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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귀환
디아나가 울먹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약해져서 어쩔 수 없이 속마음을 밝히기는 했지만, 이건 목숨이 걸린 문제인만큼 나도 그냥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진짜 안 돼?"
그렇다고는 해도 또 내 멋대로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내가 평소에 상당히 제멋대로 구는 놈인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우리 애들한테 그러는 건 다 장난으로 그런 거였으니까.
진짜로 진지해야할 때까지 우리 애들한테 그런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고.
게다가 내가 제멋대로 밀어붙여도 얘가 꺾일 애도 아니고 말이다.
내가 몰래 던전에 가버리면 혼자서라도 던전에 따라들어올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디아나를 설득해보기로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디아나는 설득당할 마음이 조금도 없어보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도 뭐라고 말해서 설득을 하면 좋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나는 디아나가, 모두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래."
감정에 호소해본다고 해도,
"이 몸도 마찬가지일세!"
저쪽도 완전히 똑같은 논리를 내세우니 얘기에 진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하지만 결국 아래로 가야하는 건 내 사명이고, 원칙적으로 따지면 너희는 그냥 말려들기만했을뿐 관계…."
일단 머리를 어떻게든 굴려보며 설득할 말을 찾아내보려고 했지만, 역시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안 된다. 이 말을 끝까지 하면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디아나가 나때문에 울게 된다.
내 일이니까 너랑은 관계없다니. 절대 해선 안되는 말이잖아. 절대 그런 사이가 아니잖아.
나중에 미움받을 것도 각오는 하고 있을 생각이었지만, 각오했던 것보다 그 순간이 훨씬 빨리 찾아와버렸기 때문인걸까? 역시나 디아나를 상처 입히는 말은 쉽게 못하겠다.
내 말을 듣던 디아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숨까지 멈췄지만, 내가 도중에 말을 멈추자 겨우 크게 숨을 내쉬면서 조금 표정을 풀었다.
뭐, 그래봤자 곧바로 다시 날 노려봤지만 말이다.
"디아나, 이해해줄 수 없을까?"
"없네."
"절대로?"
"절대! 없네!"
"……."
"……."
얘기는 조금도 진전되지 않고, 완벽한 평행선만을 그릴 뿐이었다.
결국 설득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나는, 디아나와 눈싸움을 하듯이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먼저 침묵을 깬 건 의외로 디아나였다.
"…애초에, 자네가 죽으면 굳이 이 몸이 자결하지 않더라도 이 몸은 죽은 목숨일세."
"뭐!? 잠깐만! 그게 무슨 말이야?! 키스는 수명만 공유되는 게 아니었어?!"
엘프의 키스는 수명공유라고, 난 분명 디아나에게 그렇게 설명을 들었다.
즉, 말그대로 늙어죽을 나이를 똑같이 맞춰주는 거다.
어느 한쪽이 죽으면 반대쪽도 죽는 식의, 생명자체가 공유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만약 그런 거였으면 난 절대로 지금까지 던전에서 했던 것처럼 나대거나 하지 않았을 거다.
철저하게 몸을 사렸을 거다.
그런데 내가 죽으면 디아나도 죽는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자네는 가끔 보면 정말로 단순하구먼. 생각을 해보게. 만약 자네가 목숨을 잃고, 이 몸이 홀로 남게 된다면, 이 몸이 전생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이 몸의 전생스킬의 대가가 무엇인지는,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것일세."
"그야 레벨…아."
과연. 그런 얘기였던 건가.
디아나가 쓰는 전생 스킬의 대가는 다름아닌 레벨이다.
그 말을 바꿔말하면, 레벨을 올리지 못하면 전생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이 몸은 자네가 죽은 시점의 레벨로 전생스킬을 한 번 사용하고, 남은 수명을 평생 슬퍼하다가 그대로 끝마치겠지. 자네가 하려는 행동은 이 몸을 자네와 같이 죽게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뿐일세."
디아나는 눈에서 힘을 전혀 풀지 않은 채로, 날 노려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디아나의 말대로 된다고 해도, 엘프라는 장수족의 특성상 디아나는 수 없이 긴 세월을 살게 될 거다.
그리고 디아나는 그 긴 세월동안 나만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슬퍼할 거라고 단언한 거다.
그렇게나 나에대한 애정이 깊다고 생각하니,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니면 뭔가? 자네는 자네가 죽으면 이 몸 혼자서라도 삶을 이어가기 위해 다른 남자와 살을 맞대라는 것인가? 정말 그런 것을 바라는 겐가?"
"그, 그건…!"
그리고 이어지는 디아나의 말에 나는 무심코 디아나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 나 없이 디아나가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지만…솔직히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우리 애들이 내 행동에서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안달이 나있었던만큼, 시야 역시도 좁아져있었던 걸까.
"읏…! 아, 아프네!"
