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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717화 (70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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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이굴

    놈의 태도는 마치 방금 전 공격을 깔보는 것같이도 보였다.

    아니.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다뿐이지, 진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거북이의 표정같은 걸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내가 바넷사 상대로 포커페이스 읽기에 단련됐다고는 하지만, 저건 아니야.

    "…한 번 해보자는 거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북이의 그 태도는 우리 용사님이 차가운 분노를 불태우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적은 만나본 적도 없었고, 파티의 메인 딜러라는 자부심도 있을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죽고 싶으면 죽여줄게."

    사라는 내가 봐도 살짝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후, 다시금 활시위를 당겼다.

    표정은 차가운데 눈만은 이글이글 불타고 있어서 더욱더 공포감을 자극했다.

    언제나 생각하고 있던 거지만 새삼 다시 한 번 느끼는 건데, 사라가 진짜로 화날만한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아무튼 오기가 생긴 사라의 활에 시리도록 푸른 마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마나를 모으는 건지, 이윽고 활에 모인 마나 덩어리는 화살의 크기를 벗어나 창에 가까운 크기가 되어갔다.

    내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사라의 활에 걸린 마나 스피어를 보며 거북이까지 질린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잠깐. 조금 도발했기로서니, 인간적으로 그렇게까지 해? 보통?’

    아마 거북이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겠지.

    그런데 말이지. 응. 우리 용사님은 그렇게 하거든.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내가 거북이를 향해 가볍게 손을 모으고 묵념을 함과 동시에, 사라의 화살에서 거대한 마나 스피어가 발사됐다.

    거기에 담긴 거대한 힘과는 달리, 발사된 마나 스피어는 아무런 소음도 발생하지 않고 순식간에 시야를 새하얗게 물들이며 사라졌다.

    그 너무나도 눈부신 빛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순간, 이미 우리 앞에 거북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흥. 별것도 아닌게."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거북이를 세상에서 지워버린 사라는, 어떠냐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여간 이런 거 보면 진짜 우리 중에서 제일 어리다는 게 실감이 난다니까.

    "…아니. 용사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마석까지 안남을 정도로 박살을 내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존댓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아니. 그냥. 왠지 모르게. 응. 미안."

    사라 얘가 가끔 손에 마나를 담아서 날 때리는 것도, 실은 많이 봐주는 거였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절대 진심으로 화나게 하지 말아야지.

    "아무튼 마석은 그렇다치고, 너 마나는 그렇게 써도 괜찮은 거야?"

    "괜찮아. 제대로 시간을 들여서 마나를 가다듬은 다음에 쐈잖아. 최대한 효율 좋게 쐈으니까 아직 멀쩡해."

    확실히. 지금까지 내가 본 사라의 공격중에서 가장 강력한 일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그다지 지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마나를 가다듬어서 효율 좋게 쐈다니. 그런 건 또 대체 어디서 배웠대.

    그러고 보니 얘는 엄청나게 저레벨 때부터 화살에 마나를 담아서 쏴댔었지.

    나도 그랬지만, 마법사 계열이 아닌 이상은 보통 무기에 마나를 담아서 공격하는 건 한 번 전직을 마친 다음에야 가능한 건데 말이야.

    역시 이것도 용사의 힘인 건가? 보면 볼 수록 너무 사기적인 직업이란 말이야.

    뭐, 예전에 그 쓰레…레…레기? 아무튼 그 용사한테 들은 바로는 용사라는 직업은 전쟁신의 가호를 받은 직업인 모양이니까.

    전투면에서 사기적인 건 어쩔 수 없나.

    "하지만 통로에서 몬스터와 만나는 건 처음이네요. 지금까지 저희가 우연히 만나지 않은 것뿐이고, 실은 이런 일은 종종있는 일인 건가요?"

    그리고 레이아가 뺨에 손을 얹고 살짝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디아나. 어때?"

    "흠. 으음…."

    레이아의 말을 애매하게 부정하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나는 이중에서 제일 던전경험이 풍부한 디아나에게 질문을 넘겼다.

    하지만 디아나는 어째선지 한 손을 턱에 가져다대고는 거북이가 있었던 장소를 빤히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디아나?"

