하고 온 티를 팍팍 내면서 돌아가서 우리 애들을 도발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런 이유로 굳이 갑옷을 챙겨입고 나서, 나는 남은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잠깐 고민을 했다.
물론 남은 문제란 바로 다름 아닌 레이첼 누님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기절 중이시다.
누님을 이대로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단 말이지.
일단 안내원복을 걸치고는 있지만, 도중에 행위가 격렬해지는 바람에 거의 안 입은 거나 마찬가지인 수준으로 풀어 헤쳐져 있는 데다가 다리를 게처럼 양옆으로 벌리고 눈가에는 진한 눈물 자국까지 남긴 채 기절해있는 누님.
누가 보면 십중팔구는 엄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할만한 모습이었다.
그야 누가 볼 일은 없지만 말이야. 무인텔이니만큼 직원조차도 없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청소하는 직원 정도는 있으려나?
만약 청소하는 직원이 들어왔다가 이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일단 남자면 감히 내 레이첼의 알몸을 뇌리에 새긴 그놈부터 죽인다. 아, 아니. 이게 아니지.
아무튼 모처럼 누님과 제대로 된 섹스를 하게 된 거다.
눈을 떴더니 섹스한 남자는 이미 없었다. 라는 원나잇 후기 같은 감상을 누님이 느끼게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깨우는 것도 불가능하고.
아니. 자랑은 아니야. 자랑은 아니지만 말이야. 내가 좀 절륜해야 말이지. 헤헷.
하지만 그렇게 된 이상…역시 데려가는 수밖에 없겠지?
그러면 갑옷을 입은 의미가 상당히 퇴색되어버리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레이첼 누님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우리 애들도 내가 그런 남자가 되길 원하지는 않을 거다.
그래서 나는 일단 레이첼 누님의 옷부터 정리를 해봤지만…역시 내가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언제나 단정하게 묶여있는 레이첼 누님의 머리는 정돈할 엄두조차 나지 않아서 그대로 내버려 뒀고,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의 레이첼 누님은 누가 봐도 섹스한 직후 같은 모습으로밖에 안 보였다.
일단 옷은 제대로 다 입히고 단추도 다 잠갔는데 말이야.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평소의 단정한 누님의 모습으로는 전혀 안 보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팬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침대 구석에 놓인 정액 범벅의 팬티를 바라보며, 나는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을 했다.
아무리 인벤토리가 있는 나라도 여성용 속옷의 여분까지는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기절한 누님을 노팬티로 저택까지 업고 가는 것도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이걸 입히는 것도…뭐, 누님이라면 어쩌면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까 섹스하면서 알아낸 누님의 취향을 상기해냈다.
…진짜로 이거 입혀볼까.
어차피 노팬티로 업고 다니는 게 더 불안하고.
나는 애써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킨 후, 정액 범벅의 팬티를 살며시 누님에게 다시 입혔다.
…뭔가, 엄청나게 야하다.
안 그래도 지금 누님의 모습은 굉장한데, 속옷이 화룡점정을 찍은 느낌이라고 할까.
물건에 반응이 오면서 다시 누님을 덮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참아내고 인벤토리에서 로브를 꺼냈다.
원래부터 내가 입고 다니는 로브인 만큼, 누님의 몸을 완전히 뒤덮고도 남는 로브.
그것으로 누님의 엄한 모습을 완전히 가리고 난 후, 나는 누님을 등에 업고는 곧장 모텔을 뒤로했다.
"……."
그리고 겨우 저택에 도착하자, 제일 처음 날 맞이해준 건 역시나 바넷사의 얼굴이었다.
정문 앞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으면서,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도 없이 곧바로 발걸음을 뒤로 돌려 저택 안으로 들어가 버리려고 했지만.
"즈암깐 기다려!"
"…뭡니까."
내가 불러세우자, 바넷사는 만년설 같은 차가운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굳이 불러세웠는데도 인사는 안 하는 거냐, 집사씨.
"왜 인사도 없이 들어가려고 하는데?!"
