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46화 (73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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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 초보의 오해

    "아, 맞아. 너희도 지도는 있지?"

    앨리시아의 예상대로, 수컷 펭귄의 부활은 황제펭귄의 부활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며칠의 기다림 끝에, 우리는 겨우 부활한 수컷 펭귄에게서 성기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하필 우리가 잘 때도 아니었기 때문에 부활하자마자 뭔가 해보지도 못하고 성자의 파동 한 방과 화살 한 방을 맞고 죽어버린 수컷 펭귄은 참으로 애처로워 보였다.

    부활하고 죽을 때까지 울음소리 한 번 흘릴 시간조차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겨우 수컷 펭귄의 성기를 얻게 된 앨리시아는 곧바로 본격적인 거북이굴 탐사를 시작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앨리시아의 보내기 전에, 나는 아직 지도를 건네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야 당연하지. 왜?"

    "좀 줘봐. 우리도 많이 들어가본 건 아니지만, 알고 있는 지도는 그려줄게."

    물론 우리도 하루 걸릴 거리 정도밖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겠지. 안 그래도 좁은 대신 복잡한 갈림길이 많아서 일일이 다 돌아보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은 곳이니까.

    앨리시아가 건네준 지도를 바닥에 깔고, 나는 시야 구석의 맵을 확대한 후 그대로 지도에 따라 그렸다.

    "보지도 않고 그리다니…전부 기억하고 있는 거냐. 심지어 의외로 꽤 잘 그리잖아. 너 그림에도 소질 있는 거 아니야?"

    내 능력을 모르는 앨리시아는, 내 의외의 일면에 감탄한 것처럼 얼굴을 들이밀며 중얼거렸다.

    아니. 일단 여기까지 올 때도 내가 지도 한 번 안 꺼낸 건 눈치 못 챘냐?

    그림도 대고 그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잘 그리는 거지, 딱히 소질이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괜히 새삼 반하거나 하지 마라.

    아니. 마음은 기쁘고 고맙긴 한데 말이야, 너 진짜로 우리 애들 시선이 안 느껴지냐?

    제발 얼굴 좀 그만 들이밀어 주세요.

    몸도 숙이지 말고! 나도 남자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야! 구원!"

    "난 지도만 보고 있어!"

    그리고 내 시선이 잠깐, 아주 잠깐 반사적으로 위를 향하는 걸, 사라는 놓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라의 화난 목소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젓고는 다시 시선을 지도에 고정시켰다.

    젠장. 이건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남자의 본능이라고.

    "아?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넌 신경 안 써도 돼! 나조차도 가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니까!"

    정작 내가 지도 그리는 모습을 본다고 몸을 숙여 가슴을 강조하는 자세를 취한 앨리시아는,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지 못한 듯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지만 말이다.

    너 말이야. 그런 점이 여자답지 못하다고 하는 거라고.

    네가 그런 자세로 그러고 있으면 남자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조금은 의식을 해라.

    "아무튼 자, 여기."

    "오, 오우."

    내가 지도를 다 베껴서 건네주자, 앨리시아는 지도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잡아서 한 번 세심하게 바라보고는 곱게 접어서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 동작은 또 미묘하게 여성스럽지 않았냐?

    "그럼 우린 이만 간다. 잘 있어라. 나중에 보자."

    "그래. 조심하고."

    "하, 핫! 지금 누가 누구 걱정을 하냐? 딱히 네가 걱정 안 해도 저 정도 몬스터는 문제없어!"

    "아니. 나도 알아. 그냥 빈말로 한 말이야."

    "뭐 새끼야?!"

    그렇게 마치 차기 전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 앨리시아는 손을 흔들며 거북이굴 너머로 사라졌다.

    그렇게 앨리시아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 통로가 닫히는 것까지 확인한 후 몸을 돌리자, 거기에는 미묘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우리 애들의 모습이 보였다.

    "뭐, 뭐야? 이번에는 평범하게 대했을 뿐이잖아."

    "…하아."

    그리고 내 대꾸에, 어째선지 다들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기 구원씨? 앨리시아씨가 아직 구원씨에게 마음이 남아있는 걸, 구원씨는 눈치 못 채셨나요?"

