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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째 사도
"……하?"
그리고 내 질문에, 바넷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번에는 바넷사 기준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 기준으로 봐도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짓는 바넷사를 보니, 묘한 달성감이 느껴졌다.
그야 놀라겠지.
뭐, 실은 이렇게 말하는 나도 내심 엄청나게 놀라고 있었지만.
아니. 내 여자 중 아직까지 사도임명을 못한 건 바넷사뿐이잖아?
그러니까 안에다가 사정을 하고 나서, 그냥 별기대없이…라고 할까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도임명을 써본 것뿐이었거든.
그런데 이게 또 발동이 되는 거 아니겠어?
바넷사와 알콩달콩한 대화를 나누는데 정신을 집중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스킬을 쓴 거였기 때문에, 눈앞에 갑자기 인장 설정창이 뜨는 바람에 나도 엄청 놀랐다.
게다가 더 한심한 건, 이러고도 대체 왜 그동안 사도임명을 못했던 건지 짐작이 안된다는 거였다.
게임에서처럼 사람마다 뭔가 심경 변화를 이뤄내는 퀘스트가 존재할 거라는 건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바넷사의 퀘스트가 대체 뭐였던 건지.
짐작가는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알기 힘들다.
바넷사 말대로, 진짜 방치가 너무 길었던 건지도.
저번에 한 번 하고부터 오늘까지, 그사이에 바넷사와의 관계는 꽤나 진전이 있었으니까 말이야.
첫 데이트도 했고, 사복도 입게 만들었고, 돌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용인족 모습을 드러내고 다녔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었고, 바넷사의 마음속에서 디아나보다 위에 서려는 노력까지 했었지.
뭐, 마지막 것은 노력만했지 제대로 실행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그동안 한 것만 해도 이정도인데, 게다가 오늘도 꽤나 많은 진전이 있었다.
예를 들어 바넷사 스스로 저택 안에서 사복을 입게 만든 것.
아니. 이건 내가 시켰다기보다는, 바넷사 스스로 이렇게 입고 온 거지만.
아무튼 일견 별 거 아닌 행위처럼 보일지 모르는 그것도, 바넷사에게는 커다란 전진이었을 거다.
저택에서는 무조건 집사로만 있던 바넷사가, 스스로 그 틀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니까.
실제로 아까 전에는 스스로 지금은 집사가 아니라는 말까지 했었고.
그리고 또 하나. 방금 전에 스스로 얼굴을 가리던 손을 치우고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내게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이것 역시도 바넷사의 마음의 문이 더 활짝 열린 거라고 볼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훗. 내가 단순히 야한 생각만 가지고 오늘 그렇게 행동했던 게 아니라는 얘기…는 아무리 그래도 너무 허풍이 심한가.
뭐, 반쯤 끼워맞추기 식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건 확실했다.
아무튼 이렇게나 짐작가는 일이 많다보니, 오히려 바넷사의 퀘스트가 뭐였는지 알기가 힘들어졌다.
뭐, 아무튼 클리어한 거니, 이제와서 그런 걸 알아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지만.
게다가 지금은 조건이 뭐였는지 고민하는 것보다, 눈앞의 바넷사와 이 기쁨을 공유하는 게 먼저다.
서로 절정에 달하고 숨을 고르는동안 그렇게 생각의 정리를 마친 나는, 애써 태연한척하며 바넷사에게 사도임명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알렸다는 얘기다.
"흣…으읍…!"
"그래서, 어디가 좋아?"
바넷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짓고는 있었지만, 결코 내 말을 못들어서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잘 들었기 때문에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다.
때문에 나는 바넷사의 벌어진 입술에 다시 한 번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 대답을 재촉했다.
그리고 내 질문을 들은 바넷사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자신의 하복부로 향하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역시 디아나와 마찬가지로 하복부가 좋아?"
얘도 디아나의 사도 인장 위치는 알고 있겠지.
전에 사라가 골반바지를 입는 걸 보고, 디아나가 자신도 사도 인장을 드러내겠다면서 소란을 피운 적이 있으니까.
아니.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바넷사라면 디아나의 사도 인장 위치쯤은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거다.
옷을 입혀주거나 목욕 시중같은 것도 하는 걸로 알고 있고 말이야.
"……."
하지만 내 질문에, 바넷사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미묘하게 기분이 나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냥 방금 전까지 놀란 표정이었던 얼굴이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뿐인지도 모르겠지만.
"…구원님은."
"응?"
"구원님은, 어디가 좋으십니까."
그리고 잠깐의 침묵 끝에 그 입술에서 돌아온 대답은, 자신의 의사 표명이 아니라 내 의견을 묻는 말이었다.
"나? 내가 원하는 곳에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야?"
"……네."
