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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721화 (70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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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치 못한 귀환

    "디아나. 무슨 일이야?"

    디아나가 지금 이러는 건 뭔가 이유가 있다. 그것도 상당히 심각한 종류의.

    냉정해진 나는 두 손으로 디아나의 어깨를 붙잡고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자신의 유혹에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디아나의 한쪽 눈썹이 움찔하고 떨렸다.

    하지만 우리 대마법사님은 아직 연기를 포기할 생각은 없으신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는가. 이 몸도 자네도 마나가 부족하니, 이렇게 힐링…."

    "내가 지금 그런 말 하는 게 아니라는 거, 디아나도 알잖아."

    디아나는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이면서 어설프게나마 내게 유혹의 눈빛을 던져왔다.

    하지만 내가 유혹당하지 않고 진지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디아나의 한쪽 눈썹이 또다시 움찔움찔 떨렸다. 마치 뭔가 마음에 안든다는 것처럼 말이다.

    어, 어라? 설마 진심으로 섹스하고 싶어하는 거였어?

    아,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면 이 노출증 변태 대마법사님이 이 상황에서 젖지도 않을 리가 없는데?

    "후욱…."

    디아나의 예상 외의 반응에 내가 당황하고 있자, 디아나가 눈을 감고는 크게 콧김을 내뿜었다.

    그 행동은 마치 자기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행동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뜬 디아나의 눈에서는, 날 유혹하기위해 방금 전까지 보였던 어색하게 애교를 담은 눈웃음이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그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두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무슨 일인지 묻고 싶은 것은 오히려 이 몸이네만."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겐가? 아니면 아직도 이 몸들이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겐가?"

    "그러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흠."

    당황하는 내 두 뺨을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아 고정하고, 디아나는 얼굴을 바짝 내밀어 내 두 눈을 더 빤히 엿봤다.

    조금만 얼굴을 앞으로 내밀면 키스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지만, 게다가 이렇게 서로의 성기를 옷 너머로 밀착시킨 자세를 하고 있었지만, 알콩달콩하거나 야릇한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진지한 표정.

    그렇게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고 나서, 디아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다시 얼굴을 뒤로 뺐다.

    "자네 오늘 조금 이상하지 않았는가."

    결국 돌려말해서는 결판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지, 디아나는 한숨섞인 어조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상?"

    "이것마저도 시치미를 떼겠다면 정말로 화낼 걸세. 이 이상은 안되네."

    일단 되물어본 나였지만, 디아나는 더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딱잘라 그렇게 말했다.

    쳇. 들켜버린 건가.

    "…어떻게 알았어? 일단 평소대로 하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도 더 장난기 가득하게 행동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장난기가 너무 지나쳤나?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 몸들은 자네를 잘 알고 있다는 얘기일세."

    "들?"

    "음. 그럼 왜 이 몸들이 아무런 상의도 없이 갑자기 자네를 말번으로 돌렸겠는가. 이 몸뿐만이 아니라 전원 눈치채고 있었네."

    과연. 내 상태가 이상하니, 일단 잠이라도 재워서 진정시키려고 한 건가.

    그러고 이렇게 직전에 불침번을 서는 사람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로 했다고.

    아마 디아나로 정해진 것도, 자기들끼리 의논한 끝에 정해진 거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디아나 얘가 우리들 중 제일 연장자니까. 이런 역할에 제일 적임인 거겠지.

    "아, 사라양은 말이 조금 심했는지 걱정하더구먼. 자네를 위해서 한 말이었으니 귀엽게 봐주게나."

    "응? 아아. 응. 그거야 뭐…."

    자기 전에 내 명치를 한 방 후려치는 말을 해댔던 그걸 말하는 건가.

    아니. 장난스럽게 반응하기는 했지만, 나도 결국 사라가 걱정해줘서 한 말인 것쯤은 아니까 크게 신경쓸 필요 없는데.

    그렇게 내뱉어놓고 뒤에서 몰래 걱정하고 있었던 건가.

    하여간 귀엽다니까.

    내 앞에서도 좀 더 그런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텐데.

    아니. 사라는 그게 매력인가.

    "그래서, 무슨 일인가? 얼버무리기 없기일세."

    "아니. 응. 괜히 걱정끼쳐서 미안해. 그래도 사실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닌데 말이야. 그냥 조금…부끄러워졌다고 해야할지. 자괴감이 들었다고 해야할지. 그런 거야."

