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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729화 (7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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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귀환

뭐, 그렇게해서 위기는 넘기게 됐지만, 희생 또한 컸다.

"…뭐 하고 싶은 말 있냐?"

"없을 것 같습니까?"

그러니까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마라. 그리고 묘한 압박감 뿜어대지 마라.

아침이 된 후, 나는 우리를 맞이하러 온 바넷사를 상대로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얼굴을 마주본 순간부터 이미 심상치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바넷사였지만, 방안에서 디아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더더욱 심상치않은 표정이 되어서는 무언으로 날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디아나가 어쩌고 있길래 그러냐고?

간단하다. 침대 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

아니. 그게 말이지. 기절에서 깨어난 직후에 노출증이 아니라고 꿍얼댔었으니까 그땐 이미 정상인처럼 보였잖아?

그런데 실은 그때도 아직 완전히 정상은 아니었다고 할까, 자신이 흐트러져서는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까지 정확히 되새기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리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후, 드디어 온전한 정신으로 자신이 간밤에 어떤 추태를 보였는지 되새겨본 디아나는, 저렇게 세상과의 단절을 꾀하는 자세가 됐다는 얘기다.

내가 아무리 귀여웠다고 예뻤다고 말해봐야 요지부동.

디아나는 이불 속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평소 노출증이 발동될 때는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리는데, 어제는 미묘하게 정신이 남아있었던만큼 자신의 추태가 더욱더 똑똑히 기억나서 괴로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디아나의 모습을 본 충성심 높은 바넷사는, 당연히 날 바라보는 표정이 굳어졌다는 얘기다.

안 그래도 얘는 내가 디아나를 울려버려서, 어제도 그걸 달래느라 방에 쫓아들어온 걸로 알고있을 테니까.

"아니. 오해할만한 상황이라는 건 이해하겠는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전혀 아니니까. 야. 디아나! 그러고있지 말고 뭐라도 좀 말해봐."

하지만 여기서 당황하면 괜한 오해만 사게 될뿐이다.

나는 침착하게 바넷사를 진정시키면서, 이불 속에 있는 디아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주 혼쭐을 내주게!"

하지만 그런 내게 돌아온 건 배신뿐이었다.

저, 저 노출증 변태 녀석이!

그만둬! 바넷사 얘 진심이라고! 네가 지금 이불속에 처박혀서 얘 표정을 못보고 있으니까 그런 농담이 나오는 거라고!

"…바넷사."

"뭡니까."

"…나 믿지?"

"디아나님보다 말입니까?"

"……."

야. 그러니까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그렇게 나오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하지만 어째선지, 그렇게 말하는 바넷사의 표정에서는 아까보다 험악한 느낌이 많이 사라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이대로 그냥 넘어가주지 않으려나?

"…디아나님.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자, 바넷사는 깊게 숨을 한 번 내쉬고는 침대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디아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 어라? 진짜로 이대로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뭔가 일을 낼 분위기였는데.

디아나를 오래 모신만큼, 디아나의 목소리를 듣고 대충이나마 상황파악을 한 걸까?

"으, 음. 가져다주게. 오늘은 방에서 혼자하고 싶은 기분이구먼."

"그러지 말고 그냥 같이 가지 그래? 뭔 그렇게 부끄러워하냐. 어차피 나한테밖에…."

"와왓! 와아아앗!"

아니. 그러니까 애냐. 그런 식으로 말을 막게.

"혹시 레이아 얼굴 보기 부끄러워서 그래?"

"그, 그럴 리가 있겠는가?!"

디아나는 필사적으로 부정했지만, 목소리 톤이 높아진 걸 보니 그런 점도 없잖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괜찮다니까. 어차피 레이아는…."

"그러니까 아까부터 왜 그렇게 자세히 말하려고 하는 겐가! 이 몸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 겐가아?!"

내가 계속해서 어제 일을 언급하려고 하자, 결국 참지 못한 디아나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서는 날 쏘아봤다.

"아니. 알면서 일부러…죄송합니다."

아니. 왜 바넷사 너까지 노려보냐.

2대1은 치사하잖아. 2대1은.

"아무튼 그만 장난치고 같이 가자. 식사하면서 앞으로의 일에 관해서도 얘기할 생각이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디아나의 몸을 끌어안아서 들어올렸다.

