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47화 (73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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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 초보의 오해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길드 구석에서 불편한 시선들을 느끼며 기다리기를 수 분.

    레이첼 누님이 내게 잰걸음으로 달려오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뇨. 그다지. 그보다 어서 가죠."

    여전히 초조함이 느껴지는 그 표정에, 나는 누님의 손목을 붙잡고 황급히 길드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목이 이끌리는 대로 순순히 내 뒤를 따라왔다.

    어디가 좋을까?

    원래는 누님과 애용하는 카페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거기는 눈에 너무 띈다.

    안 그래도 우리는 여신의 사자 성자와 길드장의 딸이자 인기 안내원이라는 눈에 띄는 조합인데, 조금 전에 길드 안에서 뭔가 있음 직한 분위기로 소란을 떨기까지 했으니까.

    분명 카페로 가면 쓸데없이 주목하고 우리 얘기에 귀 기울이는 무리가 생길 거다.

    하지만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라니.

    우리 저택 말고 그런 곳이 있던가?

    아니. 저택까지 가도 딱히 상관은 없겠지만, 전에도 저택에 데려가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돌려보내 버린 전적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게 아니더라도 레이첼 누님이 이상한 부담감 같은 걸 느낄 수도 있는 일이고.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거듭하던 와중, 나는 문득 예전에 누님과 갔던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그래. 그곳의 마법이라면 누구의 방해 없이도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겠어.

    고급 레스토랑인 만큼 가격의 부담감이 살짝 있기는 하지만, 난 기본적으로 돈이라는 걸 안 쓰는 놈이니까 말이야.

    뭐,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계에서 즐길 취미 같은 것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으니 쓸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만.

    겨, 결코 디아나한테 빈대 붙어서 기둥서방 생활을 즐기느라 돈이 남아도는 게 아니라고! 진짜로 사냥에서 벌고 분배한 돈으로 충분하다고!

    아무튼, 그런 이유로 가끔 고급스러운 곳에 가서 살짝 사치스럽게 먹는 정도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좋아. 그럼 거기에 가기로 할까.

    여기서 갈 수 있는 최단 루트는….

    나는 맵을 보며 근처의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간 골목길을 빠져나온 거리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곳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어두운 뒷골목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상업구에 있었고, 여기도 밤이 되면 활기가 넘칠 공간이었다.

    지금 이렇게 거리가 조용한 이유는, 그냥 순수하게 여기 거리에 늘어선 가게들이 야간에만 문을 여는 가게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던전에는 밤낮이라는 개념이 없다.

    당연히 던전을 다니는 모험가들 역시 낮과 밤의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 많고, 그 모험가들 상대로 장사를 하는 상인들 역시 장사를 위해서 가게 문을 상시 문을 열어두고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모든 가게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낮에만 문을 열 거나 밤에만 문을 여는 식의 가게들도 종종 있기 마련이었다.

    여기는 우연히 그런 가게들이 모여있는 장소라는 얘기다.

    시끄럽고 활기 넘치던 상업구에서 갑자기 이런 적막한 곳으로 들어서니 그냥 레이첼 누님과 여기서 얘기를 나눠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살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일단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길 한복판에서 얘기를 나눌 수도 없는 일이고, 이왕이면 제대로 된 곳에서 얘기를 나누는 게 좋잖아?

    "저, 저기."

    그리고 레스토랑에 최단거리로 향하기 위해 우리가 다시 한번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을 때, 뒤에서 레이첼 누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

    그리고 그제야, 나는 아직도 자신이 레이첼 누님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빠른 걸음으로 끌고 가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도 손에 꽤나 힘을 줘서.

    어쩌면 손목에 내 손자국이 생겼을지도.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황급히 누님의 손목에서 손을 뗐다.

    아니. 떼려고 했다.

    "죄송합니다. 아프셨…."

    "싫어!"

    하지만 내가 그 손목을 놔준 순간, 마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와 함께 누님이 반대쪽 손으로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내 손을 아까 잡고 있던 자신의 손목 쪽으로 당겼다.

    계속해서 붙잡고 있어 달라고 말하듯이.

    마치 이 손을 놓으면 우리의 관계마저 끊어질 것만 같다고 말하듯, 애달픈 표정으로.