    "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디아나는 자세히 말해보라는 듯 가볍게 턱짓을 했다.

    "난 지금까지 직업에 안 어울리게 탱커 역할을 맡아왔잖아? 그럭저럭 잘 해오고 있기도 했고. 그런데 오늘 제대로 전투를 참여해보고 그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돼서 말이야. 아, 실은 내가 탱커를 잘 한 게 아니라, 그냥 너희 공격력이 너무 강해서 전투가 빨리 끝나니까 다칠 일이 없었던 것뿐이구나. 제대로 직업에 맞는 역할을 담당하려고 해도, 난 너희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구나. 하고 말이야. 그래서는 완전히 짐이잖아. 그냥 내가 성자고, 너희 남자라서 너희가 날 던전 아래까지 같이 데리고 다녀주는 것에 지나지 않잖아. "

    "이 몸들은 그렇게 생각한 적 한 번도 없네."

    "물론 그거야 알지. 너희가 그렇게 생각할 애들이 아니라는 것정도는. 하지만 나 스스로가 견딜 수 없었던 거야. 스스로 실력을 새삼 다시 인지하게 되고, 그걸 너희한테 까발려지기까지 하니까 조금 안달이났어. 빨리 너희와 비슷한 수준까지는 실력을 키우고 싶다. 마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까지 들어서 말이야. 너무 초조해했어."

    "안달하지 않아도, 이 몸들은 자네의 실력이 올라올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네. 뭣하면 다시 얼음동굴부터 다녀도 전혀 상관 없네."

    "응. 미안. 그렇지. 초조해할 필요없는데 말이야. 괜히 그걸로 너희한테 걱정이나 끼치고. 정말 미안. 난 나름대로 티 안나게 잘 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역시 초조한게 드러난 건가. 아니. 너희 눈은 못 속이는 건가?"

    "그래서, 그걸로 얘기는 마칠 셈인가?"

    내가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디아나가 불퉁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응? 그게 무슨?"

    "자네는 아무래도 이 몸을 너무 무시하는 모양이구먼. 알겠네. 이 몸은 미리 경고했네. 이 이상 시치미 떼면 정말로 화내겠다고."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 손을 꽈악 주먹쥐어보이더니 팔꿈치를 뒤로 쭉 뺐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주먹을 앞으로 뻗어서, 내 안면을 그대로 강타했다.

    지금까지 반쯤 농담식으로 했던 토닥토닥이 아니라, 진짜 진심으로 날린 펀치였다.

    "끄아아아아아…."

    그리고 주먹이 내 안면에 격돌하자마자, 디아나는 자신의 주먹을 가슴에 꼬옥 감싸안고는 몸을 웅크렸다.

    그렇게 이마를 내 가슴에 박은 채, 디아나는 초고음의 비명을 질러댔다.

    그, 그렇게 아파할 거면 안 때리면 되는 건데. 아니. 차라리 마법으로 때리던가.

    "야, 야. 괜찮아?"

    "이익…! 자네 때문 아닌가아!"

    내가 그 뒷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묻자, 디아나는 번쩍 고개를 들고는 분노를 토해내듯 외쳤다.

    야. 그러니까 울지 마라. 너 내가 시치미 떼서 화내는 거지? 아파서 화내는 거 아니지?

    "미안. 내가 잘못했어. 다 사실대로 말할게."

    "말하게! 전부! 숨기는 것 없이!"

    "넵!"

    솔직히 말해서 그 모습은 무섭다기보다는 귀여운쪽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도저히 장난을 칠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순순히 혼자만 생각하고 있었던 속마음을 실토하기로 했다.

    내게 일정 이상의 전투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반드시 성자인 내가 내려가야 한다.

    이 말을 종합해보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던전 아래에 봉인되어있는 무언가는 반드시 성자 스킬로만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다.

    내게 전투 실력이 일정 이상 필요한 이유도 그 무언가를 성자 스킬로 쓰러뜨리기 위해서, 나는 적어도 놈이 성자 스킬을 맞고 괴로워하며 덤벼드는 동안 스스로의 몸을 지킬 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바꿔말하면 이런 말이 된다.

    상대는 전투로는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 괴물이다.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역시나 꿈에서 봤던 그 마신이었다.

    물론 그 마신은 성자 스킬조차도 통하지 않을 것같이 보이기는 했지만, 도저히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압도적인 무력하면 떠오르는 게 꿈에서 본 그 마신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면 그 꿈은 정말로 여신님이 경고를 해주기 위해 내게 보여준 예지몽같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불안을 지울 수가 없었다.

