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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718화 (70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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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이굴

    그리고는 커다란 굉음과 함께 동굴 전체가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눈앞에 있는 거북이의 등껍질이 동굴의 벽과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동굴 전체가 습하고 이끼에 가득 둘러쌓여있어서 안그래도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는데, 이렇게 흔들리기까지하자 더욱더 균형을 잡고 서있기 힘들어졌다.

    뭐, 그렇다고해서 진짜로 균형을 못잡고 넘어지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나나 사라, 실비아, 마틸다는 몸을 쓰는 직업이다보니 아직까지는 버틸만했고, 레이아 역시도 종족때문인지 사제계열치고는 운동신경이 좋아서 넘어지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균형을 잡느라 다들 동작이 흐트러지기는 했지만, 지금은 디아나가 제대로 마법구를 날릴 수만 있으면 문제없다.

    그리고 운동신경 문제로 제일 불안한 그 디아나로 말하자면, 공중에 둥둥 떠서는 혼자서 동굴 전체에 일어나고 있는 지진과 전혀 관계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만 보아하니 넘어지기 직전 꽤나 아슬아슬한 순간에 부유마법을 쓴 모양이었다.

    공중에서 일자로 꼿꼿하게 서있는 게 아니라, 마치 누가 허리띠 뒤쪽을 잡고 들어올린 사람처럼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진 채 둥둥 떠있었으니까.

    "실비아양!"

    "넷!"

    하지만 표정으로는 넘어질뻔했다는 티를 전혀 내지 않고, 디아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실비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실비아가 방패를 땅에 꽂아 자세를 잡으며 힘차게 대답함과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일어났다.

    콰르르르르콰아앙!

    마치 근처에 번개라도 떨어진 것 같은 그 굉음은, 바로 거북이가 실비아의 방패에 몸통 박치기를 하면서 일어난 소리였다.

    "꺄앗!"

    이 녀석, 너무 무식하잖아!

    등껍질이 저렇게 빡빡하게 끼어있는데, 그걸 완전히 무시하고 동굴 벽들을 갈아버리면서 돌진했어!

    그것도 그냥 정면으로 달려온 게 아니라, 머리와 다리를 전부 껍질속에 집어넣고는 마치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돌진해왔다.

    게다가 아까 사라와 싸울 때도 잠깐 보여줬던 빠른 몸놀림을 그대로 살려서.

    실비아의 방패와 격돌하고 나서도, 놈은 회전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회전이 빨라지는 것처럼 보일정도였다.

    두두두두두두!

    끼기기기기긱!

    회전하는 놈의 등껍질이 동굴의 벽들과 마찰하며 돌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는 소리.

    그리고 놈의 등껍질이 회전하며 실비아의 방패와 마찰하는 소리.

    안 그래도 충분히 시끄러운 그 굉음들의 불협화음이 좁은 동굴속을 가득 채우며 벽에서 벽으로 이리저리 반사되며 울리자, 청각뿐만 아니라 나머지 감각들마저 어지러워지는 것같은 느낌을 만들었다.

    게다가 놈의 등껍질이 동굴을 깎으며 튀는 파편들이 온 몸을 때리고 시야를 가리기까지.

    물론 나는 몸이 튼튼했기 때문에 파편이 튀는 것에 맞는다고 해서 데미지를 심하게 받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시야를 가리면서 온몸을 난타하는 느낌과 견디기 힘든 굉음이 합쳐지니 서있는 것도 힘들게 느껴질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의 본분을 잊지는 않았다.

    이끼 때문에 미끄러운 지면을 딛고 흔들리는 동굴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간 나는, 온 몸으로 돌 파편을 받아낸다.

    사라나 레이아는 후방에 있으니, 둘에게 튀는 파편은 마틸다가 막아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디아나는 공격 마법을 행사하기 위해 마틸다보다 앞으로 나와있는 상태였다.

    동굴 안이 좁은만큼, 너무 뒤에서 마법을 쓰면 앞에있는 사람들이 방해가 되니까 말이다.

    디아나가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지만, 자칫 잘못하면 몬스터에게 날리다가 앞사람한테 맞을 수도 있고.

    그래서 디아나는 다른 후위진보다 앞으로 나와있었는데, 하필 우리 중에서 이 돌파편에 맞으면 제일 크게 다칠 사람도 디아나였다.

    때문에 나는 탱커답게 앞으로 나서서 디아나의 몸에 파편이 튀지 않도록 막아섰다는 얘기다.

