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12화 (69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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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제안

"아, 아녀! 그런 거 아녀! 뚜왓!"

"뭐 하는 거냐. 자."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오해살만한 장면을 목격당해버린 나는, 서울토박이 주제에 정체불명의 사투리까지 튀어나올 정도로 당황했다.

오해를 풀기위해 앨리시아의 몸에서 떨어지려고 했지만, 불행히도 난 아직까지도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때문에 불안정한 자세로 앨리시아의 몸에서 손을 떼려고한 순간 내 몸은 크게 휘청하게 됐고, 그런 날 보며 앨리시아가 남자답게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자기쪽으로 내 몸을 확 끌어당겨 안아줬다.

자세가 불안정했던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앞으로 뻗었고, 하필 또 내 손이 도착한 곳은 앨리시아의 가슴이었다.

아니. 진짜로 노린 거 아니야.

높이도 내가 손을 뻗으면 딱 닿는 위치에 있었고, 앨리시아의 몸에서 제일 앞으로 튀어나와있는 곳이었으니까 상황이 그렇게 된 것뿐이라고.

"뜨헉! 미안! 일부러가 아니라…!"

어차피 갑옷에 감싸여있었기 때문에 말랑말랑한 가슴 감촉이 만져지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나는 화들짝 놀라서 손을 뗐다.

"됐어. 동정새끼처럼 뭘 그래. 닳는 것도 아니고."

앨리시아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도 쿨하게 날 용서해주고는, 손을 가슴에서 떼면서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친 내 허리를 더 꽉 끌어안아서 내 몸을 고정시켜줬다.

"때, 땡큐."

"…별로. 감사받을 정도는 아니야."

앨리시아의 품에 안긴 나는 마치 부끄러움을 타는 소녀같은 태도로 감사를 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덩치는 내가 압도적으로 크지만 말이야. 얘 너무 멋있잖아.

레이첼 누님한테서 나한테 차이고도 길드에서 날 옹호해줬던 일화를 들었기 때문에 더 그래보이는 건가?

"야! 너 진짜 죽을래?!"

그리고 그런 우리 태도가 상당히 마음에 안드셨는지, 저기 멀리서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우리 용사님이 나한테하는 건지 앨리시아한테 하는 건지 모를 폭언을 던졌다.

아니. 뭐, 반말인 건 보니까 100이면 100 나한테 하는 소리겠지만.

하지만 사라야. 오해한만한 상황이고, 화가나는 것도 이해하지만, 활까지 이쪽으로 겨누고 그런 말을 하면 진심으로 무서운데.

위협이지? 진짜 쏘려고 그러는 거 아니지? 오빠는 믿는다?

용사님의 살기에 압박당하며 곤경에 몰린 그때, 때마침 황제펭귄이 다시 벽을 뚫고 나타나줬다.

물론, 이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아니. 그러니까…저기! 저기 봐! 이 계층의 주인이 아직…!"

콰아아앙! 피슉! 툭.

박력있는 소리와 함께 벽을 뚫고 등장한 버드 미사일은, 마력이 듬뿍 담긴 사라의 화살 한 방에 땅으로 처박혔다.

압도적인 공격이라는 건, 오히려 소리가 적게 나는 법이구나.

별 다른 소음도 없이 조용하게 황제펭귄을 처리해버린 사라의 공격을 보며, 나는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이상하다. 여기 얼음동굴인데. 분명 추운데. 왜 자꾸 땀이 나지?

내가 앨리시아의 품에 안겨 식은땀을 흘리는동안에도, 사라는 눈에서 살기를 풀지 않은 채 날 노려보며 저벅저벅 이쪽을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활은 내리고 있다는 점일까?

일단 아까 활을 겨누고 있었던 건, 날 위협하려던 목적으로 그랬던 게 아니라 황제 펭귄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흥!"

"크헉!"

그리고 내게 다가온 사라는, 내 팔을 붙잡고는 있는 힘껏 자기쪽으로 잡아당겼다.

문제는, 앨리시아도 내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위험해. 지금 허리쪽에서 절대 들리면 안 될 소리가 들렸어. 우드드득하고.

상황이 그렇게 되자, 지금까지 앨리시아에게는 시선도 안주고 나만 노려보던 사라가 드디어 앨리시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물론 앨리시아는 그런 사라의 눈빛에 전혀 겁먹지 않고, 오히려 심술궂은 표정까지 맞받아쳤다.

야. 그만 둬! 그렇게 도발하면 사라가 진짜로 폭발한다고!

