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13화 (69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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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맹 제안

    "아…으아. 그런 얘기입니까. 그게, 제가 그런 쪽으로는 조금 약해서. 혼자 그런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디아나의 제안에, 앨리시아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뭐, 확실히 앨리시아 얘는 간부라고 해도 이런 머리 쓰는 쪽하고는 연관이 전혀 없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디아나는 대체 앨리시아한테 무슨 제안을 하려고 저런 말을 꺼낸 걸까?

    여기까지 데려온 걸 보면 아마 소계층에 관련된 제안을 하려는 모양이지만, 그 의도가 전혀 짐작이 가지를 않는다.

    하지만 뭐, 디아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저러는 거겠지.

    나는 계속해서 디아나가 뭐라고 말하는지 경청하기로 했다.

    …클랜장 주제에 앨리시아보고 남 말 할 처지가 아니라고?

    이, 이건 그거야! 적재적소라는 거야! 머리쓰는 건 똑똑한 인재를 활용하면 되는 거지!

    삼국지연의를 봐도 전체적으로 능력치 높은 조조보다 덕장인 유비가 주인공이잖아? 난 그런 타입인 거라고!

    "흠. 그런가. 그렇다면 자네라도 판단할 수 있도록,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주겠네. 단, 자네 클랜과의 협력 관계가 정해지기 전에는 이 몸이 말한 정보를 누구에도 발설하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말일세. 뭘,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네. 자네들 클랜에게 있어서도 나쁜 얘기는 아닐터이니 말일세. 이 몸의 이름을 걸고 보장하지."

    하지만 디아나는 자신의 제안을 어떻게든 성사시키고 싶은 건지, 꽤나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설마 제대로 협력한다고 확답을 받기 전에, 소계층의 정보를 전부 말해줄 셈인건가?

    아무리 그래도 통이 너무 큰데?

    "네? 그, 그런 거라면…하지만 괜찮은겁니까? 내…아니. 제가…."

    앨리시아 역시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건지, 너무 자기한테 유리한 얘기라 오히려 의심이 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어물적 거렸다.

    아마 디아나도 저렇게 의심할 걸 생각하고 자기 이름을 건 거겠지만.

    "괜찮네. 자네는 스스로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킬 사람으로 보이니 말일세. 이래 봬도 사람 보는 눈은 있을 셈이네."

    "아, 아아…그렇슴까. 그…감사합니다?"

    난데없는 디아나의 칭찬에, 앨리시아는 머슥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단, 듣는 건 자네만일세. 저 세 처자는 잠시 귀를 막고 있어줘야겠네."

    "아, 네. 괜찮습니다. 너희들!"

    "네, 넵!"

    나한테 원망의 눈빛을 잔뜩 보내면서도, 차마 디아나라는 거물의 대화 도중에 나에게 불평을 내뱉을 배짱은 없어서 구석에 가만히 듣기만 하고 있던 삼인방.

    그런 삼인방에게 앨리시아가 눈짓을 하자, 삼인방은 황급히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는 아예 눈까지 감아버렸다.

    일단 여기도 던전 안이니까, 저런 행동에 저항감이 있을만도 한데 말이야.

    대체 평소에 얼마나 갈궜으면 눈짓 한 번으로 저렇게 되는 거야.

    "정말로 귀를 막고 있으라는 의미는 아니었네만…."

    디아나도 살짝 황당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지팡이를 휘둘러 삼인방쪽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는 앨리시아를 바라보며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부터 하는 말은 제대로 일이 결정 될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되네. 물론, 자네의 클랜장에게도 말일세. 알겠는가?"

    "미리엘한테도…."

    "약속하지 못하겠다면 이 얘기는 이걸로 끝일세."

    "아아! 정말! 알겠다고요! 약속하겠습니다! 정말로 우리한테 좋은 얘기인 거죠?"

    "음. 그럼 설명하지. 우선 자네도 이 공간이 궁금할 거라고 생각하네만, 이 공간은 바로 이 소계층의 유일한 수컷 펭귄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일세. 저기 있는 그 시체가 바로 그것이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그리고 앨리시아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자마자, 디아나는 주저없이 수컷 펭귄에 대한 정보를 털어놨다.

    물론 이 숨겨진 공간을 보여준 것부터가 상당한 정보 공개였지만, 그래도 아직 수컷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숨길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를 앨리시아가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얘가 단순하고 힘만 쓰는 이미지가 있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최고 클래스의 모험가다.

