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31화 (71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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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맹 결성

    아무튼 단장을 마친 우리 애들과 함께, 나는 곧장 아라크네 클랜 하우스로 향했다.

    솔직히 불편해질 것 같아서 가기 싫은 건 여전했지만, 뭐 어쩌겠어. 가야지.

    그리고 예상과 달리, 아니. 어떤 의미로는 예상대로라고 해야할까?

    아라크네 클랜 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시비가 걸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어색한 것만큼이나, 아라크내 클랜원들도 내 얼굴을 보기 어색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이쪽에는 디아나나 마틸다도 있으니까.

    아니. 둘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성자. 여신님의 사자로 알려져있는 몸이다.

    고작 자기네 간부를 찼다는 이유만으로 말단 클랜원들이 덤벼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아무리 앨리시아가 사랑 받고 있어도 말이다.

    때문에 꽤나 어색한 공기가 흐르기는 했어도, 우리는 무사히 정문을 지나서 안내에 따라 클랜장이 머무르고 있는 방으로 향할 수 있었다.

    "어머, 여기가 어디라고. 우리 앨리시아를 울리고 잘도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미셨네?"

    하지만 나한테 덤벼들 수 없을 거라는 건 어디까지나 말단 클랜원들 얘기로, 간부쯤되면 또 얘기가 달랐다.

    아니. 사실 아무리 거대 클랜의 간부라고 하더라도 디아나나 마틸다 앞에서 성자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상당히 간이 배밖으로 나오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발언이 가능한 건, 간부들간의 끈끈한 유대 때문인 걸까?

    아무튼 아라크네 클랜에 도착하고 처음 만난 간부의 입에서 날 향해 제일 처음나온 소리는, 역시나 그런 빈정거림이었다.

    "게다가 일부러 보란듯이…아가, 지금 우릴 도발하는 거야? 도전으로 받아들여도 돼?"

    루티아 누님은 상당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우리 애들의 면면을 훑어보면서,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역시나 이런 소리 들을 줄 알았어.

    그리고 루티아 누님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애들 지금 엄청 꾸미고 있거든.

    아무리 잘 봐줘도 도저히 다른 클랜과 협력 관계를 맺으러 가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계기는 단순하다.

    식사때 내가 했던 아라크네 클랜에 있는 미인들이라는 발언이 사라의 심기를 상당히 거스른 모양인지, 사라가 엄청나게 꾸미고 내려온 것이 시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칭찬을 한 게 화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평소와 전혀 다른 차림을 하고 나타났으니까.

    아니. 물론 몸에 착 달라붙는 스키니 진이라든가, 사라의 평소 캐주얼한 스타일이 나쁘다는 건 아니야.

    오히려 사라한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하지만 역시 치마까지 입고 차려입으면 그건 그거대로 색다른 매력이 있어서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내 칭찬 한마디에 우리 애들 사이에 가벼운 경쟁심리가 발동되어 버렸고, 그 결과가 이거라는 얘기다.

    그리고 아라크네의 클랜 하우스에 도착한 다음에야, 겨우 이게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게 될지 깨달은 거다.

    눈이 너무 호강해서 눈치채는 게 늦었지만, 이거 완전히 도발이지?

    ‘우리는 이렇게 예쁜데, 앨리시아는 이정도 수준이 아니라 차인 거야.’라고 말이야.

    물론 우리에게 그런 뜻은 전혀 없었지, 한껏 꾸민 우리 애들이 좀 예뻐야지.

    "아니아니. 안 돼요. 우리 애들 차림이 이런 건 그냥 단순히 이거 끝나고 같이 데이…."

    잠깐만. 찬 여자 집에 쳐들어가서 지금부터 데이트라고 하는 건 진짜 도발밖에 안 되잖아.

    "그냥 얘들 평소 차림이 이런…."

    잠깐. 이것도 ‘이게 도발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예뻐 보여? 꾸민 것도 아닌데? 원래 이렇게 예쁜 건데?’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잖아?!

    젠장! 하도 예쁘니까 무슨 말을 해도 도발처럼 들려버리네!