    물론 디아나라면 부유 마법과 공격 마법, 방어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만약의 사태에는 대비해야되지 않겠어?

    "디아나! 시험해본다는 건 끝났어?!"

    "음. 미안하네. 조금만 참아주게."

    내 외침에 디아나는 미안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디아나의 주변에서 마나가 요동치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 직후, 귓가를 때리는 굉음에 디아나의 마법이 거북이의 몸을 난타하는 소리가 추가됐다.

    그렇게 버티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갑자기 귓가를 울리는 굉음들이 동시에 사라졌다.

    그렇게 시끄럽던 공간에 갑작스레 정적이 찾아오자, 뭔가 괜히 더 귀가 이상해지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묘한 감각을 털어버리듯 가볍게 머리를 흔들고는, 우선 우리 애들의 상태부터 살폈다.

    살며시 눈을 뜨니, 역시나 실비아의 방패 앞에서 거북이는 회전을 멈추고 있었다.

    껍질 속에 머리와 다리를 집어넣고 있기는 하지만, 아마 죽었겠지.

    "다들 괜찮아?"

    "네에…."

    "어떻게든요."

    일단 제일 먼저 디아나를 바라보자, 디아나는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저러는 걸 보니 일단 어디 상처입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네.

    미안해할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우선은 우리 애들의 상태파악이 우선이다.

    나는 한 손을 디아나의 머리 위에 올려서 쓰다듬어주면서, 시선을 뒤로 돌렸다.

    거기에는 예상대로 마틸다가 방패를 들고 날아오는 파편을 든든하게 막아주고 있었다.

    다만 발밑이 미끄러운 곳에서 그렇게 동굴이 울려대자 버틸 수가 없었던 건지, 레이아는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반면에 역시나라고 할까. 사라는 마틸다의 뒤에서 거북이쪽에 활을 겨눈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레이아?! 정말 괜찮아?! 다친 데없지? 혹시 다리 삔 거 아니야? 업어줄까?!"

    "구, 구원씨도 참…. 정말로 괜찮아요."

    내가 호들갑스럽게 말하자, 레이아는 얼굴을 붉히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다친 곳은 없어보이니 다행이지만, 거북이 녀석. 우리 천사님을 주저 앉게 만들다니! 절대로 용서 못해!

    뭐, 이미 죽었지만.

    그리고 사라야. 나도 넘어져있을 걸 그랬나? 라는 표정 짓지 마라.

    "실비아도 잘했어. 어디 다친데는 없고?"

    "네. 문제없습니다."

    방금 전 전투로 긴장이 바짝 들어간 건지, 실비아는 내 상냥한 물음에도 목소리조차 떨지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실비아의 발을 자세히 보니, 발목까지 바닥에 박혀있는 상태였다.

    그 거북이 녀석, 대체 얼마나 강했던 거야?

    아니. 그걸 버텨낸 실비아도 실비아지만.

    "미안하구먼. 삼중 영창을 쓸 수 없었던 것은 아니네만, 아직 이 몸의 마나가 충분치 않아 그만큼 시간이 걸려서 말일세. 그 시간에 녀석을 잡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하여 그리 했네."

    그렇게 상태파악을 마친 내게, 디아나가 겨우 미안함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 사과를 해왔다.

    "아니. 잘했어. 어차피 공격을 막는게 내 역할이기도 하고. 그래서, 결국 알아본다는 건 뭐였어? 혹시 계속 때리면 거북이가 공격하는지 알아본 거였어?"

    내가 머리를 토닥이며 말해주자, 디아나는 겨우 안심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건 전혀 아닐세. 설마 체력이 떨어지면 공격하는 부류였을 줄이야. 실비아양은 보험용으로 세워둔 것에 불과했는데 말일세. 불행 중 다행이었구먼."

    "그럼 알아본다는 건?"

    "음. 자네는 어제 앨리시아양이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응? 어떤?"

    "황제 펭귄의 공격력이 5계층 몬스터들의 공격력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던 말 말일세."

    "아아. 응.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도 했었지. 그게 왜?"

    "이 몸은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네만, 앨리시아양의 그 말을 듣고 짚히는 점이 있어서 말일세. 어제 이 몸이 말하지 않았는가. 이 던전은 밑에 있는 무언가가 위로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임과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자네, 성자를 성장시키는 구조를 하고 있다고."

    "응. 그랬지."

    "그리고 어제 앨리시아양의 얘기를 듣고, 성자의 능력이 있어야지만 비로소 발견 가능한 이 소계층은 그런 역할에 더 충실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한 걸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 짐작은 맞아떨어졌네."

