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11화 (69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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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제안

"구원! 옆으로…."

그렇게 나와 실비아에 의해서 황제 펭귄이 멈춰선 틈을 타, 사라가 재빨리 화살을 쏘려고 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얼음동굴의 펭귄들은 기본적으로 방어력이 낮은 대신 공격력이 말도 안 되게 강하다.

심지어 그게 일반 몬스터도 아니고 보스급이 되어버리면, 그 공격력이 얼마나 강할지는 말 안해도 충분히 짐작이 되겠지.

실비아가 제대로 자세를 잡고 방패로 막았는데도 그 힘을 버텨지 못하고 뒤로 밀려날 정도다.

전에는 공격을 전부 회피하거나 흘리는 방식으로 사냥을 했지만, 이 좁은 통로에서는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녀석이 멈춰선 사이에 재빨리 처리해버리려고 하는 건 타당한 반응이었다.

"잠깐! 쏘지 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라를 말렸다.

지금 여기서 이 녀석을 잡아버리면 4.5계층으로 향하는 통로를 만들 수 없게 된다.

페이크 보스라도 일단은 보스급인만큼, 부활에 상당한 시간이 소모되는 녀석이니까 말이야.

물론 디아나의 마법같은 걸로도 잠깐정도는 지형을 바꾸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너무 눈에 띈다.

지금 이 얼음동굴은 중급 모험가들 사이에서 고속 성장을 위한 핫스팟이 되어있으니까. 누구의 눈에 발견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최대한 주목받지 않게 4.5계층으로 향하는 통로를 만드려면, 역시 이 황제펭귄 녀석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사방팔방 구멍을 내는 게 제일이다.

그렇게 판단한 내 지시에 따라서 우리 파티가 공격을 못하고 주춤한 사이, 황제펭귄은 이대로 대치하고 있어서는 끝장이 안나겠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아래로 틀어서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아마 또 벽쪽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오며 기습을 할 생각이겠지만, 그렇게는 안되지.

나는 놈이 완전히 벽을 뚫고 사라지기 전에, 황급히 성자의 손길을 두른 손으로 놈의 몸을 스치듯 만졌다.

이걸로 타겟이 나 한 명으로 좁혀져서, 우리 애들이 갑자기 기습당할 염려는 없어졌다.

"내가 먼저 가서 통로를 만들겸 상대하고 있을게. 너희는 제대로 태세를 갖추고 따라와."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이런 좁은 통로에서 황제펭귄의 저 무식한 돌진을 전부 회피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재빨리 보스방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괜찮아. 내가 수컷 펭귄도 혼자 상대했던 거 잊었어? 허세가 아니라 진짜로 쟤보다 수컷이 더 셌다니까.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조바심 가지지 말고 제대로 준비해서 내려와."

물론 나 혼자 먼저 내려간다는 사실에 우리 애들은 반대하려고 했지만, 나는 능청을 떨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인벤토리에서 아이젠을 꺼내 우리애들에게 던져주고 재빨리 앞으로 달려나갔다.

우리 애들에게는 제발 서두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면서.

아무리 얼음동굴의 몬스터라지만, 공격력이 무지막지하고 몸놀림이 재빠른만큼 괜히 방심해서 덤볐다가 한 대라도 맞으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혼자 먼저 달려가며 어그로를 끄는 건, 그런 이유도 있었다.

나라면 경황중에 한두 대 정도는 맞아도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몇 걸음을 움직이기가 무섭게, 방금 전에 내가 있던 자리의 바닥에서 황제 펭귄이 바닥을 뚫고 돌진을 해왔다.

저런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얼음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여긴 아직 돌로 된 동굴이라고. 어떻게 그걸 뚫고 공격할 생각을 하지? 저건 부리가 아프지도 않나.

뭐, 덕분에 다가올 때마다 강한 진동과 소음이 느껴져서, 처음의 기습도 별 다른 동요 없이 반응할 수 있었던 거지만.

아무튼 황제펭귄의 자기 몸을 불사르는 미사일 공격에서 재빨리 도망치면서, 나는 황급히 발을 움직여 원래의 보스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장소에 도착하고 말았다.

보스방 말하는 거냐고?

아니. 거기까지 가려면 조금 더 가야돼.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건, 돌바닥이 얼음바닥으로 바뀌는 경계부분이야.

방금 전까지 돌바닥을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애들한테 아이젠을 꺼내서 줬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지?

응. 맞아. 난 아직 신발에 아이젠을 안끼고 있다는 뜻이야.

하지만 내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콰앙!

"이런 젠장!"

천장을 뚫고 내 정수리를 향해 날아오는 황제펭귄의 부리를 간발의 차로 피하며, 나는 황급히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하지만 너무 황급히 내디뎠던 것이 문제였던 걸까?