    "앗…그, 그게…그러니까…."

    내가 그런 누님의 얼굴을 의아한 듯 엿보자, 누님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 손은 내 손목을 붙잡아서 자신의 반대쪽 손목 쪽으로 당기고 있었다.

    누님의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래. 일단 이런 데서라도 얘기 좀 해야겠다.

    어차피 주변에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단둘이 차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라는 조건은 충족하고 있는 거니까.

    "누니…."

    "버리지 말아 주세요…."

    나는 우선 누님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지한 목소리로 누님을 부르려 했지만, 그보다 누님이 입을 여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게다가 누님이 목소리를 덜덜 떨면서 내뱉은 말의 내용이라는 것이….

    아니. 뭐, 길드에서부터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역시 아까부터 계속 내게 하려던 말은 이거였던 건가.

    대체 어쩌다가 저런 착각을 하게 된 거지?

    물론 내가 최근 누님에게 소홀해진 건 맞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아무리 사과해도 부족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누님을 차버릴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비약이 심한 거 아니야?

    "저, 저는…."

    "누님."

    "네? 아흡…?! 응…으읍…."

    나는 누님의 손목을 잡고 내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그리고 품에 들어오는 그 몸을 부드럽게 받아내 한 손으로 그 목덜미와 머리 뒤를 받치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 허리를 꽉 끌어안은 후, 그대로 진한 키스를 주고받았다.

    내 혀가 자신의 입으로 파고들고도 한동안 몸을 움찔움찔 떨던 누님이었지만, 키스가 계속됨에 따라 점점 몸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결국 그 몸이 축 늘어져서 오로지 끌어안은 내 팔에만 의지해서 서게 되었을 때야, 나는 겨우 길고 긴 키스를 끝냈다.

    "누님."

    "…네에."

    그리고서 다시 내가 누님을 부르자, 누님은 도저히 나와 얼굴을 못 마주치겠는 건지 고개를 숙여서 그 얼굴을 내 가슴팍에 파묻었다.

    "누님이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요. 실은 제가 조금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거든요."

    "…네?"

    내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그 부드러운 금발을 차분히 쓰다듬으면서 말하자, 누님은 그제야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얼굴의 절반 이상은 내 가슴에 파묻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 눈을 봐서는 아마 내가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 왜, 어린애들은 소유욕이 강하잖아요? 한 번 자기 것이라고 정한 건 절대 남한테 뺏기기 싫어하고. 제 성격이 딱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아…."

    내가 부연설명을 하고 나서야, 누님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누님도 손에서 놓을 생각이 아니라는 얘기에요. 물론 누님은 아직 저랑 완전히 애인 사이가 된 게 아니라 아직 시험 기간 같은 거니까 제 거라고 생각 안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전 어린애 같은 면이 있어서 이미 한참 전부터 누님을 제 거라고…."

    "됐어요. 구원씨 걸로."

    누님은 내 몸을 꽉 끌어안는 걸로 내 말을 멈추고는, 다시 얼굴을 완전히 내 가슴팍에 파묻으면서 조그만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완전히 촉촉하게 젖어있어서, 나는 혹시 누님이 울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던전에서 막 돌아온 내 가슴은 두꺼운 가죽 갑옷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누님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만.

    이렇게 가만히 껴안고만 있으니, 머릿속에 이 진지한 분위기를 깰 장난스러운 말이나 아까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의문들이 소용돌이 쳤다.

    그렇게 간단히 인정해버리면 후회하실 텐데.

    아니. 누님뿐만 아니라 나도 살짝 억울해.

    누님의 과거까지 듣고 누님을 설득할 말을 엄청나게 생각해놨는데, 고작 이렇게 내 거라는 선언을 해버리시다니.

    아니. 그보다 결국 어쩌다가 내가 누님을 찰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되신 거지?

    뭔가 내가 모르는 다른 계기라도 있었나?

    내 잘못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살짝 소홀해졌다고 해서 보이는 반응치고는 너무 격렬하고.

    내가 다른 여자, 앨리시아를 찬 것 때문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고 하기도 힘들다.

    물론 앨리시아의 얘기를 할 때 누님이 엄청나게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앨리시아가 비밀로 해달라고 했던 말을 내게 털어놓게 되어서 그랬던 거고.