    그리고 레이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상하게 설명해주듯 그런 말을 해왔다.

    "아니. 그거야…."

    뭐, 눈치 못 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내가 너희 생각만큼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 알면서 일부러 친구처럼 대한 거라고.

    "눈치채고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대한 것이었나?"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잖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그럼 뭐 앞으로는 매몰차게 대할까?"

    "……."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다들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애들은 하나같이 착해빠졌으니까 말이야.

    나한테 차이기까지 한 애를 앞으로도 계속 매몰차게 대하라는 말은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앨리시아에게 제일 경쟁심을 불태우던 사라조차도.

    "괜찮아. 편하게 친구처럼 대하다 보면, 결국 다 시간이 해결해줘서 마음 정리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 하는 말이잖아. 이 바보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여자, 아직도 구원한테 꼬리 치고 있잖아. 눈치 못 챘어? 전에 만났을 때랑 달리 말투가 훨씬 부드러워졌잖아. 아주 가끔 거친 말을 쓰는 것도, 대놓고 구원 눈치 봐가면서 쓰고 있고."

    응? 아니. 잠깐만.

    …그, 그러고 보니, 미묘하게 말투가 평소보다 부드러웠던 것 같기도….

    "아, 아니. 그거 나한테 꼬리 치는 건 아니야.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겠지만, 대충 찰 때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 좀 더 자신한테 자신감을 가지고 여성스럽게 행동하면 더 멋진 여자가 될 거라느니. 그래서 걔도 지금부터 좀 더 여성스럽게 행동하려는 거겠지. 응."

    내 설명에도, 우리 애들은 전혀 납득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런 거라면 좋겠네만 말일세."

    "우린 분명 경고했어. 같은 여자를 두 번 차야 하는 처지가 돼도 난 모르니까."

    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내가 앨리시아를 접하는 태도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렇게 말하는 걸로, 앨리시아에 대한 얘기는 마무리가 됐다.

    아무튼 목적을 달성한 우리는 곧바로 4계층의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들 가끔씩 거북이굴에 내려가기도 했지만, 나는 계속 수컷 펭귄의 방에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며칠 만에 그 방을 벗어나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심지어 4계층의 물속마저 포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때문에 4계층의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곧장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위로 올라간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4계층 마을에 머물면서 직업 레벨과 스킬 레벨을 올릴 계획이었으니, 실은 이대로 바로 특훈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수컷 펭귄의 방에서 부활을 기다리는 시간이 의외로 길어서 말이야.

    상당히 빨리 돌아왔었던 지난번 던전행과 합쳐서 생각하면, 결국 또다시 장기간 던전에 머물렀던 것처럼 되어버린 거다.

    그런 것치고는 별달리 한 게 없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위에서 해야할 일이 밀려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지난 번에 하루 동안 위에서 있었을 때는 결국 아무것도 한 게 없었으니까.

    아니. 바넷사와 상당히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일단 위로 돌아올 때마다 무조건 한 번을 얼굴을 비추기로 했던 레이첼 누님과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기는커녕 대화다운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다.

    던전에서 돌아왔을 때는 디아나가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급하게 저택으로 돌아가 버렸고, 이번에 던전에 다시 들어갈 때는 앨리시아 파티도 함께였기 때문에 잡담 같은 걸 나눌 시간도 없이 사무적으로 파티 등록만 하고 내려 와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레이첼 누님은 내가 던전에 내려갈 때마다 불안해할 텐데.

    이번에는 대체 얼마나 불안해하셨을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레이첼 누님 일 말고도, 일단 공주의 쌓인 성욕도 풀어줘야 한다는 사명도 있고 말이다.

    그런 이유로 곧장 위로 돌아온 나는, 우리 애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마석 정산을 위해 레이첼 누님에게 다가갔다.

    "구원씨! 으, 으흠!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멀리서 봤을 때는 살짝 흐려보였던 얼굴을 환한 미소로 물들이며 반가운 목소리로 날 맞이해주신 누님은, 곧바로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안내원다운 멘트를 던져왔지만.

    하지만 누님. 너무 진정한 척하느라 평소보다 태도가 더 딱딱해지셨어요.

