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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719화 (70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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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이굴

    도축 스킬로 알아본 거북이의 마석 위치는 바로 등껍질의 바로 아래.

    가장 위쪽의 등껍질을 벗겨내기만 하면 바로 캐낼 수 있는 곳에 위치해있었다.

    그래. 등껍질을 벗겨내기만 하면 말이다.

    하지만 이 놈의 등껍질은 죽어서도 단단함을 잃지 않은 건지, 내 나이프가 도저히 파고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등껍질이 없는 부분, 머리나 다리쪽 구멍을 통해서 마석을 캐내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 통로를 꽉 틀어막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거북이의 덩치는 상당히 컸다.

    즉, 껍질이 없는 부분을 파고들어 캐내려면 내장을 파헤치고 아예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야 물론 마석만 캐내면 놈의 잔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 더러워지거나 할 걱정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내장을 파헤치며 들어가는 더러운 기분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웬만하면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단 말이지.

    "어쩔 수 없구먼. 이 몸이 도와주겠네."

    당황한 날 보며, 디아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렇게 말해줬다.

    확실히, 디아나의 마법이라면 굳이 몸을 이 안에 집어넣지 않더라도 요령좋게 마석만 꺼내올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말이야. 도와주겠다고 말해주는 건 고마운데 말이야. 대체 그 표정은 뭐냐?

    "아뇨. 디아나는 방금 전 전투로 피곤하잖아요. 쉬고 있어요. 제가 할게요."

    게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건 디아나뿐만이 아니었다.

    사라까지 왠지 갈 길이 멀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리에 호신용으로 차고 있던 나이프를 꺼내며 앞으로 나섰다.

    "아니. 사라야. 너 방금 전에 못봤냐? 단검이 박힐만한…."

    푸욱.

    박혔다. 그것도 엄청 간단하게.

    잠깐만. 이상하잖아. 얘는 궁사. 단검을 잘 써야 되는 건 오히려 나라고. 나. 이상하잖아.

    아니. 자세히 보니까 등껍질에 박힌 단검이 자체 발광이라도 하는 것처럼 빛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상하잖아! 더러운 사기 직업같으니라고!

    "과, 과연! 마나를 쓰면 되는 건가! 그 방법이 있었군!"

    "전위직이 그걸 생각못하는 것도 어떨까하는데…."

    "자, 자! 그럼 방법도 알았으니 마석을 캐볼까! 사라는 이제 그만 됐어! 내가 할게!"

    황당해하는 사라를 애써 무시하고, 나는 황급히 나이프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이래 봬도 나는 단검을 주무기로 하는 직업! 게다가 1차 전직까지 마쳤다고! 사라도 가능한 걸 내가 할지 못할 리가 없어!

    만약을 위해 단검에 마나를 할 수 있는한 최대로 꽉꽉 담은 후, 나는 있는 힘껏 단검을 녀석의 등껍질에 박아넣었다.

    "끄윽…끄으으으응…핫! 어떠냐?!"

    그리고 안간힘을 쓴 결과, 나는 겨우 등껍질에 단검을 박아넣을 수 있었다.

    "…역시 내가 할까?"

    "무, 무슨 소리야! 지금 단검 박힌 건 안 보여?!"

    "…구원말이야."

    날 바라보는 사라의 눈빛이, 점점 더 불쌍한 사람을 보는 그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뭐, 뭐야."

    "분명 전직한 직업 이름이…월영무사? 잘은 모르지만 공격군이라고 했었지? 암살자와 무사가 합쳐진. 주무기가 단검하고 주먹이었고."

    "…무, 무지막지하게 잘 알고 계시네요."

    "괜찮은거야?"

    "그렇게 대놓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어보지 마!"

    "어차피 이제 탱커는 실비아가 있으니까, 이제부터 구원은 좀 더 공격력을 기르는 게 좋지 않아? 어차피 구원은 방어 스킬같은 것도 없잖아?"

    "그러니까 진심으로 내 방향성이 걱정된단 표정으로 직구를 던지지 마! 사라 넌 가끔 너무 직설적으로 사람의 가슴을 후려판다고!"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내가 어중간한 잡캐라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탱커라고 해도 말이 탱커지, 어그로 끄는 능력만 좋고 방어 스킬은 하나도 없고!

    회피탱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전투 스킬은 대부분이 공격계열 스킬이고!

    그런 주제에 스킬 레벨은 전반적으로 낮고!

    그런 주제에 매력을 제외한 스탯 중 제일 높은 스탯은 또 내구고!

    성자 스킬이 없으면 존재감 제로의 잡캐잖아!

    사실 지금까지 파티에서 내가 제일 앞에 나섰던 것도, 실은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내가 할 일이 아예 없어져서 그런 거였다.

    그도 그럴게, 탱커는 방어용 스킬도 있는 실비아한테 맡기는 게 제일 좋고.

