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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제안
3계층을 통해서 가면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거기서 또 황제 펭귄이 있는 방까지 가야하니까 쓸데없이 오래걸린다.
반면 4계층을 통해서 들어가면 바로 황제 펭귄이 있는 장소와 연결되니 시간은 훨씬 단축시킬 수 있다.
그 대신 4계층의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가야하지만, 그 정도는 이제 우리에게 크게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다.
때문에 나로서는 이왕이면 4계층을 통해 가고 싶었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란 말이지.
진짜 문제는 4계층에서 얼음굴로 통하는 입구를 가로 막는 복잡하고 거친 물살을 또 가르고 가야한다는 점에 있었다.
즉, 디아나의 마법에 전적으로 의존해야한다는 거다.
전에도 무사히 통과한적이 있는데 이제와서 그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았다.
통과 자체는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디아나의 마나가 급격하게 많이 소모된다.
하지만 디아나의 마법은 우리 파티에게 있어서는 최후의 보루이자 든든한 보험.
4.5계층이라는 새로운 지역으로 가려고 하는 때에 디아나의 마나가 부족한 상태라는 건 심히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디아나에게 직접 질문하는 식으로 선택권을 줬다는 얘기다.
파티장은 일행의 구심점인 내가 맡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이런 건 직접 마나를 쓰는 디아나 본인에게 판단을 맡기는 게 제일 정확하겠지.
"음. 문제없네."
하지만 디아나는 딱히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디아나씩이나 되는 애가 내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을 리도 없는데 말이야.
"4계층에서 들어가는 거라면 사전에 주변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은가. 자네가 조난당했을 때처럼 도중에 갑자기 몬스터에게 습격받을 일도 없으니, 마나 소모는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네. 그리고 여차하면 4.5계층으로 넘어가기 전에 휴식을 취하면 되지 않겠나. 수컷 펭귄이 있는 곳은 4.5계층으로 통하는 곳 이외에는 통로가 없었던 게지?"
그리고 의아해하는 내게, 디아나는 조리있게 설명을 해줬다.
과연. 생각해보니 그런 수가 있었군.
생각해보니 수컷 펭귄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황제 펭귄과 싸우며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 말을 바꿔말하면, 황제 펭귄으로 길을 만들지 않으면 수컷 펭귄이 있는 방은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 된다는 얘기가 된다.
즉, 수컷 펭귄만 처리하면 던전에서 몇 안되는 완벽하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는 얘기다.
그러니 마나가 부족하면 거기서 쉬어가면 그만이다.
확실히. 만약 거기서 하루이틀정도 묵게 된다고 하더라도, 3계층을 거쳐서 가는 것보다는 훨씬 시간이 단축될 거다.
그 짧은 시간동안 그런 걸 전부 고려하고 바로 대답을 하다니. 역시 디아나. 머리회전이 빠르다니까.
"좋아. 그럼 4계층에서 가는 걸로 하자."
그렇게해서 우리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서 4계층의 마을로 향했다.
어차피 이 마을에 볼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즉시 마을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공기방울을 빠져나와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얼음동굴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려고 했지만…어째선지 레이아가 제일 뒤에서 멈춰서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레이아?"
의아한 마음에 레이아를 불러봤지만, 레이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입술을 오물오물 거리기만 할뿐 내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뭐, 이미 물 속이고, 공기방울로 서로의 머리를 연결한 것도 아니니까 내 말이 직접 들리지는 않았겠지만.
하지만 그래도 내가 뒤를 돌아서 자기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갑자기 대체 무슨 일로 저러는 거지?
아침에도 나와 사라, 디아나가 소란피우는 걸 따뜻한 미소로 지켜보…지는 아니었나. 내용이 내용이었던지라 조금 부끄러워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래도 딱히 이상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레이아다.
아침뿐만이 아니라 바로 방금 전까지만하더라도 전혀 이상한 낌새는 없었다.
그런 레이아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저러니, 의아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디아나도 마찬가지였던 건지, 곧장 마법을 사용해 파티원 전원의 머리를 공기방울로 감싸 연결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레이아의 영혼의 외침이 우리 모두의 귀를 강타했다.