    "…도발은요. 앨리시아나 누님같은 사람도 예쁜 걸로는 절대 안꿀리신다는 거 잘 아는데요 뭐."

    결국 나는 고심 끝에, 그렇게 정답에 가까운 대답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상대방을 띄워줌으로서 기를 살려준다. 교섭의 기본이지. 응. 역시 난 천재야.

    "……."

    뭐, 사라 눈빛을 보니까 돌아가서 무슨 소리를 들을지 벌써부터 무서워지기는 했지만.

    "그리고 뻔뻔하게 얼굴 들이민다니. 무슨 말이 그래요. 그쪽에서 오라고 불렀잖아요."

    "…어머 그랬던가?"

    그리고 내 태연한 반응에,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루티아 누님이 겨우 표정을 풀고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후우. 역시 진짜 화난 건 아니었군.

    뭐, 이 누님하고는 앨리시아를 차고 나온 직후에도 잠깐 얼굴을 맞댔었으니까.

    그때도 그냥 넘어가줬으니까, 이제와서 화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나도 태연하게 행동했던 거다.

    뭐, 그 직후에 앨리시아의 표정을 보고 나한테 새삼 다시 화났을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야.

    아무튼 내 도박은 성공했고, 그런 의미에서 제일 처음 만난 간부가 이 누님인 건 어찌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누님이 이렇게 나온다는 건, 다른 간부들의 태도도 별반 다를 건 없겠지.

    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애초에 우릴 초대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럼 갈까? 미리엘이 기다리고 있어."

    언제 화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루티아 누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를 클랜장의 집무실까지 안내했다.

    "오셨습니까. 그럼 바로 앨리시아가 했던 얘기 말입니다만. 우선 확인하고 싶습니다. 6계층너머로 갈 수 있는 것은 확실한 겁니까?"

    그리고 우리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미리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를 하자마자 곧장 본론을 꺼냈다.

    상당히 급한데. 전에 앨리시아의 말투도 그렇고, 대체 왜 그렇게 6계층 너머에 집착하는 거지?

    "음. 증거는 이미 앨리시아양에게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하네만. 자세한 사정은 못 들었는가?"

    그리고 이쪽에서 확신을 가지고 말하자, 미리엘의 눈에서 활활 불이 타올랐다.

    "아뇨. 다만 대체 무엇을 보여줬는지 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금 확답을 듣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럼 조건 말입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면 절대 건드리지 말고 세이비어스 클랜에 보고부터 하라는 말은, 여신님의 사명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음. 그말대로일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명에 대해서 자세한 얘기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6계층 너머에 집착하면서도, 미리엘은 바로 승낙하지는 않았다.

    전부 우리에게 보고부터하는 건 곤란하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태도였다.

    뭐, 확실히 너무한 조건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말이야.

    "아직 이 몸들도 여신님께 자세한 사정을 들은 것은 아니네. 단지 6계층 너머로 향하라는 사실만 전달받았을뿐이지. 그렇기 때문에 자네들에게도 뭐든 일단 수상한 것이 있으면 보고부터 하라는, 애매모호한 조건을 내건 것이고 말일세."

    "…그렇습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이 몸들의 추측이네만, 마신이나 그에 준하는 압도적인 무력 때문에 전투로는 절대 쓰러뜨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잠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네. 수상한 것이 발견되면 절대 건드리지 말고 보고부터 하라고 한 것도, 결코 사명만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일세. 이 몸들의 추측이 정확하다면, 아무리 자네들이라도 건드리는 순간 무사할 수 없을 터이니 말일세."

    "압도적인 무력…."

    만약 다른 클랜이었다면, 디아나의 말을 듣고 겁을 먹어서 6계층 너머로 가는 걸 포기하고, 교섭은 그대로 결렬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리엘의 반응은 달랐다.

    오히려 눈을 빛내면서 고양된 표정으로 디아나의 말을 따라하듯 중얼거렸다.

    뭐, 디아나도 미리엘이 고작 그정도로 겁먹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을 꺼낸 거겠지만.

    "이렇게까지 얘기해줬는데도 선보고는 곤란한 모양이구먼. 그러는 자네는 6계층 너머로 가려고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미리엘을 바라보면서, 디아나가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거! 실은 나도 그게 궁금했어!

