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42화 (72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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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이굴 열쇠를 위한 여정

    "후, 후으응. 특훈이란 말이지."

    우리는 앨리시아의 파티와 하나의 파티처럼 뭉쳐서 길드를 지나 4계층 마을까지 오게 됐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나는 당연히 앨리시아와 별 거 아닌 얘기를 주고받았다.

    앨리시아와 서스럼없이 얘기하는 건 여전히 살짝 우리 애들 눈치가 보이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왕 같이 가는 거다. 그리고 모처럼 동맹 같은 걸 맺은 거다.

    이쪽 파티 저쪽 파티 구분지어서 서로끼리만 얘기를 주고 받는 것도 좋지 않잖아?

    그랬다가는 우리 파티가 사람이 많다보니 괜히 더 따돌리는 것처럼 보일 거라고.

    그리고 별 거 아닌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당연히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아라크네 클랜도 우리에게 이용당하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목적이 있어 동맹을 맺은 것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우리 파티가 왜 거북이굴을 발견하고도 한동안 거북이굴에 드나들지 않을 거라는 건지 그 이유가 궁금하기는 하겠지.

    뭐, 앨리시아는 그렇게 뒤를 캔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순수하게 호기심이 생겨서 물어본 것 같았지만.

    그리고 내게서 특훈이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앨리시아의 거동이 눈에 띄게 의심스럽게 변했다.

    "왜 그래?"

    그렇게 물으면서도, 나는 대충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바넷사랑 정반대의 의미로 성격 쿨하고 시원시원한 앨리시아가 이런 반응을 보일 일이라고는 그다지 많지 않단 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야."

    "뭔데 그래? 답지 않게. 말해 봐."

    "…오해하지 마라? 미련 같은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라?"

    "안 한다니까."

    보아하니 나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정리된 건 아닌 모양이지만, 원래 사람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정리되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아무리 털털한 이 녀석이라도 이런 반응정도는 보이는 게 당연하겠지.

    오히려 나랑 이렇게 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쿨한 거라고 생각해.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앨리시아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 뭐냐. 특훈, 생각있으면 내가 도와줄까?"

    앨리시아에게 특훈을 받는다라.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최강의 모험가 클랜 중 하나라는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로, 던전에 대한 것만 놓고 보면 디아나 이상으로 빠삭할 앨리시아다.

    게다가 얘는 간부 중에서도 모험가 교육에 관련된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모양이니까. 관련 노하우도 상당하겠지.

    아니. 그냥 상당한 수준이 아닐 거다. 아마 모험가를 육성하고 실력을 끌어올리는 일에 관해서는 도시 전체, 어쩌면 세계를 놓고 봐도 열 손가락 안에는 꼽히지 않을까?

    그런 앨리시아한테 받는 특훈이다.

    아마 다른 모험가들이라면 돈을 내고서라도 받고 싶어하지 않을까?

    저 삼인방이 맨날 죽을 상을 지으면서도 결국 끝까지 따라다니고 있을 정도니까. 실제로 우리 파티랑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던전을 내려가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진짜 말도 안 되는 녀석들이네.

    어떻게 사기 클래스로 도배된 우리 파티를 따라오고 있는 거지?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앨리시아의 말을 듣고 진지하게 고민을 한 번 해봤다.

    삼인방을 다루는 걸 보면 상당히 스파르타식 교육인 것 같지만, 힐링 섹스라는 사기적인 스킬이 있는 나에게는 체력에 관한 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방어 스킬 하나 없이 탱커를 맡았을 정도니, 웬만한 고통으로는 우는 소리를 내지 않을 자신도 있고 말이다.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점이 있다면, 얼마 전에 찬 여자의 도움을 받아 성장할 정도로 내가 뻔뻔할 수 있을까 정도였다.

    아니. 내가 철면피인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너무 염치가 없잖아.

    "으음…나야 고맙기는 하지만…."

    잠깐 손으로 턱을 괴고 고민해본 후,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앨리시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거절할 이유가 더 늘어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우선 앨리시아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삼인방의 시선.

    같이 죽자는 것처럼 해괴하게 웃으며 안광을 빛내는 삼인방의 그 모습은, 앨리시아의 스파르타식 특훈을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고 자신했던 나조차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보다도, 무언의 압박을 엄청나게 보내는 우리 애들의 시선.

    이미 찬 상대니까 바람 피울 걱정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런 게 아니더라도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특훈하는 동안 우리 애들이랑 돌아가면서 단둘이 지내기로 했었지.

    앨리시아의 특훈을 받는다는 건, 당연히 그 둘만의 시간이 깨질 거라는 걸 의미하게 된다.

