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45화 (729/1,205)
  • 745====================

    거북이굴 열쇠를 위한 여정

    "자, 그럼."

    "히잇?!"

    앨리시아와 우리 애들을 거북이굴로 내려보낸 후,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서 실비아에게 성큼 다가갔다.

    물론, 우리 실비아는 그것만으로도 몸을 움츠리며 벌벌 떨기 시작했다.

    아까 마틸다와 경쟁하듯이 나한테 매달리기 위해서 쥐어짰던 용기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래. 앨리시아와 함께 내려가는 탱커 역할은 결국 마틸다가 맡게 됐다.

    딱히 누가 더 내게 강하게 매달리나 경쟁에서 실비아가 마틸다를 이긴 건 아니다.

    만약 그걸로 승부가 결정될 때까지 계속됐으면, 장담하는데 난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거다.

    내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결국 지켜보기만 하던 사라나 디아나, 레이아도 실비아와 마틸다를 뜯어 말렸고, 결국 둘의 승부는 평범하게 가위바위보로 결정이 나게 됐다.

    애초에 그 거북이한테는 참격보다는 타격이 더 효과적으로 데미지를 줄 수 있으니, 검을 쓰는 실비아보다는 둔기를 쓰는 마틸다가 더 제격이기는 했지.

    뭐, 후위진을 지키는 역할로 내려간 거고, 거북이의 상대는 앨리시아가 할 테니까 그다지 의미 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서 가위바위보로 정하게 한 거고.

    아무튼 거북이의 특징이나 상대법을 알려주기 위해 내려간 거다.

    기껏 해봐야 한두 마리 정도 상대하고는 금방 다시 올라오겠지.

    우리 애들은 몬스터를 상대하러 갔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게 되는 건 또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왠지 기분이 이상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되기는 했지만, 나는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다독이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실비아랑 장난이라도 치고 있으면, 조금은 이 묘한 감정을 잊어버린 채 기다릴 수 있을 거야.

    "왜 그래? 아까처럼 매달려도 된다고? 자, 내 품에 안겨! 아까처럼 온 힘을 다해서!"

    "죄, 죄송합니다아아!"

    내가 두 팔을 벌리며 다가가자, 실비아가 울상을 지으며 꾸벅꾸벅 사과를 해왔다.

    아니. 아까 그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안기라는 건데.

    곧바로 오해를 풀어도 되겠지만, 자신의 잘못에 벌벌 떨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실비아가 귀여웠기 때문에 나는 일단 오해를 풀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훗. 이게 바로 여자들한테 인기 있는 나쁜 남자란 거 아니겠어?

    "실비아."

    "네, 네힛?!"

    "아무리 그렇게 뒷걸음질 쳐봤자, 도망갈 곳이라고는 어디에도 없다고. 이 폐쇄된 공간에서는 말이지."

    "우, 우으으읏…."

    내가 사악하게 말하며 다시 한 걸음 다가가자, 실비아가 삶을 포기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겨우 뒷걸음질을 멈췄다.

    "크크큭. 그래. 그래야지."

    물론, 멈춰선 실비아를 내가 곧장 끌어안은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

    나는 실비아의 몸을 두 팔로 꼬옥 끌언안아 내 몸에 파묻듯이 찰싹 밀착시키고, 얼굴로 그 복슬복슬거리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헤치듯이 비볐다.

    "히으읏?!"

    그렇게 해서 드러난 그 귀여운 귀를 입술로 가볍게 깨물고는, 나는 실비아의 귓가에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가련한 몸을 순순히 바들바들 떨면서 내게 실비아테라피를 맛보게 해달라고. 아니. 그뿐만이 아니야. 며칠 동안 체력 소모가 극심했으니까 말이야. 내가 어떻게 하면 체력을 빨리 회복할 수 있는지, 실비아 너도 잘 알지? 다른 애들이 돌아올 때까지, 단둘이서 끈적하게…."

    "아, 아, 아우아, 아아앗…."

    내가 힐링 섹스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자, 실비아는 턱을 덜덜 떨면서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야. 너 지금 우리도 있는 거 까먹고 있지 않냐?"

    하지만 여기에는 나와 실비아의 치명적이면서 감미로운 분위기를 산산조각내는 방해물들이 있었다. 그것도 셋이나.

    "아니. 일부러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는 거니까 너희는 말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줄래? 분위기 잡는 데 방해되잖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전력으로 방해할 거거든?! 대체 뭘 시작하려고 하는 거야?!"

    "갑자기 눈앞에서 둘이서 달라붙어서 끈적거려대도 곤란합니다만."

    "맞아. 맞아."

    "쳇. 방해물이 있으니 어쩔 수 없나."

    칸나뿐만 아니라 세레나나 에이미까지 한마디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실비아의 머리카락에 파묻은 얼굴을 들었다.

    "하, 하아…사, 살았다아…."