    그 이후에 만났을 때도 평소의 누님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고.

    물론 점심시간 아슬아슬한 때에 간 거라 조금밖에 대화를 못 나누기는 했지만.

    그런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소용돌이쳤지만, 나는 그런 말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는 그저 조용히 누님의 몸을 마주 안아 주기만 했다.

    그렇게 인적없는 골목길에서 그저 아무 말도 없이 껴안은 채로 상당히 오래 시간이 흘렀다.

    느낌상 그렇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시간이 엄청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렸냐면, 내 품에 안긴 누님이 슬슬 우리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뭘 하고 있는지 자각하기 시작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몸을 움찔움찔 떨기 시작하고도 한참 시간이 더 흘러서, 이제는 그 임기응변에 약한 누님의 숨소리마저 안정을 되찾았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저기. 구원씨?"

    그리고 이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결국 누님이었다.

    내게 안긴 채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이 많았으니 얼핏 들으면 안정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건지 누님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즉, 평소에 누님이 연애경험 많은 누님 행세할 때의 레이첼 누님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네?"

    "결국 저희…어디로 가려고 했던 건가요?"

    "아, 전에 갔던 레스토랑이요. 거기라면 둘이서 차분하게 대화할 수도 있고."

    "…그런가요. 하지만…."

    내 대답에 누님은 뭔가 말하려다가 잠깐 멈추고, 살짝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고, 애써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음 말을 이어서 내뱉었다.

    "둘이서 차분히 얘기할만한 곳이라면, 굳이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근처에 많이 있잖아요?"

    "네?"

    "따라오세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내 손목을 붙잡고, 누님은 몸을 돌려 이번엔 자신이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길드를 나올 때와는 완전히 반대 모습이 되어버렸네.

    그건 그렇고 여기 근처에 진짜 그런 곳이 있었던가?

    뭐, 내가 이 넓은 상점가 가게들을 일일이 다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맵이 있다고는 하지만 마을의 가게 같은 곳은 일단 한 번 직접 들어가야 맵에 등록이 되는 만큼, 나보다는 역시 누님이 잘 알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 후, 손목이 붙잡힌 상태로 순순히 누님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바로….

    "여기에요."

    여관 앞이었다.

    아니. 여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호화스러운 곳이었다.

    원래 세계의 숙박업체 기준이 이 세계에도 적용되는 건지는 의문이었지만, 굳이 그 기준으로 따지자면 고급 모텔에 가까워 보이는 곳이었다.

    뭐, 지금 여기 등급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누님이 날 숙박시설로 데려왔다는 점이었다.

    이건 즉, 그런 뜻으로 생각해도 되는 거겠지?

    내가 색골이라서 그런 생각부터 드는 거 아니지?

    "……저, 누님? 이건 즉…."

    "들어가요."

    내 말을 끊으면서, 누님은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님을 따라 들어간 건물 안에는, 의외로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여러 가지 마법 장치들뿐이었다.

    온통 처음 보는 장치들뿐이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저 장치들이 뭘 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원래 있던 세계에도 있었으니까 말이야.

    카운터에 사람 없이, 그냥 방 번호 골라서 카드 긁고 열쇠 받아서 들어가는 무인텔.

    아니. 뭐, 난 말만 들어봤지, 실제로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 이 세계에 오기 전까지는 그런데 가볼 일도 없는 동정이었습니다만. 뭐 문제라도?

    "…이, 이런 식으로 되어있네요."

    그리고 날 여기까지 데려온 레이첼 누님으로 말하자면, 나보다 눈앞의 장치에 대해 더 무지한 것처럼 보였다.

    마법 장치들을 보고 확연히 당황한 게 보이는 말투로 중얼거리는 누님.

    "네? 누님? 지금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누나가 얼른 가서 해결하고 올게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누님은 아직까지 연상의 경험 풍부한 누님 행세를 하고 싶으신 건지, 그렇게 말하고는 날 놔두고 장치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누님. 아까 저한테 버리지 말아 달라고 매달린 시점에서, 연애 경험 풍부하고 자시고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일단 가만히 팔짱끼고 서서 누님이 눈앞의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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