"저, 저는 섹스가 정말 좋아요오오오!"
"자네에에에에에!"
그런 레이아의 외침을 듣고, 디아나의 절규에 가까운 고함이 이어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도 그럴게, 아침에 그런 일로 소란을 피운 직후니까.
설마 레이아마저도 내 마수에 떨어져 조교를…! 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물론 논리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그게 사실이라는 건 아니지만.
"아, 아냐!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오해야! 봐! 레이아를 봐!"
이 이상 하면 내 이미지가 진짜로 사랑하는 여자를 가차없이 조교해버리는 귀축남으로 굳어질 것 같았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레이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거기에는, 두 눈을 꼭 감고 무언가를 참듯이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구미호 모습의 레이아가 있었다.
"하읏! 역시 부끄러워요…."
뭐, 결국 부끄러움을 못참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동시에 구미호 상태도 곧장 풀려버렸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레이아가 입고 있는 저 옷은 내가 개조해서 꼬리부분에 구멍을 뚫어놨기 때문에 꼬리를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건데 말이야.
구미호로 변하면 꼬리가 아홉 개니까 그 구멍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방금 전에 어떻게 튀어나온 거지? 혹시 찢어져서 우리 천사님의 매력적인 엉덩이가 드러나 보이고 있다든가….
"이, 이건 대체…."
살짝 생각이 딴데로 샜던 나였지만, 다른 애들의 놀라워하는 목소리에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얘들은 레이아의 구미호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인가?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보니 역시나 놀라운 모양이었다.
"자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방금 전에 나한테 고함을 질렀던 디아나 역시도, 금방 자신이 오해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살짝 얼굴을 붉히며 내게 질문을 해왔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하기 보다, 먼저 레이아의 의도를 캐물었다.
"아니. 전에 드디어 구미호 모습으로 변할 방법을 알아내서…그보다 레이아. 갑자기 구미호 모습은 왜? 지금은 딱히 변할 필요없잖아?"
"하지만…모처럼 구원씨가 절 위해서 알아내주신 거니까요…."
내 질문에, 레이아는 얼굴을 가린 손을 살짝 펴고는 손가락 사이로 내 얼굴을 엿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레이아는 내가 최근에 왜 그렇게 구미호 능력 컨트롤에 열을 올리며 협력했는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응. 그래도 아직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번에는 괜찮아. 구미호 능력을 사용하면서 던전을 다니는 건 나중에 좀 더 익숙해진 다음에 하기로 하자.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능력은 오히려 예기치못한 사고를 불러올 수도 있고."
"아으…네…. 죄송해요…."
"아니. 사과할 필요는 없어. 레이아도 조금이라도 도움이되고 싶은 마음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노력해줬던거고."
"구원씨…."
내가 레이아의 어깨를 감싸쥐며 그렇게 말해주자, 레이아는 겨우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려서 어깨를 감싸고 있는 내 손을 감싸쥐고는 자신의 가슴에 꼬옥 끌어안으며 따뜻한 시선을 보내줬다.
"코홈! 코홈! 그래서, 그 모습으로 변하면 어떤 능력을 쓸 수 있는겐가?"
하지만 우리가 둘만의 세계에 빠지는 걸 주위에서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뭐, 마을이 바로 앞인만큼 몬스터의 습격을 받을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던전 안이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네, 네에? 음…그렇네요. …못 움직이게 한다든가?"
내 손을 가슴으로 끌어안고 있던 손을 파닥파닥 움직이며 나와 황급히 떨어진 레이아는, 잠깐 턱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왜 의문형인겐가…."
"죄, 죄송해요. 실은 저도 잘 몰라서…."
"변하면 뭔가 할 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 든다거나, 그렇게 되지는 않는 거야?"
예전에 완전히 이성을 잃었을 때 나한테 속박을 건 적이 있는만큼, 구미호로 변하기만 하면 쓸 수 있는 능력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렇기는 하지만요…."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해줬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방금 전에는 그런 말을? 그리고 얼굴은 왜 또 붉히는 거지?