"내가 하고 싶은 곳은 여기가 아닌데. 그래도 괜찮아?"
"으읏…후읏…네…."
내가 그 매끈한 하복부를 손끝으로 쓰윽하고 쓰다듬으면서 말하자, 바넷사는 잘게 몸을 한 번 떨더니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순간, 나는 방금 전 의혹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역시 무표정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었어.
얘 진짜로 살짝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어.
하지만 어째서? 지금은 사도 인장을 새기는, 나와 서로 마음이 통한 이후로 최고로 기뻐해야할 순간인데.
사도 인장을 새기는 게 기분 나쁘다거나 하는 건 처음부터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그랬으면 애초에 사도 임명이 발동조차 되지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얘가 갑자기 기분 나빠하는 이유는 다른데에 있다는 건데…아, 잠깐만. 그러고보니 얘가 기분 나빠하는 표정을 지었던 순간은 둘 다 내가 디아나 얘기를 했을 때잖아.
그렇다는 말은…진짜냐.
얘가 이럴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지만, 그렇게 생각해보면 확실히 내가 섬세하지 못하기는 했다.
"크흐읏…?!"
반성하는 의미를 담아서, 나는 침대와 바넷사의 가슴 사이에 끼우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그 커다란 가슴을 옆에서부터 움켜쥐었다.
"미안. 이상한 소리 해서. 그래도 그렇게 질투할 거 없어. 알잖아? 이렇게 제대로 사도 임명이 발동했다는 건, 너뿐만 아니라 나도 너한테 홀딱 반했다는 얘기라고."
그래. 얘가 방금 전에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질투였다.
자신과 섹스중이고, 자신에게 사도 임명을 하려는 순간에 내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온 거니까.
아무리 그게 자신이 존경해마지않는 디아나라고 할지라도, 바넷사는 자기도 모르게 질투를 해버린 거다.
어쩌면 바넷사의 마음 속에서 디아나보다 내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게 만드는 계획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순조롭게 진행중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디아나의 비중이 더 크다고 하더라도, 아까같은 상황에서는 저도 모르게 질투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읏…!"
내게 지적을 들은 바넷사는, 또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날 쳐다봤다.
이 반응을 보니, 바넷사 스스로도 자신이 디아나에게 질투했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지적하고 나서야, 겨우 그런 자신의 감정을 의식하게 된 거고.
"아, 너야말로 이제와서 부정하려 하지는 말고. 너도 나한테 홀딱 반한 거 맞잖아."
하지만 이대로 이 얘기를 계속하면, 계속해서 디아나의 이름이 언급되게 될 거다.
그게 싫어서 질투하는 반응을 보였던 건데,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지.
때문에 나는 방금 전 바넷사가 흘린 침음성의 이유를 완벽하게 짐작하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모른척하며 말을 돌리도록 유도했다.
"그런 거…하려고 한 적 없습니다."
그리고 바넷사 역시도, 그런 내 유도에 잘 따라와줬다.
"그래? 그럼 내가 너한테 홀딱 반했다는 소리 듣고 부끄러웠던 거야?"
"……."
"넌 꼭 불리해지면 입을 다물더라."
"…그런 거 아닙니다."
완전히 주도권을 잡은 나는 바넷사를 놀리듯이, 하지만 최대한 따뜻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집사님은 그냥 순순히 내게 당해주고만 있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그저, 아직 사도 인장을 받지 못했으니, 저로서는 정말로 사도 임명이 발동한것인지 알 길이 없다고 생각했을뿐입니다."
그리고 집사님의 반격은, 내 상상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야! 그걸 의심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 내가 설마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 진짜로 발동했다니까?!"
"…그럼 어서 인장을 새겨주시죠."
"말 안 해도…하항."
하마터면 바넷사의 도발에 넘어갈뻔했지만, 나는 말을 내뱉던 도중에 정신을 차리고 바넷사의 말이 가지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뭡니까."
"솔직하게 빨리 사도 인장을 몸에 새겨서 어쩔 줄 모르겠다고 말하면 되는데."
"…발동이 됐으면 왜 안 하시는 겁니까."
얘 봐라. 부정은 안 하고 말을 돌리려고 하네.
시선이 내 얼굴을 향하는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눈은 마주치고 있지 않는 바넷사의 모습이 그렇게 흐뭇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넷사 말대로, 이대로 계속 시간을 지체하고 있을 수는 없지.
일단 얼른 인장부터 새기도록 할까.
"아니. 너도 알다시피 난 지금까지 사도 인장은 기본적으로 성감대에 새겼거든."
마틸다 같은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아니. 마틸다도 어떤 의미로는 제대로 성감대에 찍은 거라고 볼 수 있으려나?
뭐, 아무튼.