    그리고 그런 내 행동이 자신과 노는 걸 완전히 중단하는 거라고 생각한 건지, 실비아의 몸에서 긴장이 쫙 풀렸다.

    실비아야. 중얼거리는 게 귀엽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해서 봐주지는 않을 거란다.

    "걱정하지 마. 그래도 끌어안고는 있을 거니까."

    "우으읏…!"

    짧게 속삭이는 것으로 실비아의 긴장을 다시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나는, 품 안에서 느껴지는 실비아테라피의 효과를 만끽하며 다시 고개를 들어 삼인방을 쳐다봤다.

    황당하다는 표정의 칸나. 살짝 곤란한 표정의 세레나. 그리고 어째선지 눈을 빛내고 있는 에이미까지.

    약간의 오해가 겹쳐서 앨리시아의 감정을 전해 듣게 된 그 날 이후로, 이렇게 앨리시아를 빼고 얘들하고만 대화를 나누게 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잘 지냈냐?"

    "네 눈에는 잘 지낸 것처럼 보이냐?"

    "하핫. 전혀."

    앨리시아한테 굴러서 맨날 죽을상인 걸 똑똑히 봤는데 그렇게 봤을 리가.

    내가 박장대소하며 대답하자, 칸나가 이를 갈며 내게 덤벼들 기세로 고함을 질렀다.

    "웃을 일이 아니라고! 너 때문에 그 이후로 우리가 얼마나…!"

    "아니. 미안. 미안. 나도 여자를 차는 건 처음이라, 차마 너희 얘기를 할 정신이 없었어."

    "의외로군요. 경험상 여자를 바람맞히는 건 익숙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아니. 세레나씨. 경험상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설마 예전에 4P 하자고 하고 바람맞힌 얘기를 아직까지 하는 거냐?

    "우, 웅…?"

    세레나의 의미심장한 말에, 실비아는 내 품에 안겨 떨면서도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정을 모르는 실비아한테는 상당히 이상하게 들렸겠지.

    "그럴 리가! 내가 얼마나…."

    나는 괜히 대화의 흐름이 이상해지기 전에, 먼저 말을 돌리기로 했다.

    난 내 여자한테는 그저 사랑에 헌신적인 매력남으로만 남고 싶거든.

    섹스만 할 수 있으면 감정이 전혀 없는 여자라도 껄떡대는 망나니가 아니라.

    망할 과거의 나 같으니라고. 하여간 그놈의 바보짓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뭐가 붉은 발의 구원이냐.

    "알았으니까 둘이 좀 떨어지지 그러냐. 진짜 눈꼴시어 못 보겠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칸나가 나서서 말을 돌려줬다.

    아무래도 칸나는 세레나가 의미심장하게 툭하고 내뱉은 말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요. 아니면 우리도 같이 껴주…."

    그렇지만 깨닫지 못한 건 칸나뿐이었다.

    에이미는 세레나가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 더 나아가서 아직도 살짝 미련이 있는 건지 은근슬쩍 4P, 아니. 실비아까지 있으니 5P인가? 아무튼 대놓고 다대일 플레이를 요구하는 폭탄 발언을 던져왔다.

    누가 성직자의 금기를 대놓고 어기고 다니는 방탕 사제 아니랄까 봐.

    아니. 그래도 너 처음 만났을 때는 밝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좀 더 얌전한 성격 아니었냐?

    언제부터 그렇게 직설적인 요구를 하게 됐는데? 앨리시아랑 같이 놀면서 물든 거야?

    어쩐지 아까부터 실비아랑 날 보면서 눈을 반짝이더라니.

    만약 내가 실비아랑 진짜로 섹스라도 하기 시작하면, 은근슬쩍 자기도 낄 생각이었던 거야?

    아무리 나라도 너희가 보고 있는 앞에서 대놓고 하는 짓은 안 할거거든?! 장난이었거든?!

    "……! 지,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아, 아하하…."

    나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오히려 아무 말도 못 하게 됐다.

    하지만 내 품에 안겨있던 실비아는 달랐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몸을 웅크리고 내 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실비아는, 에이미의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내 품에 오래 있었던 나머지 완전히 풀려버린 혀를 어떻게든 움직이며, 나로서는 듣기 힘든 딱딱한 말투로 에이미를 위협했다.

    그런 실비아의 갑작스런 변모가 상당히 위협적이었던 건지, 에이미는 곧바로 꼬리를 말아버렸다.

    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저렇게 되는 게 당연하지.

    실비아 얘가 내 앞에서는 항상 오들오들 떠는 귀여운 모습만 보여줘서 그렇지, 여러모로 장난 아닌 애니까.

    집안은 공주랑 친구 먹을 정도의 고위 귀족에, 자기 스스로의 실력도 왕실친위대의 기사. 그것도 공주의 호위를 맡을 정도의 실력자다.