미끄러운 얼음을 밟은 발이 앞으로 쭈욱 미끄러지면서,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으악! 켁! 망할!"

좁은 통로에서 몸이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나는 몸의 컨트롤을 전혀 잡지 못했다.

아니. 아프지는 않아. 아프지는. 회피형 직업으로 전직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무식한 스탯이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고작 벽에 부딪히는 정도로는 끄떡없지.

다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굴러야 하는 것이 기분이 더러울 뿐이야.

하지만 지금은 기분 나쁘다고 성질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렇게 구르고 있는게 다행일 수도 있었다.

굳이 몸을 움직이려고 의식하지 않고 있어도 자연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거니까.

이 틈에 발에 아이젠을…이런 젠장! 아까 우리 애들한테 건네줄 때 내것까지 다 주고 왔잖아!

그렇다면 일단 임시방편으로 단검이라도!

나는 두 손에 각각 단검을 착용하고 벽에 꼽는 걸로, 겨우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후우. 내가 태세를 정비한 지금, 더이상 네녀석에게 기회는 없다. 암살자 클래스가 두 손에 단검을 들고 있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똑똑히…."

콰앙!

"야! 말 좀 끝나고 덤벼라! 하여간 발정나서 덤벼대기는!"

잠깐 똥폼을 잡아보려고 했던 나였지만, 인정사정없이 덤벼드는 황제펭귄에 의해 다시 황급히 통로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스키를 탈 때와 비슷한 원리로, 발로는 균형을 잡고 단검으로 양옆의 벽을 찍고는 뒤로 밀면서.

아까보다 훨씬 안정적인 자세로 가속도까지 붙은 덕분인지, 이렇게 되자 황제펭귄도 좀처럼 내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좋아. 이대로라면 일단 보스방까지 가는 건 문제 없겠어.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이거 어떻게 멈추냐. 이제는 또 너무 빨라졌는데.

벽에 단검을 꽂아서 속도를 늦춰보려고 했지만, 이번엔 또 내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제대로 단검을 벽에 꽂을 수 없었다.

아니. 그게 말이지. 암살자 클래스라고 해도 전 아직 월영무사로 전직한지도 얼마되지 않은 초보라서요.

애초에 월영무사로 전직하기 전에는 단검을 제대로 쓴 적도 거의 없었고.

그래서 단검 숙련도가 조금…헤헷.

식은땀을 흘리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보스방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보스방에는 이미 모험자 파티 하나가 대기하고 있었다.

"드디어 온 건가. 계층의 주인이라는 녀석이 갑자기 사라져서 당황했잖아. 하여간 이 놈의 소계층이란 녀석은 영문 모를 일이 너무 많…응? 저 녀석은…."

"으아아! 비켜비켜비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속도가 붙은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멀리 있는 모험가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황급히 외쳤다.

이대로 가면 무조건 부딪힌다…!

"크헉! 켁! 켁!"

하지만 내 정면방향에 서있던 모험가는 가볍게 옆으로 몸을 틀어 날 피하더니, 그대로 내 목덜미를 잡아채서 날 멈춰세워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속도가 붙었던 날 멈춰세우고 미동도 하지 않다니. 고작 얼음동굴이나 탐험하고 있는 모험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괴력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목덜미를 잡아챈 모험가에게 한마디 하기 위해 얼굴을 들었다.

아니. 멈춰세워준 건 고마운데, 이왕이면 목 말고 다른 데를 잡아줘도 되잖아!

하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그런 불평은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애, 앨리시아?"

"…여어."

설마하니 갑자기 이런 식으로 마주치게 될 줄이야. 어색하다. 어색해죽겠다.

앨리시아도 나와 완벽히 같은 의견이었는지, 어색하기 그지 없는 미소를 지으며 짤막하게 내게 인사를 던졌다.

"네가 여긴 어쩐 일로?"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너희들 여긴 진작에 졸업한 거 아니었던 거냐."

"아니. 졸업이라…."

"교관님! 위에!"

나와 앨리시아가 때와 장소에 맞지 않게 어색한 안부인사를 주고받고 있을 때, 갑자기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경고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천장의 얼음을 뚫고 황제펭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무리 제까짓게 기습을 해도, 원래 이런 곳에서 놀고 있을 위인이 아닌 앨리시아한테까지 먹힐 리가 없었다.

다만 문제는, 지금 바로 저 녀석을 잡아버리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흥!"

"안돼! 멈춰!"

"뭣…?!"

들고 있던 대검을 휘둘러 위에서 떨어져내려오는 황제펭귄을 두동강내려고 하는 앨리시아.

하지만 앨리시아의 대검이 휘둘러지기 전에, 나는 앨리시아의 허리에 태클을 걸었다.