    모험에 관련된 정보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지.

    "그, 그 말은 설마?!"

    "음. 그 성기를 통해 여기서 다른 공간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는 얘기일세. 그리고 그 공간이란 바로 4.5계층일세."

    "뭣?!"

    "실은 소계층에는 각각 진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수컷 몬스터가 한 마리 있어서 말일세. 그 몬스터들의 성기로 각각의 소계층들이 이어져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네. 레이아양."

    "앗. 넷!"

    디아나의 눈짓을 받은 레이아는, 곧장 손에 쥔 스태프를 가슴께까지 들어올리고는 주변을 살펴봤다.

    내가 그런 레이아에게 구멍이 있는 곳을 알려주자, 레이아는 거기로 쪼르르 달려가 스태프를 꽂았다.

    그러자 4.5계층으로 향하는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아앗! 와앗! 엄마야!"

    아무것도 안들리고 눈까지 가린 상태에서 땅에 진동이 일어나자, 옹기종기 모여서 오들오들 떠는 삼인방은 조금 불쌍했다.

    저러면서도 눈을 가린 손은 안떼는 걸 보면, 앨리시아가 무섭기는 진짜로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 그럼 설마 그걸 이용하면 6계층너머로도…?!"

    하지만 앨리시아는 그런 삼인방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선을 드러난 통로에 고정시킨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되물었다.

    또 나왔다. 6계층 얘기.

    6계층에서 막혀있다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앨리시아가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인가?

    아니. 뭐, 모험가고. 자신들이 도달한 곳이 끝이 아니라는 걸 알게되면 도전해보고 싶어지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뭐라고 할까. 반응이 그 이상의 뭔가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6계층너머에 있는 뭔가를 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 얘들 클랜은 6계층의 주인을 잡고 아래로 가는 통로를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던전 탐험을 해나가고 있었지.

    마치 던전에 6계층너머가 있을 걸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얘들이 6계층의 주인을 잡은 게 적어도 레이아의 몸에 여신님이 강림했을 때보다는 전의 일이었을 테니, 그때는 6계층너머가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근거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확실히 뭔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음. 이 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그, 그쪽이 바라는 조건이 뭐야?! 아, 아니. 뭡니까?!"

    그리고 디아나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앨리시아는 디아나에게 달려들 기세로 얘기를 덥석 물었다.

    "별거 아닐세. 아무래도 이 몸들은 소수정예의 클랜인만큼 탐사에 한계가 있으니 말일세. 자네 클랜과 이 정보를 공유하는 대신 조금 탐사를 도와줬으면 하는 것뿐일세."

    "하겠습니다! 하죠! 동맹체결! 지금 당장!"

    그리고 디아나가 조건을 내건 순간, 앨리시아는 바로 조건을 받아들였다.

    아니. 너 방금 전에는 자기 혼자서 그런 결정내리기 힘들 것 같다면서.

    "기다리게. 아직 이 몸의 얘기는 끝나지 않았네."

    "뭐든 좋습니다! 하겠습니다! 미리엘도 다른 녀석들도 전부 설득시킬 수 있습니다!"

    "흠. 그런가. 그럼 아라크네 클랜의 클랜원들은 전원 이 몸들의 노예라는 것으로…."

    "으엥?!"

    "느엣?! 아니! 잠…!"

    디아나가 말을 계속하려고 해도 앨리시아가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자, 디아나의 입에서 황당하기 그지없는 조건이 튀어나왔다.

    덕분에 나와 앨리시아의 입에서 동시에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농담일세. 그러니까 진정하고 얘기를 끝까지 들으라는 걸세. 그리고 낭군님. 자네 설마 지금 좋아한 겐가?"

    "…아닌데요. 노예라니. 그런 반인륜적인 제도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으으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디아나에게, 나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디아나와의 눈싸움은 안달난 앨리시아에 의해서 금방 종결됐다.

    "그, 그래서 대마법사님. 조건이라는 건?"

    "음. 아마 통로가 성기라는 점에서 자네들도 나름 추측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이 던전은 처음부터 성자가 내려가는 걸 상정하고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네."

    "…아, 네."

    앨리시아 이 녀석. 지금 노골적으로 ‘어려운 얘기가 나왔다.’라는 표정 짓고 있어.