"앗, 미안."
디아나는 내 손에 잡힌 어깨가 상당히 아팠는지 눈썹을 찌푸렸지만, 그러면서도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있었다.
디아나 역시도, 이런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곧장 질투하는 반응을 보여주는 건 기뻤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겐가?"
"그건…."
디아나의 질문에, 나는 확실히 대답을 못했다.
물론 디아나가 다른 남자와 살을 맞대는 건 죽어도 싫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상대놈을 찾아다가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난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한다는 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를 6계층 너머의 위험한 모험에도 디아나를 데려간다고 말하는 게 된다.
과연 내 질투심 때문에 디아나를 위기에 처하게 만들어도 되는 걸까?
어차피 내가 죽은 이후의 얘기니까, 디아나라도 남아서 행복하게 살도록 빌어주는 게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도리인 건 아닐까?
그리고 꼭 내가 죽으라는 법도 없잖아.
여신님께서 내려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멋지게 생환해서 우리 애들이랑 잘 지낼 수도 있는 거라고.
갖가지 상념이 내 머리를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렇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날 바라보며, 디아나가 한층 더 어두워진 표정으로 입을 뗐다.
"만약 자네가 그런 것을 원한다면, 이 몸의 사도…."
"역시 안되겠다."
하지만 디아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결론이 나와버렸다.
"으, 음?"
"미안. 디아나. 진짜로 미안해. 머리로는 그렇게 하라고, 내가 죽으면 다른 남자와 살을 맞대서라도 행복하게 살라고 말해주는 게 맞다고 알고 있는데, 도저히 그렇게 못하겠어. 난 쓰레기야. 디아나. 딴 놈이랑 몸을 섞으면서 살아갈 바에야 그냥 나랑 같이 위험해지자."
그것도 무척이나 이기적인 결론으로 말이다.
응. 역시 그렇지.
아니. 진짜로 알고 있어. 내가 죽은 후라도 사랑하는 사람만큼은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는 게 더 고귀하고 숭고한 사랑이라고. 알고 있다고.
그런데 어쩌겠냐. 내가 그런 그릇이 아닌걸.
고귀한 사랑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그래.
난 이기적인 놈이라 내 여자가 딴 놈이랑 피부 맞대는 꼴은 죽어도 못 봐.
장담하는데 좀비로 부활해서라도 막을 거야.
"미안. 혼자 이상한 결심을 했다가 또 이렇게 말바꾸는 게 한심해보이고, 쓰레기같아 보이기는 하겠지만…."
"충분하네!"
한참 전부터 디아나의 눈가에 그렁그렁 고여있던 눈물은, 결국 늘어나는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그 예쁜 뺨에 가느다란 흔적을 남기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도 동시에 디아나의 입술이 내 입술에 꾸욱 짓눌러왔다.
"미안해. 이런 놈이라서."
"이런 사람이니 좋아하는 걸세. 오히려 이 몸에게 다른 남자와 살을 섞어도 상관없다는 헛소리를 해대면 마법으로 때려줄 생각이었네."
"그거 다행이네."
"음!"
길게 맞대고 있던 입술을 떼고나서, 우리는 그런 대화를 나눈 후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응. 뭔가, 여러모로 엄청나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결국 내가 혼자서 결심했던 것들은 전부 부질없는 짓이 되어버린 거고 말이야. 나 진짜 바보 아니야?
괜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이런 짓을 벌였다니.
디아나가 지적했던 부분을 조금만 더 차분하게 생각했어도, 혼자서 아래로 가겠다는 생각은 절대 안 했을텐데.
게다가 다들 눈치챘을 정도로 태도도 이상했던 모양이고.
아, 그러고 보니 레이아한테 섹드립까지 쳤던가?
젠장. 지금까지는 같이 잘 때 빼고는 천사님한테 섹드립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는데.
천사님한테만큼은 낮에는 장난기많고 귀여운 남동생 캐릭터를 굳히고 있었던 내 이미지가….
죽고싶다.
"후흥. 슬슬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모양이구먼."
그리고 슬슬 자괴감에 발동이 걸리는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디아나가 장난스런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너도 참 내 속마음은 꿰뚫어보듯이 맞추는구나.
그러고 보니 아까도….
"애초에 아까도 상당히 그럴듯하게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어떻게 눈치챈 거야."
"음? 갑자기 무슨 얘기인가? 부끄러워져서 말을 돌리는 겐가? 괜찮네. 이 몸이…."
"아니. 아까 내가 스스로의 실력에 자괴감이 들고 부끄러워서 안달했던 거라고 변명한 거 말이야. 상당히 그럴듯하지 않았어? 어떻게 거짓말인 걸 안거야?"
"간단하네. 자네가 고작 그런 문제로 태도가 이상해질 정도로 섬세한 성격은 아니지 않은가."