    "음. 음? 아, 아닐세. 이 몸이 알기로도 계층을 이동하는 통로에 몬스터가 나타났던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네. 이곳은 이미 4.5계층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그리고 내가 다시 한 번 이름을 부른 후에야, 디아나는 겨우 고개를 들며 그렇게 말해줬다.

    "역시 그런가. 확실히 통로치고는 쓸데없이 길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말이야. 그럼 대체 언제부터 4.5계층이었던 건지."

    "그래도 여기가 4.5계층이라는 건, 이제 물에 들어갈 일은 없다는 얘기네요."

    마틸다는 다시 수중생활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 건지, 그렇게 말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마틸다를 보며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버리고 말았지만.

    "…왜 그래요?"

    "아니. 그냥…너 지금은 핑크빛 모드 아니지?"

    "…아무리 저라도 그 반응은 상처 받아요."

    "미, 미안. 아무래도 던전 안이다보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같아서."

    "후훗. 그럼 벌로 다음 몬스터를 만날 때까지 팔짱끼고…."

    "너 역시 핑크빛 모드지?!"

    "노, 농담이에요."

    거짓말 하지 마라. 눈동자에서 하트가 보였어.

    하여간 조금만 안전해졌다고 생각하면 바로 이거라니까.

    하지만 진짜로 필요할 때는 자제할 수 있는 마틸다가 이런 다는 건, 그만큼 여기 4.5계층이 비교적 안전하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4.5계층…지금부터는 거북이굴이라고 할까.

    이 거북이굴이 지금처럼 쭉 통로와 구분 안되는 지형을 유지한다면, 다른 계층과는 달리 사방을 경계할 필요가 전혀 없이 전방의 몬스터만 주의하면 된다는 얘기가 된다.

    뭐, 바꿔 말하면 몬스터와 전투가 일어났을 때 도망가는 게 불가능한 지형이라는 얘기도 되지만, 그 몬스터가 접근하지만 않으면 이쪽을 공격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거북이니까 말이야.

    소계층은 지금까지 쭉 한 종류의 몬스터만이 등장해왔고, 아마 이 계층에는 아까같은 거북이만 계속 나오게 되겠지.

    그렇다면 도망은커녕, 공격을 당할 위험조차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뭐라고 할까, 맥이 빠질 정도로 쉬운 계층이잖아?

    아니. 그야 우리 용사님이 이런 곳에 있기에는 규격 외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니 쉽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다른 모험가들이 저 거북이의 방어력을 뚫으려면 상당히 고생을 해야 되겠지.

    일반적인 모험가들에게는 몬스터의 공격력이 까다로웠던 얼음동굴에 이어서, 이번엔 몬스터의 방어력이 까다로운 거북이굴이라는 얘기다.

    "아무튼 계속 이런 식이면 우리야 고맙지. 그럼 계속 갈까?"

    사라가 거북이를 마석조차 남기지 않고 지워버렸기 때문에 마석을 회수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조금 걸음을 옮기자 곧장 갈래길이 나타났다.

    정면으로 향하는 길과, 오른쪽으로 꺾인 길.

    "역시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쉽지는 않나. 아마 미로같은 지형인 모양이네. 뭐, 그래봤자 나한테는…."

    내가 그렇게까지 말했을 때, 갑자기 정면으로 나있던 길이 이끼낀 돌로 틀어막혀버렸다.

    거북이가 튀어나온 게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벽이 된 거다.

    혹시나 싶어서 맵을 자세히 보니, 정말로 정면의 길은 없는 길로 되어있었다.

    반사적으로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를 바라본 날, 누가 탓할 수 있을까?

    "뭐야?"

    "아뇨."

    무섭다고 이것아.

    어제 앨리시아 파티를 돌려보낼 때 길을 만들었던 것도, 디아나가 마법을 쓸 필요 없이 얘가 화살 한 방 쐈으면 끝났던 거 아냐?

    아니. 뭐, 디아나는 다른 의도가 있어서 일부러 쓸데없이 강력한 마법을 쓴 거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런 헤프닝도 잠깐 있었지만, 이 거북이굴이 꼬불꼬불하고 여러 갈래로 갈라진 미로같은 구조로 되어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잠깐 더 걸음을 옮기자, 이번에는 진짜로 갈래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쪽 길을 선택해서 조금 더 나아가자 길이 막혀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거북이가 길을 막고 있었던 거였지만.