"크헉…커억…."

그렇게 서로 마주본 채, 둘은 마치 날 놓고 줄다리기라도 하듯 팔에서 힘을 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팔에 힘이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위험해. 진짜로. 너희 지금 기싸움 할 때가 아니라고. 남자의 생명은 허리라는 거 몰라? 특히 성자님의 허리는 보통 남자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성자님의 허리가 나가게 생겼다고. 위험한 소리가 끊이지를 않고 있다고.

아니. 진심으로. 농담이 아니라.

그리고 진짜로 내 허리가 한계를 맞이했을 즈음, 사라가 앨리시아에게서 시선을 떼고 또 다시 날 노려봤다.

눈싸움에서 진 것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뭐라고 해야할까. 져줬다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어차피 그래봤자 앨리시아는 나한테 차인 몸이니, 동정을 베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칫!"

당연한 말이지만, 사라의 그런 반응이 앨리시아는 상당히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앨리시아는 혀를 차고는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을 난폭하게 풀었다.

그에따라 내 몸은 자연스럽게 사라의 팔에 이끌려 그 품에 안기게 됐다.

"사라야. 오해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시끄러워. 나도 알아. 바보야."

나는 사라에게 매달려 황급히 변명을 했지만, 사라는 그런 내 말을 중간에 딱 잘라버렸다.

그래도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일단 내가 바람 피우고 있다고 의심하지는 않고있는 모양이었다.

아까는 나한테 폭언을 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지금도 눈에서 살기가 흐르고 있지만.

아니. 안다는 애가 왜 눈에서는 아직도 살기가 흐르냐.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화낼만한 것 같기도 했다.

반대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웬 놈팽이가 사라한테 고백을 했고, 훗날 사라가 사고로 그 놈의 고간을 만지게 됐다.

응. 죽인다. 물론 사라가 아니고 그 놈팽이를.

"죄송합니다. 조용히있겠습니다."

사라의 심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 나는, 바로 고개를 숙여서 사과했다.

그리고 살짝 시선을 들어 사라와 같이 내려온 다른 애들을 바라보니, 역시나 다들 그다지 기분 좋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만 사라처럼 화끈하게 기분 나쁜 감정을 표현하는 성격들이 아니라서 조용히있는 것뿐이겠지.

디아나도 우리끼리 있을 때나 그러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지고의 대마법사라는 위치에 걸맞는 태도를 보여주니까.

뭐, 예전에 펠리시아한테 납치당했을 때 같은 경우는 쿠데타니 뭐니 난리를 피웠던 모양이지만. 그런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잘 지냈는가."

"오우. 아니. 네."

아무튼 사라의 뒤를 따라 다가온 우리 애들. 그리고 그 중 디아나가 대표로 앨리시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앨리시아도 과연 디아나한테는 방금 전 사라한테 했던 것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지, 어색하게 존댓말로 인사를 받아줬다.

"흠. 자네나 이 자에게 여러모로 듣고 싶은 것이 많네만…. 우선은 가서 얘기를 하도록 하지."

그리고 디아나는 놀랍게도, 방금 전 황제 펭귄이 뚫어놓은 구멍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디아나가 가리킨 구멍은 수컷 펭귄의 방이 있는 곳이었다.

"디, 디아나?"

설마 겉으로만 냉정해보일뿐이지, 얘 지금 질투로 정신이 나갔나?

"떼끼. 무슨 생각하는지 얼굴에 써있네. 이 몸도 다 생각이 있네."

하지만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인지 디아나는 손에 쥔 지팡이 끝으로 내 머리를 콩닥하고 가볍게 한 대 때린 후, 그렇게 말하며 내게 아이젠을 건네줬다.

"앗, 도와드릴게요."

내가 바닥에 앉아 아이젠을 착용하려 하자, 우리 천사님이 쪼르르 달려와서 오른쪽 발의 착용을 도와줬다.

천사님 역시도 방금 전에 나와 앨리시아가 붙어있는 걸 봤을 때는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천사님은 천사님이었다.

"고마워."

"후훗. 아뇨. 여기서는 이걸 차셔야 다른 사람한테 기대지 않고 혼자 설 수 있을테니까요."

…처, 천사님?

아니. 분명 웃는 얼굴이고, 목소리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포근해.

포근하지만…왠지 말에서 가시가 느껴지는 것같은 건 제 기분 탓인가요?

"정말로 그 말대로에요."