    그런 애가 위협하면 보통 저렇게 되겠지.

    "진정해. 실비아. 그냥 옛날부터 아는 사이라 장난친 거야."

    "네, 네헤에에엣…."

    하지만 내가 그 머리에 손을 얹고는 쓰다듬어주며 진정시키자, 실비아는 곧바로 헤실거리는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다시 몸을 진동하기 시작했다.

    "……."

    그렇게 뭐부터 태클 걸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지 마라. 귀엽잖아.

    아니. 너희 눈에는 귀엽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귀여우니까 됐어.

    "아무튼 앨리시아한테 너희 커버를 못 해준 건 미안하게 됐다."

    "…뭐, 상관 없지만 말이야. 교관님이 그런 걸 마음에 담아줄 성격도 아니고."

    아니. 일단 혼자만 고이 간직하고 있던 연정을 다른 사람이 떠벌려서 좋아하는 사람 귀에 들어간 거니까, 그런 거라는 표현으로 넘어갈 만큼 가벼운 사안은 아니지 않았냐?

    아니. 당사자들이 신경 안 쓴다면 상관 없지만 말이야.

    하여간 앨리시아 걔 성격 털털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렇게 다혈질이면서도 클랜 내에서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아무튼 그 이후로도, 나는 실비아를 끌어안은 채로 삼인방과 별 거 아닌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우리 애들과 앨리시아가 거북이굴에서 돌아올 때까지.

    그동안에 수컷 펭귄이 부활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거북이굴에서 돌아온 파티도 딱히 별다른 트러블은 일어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다만, 어째선지 돌아온 사라가 살짝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것만이 마음에 걸렸다.

    "왜 그래?"

    "…별로."

    아니. 표정은 별로라는 표정이 아닌데.

    하지만 이대로라면 쉽게 말해주지는 않을 것 같고.

    어쩔 수 없지.

    "디아나."

    나는 디아나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음?"

    "사라 쟤 왜 저래? 혹시 앨리시아랑 싸웠어?"

    "아니. 별다른 마찰은 없었네. 오히려 별 일이 있었다면 자네 쪽 아닌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자네 말일세.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겐가?"

    그렇게 말하며 디아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내 품에 너무 오래 있었던 나머지 하얗게 재가 되어버린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실비아의 모습이 있었다.

    영락없는 시체의 모습이었지만, 그 등이 미묘하게 상하로 움직이는 걸 보아 아직 숨은 붙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저건 평소에도 있는 일이잖아."

    "일단 수컷 펭귄이 언제 부활할지 모르는 걸세. 지나친 장난은 삼가게나."

    "넵."

    어차피 수컷 펭귄이 나와봤자 내가 성자 스킬까지 써서 잡는 거니까 한 방이면 요리할 수 있지만 말이야.

    디아나도 그걸 아는 만큼 너무 엄하게 굴 생각은 없는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로 내 머리를 가볍게 콩하고 두드리는 것으로 주의를 끝낸 거겠지.

    "그래서, 사라는 무슨 일인데?"

    "정말로 별일 아닐세. 그저…."

    "다 들리거든."

    그 순간, 사라가 내 귀를 잡아당기며 얘기에 껴들었다.

    귀가 좋은 사라인 만큼, 속삭이고 있었어도 전부 들렸던 모양이다.

    뭐, 나도 들릴 걸 알면서 일부러 그런 거지만.

    "그러니까 물어봤을 때 직접 말해줬으면 됐잖아. 무슨 일인데?"

    "정말 별 거 아니야. 그냥 조금…자만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아아. 그런 거였나.

    사라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겨우 사라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라 얘는 앨리시아가 진심으로 싸우는 걸 보는 게 처음이었던가.

    그리고 아마 앨리시아는, 혼자서 아무렇지 않게 거북이를 해치웠을 거다.

    비좁은 거북이굴에서 휘두르기도 힘든 대검을 들고, 거북이에게 잘 먹히지 않는 베기 공격으로. 아마 폭주해서 달려드는 거북이까지 혼자 막아내면서.

    공방 일체의 대검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데다가, 딜탱 포지션인 앨리시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전투였겠지만, 우리 경쟁심 강한 사라가 그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지 않았을 리가 없다.

    "별로 경쟁심 불태우지 않아도 괜찮은데. 어차피 쟤는 6계층에서 노는 애라고. 사라 너도 저 레벨쯤 되면 그 정도는…."

    "바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래."

    내 위로도, 사라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진짜로. 네가 더 이상 세지면 내 옆구리나 등짝이 슬슬 진짜로 위험…."

    "그럼 애초에 맞을 짓을 하지 마. 이 바보야!"

    "훗. 그렇게 못하…끄악?!"

    결국 내 옆구리를 꼬집은 사라는, 아까보다 살짝 표정이 풀린 것처럼 보였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에시론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