"그런데 우리 야한 바넷사는 제일 민감한 데가 두군데나 되니까 말이야. 어디에 새겨줘야할지 고민이 돼서."
"읏…!"
내가 말한 두군데가 어디인지, 바넷사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거겠지.
침대 위에 늘어져있는 두꺼운 꼬리를 한차례 부르르 떨면서, 바넷사는 고개를 자신의 정면, 옆으로 누운 자세니까 내쪽에서 보면 옆쪽이 되는 방향으로 홱 돌려버렸다.
"부끄러워하기는."
"…부끄러워한 것 아닙니다."
내가 그 볼을 콕콕 찌르면서 말하자, 바넷사는 애써 무뚝뚝한 목소리를 내며 또 다시 그렇게 말대꾸를 했다.
"그래? 내가 보기에는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저…."
"응?"
잠깐만. 이 전개, 아까도….
"그저, 모처럼 좋았던 분위기가 방금 전 구원님의 말로 전부 망가졌다고 생각했을뿐입니다."
순간 당황한 나였지만, 다행히도 이번에 바넷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충분히 대처 가능한 말이었다.
"그래? 난 지금 이 이상 없을 정도로 좋은 분위기라고 생각하는데."
"흐읏…응…으읍…으음…흐읍…."
나는 그 뿔을 잡아서 다시 얼굴이 위를 향하도록 고개를 돌리게 하고, 그대로 그 입술에 부드러운 키스를 해줬다.
꽤나 끈적이는 느낌의 키스지만, 혀는 쓰지 않고 어디까지나 입술로만 하는 키스.
마지막으로 바넷사의 아랫입술을 입술로 깨물고나서 입을 떼자, 바넷사의 무표정이 살짝 녹아내려있었다.
"너도 그렇잖아? 그러니까 마음에도 없는 분위기탓하지 말고 솔직히 말하는 게 어때? 실은 그냥 부끄러웠던 것뿐이지?"
"…그런 거 아닙니다."
바넷사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넘겨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봤지만, 바넷사는 아직도 솔직해질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얘도 어쩔 수 없다니까.
뭐, 사람 성격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바뀌는 건 아니니까.
얘는 이런 게 매력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오늘은 그만 넘어가주려고 했지만, 아직 바넷사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지 않습니까."
"응?"
"뿔이나 꼬리에 새기면…평소에 보이지 않게 되지 않습니까."
"……."
"…무슨 말이라도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바넷사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내가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바넷사는 그 어색한 분위기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바넷사 맞지?"
"읏! 그게 무…흐으읏…!"
아, 미안. 네가 낭심을 자극하는 발언을 해버리니까, 그만 무심코 허리를 움직여버렸어.
"하읏…후읏…그, 그래서…인장은…."
바넷사도 딱히 그걸로 딴죽을 걸 생각은 없는 건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내 대답을 재촉했다.
뭐, 얘도 말하면서 상당히 부끄러웠을 테니까.
대답을 듣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겠지.
"응? 아, 응. 그야 물론 뿔이나 꼬리에 할 건데."
"무…!?"
"내가 원하는 곳에 해줬으면 하는 거잖아?"
"그건…흐읏…그렇습니다만…."
"난 뿔이나 꼬리가 좋아."
"…치사합니다."
내가 일부러 귓가에 좋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바넷사는 결국 포기한 건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보니 얘 아까도 치사하다는 말을 했었지.
잠깐만. 그럼 혹시 아까도 지금과 같은 이유로 그런 말을 했던 건가?
한차례 일을 치르고 나서야 깨닫게 된 바넷사의 말에 숨겨진 속내에, 나는 다시 한 번 감정이 폭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넌 애정 표현이 너무 알기 힘들다고. 그 점이 예뻐 죽겠지만.
"읏…또 그런 표정을…."
딱히 말로 표현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속으로 바넷사가 예뻐 죽겠다고 생각하는 건 바넷사에게도 그대로 전달된 모양이었다.
바넷사는 살짝 입술을 깨물면서, 다시 시선을 피해버렸다.
좋아. 결정했다.
사도 인장은, 가끔 무너지는 얘 표정과 같이 보는 게 최고인 것 같아.
"아무튼 그런 거라면 빨…히으으으으읏!?"
바넷사가 재촉할 것도 없이, 나는 바넷사의 뿔에 사도 인장을 새겼다.
두 뿔에 각각 펼쳐진 날개가 타고 가도록.
이렇게 하면 정수리 부분에 있을 하트모양은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지만, 딱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사도 인장이 새겨진 순간, 바넷사는 기대했던대로 멋지게 무표정을 무너뜨리며 행복해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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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보다 바넷사씬이 너무 많이 길어졌네요.
Sasins // 감사합니다. 지적해주신 부분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