    꿈에서 나는 혼자 남아있었다. 혼자서 마신과 대치하고 있었다.

    우리 애들은 이미 당해버린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같이 있었던 게 아닌 건지는 모른다.

    후자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하지만 전자라면?

    상대는 전투로는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 괴물일 거라는 예측과 맞물려서, 내 불안감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그리고 이런 결론에 도달한 거다.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혼자 던전에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만약 꿈과 같은 일이 발생하더라도, 적어도 우리 애들이 해를 입을 염려는 없다.

    그리고 사실, 상대가 전투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얘기는 우리 애들은 있으나 마나인 거라는 얘기도 됐다.

    지하에 봉인되어있는 무언가와의 전투에서 우리 애들의 역할은, 기껏해야 놈이 내 성자 스킬로 쓰러지기 전에 방패가 되는 것뿐이다.

    그런 걸 시킬 수 있을 것 같냐.

    그런 걸 할 바에야 혼자서 가주겠어.

    마침 나는 모든 스탯이 고루 높은 올라운더형.

    방어 스킬이 없어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내기 힘들 거라고는 하지만, 대신 내게는 월영무사 특유의 이동스킬들이 있다.

    방어가 안 되면 압도적인 회피력으로 커버하면 되는 거다.

    혼자서 던전을 다닐 기반은 충분히 있다.

    물론, 우리 애들이 나 혼자 던전에 다니는 걸 순순히 허락해줄 리가 없다.

    하지만 만약 내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찍어누른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우리 애들은 하나하나가 우습게 볼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의 치트 캐릭터다.

    항상 우스갯소리로 사라가 사기라는 둥, 대마법사님은 당해낼 수 없다는 둥 떠들어 왔지만, 사실 내가 진심으로 강해지자고 바라면 뛰어넘지 못할 리가 없다.

    아무리 용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라라도, 대마법사 디아나라도, 내가 게임을 할 때처럼 진심으로 게임 시스템과 성자 특유의 빠른 레벨 업을 이용해서 무쌍을 찍으려고 하면 분명 가능할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압도적인 전투력을 손에 넣고, 우리 애들에게는 너희가 따라와봤자 발목만 잡을 뿐이라는 식으로 말해서 떼어놓는다.

    조금은 미움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애들이 목숨을 잃을 상황이 오는 것보다는 백배천배 낫다.

    물론, 기한이 충분한 건 아니다.

    6계층까지. 이미 디아나가 가본 적 있는 6계층을 전부 답파할 때까지를 기한으로 삼는다.

    거기까지는 이미 경험해본 디아나가 잘 조절해줄테니, 비교적 안전하게 탐험을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뭐가 나올지, 어느 수준의 괴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 밑으로는 안 된다.

    무조건 나 혼자서 간다.

    "그래서 빨리 실력을 기르고 싶은 마음에 조금 안달하게 되어서 말이죠…."

    "이잇! 자네는! 바보인가아! 끄으…훌쩍."

    내 말을 듣자 마자, 디아나는 다시 한 번 주먹을 휘둘러 내 안면을 때렸다.

    그리고는 주먹을 움켜쥐고 다시 반사적으로 웅크리려다가, 꾹 참고는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훌쩍이며 날 매도했다.

    야. 그러니까 내가 울린 거같잖아. 아니지? 아니라고 해줘. 그냥 주먹이 아파서 우는 거라고 해줘. 안 그러면 진짜 죽고싶어 질 것같으니까.

    "아니. 하지만…."

    "말해두겠는데 말일세! 이 몸은 자네가 죽으면 곧장 자결할 걸세!"

    "아니. 야. 그게 무슨!"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마법 연구 하나만 바라보고, 아는 사람이 전부 죽어가는 와중에도 꾸준히 영생을 유지하던 애가.

    "농담 아닐세! 어차피 사도 인장도 있으니 자네의 생사쯤은 바로 알 수 있네. 두고보게나. 사도 인장이 사라지면 바로 자결할터이니 말일세! 그러니까 죽을 것을 대비해서 이 몸을 떼어놓는다는 생각은 다신 안 하는 것이 좋을 걸세!"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꾸욱 담은 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에 의지를 꾹 담아서 날 노려봤다.

    그 눈동자를 본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얘 고집은 절대 내가 꺾을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고.

    곤란하다. 이번만큼은 나도 물러설 수가 없는데 말이야.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잭팟 축하 감사합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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