나도 앨리시아에게 피해를 줄 의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지 힘을 주지는 않았었고, 앨리시아도 방금 전에 엄청나게 속도가 붙었던 나도 쉽게 잡아세웠던만큼 원래대로라면 내 태클에 쉽게 자세가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리시아는 내가 허리를 끌어안는 순간 그대로 힘이 빠지며 자세가 무너져버렸다.

콰직!

다행히도 내 태클로 인해 우리는 옆으로 이동하게 됐고, 덕분에 펭귄은 우리에게 공격을 명중시키지 못한 채 다시 바닥을 뚫고 모습을 감췄다.

"가, 갑자기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새끼야!"

그리고 그런 황제펭귄을 보며 겨우 정신을 차린 앨리시아는, 황급히 자신의 허리에서 날 떼어낸 후 밀쳐냈다.

"아니. 그게 말이지…."

어떻게하지? 뭐라고 변명을 하지?

소계층과 소계층의 연결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밝히지 않는 이상, 방금 전 내 행동은 어떤 말로도 변명이 불가능한 트롤행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계층에 대한 정보를 순순히 밝힐 수도 없고.

"저, 저 녀석의 모습을 봐! 어떻게 생각해!"

나는 하는 수 없이, 나 자신을 희생하기로 했다.

"뭐? 갑자기 무슨…."

"미사일이 생각나잖아! 미사일처럼 몸통박치기를 하는 새. 그야 말로 버드 미사일!"

"…아?"

"나는 옛날부터 버드 미사일이 쏴보고 싶었어!"

"……."

"그러니까 아직 잡지마. 앨리시아. 딱 한 방. 딱 한 방이면 돼. 부탁이야. 한 방만 쏘게 해줘."

내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어째선지 앨리시아의 표정이 점점 분노에 물들어갔다.

"…너. 지금 전에 그 일 때문에 그러는거냐?"

"뭐, 뭐?"

"내가 아직 네 놈한테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정떨어지게 만드려고 일부러 바보짓을 하고 있는 거라면…!"

"우왓! 왔다! 버드 미사일!"

앨리시아는 원망스런 눈으로 날 쳐다보며 그렇게 외쳤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렇게 차분히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황제 펭귄이 우리를, 정확히는 성자 스킬을 사용한 날 향해 돌격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버드미사일 성애자를 연기하면서 이 녀석을 목표에 유도하는 수밖에 없어.

어디보자. 맵상에서 이 녀석이 수컷 펭귄이 있는 방에 길을 뚫으려면…젠장! 앨리시아쪽으로 던져야 되잖아!

"피해! 앨리시아!"

"뭣…?!"

나는 일단 이번 공격에 길을 뚫는 건 포기하기로 하고, 황제펭귄에게서 구하는 척하며 앨리시아에게 몸을 날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분노한 표정이었던 앨리시아는, 순식간에 분노가 사그라지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전에 그런 말을 하기는 했지만, 역시 아직 나한테 감정이 남아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이용하는 것같은 짓을 해서 진짜 미안해. 나중에 밥이라도 살게. 정말 이번 한 번만 봐줘.

나는 그렇게 속으로 앨리시아에게 사과하며, 그 몸을 끌어안고 살짝 위치를 옮겼다.

좋아. 이러면 이제 나와 수컷펭귄 방까지의 사선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다시 한 번 황제펭귄이 날 향해 덮쳐들었다.

아마 실비아처럼 요령좋게 흘리거나 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애초에 난 방패도 없고.

하지만 일부러 수컷 펭귄이 있는 방쪽을 등지고 선만큼 크게 방향을 틀필요는 없었다.

살짝만. 아주 살짝만 놈의 진로방향을 틀어주면 수컷펭귄이 있는 방으로 통로를 뚫을 수 있다.

나는 놈이 내게 부딪히려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몸을 피하면서, 동시에 주먹을 내질러 놈의 방향을 살짝 틀게 만들었다.

"가라! 버드 미사일!"

물론, 끝까지 버드 미사일 성애자 연기도 잊지 않으면서.

그리고 내 의도는 제대로 먹혀들어서, 황제펭귄은 정확히 수컷 펭귄의 방이 있는 방향의 벽쪽으로 구멍을 뚫고 들어갔다.

다만 나는 여전히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황제펭귄에게 주먹이 닿은 순간 반작용법칙에 의해 내 몸도 반대쪽으로 밀려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금 전에 내가 앨리시아를 놓았던 곳에.

"큿!"

그 결과, 나는 또 다시 앨리시아와 껴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는 허리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그냥 정면에서 대놓고.

"무, 무, 무, 야! 구원! 지금 뭐하는 거야!"

그리고 그와 동시에, 4계층과 이어지는 통로에서 드디어 우리 파티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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