    "응? 아, 그 말은 혹시…."

    "음. 여기 계층의 거북이들의 방어력은 5계층 몬스터들의 방어력과 비슷한 수준이더구먼. 즉, 길을 막고 있는 이 거북이를 해치울 수준은 되어야 5계층에서 원활한 사냥이 가능하다고 알려주고 있는 걸세."

    "과연. 그럼 역시나 어제 디아나가 말했던 가정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는 건가."

    "음. 확신을 가지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점점 신빙성이 더해지는 것 역시 사실이구먼. 하지만 그렇다는 말은…."

    "그렇다는 말은?"

    "앞으로 던전을 다닐 때, 정말 위기 상황이 아닌 한 자네의 성자 스킬은 봉인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구먼."

    "그게 무슨 말이야?"

    "언젠가 한 번 말하지 않았는가. 6계층은 자네의 성자 스킬이 통하지 않는 적들뿐이라고."

    "아, 그러고보니 그런 말을 들은 것같기도…즉. 디아나는 그마저도 날 성장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한다고?"

    "음. 아무래도 여신님께서는, 자네가 성자 스킬 없이도 충분한 수준의 무력을 갖추기를 원하는 것같구먼. 물론 다른 사람이 아니라 굳이 자네에게 사명을 맡긴만큼, 성자 스킬 역시도 유용하게 써야할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은 하네만…흠. 역시나 자네에게 주어진 사명이란 것은, 성자 스킬이 통하는 상대를 해치우는 것이 유력하겠구먼."

    디아나는 한 손을 턱에 대고는 눈썹을 찌푸리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도 디아나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까지 나온 단서들을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그런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성자 스킬이 통하는, 성자 스킬로 무찌를 수 있는 상대.

    아니. 굳이 나를 내려보내는 거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해치우는 게 불가능한, 오로지 성자 스킬로 밖에 무찌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상대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아무리 성자 스킬이 통한다고 해도, 나 자신의 무력이 일정 수준에 달하지 않으면 적을 해치우기 전에 내가 먼저 당해버릴 거다.

    아무리 성자 스킬이 통한다고 해도 한 방에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고, 적은 성자 스킬에 맞은 순간 미친 듯이 나만 노리고 달려들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솔직히 말해서 전에 그 악몽을 꾼 직후보다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해지는 것 역시도 사실이었다.

    꿈에서 본 그 마신은 도저히 성자 스킬이 통할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성자 스킬이 통하기는 할 거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냥 마음 편하게 있을 수도 없지만 말이다.

    아니. 성자 스킬로밖에 해치울 수 없다고 한다면 오히려…좋아. 진짜로 힘내볼까.

    "그럼 디아나의 말대로, 앞으로는 성자 스킬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가도록할까."

    원래부터 실력 향상을 위해 성자 스킬은 극력 봉인할 생각이었으니 잘 됐다.

    뭐,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틈만 나면 써댔지만. 앞으로는 더 자제하자.

    "음. 그리고 자네들에게는 미안하네만, 이 계층의 거북이들은 되도록 방금 전 이 몸이했던 것처럼 힘조절을 해서 잡도록 하세."

    "네? 하지만 마나라면…."

    "사라양의 그 공격은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는가. 이곳에서는 괜찮을지 몰라도, 5계층에서는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네. 그러니 즉시 사용 가능한 공격을 연속으로 퍼부어서 잡는 방향으로 나아가세. 5계층의 몬스터 상대로 어느 정도 공격하면 해치울 수 있는지 가늠도 하면서 말일세. 모처럼 여신님이 마련해주신 연습의 장이니, 충분히 이용해야하지 않겠는가."

    사라는 충분히 마나를 조절해가면서 거북이를 한 방에 잡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디아나는 고개를 흔들며 차분하게 설명을 해줬다.

    확실히, 여기는 거북이들이 기본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방금 전처럼 공격을 해와도 정면만 막으면 되니까 간단하게 실험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5계층에서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그렇네요. 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사라도 디아나의 설명을 듣고 납득을 한 듯, 고개를 끄덕여줬다.

    "좋아. 그럼 잽싸게 마석을 캐고 더 앞으로 가볼까!"

    이 계층에서의 사냥 방향이 정하고 나서, 나는 활기차게 그렇게 그렇게 말한 후 마석을 캐기 위해 거북이의 사체에 도축용 나이프를 박았다.

    팅!

    …잠깐만요. 이 녀석, 나이프가 안 박히는데요?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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