    물론 단둘이 있는 시간이 데이트 같은 알콩달콩한 시간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을 제법 기대하고 있었던 거겠지.

    그런데 만약 그 약속을 다른 여자랑 같이 있는다는 이유로 깨버리면…아무리 그 이유가 특훈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살아남을 확률은 0에 수렴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고맙지만 사양할게. 쟤들 성장시키기도 바쁠텐데 시간 뺏는 것도 미안하고."

    "훗. 짜식. 괜히 눈치 볼 필요 없다고. 이 누님이 이렇게 인심 써줄 때 사양하지 말고…."

    내가 살짝 고민하는 기색을 보여서인지, 앨리시아는 야성미 넘치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 등을 손바닥으로 퍽퍽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니. 넌 주위를 둘러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숙련된 모험가잖아? 주변에 흐르는 미묘한 살기를 좀 눈치채라고.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이러는 건가?

    "아니. 너희가 펭귄의 성기를 받으러 너희가 따라온다는 건, 그쪽 클랜에서도 너희한테 거북이굴의 탐사를 맡기려는 거잖아?"

    물론 우리랑 달리 거대 클랜이다보니 얘네만 거북이굴을 조사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얘들이 그 핵심일 건 분명했다. 아무래도 앨리시아가 껴있으니까 말이야.

    "윽…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나로서도 너희가 거북이굴을 샅샅이 뒤져주는 게 더 효율이 좋을 것 같고."

    "쳇. 그러냐."

    내 대답에, 앨리시아는 혀를 차면서 재미없다는 듯 괜스레 바닥을 한 번 걷어찼다.

    야. 네가 그러면 괜히 나한테 미련있는 것처럼 보여서 우리 애들한테 더 경계만 받게 되잖아.

    "아, 그럼 얼음 동굴까지 가는 동안만 내가 봐주는 건 어때? 어차피 이제 이 녀석들도 여기에선 더 배울 것도 별로 없으니까."

    심지어 앨리시아는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아니. 왜 그렇게 날 훈련시켜주고 싶어하는 건데?

    "뭐, 그 정도라면야…."

    어차피 가는 동안에는 얘랑 같이 있어야되고, 우리 애들도 일거수 일투족을 보는 거니까 의심 받을 걱정도 없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앨리시아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 미소의 의미를, 나는 곧바로 깨닫게 됐다.

    "흐엑…헥…헤엑…끄악!"

    방금 그게 4계층에 들어오고 몇 번째 전투였을까?

    전투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도 여지없이 전투가 끝남과 동시에 내 몸은 멱살을 잡혀 그대로 끌려갔다.

    그리고 앨리시아는 마치 박치기라도 먹이는 것처럼 내 마스크에 자신의 마스크를 부딪혀왔다.

    아니. 물 속에서는 대화 수단이 한정되어있고, 마법사가 없는 너희 파티는 이런 방법이 더 익숙하다는 건 이해하겠는데 말이야. 매번 이렇게 박치기를 먹여야겠냐?

    게다가 이 녀석, 묘하게 얼굴을 붉힌단 말이지.

    그야 마스크가 없었으면 키스도 가능할 정도로 가까운운 거리이기는 하지만.

    "뭘 고작 이 정도 전투로 얼이 빠져 있는 거야! 던전에서는 언제 다시 몬스터와 전투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전투가 끝나더라도 곧장 태세를 정비하고 주변을 살피며 다음 전투를 대비하는 건 상식이잖아!"

    하지만 살짝 상기된 얼굴과는 별개로, 앨리시아는 교관다운 엄격한 목소리로 윽박지르듯 내게 외쳤다.

    아니. 그러니까 그럴 시간도 없이 멱살을 잡아챘잖아요.

    "대답은!"

    "예스…맘…."

    "방금 전 전투도 엉망이었어! 직업 상 공격을 맞기보다 피하려고 하는 건 좋지만, 맞아도 되는 공격까지 피하려고 하다보니까 자세가 무너지고 공격 기회도 줄어들고 전투 시간도 길어지잖아! 맞아도 되는 공격은 맞아가면서 싸워! 탱커도 했었다면서?! 요령껏 맞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닐 것 아니야?! 모르면 내가 직접 몸으로 알려줄 수도…."

    "아, 아뇨! 괜찮습니다! 피하려고 한 건 그거에요! 어차피 여기 수준 애들은 그냥 싸워도 이기니까, 이왕 싸우는 건 피하는 연습이라도 할겸…."

    "그런 물러터진 생각이 방심을 부르고 사고를 낳는다고! 그리고 그렇게 싸워버릇하면 나중에 막아야 될 때 잘 막아가면서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움직이게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잔챙이들과 싸울 때도 방심하지 말고 제대로 싸워!"

    "네, 넵!"