    공격은 사라한테 맡기면 되고.

    힐링은 레이아. 예상외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는 디아나. 후위진의 방어는 마틸다.

    응. 까놓고 말해서, 내가 파티에 없었어도 완벽하게 밸런스를 갖춘 파티였다.

    "아니. 잠깐만. 그래! 생각해보니 나도 딱 하나, 방어용 스킬이 있었어! 그것도 엄청나게 효율 좋은 걸로! 이걸 살리면 나도 완벽한 탱커로…!"

    하지만 그때, 내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뜩였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고간으로 향했다.

    "진심으로 그만두세요."

    하지만 내 야망은, 마틸다의 핑크빛 기운 하나 없는 냉정한 목소리에 빨리도 좌절됐다.

    "이, 이래 봬도 5계층 주인의 공격까지 막은…."

    "끈질겨요."

    "…죄송합니다."

    뭐, 마틸다 쟤는 그 광경을 눈 앞에서 목격했었으니까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나.

    자세히 보니, 실비아마저도 절대 안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탱커는 제가 맡겠습니다."

    아니. 실비아야? 평소처럼 목소리라도 조금 떨어주지 않을래?

    그정도냐? 그정도로 안되는 거야?

    "…하여간 이런 때까지 장난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니까.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아까 디아나가 말한 것도 있으니까."

    아뇨. 나로서는 일단 완전히 장난이었던 건 또 아니었는데 말이죠.

    뭐, 지당하신 의견이지만.

    디아나의 말에 따르면 여신님은 내가 성자 스킬 없이도 일정 수준의 전투력을 갖추게 하고 싶은 모양이니까 말이야.

    사라의 말대로, 앞으로는 나도 무작정 레벨만 올리기 보다는 성장 방향성을 제대로 정해서 스킬 레벨도 올려가면서 전투에 임하는 게 좋겠지.

    월영무사. 쉽게 말해서 주먹과 단검을 쓰는, 암습과 속도전에 능한 인파이터다.

    그리고 내가 이 직업의 특징을 잘 살려 싸우면, 우리 파티의 밸런스가 더 맞는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 파티는 근접 딜러가 없으니까 말이야.

    아니. 굳이 따지자면 실비아나 마틸다가 딜탱에 가까우니까 근접 공격 수단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속도를 살려 적을 교란시키는 인파이터의 역할을 맡으면 분명 지금보다 밸런스가 훨씬 맞아 떨어지는 파티가 될 거다.

    실제로 그런 전투를 눈 앞에서 본 적도 있고 말이다.

    전에 아라크네 클랜을 따라 5계층에 갔을 때, 섹시한 도적 루티아 누님이 딱 그런 역할이었다.

    뭐, 그 누님처럼 쫄쫄이를 입고 싸울 생각은 없지만.

    "알았어. 그럼 나도 이제부터는 근거리 딜러 역할을 맡아보기로 할까?"

    "흠. 그럼 다음 거북이는 어디 한 번 자네가 상대해보겠나? 실비아양에게 너무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의 얘기이네만…."

    "응? 아니.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나 혼자서…."

    "네. 저라면 괜찮습니다. 문제 없습니다."

    갑자기 나 혼자서 거북이를 잡는 건 너무 스파르타식 교육법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먼저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실비아야. 방금 전 전투로 기합이 바짝 들어간 건 알겠는데, 조금은. 아주 살짝은 긴장을 풀고 평소같은 태도를 보여도 좋지 않을까하고, 나는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 그럼 그렇게 할까!"

    하지만 제일 고생하는 탱커가 하겠다고 하는데, 내가 못하겠다고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이 거북이굴에서의 우리 파티의 기본적인 전투 방식이 정해졌다는 얘기다.

    실비아가 막고, 일단 내가 혼자서 하는데까지 공격을 퍼붇는다. 내가 한계에 달해도 거북이가 잡히지 않을 때는 사라가 보조를 해줘서 잡는다.

    "흐헥…헥…."

    그래서 지금 나는 오랜만에 전투로 죽을 맛을 경험중이었다.

    성자 스킬을 쓸 때가 편했어.

    하필이면 상대가 무식하게 딱딱한 거북이라는 점도 한 몫해서, 나는 지금 성자 스킬이 얼마나 편했는지 절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아니. 들어봐. 내게도 변명거리는 있어.

    이 거북이 녀석 말이야. 근거리 딜러가 상대하기에 무지막지하게 불리해!

    체력이 넘칠 때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공격을 안 한다지만, 난 근거리 딜러라서 다가가야되잖아! 머리를 내밀면서 공격해댄다고!

    아니. 거기까진 괜찮아. 위험한 공격은 실비아가 방패로 쳐내주기도 하고, 녀석이 물려 들 때마다 나도 비교적 연약한 부위인 머리를 공격할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체력이 일정 이하로 내려간 다음이야.