"으으으음…."

디아나는 그다지 가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내게 안겨왔다.

"아, 오, 오셨어요…?"

"으, 음! 어제는 미안했네!"

"아, 아뇨! 그런! 저야말로…."

그렇게 해서 겨우 디아나와 함께 식당에 내려오게 됐지만, 거기서도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레이아까지 저런 태도니까 더.

"그래서 결국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둘이 싸운 거 아니었어? 그럴 때는 나보다는 레이아가 더 적임일 것 같아서 레이아를 대표로 보냈더니, 레이아까지 갑자기 이상해져서 돌아오고."

그런 디아나와 레이아를 보면서, 사라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역시나 레이아는 어제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단 섹스 중에 대화를 나눈 게 아니라, 준비 과정에서 대화를 나눴다는 걸로 되어있으니까, 딱히 숨기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말이야.

뭐, 만약 사라한테 그 사실을 전했다가는 사라까지 스위치가 들어갈 위험이 있었으니, 나로서는 잘 된 일이지만 말이야.

"개, 개인적인 일일세! 개인적인 일!"

"그, 그래요! 개인적인 일이에요! 개인적인 일!"

"…으윽. 괜히 따돌려지는 기분이야."

하지만 사라의 의문이 풀리는 일은 없었다.

디아나와 레이아는 필사적으로 어제 있었던 일을 얼버무리려고 들었고, 사라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넌 안 궁금해?"

그리고 그런 셋의 대화를 보면서, 나는 옆에서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있는 마틸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실비아는 그렇다쳐도, 마틸다는 대화에 끼어들법도 한데 말이야.

"…레이아씨의 태도를 보면 어렴풋이 짐작은 가능하니까요. 명색이 성자님이니까, 당신때문에 사제의 규율을 깨는 사제가 나오는 일은 없도록 해주세요."

하지만 그런 날 바라보며, 마틸다는 진지한 표정으로 충고를 했다.

"아, 아니! 그러니까 그런 거 안 했다니까!"

하여간 얘도 핑크빛 모드 때문에 가려져있어서 그렇지, 가끔가다 이렇게 정곡을 찌른 다니까.

뭐, 그런 성격 덕분에 얘랑도 이런 관계가 될 수 있었던 거지만 말이야.

"어머, 안 한 건가요?"

"안 했어!"

"그럼 쌓여있으신 건가…."

"이봐요 추기경님! 너야 말로 스스로 규율 깨려고 하지 마라!"

오랜만에 진지하게 나오는 줄 알았더니 또 눈을 몽롱하게 뜨면서 한다는 소리가 이거라니.

하여간 방심할 틈이 없다니까.

"하아. 실비아."

나는 한숨을 내쉬고, 구석에 있는 실비아에게 손짓을 했다.

"네, 네헷?!"

저말입니까?

마치 그렇게 말하듯, 실비아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구석에서는 멀어질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물론,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 너 맞아.

"왜, 왜 그러십니까아?"

"아니.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까. 가까이서 들으라고."

"네, 네에? 중요한…흐야읏?!"

나는 쭈뼛쭈뼛 다가온 실비아를 낚아채서 무릎에 앉히고, 실비아테라피를 듬뿍 만끽하며 주위를 다른 애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튼 지나간 일 얘기는 그쯤하고. 지금부터는 건설적으로 앞으로의 얘기를 좀 해보자고."

내가 오랜만에 클랜장다운 얘기를 하자, 다들 드문 일도 다 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디아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너무 고마워할 거 없다.

"앞으로의 얘기라니. 어떤?"

"던전에서도 말했잖아. 당분간은 내 실력 향상에 집중해야할 것 같다고."

"아, 응. 했었지."

"하지만 얼마 전에 했던 것처럼 거북이굴에서 나만 공격하는 방식은 효율이 너무 안 좋잖아?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당분간 나 혼자서 4계층에…."

"절대 안돼."

나는 내가 생각한 제일 효율적인 방법을 얘기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역시나 격렬한 반대뿐이었다.

"아니. 하지만 그게 제일 효율 좋잖아? 실제로 내가 제일 직업 레벨이 많이 오른 시기가 조난당했을 때고…."