"좌불안석으로 기다리시는 분들께 한시라도 빨리 구원님의 귀가를 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크헉…."
예상외의 카운터 펀치에, 나는 잠깐 정신이 어질해졌다.
이, 이 녀석….
"…많이 화났어?"
"어떨 것 같습니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지금은 내가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일단 저자세로 그렇게 물어봤지만, 바넷사는 여전히 냉랭한 시선만을 보내왔다.
너 말이야. 그러니까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그래도 아직 밤은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후우…."
내가 한껏 희망을 담아서 말하자, 바넷사는 대놓고 보라는 듯이 푸욱하고 한숨을 쉬어 보였다.
그러니까 그 한숨은 뭔데!?
넌 평소에 그런 반응 잘 안 보이는 만큼 괜히 더 열 받거든?!
아니. 그러라고 한 거겠지만.
"…그럼 다른 애들은 일단 제쳐두고, 넌 어떤데?"
"……어때 보이십니까?"
이번에는 절대 헛소리하지 못하게 하겠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바넷사는 시선을 더더욱 차갑게 만들며 내 얼굴 앞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금은 집사시죠?"
그 엄청난 박력에, 나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얘도 맨날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자기방어를 하니까, 나도 가끔은 써먹어도….
"……."
아무래도 안 되는 모양이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면 키스라도 해버릴까 해서. 하핫."
"…업고 계신 분은 레이첼님입니까?"
어색하게 웃으며 내뱉은 내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바넷사는 내 등 뒤로 시선을 보냈다.
아니. 실은 아까부터 엄청나게 보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것도 로브가 뚫어질 정도로 강렬한 시선으로.
"아, 응."
"제가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있습니다. 그게 집사가 할 일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네 말버릇이니까 나도 살짝 써먹어 본 것뿐이잖아.
"아니. 내가 데려갈게. 도중에 깨면 레이첼 누님도 당혹스러울 테고. 넌 먼저 가서 우리 애들한테 얘기 좀 잘 해줘."
"……."
"알았어! 알았어! 얘기 잘 해줄 필요는 없으니까 일단 내가 왔다는 얘기라도 해줘! 원래 그럴 생각이었잖아?!"
얘기 잘 해주기가 그렇게 싫냐?!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모두 식당에 모여계십니다."
내가 고쳐 말하고 나서야, 바넷사는 고개를 가볍게 한 번 까닥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저 녀석, 진짜 질투심 엄청 강하네.
반응이 불같지 않아서 그렇지, 거의 사라 수준 아니야?
뭐, 그만큼 날 생각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거니까, 내심 기쁘기도 하지만 말이야.
아무튼 바넷사에게 레이첼 누님을 건네주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건네줬다가 로브 아래에 숨겨진 누님의 모습을 보기라도 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만으로도 오한이 드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황급히 내 방으로 향했다.
바넷사에게 맡겼다면 손님방을 준비했겠지만, 내가 맡은 이상 일단 내 방에 눕힐 수밖에.
"으음…구원씨…."
내 방의 침대에 그 몸을 눕히자, 누님은 이불에서 내 온기라도 느낀 건지 이불을 끌어안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단 섹스하는 내내 반말을 쓰기는 했지만, 역시 아직은 존댓말이 익숙한 건가.
잠꼬대로 내 이름을 중얼거리는 누님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입가가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녀올게요."
나는 혹시 누님이 깼을 때를 대비하여 침대 옆 테이블에 쪽지를 한 장 남긴 후, 가볍게 누님의 뺨에 입술을 맞추고 문을 나섰다.
정신 바짝 차리자. 지금부터는 멘탈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
"축하해."
굳은 각오를 다지고 식당에 들어선 나였지만, 의외로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들은 말은 그런 말이었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띤 채. 정말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목소리로.
그것도 다름 아닌 우리 애들 중 질투심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라가.
"어? 응? 아, 바넷사한테 들었어? 하핫. 실은 그렇게 됐어. 고마워."