    이 거북이 등껍질, 쓸데없이 동굴벽이랑 모습이 똑같아서 자세히 안 보면 구분도 잘 안 된단 말이지.

    "또 내 차례네."

    "이번에는 살살해라. 살살. 적어도 마석은 남겨줘."

    "알고 있다니까. 아까는 방어력이 가늠이 안 돼서 조금 기합넣었던 것뿐이라고."

    나와 사라가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목소리로 그런 대화를 주고받자, 갑자기 디아나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아니. 이번에는 이 몸에게 맡겨주게."

    "응? 디아나가?"

    그야 물론 디아나도 얼마든지 거북이를 해치울 수는 있을 거다.

    아니. 마음만 먹으면 오히려 사라보다 더 효율 좋게 해치울 수 있을 거다.

    사라가 아무리 우리 파티의 메인 딜러라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디아나가 일반적인 전투에서는 공격에 가담을 안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용사라는 사기적인 직업이 있어도, 성장중인 사라가 레벨만 부족할뿐 모든 면에서 완성된 세계 최고의 대마법사님보다 더 강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렇기 때문에 디아나가 거북이를 해치우지 못할 거라는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위기 상황이 아니면 되도록 마나를 온전하고 나서지 않는 디아나가 이번에는 갑자기 왜?

    설마하니 방금 전 사라의 활약에 질투해서 자기도 좀 활약해보려고 하는 건 아닐테고 말이야.

    얘가 내 앞에서는 애처럼 굴며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른스럽고 이지적인 대마법사님이다.

    진짜 애들처럼 그런 걸로 경쟁하거나 하지는 않을텐데.

    "음. 조금 시험해볼 것이 있어서 말일세."

    "아, 혹시 아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그거?"

    디아나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아까 디아나가 생각에 잠겨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음. 그런 걸세."

    내가 자신을 잘 관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꽤나 기쁜 건지, 디아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거북이를 바라봤다.

    "실비아양. 전방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어주겠나?"

    "넷."

    게다가 무슨 생각인지, 디아나는 파티의 제일 앞쪽에 실비아까지 배치시켰다.

    실비아는 실비아대로 방패를 단단히 움켜쥐고는 우리들 앞에 굳건히 버티고 섰다.

    방금 전에 거북이가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은 걸 본만큼,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할만도 한데 말이야.

    어렸을 적에 디아나에게 신세진 적도 있는 만큼, 디아나에대한 실비아의 신뢰는 무척이나 두터웠다.

    그렇게 완전히 전투 태세를 갖추고, 디아나는 아무런 영창도 없이 허공에 빛나는 마나 덩어리들을 몇 개 만들어냈다.

    언젠가 본 적 있는, 그래. 예전에 우리를 늑대개들한테서 구해줬을 때 썼던 그 마법이었다.

    어느새 이 마법도 쓸 수 있을 정도로 레벨을 올린 건가.

    살짝 추억에 젖으면서 그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 마나 구체들이 거북이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퍼버버버벙.

    처음 만났던 거북이를 상대로 사라가 했던 공격들의 위력을 고려한 건지, 그 마법구체들은 하나 하나가 사라의 일반 공격보다도 무거운 소리를 울리며 거북이의 몸을 난타했다.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재빠른 거북이는 그 공격을 전부 껍질로 받아냈지만, 그럼에도 충격이 아예 없지는 않은지 조금 휘청이는 모습을 보였다.

    뭐, 바꿔말하면 저걸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지만.

    "흠."

    하지만 디아나는 예상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주변에 마나 구체를 더 생성해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구체를 말이다.

    그리고 디아나는 그 마법 구체들을 일제히 쏘아내는 것이 아니라, 차례차례 순서대로 쏘아내기 시작했다.

    거북이가 이 공격에 몇 대를 버티는 건지 시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마치 기관총을 연사하는 것같은 소리가 울리며, 마나 구체가 차례차례 거북이의 몸에 격돌되어가기를 수 초.

    벌써 몇 십발의 마나 구체에 적중당해 놈도 슬슬 한계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순간, 거북이에게서 변화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태평했던 놈이, 이제는 상당히 화가 났는지 눈이 돌아간 표정으로 이쪽을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한 거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잠만자고싶다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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