    안 그래도 단검이 안 박히는데, 회전까지 해대니까 더 죽을 맛이라고!

    있는 힘껏 찍어눌러보려고 해도, 울퉁불퉁한 껍질이 회면하면서 단검을 갈아버리고, 덤으로 팔까지 그 충격이 전해져온다고!

    이 녀석 누가 봐도 원거리 공격으로 잡는 게 편한 녀석이잖아!

    덕분에 나는 한 번의 전투만으로도 이미 녹초가 되어버렸다는 얘기다.

    쓸데없이 회전하는 등껍질 한 번 뚫어보겠다고 쓸데없이 마나를 무지막지하게 써버렸어.

    이 마나로 성자 스킬을 썼으면, 이런 거북이따위 수십마리는 잡았을텐데.

    "구원씨, 괜찮으세요?"

    평소보다도 훨씬 지쳐보이는 내 모습에, 천사님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엿봤다.

    "하여간 한심하다니까. 다음에는 한 번 쉴래? 나 혼자서 상대할테니까."

    사라 역시도 말투는 아닌 척하면서도, 걱정되는지 그런 제안을 해왔다.

    뭔가, 든든한 탱커 역할을 할 때는 못 느꼈던 괜한 상냥함이 느껴지는데 말이야.

    아니야. 난 그렇게 연약한 놈이 아니야! 난 멀쩡하니까 너무 그렇게 상냥하게 대해주지 말라고! 슬퍼지잖아!

    "괜찮아. 아직 할 수 있어."

    "정말로 괜찮으세요?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시는 건 좋지만, 너무 무리하시면 안 돼요?"

    "걱정 마. 아, 그래도 굳이 도와주고 싶다면."

    "네? 제가 뭔가 도움이 될 게 있나요?"

    "응. 마나가 부족하니까 잠깐 저기 가서 힐링…끄아악! 부러져! 부러져!"

    내가 손가락으로 구석을 가리킴과 동시에, 사라의 손이 뻗어진 내 손가락을 잡고는 본래 꺾여서는 안될 방향으로 꺾어버렸다.

    "이상한 소리하지 마. 하여간 방심할 틈도 없다니까. 레이아도 그렇게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레이아가 그러니까 구원이 맨날 레이아한테만 이렇게 응석…."

    사라의 말을 듣고 새삼 레이아의 얼굴을 다시 보니, 확실히 얼굴이 살짝 붉어져있었다.

    설마 진심으로 살짝 고민한 건가.

    천사야. 천사가 여기에 있어.

    역시 내 마음의 오아시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야. 사라."

    그 오아시스를 지키기 위해, 나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의 어깨를 잡았다.

    "뭐, 뭐야."

    "내 천사님에게 괜한 소리 하지마. 그 순수함을 더럽히지마. 내 천사님은 언제까지나 저렇게 내 성희롱에 순수한 반응을…끄아아악! 잘못했어요! 나댔어요! 죄송합니다! 꺾여요! 진짜로 꺾여요!"

    다만, 사라의 손이 여전히 내 손가락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 하고 있었던 것이 내 패착이었다.

    "하여간 그런 농담을 할 정신이 있을 정도면 아직 충분히 여유가 있는 모양이네. 다음 거북이도 구원 혼자서 처리해."

    "넵."

    "…나도 무기에 마력을 효율좋게 불어넣는 방법정도는 알려줄 테니까."

    "하여간 얘도 참 솔직하질 못하다니까. 내가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끄아악! 이제 손가락은 좀 놔줘라!"

    그렇게 해서 우리는 주로 내가 고생을 해가며 거북이를 해치우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뭐, 고생을 한만큼 스킬 레벨은 빨리 오르니까 싫은 건 아니지만 말이야.

    단순히 내 스킬 레벨이 계층 수준에 비해 너무 낮아서 잘 오르는 거겠지만.

    아무튼 몇 마리의 거북이를 해치우고 몇 개의 갈림길을 거쳐가며 꼬불꼬불한 동굴 속을 나아가자, 거북이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래. 거북이굴은 단순히 이끼낀 동굴로만 이루어진 구조가 아니었던 거다.

    "…물웅덩이네."

    "물…웅덩이네요."

    눈 앞에 있는 물웅덩이를 보고, 제일 좌절하는 표정을 짓는 건 역시나 마틸다였다.

    "역시 들어가야 하는 걸까?"

    "여기 말고는 전부 막혀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아니. 나도 알아. 맵도 길이 아래로 뚫려있다고 나와있으니까.

    다만 말이야. 땅 위에서도 이렇게 거북이를 상대하기 벅찬데, 움직이기 힘든 물속이라고?

    심지어 거북이는 물속에서도 날아다닐 거 아니야!

    하아…들어가기 싫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BLUE물고기, 은색실버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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