하지만 나도 여기서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내가 우리 애들에 비해 전투 실력이 부족하고, 어떻게해서든 따라잡아야 하는 건 사실이니까.

"구원씨."

내가 끈질기게 설득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자, 레이아가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응?"

"저, 얼마 전에 구원씨의 뺨을 때렸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아, 응. 미안."

말하는 천사님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때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천사님은 마음 아파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얘기는 갑자기 왜?

"그러니까 또 다시 그런 경험을 하도록 만들지 말아주세요."

"……."

이, 이렇게 나와버리시면 내가 더 할 말이 없어져버리는데.

"애초에 왜 혼자 가려는 거죠? 저희가 따라가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내가 아무런 말을 못하고 있자, 마틸다가 침착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내가 또 이상한 일을 꾸미고 있는 거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것처럼도 들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아닌데 말이야.

"아니. 그냥 단순히, 너희가 다 같이 달라붙을 필요가 없으니까 나 혼자 가겠다고 한 것뿐인데. 너희도 그동안 남는 시간을 유효활용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

"유효활용이라니. 그게 뭐야. 바보같이. 내가 할 게 아무것도 없더라도 난 따라갈 거야. 어차피 구원 곁에 있는 시간이 제일 충실하게 느껴지니까."

내 가벼운 질문에, 사라는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기특한 소리를 해줬다.

그리고 다른 애들도, 다들 사라의 말에 긍정하는 뉘앙스의 말을 해왔다.

"아니. 기쁘지만 말이야. 아무래도 여럿이서 움직이면 이동 속도도 느려지고, 성자 스킬을 안 쓰고 전투를 하다보면 너희쪽으로도 몬스터가 갈 테니까 더더욱 내 성장 속도가 느려지게 되기도 하고. 난 되도록 빨리 성장을 마치고 너희랑 같이 던전 아래쪽으로 가고 싶은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당신 혼자서는 절대 안되요."

내 말이 타당하다고 느꼈는지, 이번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누그러져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한다는 사실 자체에는 변함이 없었다.

"걱정 마. 어차피 탐험이 목적이 아니라 전투가 목적이니, 4계층의 마을에서 묵으며 마을 근처에서 사냥만 다닐 생각이니까. 조난당할 염려는 절대 없을 거야."

"당신도 제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잖아요?"

뭐, 그렇기는 하지만.

하지만 이거 어쩐다.

"…자네, 그동안 자는 건 던전 안의 마을에서 하는 겐가?"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그 침묵을 깬 건 다음 아닌 디아나였다.

"응? 응. 뭐, 중간에 가끔 위로 올라와서 묵을 일이 생기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럴 생각인데."

"그렇다면 이 몸들이 한두명씩 교대로 자네와 붙어서 다니는 것은 어떻겠는가? 그거라면 이동속도가 느려질 일도, 몬스터가 분산되어 성장이 더뎌질 일도 거의 없지 않겠는가?"

"디아나?!"

"괜찮네. 이 자는 절대 혼자서 아래로 못 내려갈 걸세. 이 몸을 믿게."

다름 아닌 나와 다투고 울기까지한 디아나가 그렇게 내 계획을 반쯤 받아들이는 발언을 할 거라고는, 다들 예상치도 못했던 모양이다.

다들 깜짝 놀라서 디아나를 쳐다봤지만, 디아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뿐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뭐, 그야. 죽어도 혼자는 못가지."

"으, 응?"

내가 왜 이런 대답을 했는지 모르는 다른 애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디아나는 그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코를 울리며 웃어보였다.

"흐흥. 음. 음. 뭐, 그런 것일세. 게다가 이 자의 말도 일리가 있지 않은가. 이 몸들이 전부 붙어다니면 성장이 더뎌지기만 할 걸세. 그러니 감시역 겸 위기시의 구조역으로 번갈아가면서 한 명씩 붙어다니는 걸로 타협하지 않겠는가?"

"디아나가 그렇게 말한다면…."

"음. 결정이구먼. 그런 잠시동안, 이 자가 이 몸들의 직업 레벨을 따라잡을 때까지 그렇게 행동하기로 하세. 하루에 한 명씩 번갈아가면서 이 자와 붙어다니고, 나머지는 위에서 각자 할 일을 하는 걸세."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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