그 너무나도 예상 밖의 반응에 잠깐 멍해진 나였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뭐야. 바넷사. 그렇게 싫은 척을 하더니, 결국 앙탈이었던 거잖아.
나랑 레이첼 누님이 드디어 제대로 결실을 보았다고 잘 말해준 모양이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우리 애들은 질투하면서도 다른 애들과 내가 결실을 볼 때마다 결국 도와주고 축하해줬었으니까 말이야.
이번에도 내가 늦게 들어온 게 화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레이첼 누님과 제대로 결실을 보았다고 하니 일단 축하부터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게 된 모양이다.
하여간 우리 애들은 하나같이 다 착해빠졌다니까.
"응? 무슨 소리야?"
하지만 내 반응에, 사라는 얼굴에 환만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여전히 밝은 목소리를 유지하며 그렇게 되물었다.
"응? 아니. 지금 축하한다고…."
"응. 축하해."
사라는 여전히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이쯤 되자, 나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라의 표정이 너무 예상 밖이었던 데다가 임팩트가 커서 그냥 순순히 받아들여 버렸는데, 생각해보니까 뭔가 이상해. 밝아도 너무 밝아.
게다가 다른 애들도, 마치 사라에게 전부 맡기겠다는 것처럼 내 쪽을 바라보기만 할뿐 한 마디도 말을 안 하고 있어.
"…사라. 아니. 사라님. 대체 뭘 축하한다는 건지 제가 감히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응? 어머, 내 정신 좀 봐. 그러네. 뭘 축하하는지 얘기를 안 해줬네. 응. 목숨을 건져서 축하한다는 얘기였어. 그도 그럴 게…외박했으면 죽일 생각이었거든요."
그리고 쭉 만면의 미소를 유지하며 밝은 목소리로 얘기하던 사라가, 마지막 문장을 말하며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게다가 말투까지 존댓말로 바꿨어.
그 압도적인 포스에,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용사라는 직업을 내린 전쟁신이라는 녀석은 분명 마신이야.
그게 아니면 이 어마무시한 살기는 설명이 안 돼.
애초에 종족부터 마신이잖아?
역시 여신님은 성자인 나를 강림시켜 이 세상에서 마를 멸하게 할….
"어머. 구원. 당신 지금 딴 생각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큭! 현실 도피마저 허용되지 않는 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왜? 벌써부터 레이첼의 몸이 그립나 보죠?"
"그럴 리 없잖아! 지금 내 눈에 누가 비치는지는 누구보다 네가 제일…."
그리고 이어지는 사라의 말에, 나는 두 손으로 그 어깨를 강하게 부여잡고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얘가 진짜 못 하는 말이 없어!
빠각!
"끄어어어억…."
하지만 그런 내게 돌아온 건, 머리에 느껴지는 엄청난 격통뿐이었다.
얘…얘 지금 진심으로 때렸어….
"그,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조금 멋있는 말을 한다고 해서 내가 넘어가 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거든?!"
아니. 얻은 게 머리의 격통뿐만은 아닌가.
"사라양. 맡겨달라고 해서 맡겨뒀더니 벌써 함락되어 버리는 건 너무 빠르지 않은가. 조금 더 힘을 내게."
그리고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내 귀에, 디아나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사라한테 전부 맡겨둔다 했더니, 역시 그런 거였냐?!
아니. 그보다 괜히 그런 식으로 도발하지 말라고!
"하, 함락된 거 아니거든요?!"
"그런가?"
"그래요!"
"괜찮아요. 사라씨. 전 충분히 이해해요. 저도 눈앞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면…하아아…."
"마, 마틸다 추기경님…."
"그, 그러니까 그런 거 아니래도요!"
…아니. 얘들아. 시끌벅적한 것도 친해 보여서 좋긴 한데, 우선 지금 너희 눈 앞에서 바닥에 무릎 꿇고 이마를 부여잡고 있는 너희 낭군님부터 조금 신경 써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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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앵거바딜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뻑가츄뻑가뻑가 // 레이아가 제대로 쓴 것 맞습니다. 레이아가 진한 금발이고 레이첼이 옅은 금발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