    하지만 디아나는 딱히 앨리시아가 제대로 이해 못해도 상관없는 건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여신님께서도 이 자에게 던전을 내려가라고 했으니 말일세. 이 몸들은 던전 아래쪽에 성자의 사명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네. 그러니 자네들은 이 몸들의 정보를 이용하여 아직 밝혀지지 않은 소계층을 이용하거나 6계층너머에 도달하는 대신, 6계층너머에서 얻은 정보를 빠짐없이 전부 이 몸들에게 공유해야 하네. 그리고 조금이라도 특별한 뭔가가 발견되면, 건드리지 말고 무조건 이 몸들에게 먼저 알려서 같이 조사를 해야 하네."

    "…으아. 그, 그러니까…으음…."

    디아나의 조건을 전부 들은 앨리시아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싸쥐고는 생각에 잠겼다.

    뭐, 이건 앨리시아가 아니라도 골머리를 앓을만한 얘기였지만.

    디아나의 얘기를 요약하면 이거였다.

    너희가 그렇게 바라는 6계층너머로 가는 법을 알려주는 거니, 그 대신 거기서 얻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넘겨라.

    아라크네 클랜이 단순히 더 강한 몬스터와 싸우고, 더 희귀한 아이템을 얻어서 부를 축적하는 게 목적이라면 괜찮은 조건이겠지.

    하지만 방금 전 앨리시아의 반응을 보면, 아무래도 그런 건 절대 아닌 것 같았으니까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제멋대로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더 골치가 아픈 건, 우리쪽에 명분이 있다는 점이었다.

    "여신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한 것일세."

    그래. 이 세계에서는 가히 절대적이라고도 해도 좋을만한 커다란 명분이.

    "그게. 자세한 설명을 듣고 이런 말을 하기는 죄송합니다만 말입니다. 역시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서 저 혼자 결단을 내리기에는 무리일 것같습니다. 적어도 미리…우리 클랜장한테만이라도 얘기를 하면 안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클랜장에게는 제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단단히…."

    "안되네. 자네 클랜장은 이 몸들과의 비밀보다는 스스로의 목적을 우선시할 성격이 아닌가."

    "으극…."

    결국 혼자서 결단을 내리기 힘들다고 판단한 앨리시아가 그런 식으로 협상을 하려고 했지만, 디아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앨리시아도 그런 디아나의 말에 반박은 할 수 없는 건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디아나와 앨리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디아나는 결정을 재촉하는 표정으로, 앨리시아는 곤란한 표정으로.

    이대로 가면 언제까지 기다려도 끝이 없다.

    그렇게 생각한 건지, 결국 먼저 조금 접어주는 건 디아나였다.

    "…흠. 그럼 이렇게 하지. 자네 클랜장에게는 딱 이 것만 말하게. 이 몸들에게 6계층너머로 갈 수 있는 확실한 정보가 있다고. 그리고 그 정보를 위해서는 방금 이 몸이 제시했던 조건을 받아들이라고. 자네는 이 몸이 말했던 정보에 대해 모르는 걸세."

    "그런 거라면…."

    디아나가 그렇게 말해주자, 앨리시아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세한 사항이 결정될 때까지, 저 처자들에게도 이 공간에 대해 입막음을 부탁하네."

    "아, 넵. 그건 문제없습니다."

    "음. 그럼 클랜장과 상담해보고 이 몸들의 조건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이 되면 이 몸의 저택으로 연락을 넣게나."

    "아, 네. 그렇게하겠습니다."

    "후우. 그럼 얘기 끝난거지?"

    그렇게 둘의 대화가 일단락된 듯 보여서, 나는 겨우 입을 열고 둘 사이에 끼어들 수 있었다.

    "음."

    "너. 클랜장이면 이런 건 네가 나서서 해라."

    앨리시아는 디아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상당히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던 건지, 내가 끼어들자 그렇게 핀잔을 주면서도 표정에서는 긴장이 풀리는 게 보였다.

    이렇게 야생마같은 앨리시아까지 주눅들게 만드는 걸 보면, 역시 디아나는 대단하신 분이란 말이야.

    아니. 모르고 있었다는 건 아니지만.

    "너도 간부면서 익숙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잖아. 그래서, 그 뭐냐. 잘 지냈어?"

    아무튼 디아나가 앨리시아에게 그런 제안을 한 덕분에, 나도 이 갑작스런 만남으로 일어난 마음의 동요를 진정시킬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아까보다 훨씬 더 침착하게 앨리시아의 안부를 물을 수 있게됐다.

    진정했다고는 해도, 얼마 전에 차버린 여자랑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아예 어색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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