그리고 마틸다 역시도, 내게 다가와서는 무릎을 꿇고 내 왼발을 들어 아이젠을 착용시켰다.

두 발이 모두 공중에 뜨게 된 채 할 일이 없어진 내 시선에, 실비아가 슬그머니 나와 앨리시아 사이를 가로막는 것 같은 위치에 서는 것이 보였다.

…아니. 너희들 아무리 그래도 앨리시아를 너무 경계하잖아.

나 쟤 찼다니까?

…뭐, 방금 전에 앨리시아가 일부러 도발하는 것 같은 행동을 하기도 했으니, 더 그러는 거겠지만.

"다 착용했으면 가세. 너무 지체하면 모처럼 뚫어놓은 구멍이 막혀버릴테니. 자네들도 따라오게."

"으응?"

그리고 내 양발에 아이젠이 장착된 걸 확인한 디아나가 수컷 펭귄이 있는 방으로의 이동을 재촉했다.

게다가 앨리시아의 파티까지 같이 가려는 모양이다.

아, 참고로 앨리시아는 삼인방과 함께 있었다.

뭐, 앨리시아 혼자서는 여기 있을 이유가 없으니 당연한 얘기지만.

그리고 그 삼인방으로 말하자면, 어째선지 날 엄청나게 원망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욕이라도 하고 싶지만, 앨리시아 근처라서 함부로 입은 못 여는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쟤들한테 뭔 짓을 했던가?

으음. 아, 그러고 보니 전에 잘 말해준다고 해놓고 그냥 왔던가.

…몰골을 보니 앨리시아한테 상당히 굴려진 모양이다. 응. 미안.

아무튼 디아나의 지시에 따라서, 우리는 일단 수컷 펭귄의 방으로 이동하게 됐다.

앨리시아는 갑자기 구멍으로 가자는 디아나의 말에 의아한 모양이었지만, 일단 따라오기는 할 모양이었다.

"자, 이번엔 나랑 같이 가."

그리고 사라가 나와 앨리시아가 같이 붙어서 내려가는 걸 경계하듯이, 내게 찰싹 달라붙어왔다.

아니. 그러니까. 이제 아이젠도 꼈겠다, 아까같은 일은 없을 거라니까.

피슉. 꾸에엑.

어쨌든 나와 사라가 딱 붙어서 제일 먼저 구멍을 내려가게 됐고, 수컷 펭귄은 그런 우리에게 뭔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사라의 마나가 가득 실린 화살을 맞고 절명했다.

아니. 사라야. 그러니까 왜 잡자마자 날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데? 너 지금 무력시위하니?

"우와! 뭐야 여기?!"

그리고 우리 뒤를 이어서 차례차례 다들 내려왔고, 마지막으로 내려온 앨리시아 일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확인할 것이 있네만."

그리고 그런 앨리시아 일행을 보며, 디아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드디어 앨리시아 일행을 여기 데려온 목적을 말하려는 모양이다.

실은 나도 아까부터 궁금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디아나의 입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이 몸은 이 몸들의 클랜이 자네들의 클랜과 꽤나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생각하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는가?"

"…당연하지…요. 내가 겨우 그깟 걸로 쪼잔하게 굴 여자로 보여?"

상대는 지고의 대마법사님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를 찬 남자의 여자다.

표정에 감정이 잘 드러나는 앨리시아는, 그런 미묘한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낸 채로 어색한 말투로 말을 내뱉다가 결국 반말로 밀고나가기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좋네. 이 몸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자네는 분명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였지?"

그리고 그런 앨리시아의 말투에, 디아나는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디아나의 주변을 감싸는 공기가 살짝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딱히 마력같은걸 두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뭐라고 할까. 위압감이 늘어난 느낌이었다.

즉, 나로서는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지고의 대마법사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요?"

과연 그렇게 되자 천하의 앨리시아도 반말을 계속할 수는 없었는지, 결국 어색한 말투로 다시 존댓말을 사용하게 됐다.

그러자 곧바로 디아나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위압감이 다시 줄어들었다.

뭐, 당연한 얘기다. 디아나도 방금 전 나와 앨리시아의 모습을 보고 상당히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런 상대가 갑자기 자신에게 반말을 해대는 걸 용서할 정도로, 디아나가 녹록한 성격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아라크네 클랜 간부인 자네에게 제안이 있네. 이 몸의 클랜과 좀 더 협력적인 관계가 될 생각이 있는가?"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닭구 // 710화와 711화 모두 지적해주신 부분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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