"…야. 진짜로 나 운다? 나 이래 봬도 보기보다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라고."
"알고 있네. 지금도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서 필사적으로 말을 돌리고 있지 않은가. 잘 알고 있네."
아니. 그러니까 사라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다들 왜 그렇게 내 속내는…접싯물에 코박고 죽고 싶다.
"푸풉. 그렇게 부끄러운 겐가? 그러게 왜 괜한 생각을 해서 이 몸을 불안하게 만드는가. 하지만 이 몸은 어른일세. 자네가 정 울고 싶다면 가슴정도는 빌려줄 수 있네만."
"아니. 넌 딱히 빌려줄 가슴도 없잖…죄송합니다. 진짜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말 없이 주변에 마법 띄우는 거 그만둬주세요.
저거 그거잖아? 그 튼튼한 거북이까지 때려잡은 그 마법이잖아?
게다가 뺨에 남은 눈물자국까지 겹쳐서 상당히 무서워보인다고. 아니. 진짜로.
"이 몸이 잘못 생각했네. 아무래도 자네는 단단히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릴 것 같구먼. 그러고 보니 아까도…."
주위에 떠있던 마법은 사라졌지만, 아무래도 디아나의 화는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표정만 보면 오히려 더 화난 것 같은 표정으로, 디아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주먹을 들어 내 가슴을 때려댔다.
물론, 평소의 토닥토닥이었기 때문에 내 몸에는 물론 디아나의 주먹에도 그다지 충격은 없는 모양이었지만.
"이 몸의 유혹에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니 대체 무슨 일인가?! 가슴인가?! 결국에는 가슴이 문제인 것인가?!"
그랬다. 그러고 보니 얘, 아까 내가 유혹에 빠지지 않았을 때도 눈썹을 꿈틀대면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었지.
일단 중요한 얘기를 해야할 때니까 자제했던 모양이지만, 자존심에 상당히 상처를 받았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애초에 디아나는 그때 왜 갑자기 나랑 섹스를 하려고 한 건데? 내가 이상해보여서 대화를 나누려고 한 거였잖아?"
"자네가 혼자서 뭔가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그런 것 아닌가! 그러니까 일단 한 번 해서 진정시키면…아무튼 이야기를 돌리지 말게! 이 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이유가 뭔가?!"
야. 잠깐만 이것아. 그러니까 즉, 섹스 한 번 하고나면 속내도 쉽게 털어놓을 것 같아서 유혹한 거라고?!
아무래 내가 평소에 밝히고 다녀도 그렇지, 그렇게 단순한 놈으로 보여?!
…보이겠네. 응. 솔직히 말해서, 내가 생각해도 섹스 한 번 하고나서 디아나가 은근슬쩍 물어봤으면 대답했을 것 같다.
어? 잠깐만. 그러고 보니 내가 낮에 섹드립쳤을 때, 레이아도 고민하는 표정 짓지 않았었어?
아무리 천사같은 레이아라도, 평소라면 이런 데서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확실히 말을 했을 거다.
그런데 절대로 섹스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는 건…레이아도 그때부터 이미 내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섹스를 해줘야하나 고민했다?
즉, 레이아 천사님마저도 내가 섹스 한 번 하고 나면 기분이 풀리는 단순한 놈이라고…아, 아니야. 이 이상은 위험해. 이 이상은 생각하지 말자. 레이아는 천사님이야. 천사님은 레이아야. 천사님이 날 그렇게 생각하셨을리 없어.
"침묵으로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게나! 이 몸은 꼭 이유를 들어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현실에 눈을 돌린 내 앞에는, 아직도 디아나가 격분한 표정으로 내 가슴을 토닥토닥 때려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주나라 // 기간에 비하면 빠르게 성장한 건 맞습니다.
다만 구원이 빨리 성장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성자라는 직업특성상 레벨업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레벨의 모험가들과 비교하면 구원의 전투 능력은 미묘한 수준입니다.
동레벨대의 모험가들과 비교하면 스탯 자체는 상당히 높지만, 전투에 관련된 직업들의 레벨이나 스킬숙련도가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죠.
이 세계는 직업 레벨이 올라갈수록 그에 관련된 모든 행동에 보정이 걸립니다.
그래서 보통 모험가들은 기본 레벨과 직업 레벨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게 상식이죠.
그런데 구원은 전투와 직접 관계가 없는 성자 레벨만 자신의 기본 레벨과 같이 맞춰가고 있고, 전투와 직접 관련된 월영무사 레벨은 기본 레벨보다 수십이나 낮은 상황이죠. 기본 레벨과 100 넘게 차이가 나는 정령사 레벨은 언급할 가치도 없고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비슷한 레벨대의 모험가들과 비교하면 전투능력이 미묘한 수준입니다.
게다가 같은 파티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레벨대의 모험가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실력자들이기 때문에 더 비교가 되는 상황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