"그게…구미호가 됐을 때는, 그러니까 다른 생각을 더 먼저하게 되어서 기억이…."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보고, 레이아는 설명을 하면서 점점 더 목소리가 작아져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레이아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바로 이해가 됐다.
"아, 아아! 오케이! 알았어!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앞으로 더 숙달이 된 다음에 던전탐험에 이용하기로 하자! 지금은 그냥 평범하게 가는 걸로! 알았지?"
"네에…."
그렇게 해서 잠깐의 해프닝 후, 우리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얼음동굴을 향해 나아갔다.
4계층의 주인까지 쓰러뜨린 우리에게 더 이상 4계층의 몬스터들이 위협이 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별 다른 문제없이 쭉쭉 나아갔다.
4계층은 사방이 물인만큼 목적지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면 되니까 편하단 말이지.
뭐, 수영이 달리기보다 빠를 수는 없으니 결국 다른 계층과 비교해봐도 속도 차이는 없는거나 마찬가지겠지만.
아무튼 얼음동굴로 통하는 곳의 복잡한 해류가 형성되어있는 장소까지, 우리는 별다른 일 없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이후에도 별 다른 일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전에 봤던 고래같은 몸집이 큰 몬스터조차 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간단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맥이 빠질 정도로 손쉽게 디아나의 마법으로 해류를 막으며 얼음동굴의 통로로 들어올 수 있었다.
"뭔가 맥빠질 정도로 간단히 왔네요."
심지어 4계층에서의 생활에 제일 적응을 못하는 마틸다가 이런 말을 했을 정도로, 정말로 손쉬운 여정이었다.
뭐, 애초에 이번 목표는 4.5계층이었으니, 고작 4계층을 쉽게 지나온 정도로 자만하면 안되겠지만.
"그러게. 4.5계층도 이렇게 간단하게 지나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통로를 통해 황제펭귄이 있을 얼음동굴의 보스방으로 향하며, 우리는 그렇게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런 말을 꺼낸 게 좋지 않았던 걸까?
"…여기 왠지, 울리고 있는것 같지 않아?"
사라의 말과 함께, 갑작스레 우리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사라의 말대로 통로 안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동의 정체를, 우리는 곧바로 알게됐다.
"읏! 뭔가 여기로 오고있어!"
옆에서 그런 외침이 들림과 동시에, 거대한 검은 미사일 하나가 우리를 향해서 빠르게 쏘아져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일 앞에서 걷고있던 날 향해서.
하지만 눈앞으로 날아오고 있는 검은 미사일이 아무리 빨라봤자, 월영무사라는 직업을 가진 내가 반응도 못할만큼 빠른 건 아니었다.
미리 진동이라는 전조도 있었던만큼, 피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피해버리면 분명 뒤에있는 우리 애들이 다친다.
짧은 시간사이에 그렇게 판단을 내린 나는, 황급히 두 손을 들어올려서 미사일을 막으려고 했다.
"구원님!"
그러나 그보다 빨리, 방패를 든 실비아가 내 옆구리를 재빨리 통과하여 앞으러 나서더니 내 앞을 막아섰다.
"크읏!"
그리고 실비아도 나와 같은 판단을 한 건지, 방패를 이용해 미사일을 뒤쪽으로 흘리는 일 없이 정면으로 받아냈다.
하지만 미사일은 그 실비아조차도 온전히 받아내기는 힘들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실비아의 몸은 조금씩 뒤로 밀렸고, 내가 그런 실비아를 뒤에서 받쳐주고 나서야 겨우 미사일과 우리의 힘겨루기가 평행을 이루게 됐다.
"이 녀석이 어째서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그렇게 미사일이 움직임을 멈추고 나서야, 나는 겨우 미사일의 정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미사일의 정체는 다름아닌 얼음동굴의 페이크 보스. 황제 펭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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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인페르니우스 // 큰 줄기만 정해놓고 그날그날 생각나는대로 쓰다보니 소제목이 마땅치 않을 때가 많아서 계속 안바꾸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