    역시 걱정됐던 걸까?

    "그럼 마석 정산 부탁드려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내게 마석을 건네받은 누님은, 여전히 살짝 어색한 태도로 마석 정산을 시작했다.

    역시 바로 약속부터 잡아야겠지?

    "누님. 언제 시간 되세요? 이왕이면 되도록 빨리."

    "네? 빨리?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긴히 할 말이 있어서요."

    "기, 긴히…할 말…?"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표면적으로 완벽한 안내원의 모습을 보여주던 누님의 태도가 드디어 살짝 흔들렸다.

    그것도 어째선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어째서지? 분명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 아니라면, 누님은 얼굴이 살짝 창백해진 것 같은데?

    그리고 입술도 살짝이나마 덜덜 떨리고 있고.

    "여, 여기서는 못 할 얘기인가요?"

    "네? 뭐, 그야…너무 뒤에 있는 사람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요."

    이번에 약속을 잡게 되면, 전에는 못다 했던 누님의 강아지 얘기도 해야 한다.

    때문에 그렇게 대답을 한 나였지만, 그 말을 들은 누님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졌다.

    "오, 오래 걸리는 얘기인가요?"

    "아니. 그보다 누님? 괜찮으세요?"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

    그렇게 직감한 나는, 우선 오해부터 풀기 위해 누님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요. 그, 그보다 오래 걸리는 얘기인 거죠?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준비할게요."

    "네? 지금부터?"

    "네. 밀린 연차는 아직 많거든요. 제가 말만 하면 언제든 쓸 수 있을 정도로요."

    아니. 누님. 그건 그거대로 좀 어떨까 싶은데요.

    꼭 저랑 만날 때가 아니더라도, 일은 좀 쉬어가면서 해주세요.

    "아니면, 구원씨가 지금 당장은 곤란하신가요?"

    "아뇨. 저도 딱히 지금이라도. 생각 정리는 끝났고…."

    "새, 생각의 정리?!"

    내가 무심코 중얼거린 한 마디에, 누님은 몸을 움찔하고 떨면서 격한 반응을 보이셨다.

    그리고 누님의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누님이 대체 아까부터 왜 이상한 반응을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싫어도 알 수밖에 없잖아. 생각의 정리라는 말에 저렇게 반응을 해버리면 말이야.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러니까 즉, 누님은 지금 내가 누님을 차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아니. 대체 왜?! 이제 내가 다른 여자를 찬 경력이 한 번 생겼으니까?

    아니면 요즘 누님을 자주 못 봐서, 애정이 식었다고 생각한 건…응. 만약 이유가 있다면 이거겠네.

    전에도 점심시간 아슬아슬할 때 찾아와서는 잠깐 얘기를 나눈 게 전부고, 그 다음에는 위로 돌아온 다음에 따로 만나기는커녕 별다른 대화도 없이 다시 던전으로 들어가버렸고.

    응. 마음이 식었다고 오해할만하네.

    "아…저, 누님?"

    "네?!"

    "딱히 누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게…."

    "제가 생각하는 게 뭔가요?!"

    응. 안 되겠다 이건.

    안 그래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는 대응이 이상해지는 누님의 성격이 좋지 않은 쪽으로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험가 길드 한복판에서 멜로 드라마를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니. 진짜로. 그런 건 저번에 안내원 자리에 끌어들여 졌을 때 한 번으로 족해.

    아직도 길드에 들어올 때마다 다른 안내원들의 시선이 은근 신경 쓰인다고.

    지금도 은근히 주목 받기 시작하고 있고.

    "진정하세요. 진정하시고, 아무튼 조금만 기다리면 시간 되는 거죠? 그럼 바로 저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준비하고 와주세요."

    "네, 네에…여기. 정산된 금액입니다…."

    내 말에 눈동자를 그렁이면서도, 누님은 안내원으로서 착실하게 자신의 맡은 바 일을 다 했다.

    절대 소홀하게 대해진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까지 했던 주제에, 결국 소홀해진 나머지 이런 오해까지 하게 만들다니. 이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같은 저택에 있지 않으면 내 여자도 제대로 못 챙기는 주제에 뭐가 하렘왕이야. 반성하자.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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