    "…그건."

    하지만 질문을 받은 미리엘은,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듯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흠. 이 몸들에게 얘기하는 것은 곤란한 모양이구먼?"

    "…아뇨.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미리엘에게 디아나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고, 미리엘은 그 말에 더더욱 곤란해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눈을 뜨고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무입니다."

    "음?"

    "제 목적은 바로 무입니다."

    무? 먹는 무를 말하는 건 아닐테고, 맥락상 무력할 때 그 무를 말하는 건가?

    "즉, 지금보다 더 강해지는 것이 목적이라는 겐가?"

    "네. 텔루나님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도 못미치는 명성이지만, 최강클랜의 클랜장으로서 무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몸이라는 자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힘은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언젠가 한 번 용사와 겨뤄본적이 있습니다만, 그때 스스로의 힘이 얼마나 부족한지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아. 그러고 보니 그 쓰레…용사가 그런 말도 했었지.

    자기는 아라크네 클랜의 장한테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고.

    그거 그냥 헛소리가 아니었던 건가.

    하긴, 요즘 사라가 하는 걸 보면서 용사가 얼마나 사기적인 직업인지 잘 알 수 있으니까.

    걔도 일단 강하기는 엄청 강하겠지. 뭐, 그래도 나한테는 졌지만.

    "그래서 더욱 강함을 추구한다는 겐가?"

    디아나 역시도 이미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마법 지식과 마나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전생마법을 사용하며 끊임없이 마도를 연구하고 있는 몸이다.

    그렇다보니 디아나는 누구보다도 미리엘의 심정을 잘 이해하게 되는 거겠지.

    감탄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디아나는 대견하다는 듯 미리엘을 바라봤다.

    "네. 6계층의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좀 더 강한 몬스터와 겨루며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이비어스 클랜의 제안이 저희에게는…."

    적이 너무 강할지도 모르니 뭔가 만나면 일단 우리한테 보고부터 하라는 제안이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건가.

    확실히 말은 된다. 미리엘이 방금 전까지 보였던 태도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리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마 강함을 추구하는 건 맞을 거다.

    다만, 그 방법이 강한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그런 이유라면 6계층 너머가 있을 거라고 확신을 가지는 것은 이상하다. 진짜로 그 이상 강한 몬스터가 없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니까.

    하지만 내가 이 세계에 오기 전 상황이나 앨리시아가 전에 했던 말을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미리엘은 처음부터 6계층 너머에도 새로운 지역이 있을 거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같은 태도였으니까.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통해 강해지려고 하는지가 문제인데….

    응? 잠깐만. 잠깐 기다려봐 6계층 너머에는 마신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을 거잖아.

    그리고 그 마신은 무신이고.

    6계층 너머로 가서 강해지고 싶다. 이거 완전히….

    그러고 보니 아까 용사 얘기도 했었잖아!

    이거 혹시 엄청나게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녀석인 거 아니야?!

    "흠.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는가? 우선 자네들은 이 몸의 말대로 보고부터 해주게. 그대신, 이 몸들이 예상하고 있는 강력한 적을 상대해야 할 때 자네들이 동행하는 걸 허락하도록 하지. 강한 적과 싸우는 것이 목적인 것이니 말일세."

    하지만 디아나는 무슨 생각인 건지, 그런 제안을 던졌다.

    나조차 생각해낸 것을, 디아나가 생각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설마 우리가 붙어서 감시하면 충분하다는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데.

    만약 같이 갔다가 얘가 적으로 돌아서기라도 하면…야. 디아나. 이번만큼은 잘못생각한 거 아니야?

    나는 당장이라도 반대하고 싶었지만, 그걸 대놓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단 전부 내 추측에 지나지 않는 얘기들이니까.

    ‘괜찮네. 이 몸을 믿게.’

    하지만 그때, 디아나의 목소리가 내 뇌리에 직접 울려퍼졌다.

    역시나. 디아나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좋습니다."

    그리고 미리엘은 냉큼 받아들이는 건 의심을 산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디아나의 감시가 압박감으로 다가온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순수하게 강한 적과 싸울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건지, 조금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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