    "똑바로 해!"

    "네…크헉!"

    전투가 끝나자마자 날아오는 조언과, 마지막으로 등짝에 손바닥 한 방.

    벌써 몇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그 과정에, 내 등짝은 감각이 사라져가기 시작할 정도였다.

    몬스터들이랑 싸우면서 받은 피해보다, 명백하게 앨리시아 쟤한테 받은 피해가 더 많아.

    "구, 구원씨. 치료를…."

    "아직 일러!"

    레이아가 그런 날 보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가와 치료를 해주려 했지만, 앨리시아는 그마저도 막아섰다.

    매번 사소한 상처마저 치료를 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다.

    항상 몸 상태가 만전일 수는 없으니 나도 그런 상황에서 싸우는 걸 경험해봐야 하고, 힐러의 마나 관리 측면에서도 더 효율적이다. 라는 것이 앨리시아의 말이었다.

    뭐, 지당하신 말씀이었지만.

    "우웃…!"

    다만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우리 천사님은 그런 것보다 내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게 훨씬 더 싫었던 모양이다.

    매번 원망스런 표정으로 앨리시아를 노려봤지만, 앨리시아는 우리 천사님의 그런 시선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 천사님한테 이런 시선을 받고 저러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야.

    아니. 레이아뿐만 아니다.

    사실은 처음부터 우리 애들의 반발이 장난 아니었다.

    아까 전에 마스크를 맞부딪히고 말을 나눈 것도, 우리는 마법이나 정령을 쓸 수 있으니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도 앨리시아가 조언은 저런 식으로 해야된다고 밀어붙여서 그렇게 된 거다.

    강하게 노려보며 윽박지르듯 해야 더 효과적이라나?

    확실히 평범한 사람이라면 지려버릴 정도로 눈빛이 강렬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뺨이 붉어져서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못한 것 같기도 한데 말이야.

    게다가 괜히 우리 애들의 반발만 엄청나게 사고.

    일단 모험가 육성의 전문가인 앨리시아가 하는 말이니, 우리 애들도 결국 꺾여줬지만 말이다.

    그래도 마스크를 맞부딪힐 때마다 여기저기서 살기가 몸을 뚫는 느낌이 드는 건, 이 특훈이 끝날 때까지도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았다.

    "레, 레이아. 난 괜찮으니까. 응?"

    아무튼 앨리시아를 노려보는 우리 천사님을 진정시키면서, 나는 필사적으로 괜찮다는 어필을 했다.

    스파르타기는 하지만, 앨리시아의 특훈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유익하기도 했고 말이다.

    사실 처음에는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기도 했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는 직업 레벨이 올라가면 자연스레 그 수준에 맞는 움직임을 할 수 있게 되니까.

    하지만 막상 특훈을 받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무리 전투 기술이 늘어나도, 결국 몸을 움직이는 건 자기 자신. 저절로 몸이 움직여서 싸워주는 게 아니다.

    상황에 맞는 판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앨리시아의 특훈은 내 그런 점을 완벽히 보고 결점을 지적해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도움이 됐다.

    유일한 불만이 있다면, 앨리시아가 스탯의 신봉자라는 점이었다.

    물론 앨리시아는 세부 스탯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존재자체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세계는 관련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스탯이 쌓인다는 사실을, 앨리시아는 오랜 교관 생활을 통해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사람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훈련방식을 하는 거다.

    맞을 건 맞아야 맺집도 늘고, 체력도 쉴틈없이 몰아붙여야 늘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잘못된 방식이라는 건 아니다.

    문제는 내가 이 이상 스탯은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스탯은 성자 레벨만 올려도 대부분의 스탯이 레벨 제한에 걸릴 정도까지 찍힐 정도로 높다고.

    물론 그런 걸 설명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앨리시아의 방식에 철저하게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Sasins // 지적 감사합니다. 지적해주신 부분 중 잘못 지적해주신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부 수정했습니다.

    거북이굴에 -> 거북이 굴에 라고 지적하신 부분은 지적해주신 의도는 알겠으나 일부러 붙여 쓴 부분이라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토끼굴을 띄어쓰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니였다 -> 아니었다 라고 지적하신 곳은 없었습니다. 아예 컨트롤+F로 였 한 글자만 찾아봤습니다만 저번 화 전문 중 였을 쓴 부분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라고 쓴 부분밖에 없네요.

    이해좀 해줘라 -> 이해 좀 해 줘라 라고 지적하신 부분은 앞부분은 고쳤습니다만 뒷부분의 띄어쓰기는 원래 것이 맞습니다.

    그래도 한도가 -> 그래도 한계가 지적하신 부분은 한도라고 써도 문제 없습니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다 같은 말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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