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04화 (688/1,205)
  • 704====================

    구미호가 되기 위한 조건

    "자네 이리 와보게!"

    저택에 도착한 날 제일 처음 반겨준 건, 어째서인지 살짝 격양되어있는 디아나의 목소리였다.

    왠지 당장이라도 혼낼 것같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잘못한 게 없는걸.

    "응. 다녀왔어."

    "음. 다녀왔는가. 이, 이잇! 지금 그렇게 느긋하게 인사를 할 때인가! 이리 와서 해명을 해보게!"

    내가 태연하게 인사를 하자, 디아나는 반사적으로 내 인사를 받아줬다.

    그리고 그 직후에 곧장 토닥토닥 내 가슴을 때리더니 내 소매를 잡고 안쪽으로 끌고갔다.

    뭔가 태도가 상당히 수상한데.

    화난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할지, 그렇게 보기엔 또 울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안달나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살짝 겁먹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걱정 마.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해명이라니. 대체 뭘….

    영문을 모르는 채, 나는 순순히 디아나에게 이끌려 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어째서인지 사라의 방이었다.

    잠깐만. 사라의 방?

    그럼 디아나의 태도가 이상한 게, 설마 아침에 있었던 그 일 때문인 거야?

    그건 이미 사라가 다 잘 설명한 거 아니었어?

    실비아도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던 거다. 디아나가 모를 리가 없는데?

    그런 내 의문은, 방에 들어가는 순간 곧장 해결됐다.

    방에는 사라 외에도 레이아와 마틸다까지 있었다.

    게다가 어째선지 둘 다 얼굴을 붉히고,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구, 구원씨. 다녀오셨어요?"

    "…하아. 당신…."

    내가 들어온 걸 본 순간, 레이아는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를 해왔고, 마틸다는 뭔가 할 말이 있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방의 주인인 사라로 말하자면.

    "아, 오빠! 다녀오셨어요!"

    어째선지 만면의 미소를 짓고 날 환영해줬다.

    아니. 활짝 미소를 짓고있는 건 딱히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말투였다.

    오빠? 존댓말? 심지어 어린 티가 느껴지는 귀여운 목소리로?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사라가?

    "……."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진 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날 바라보면서, 디아나가 살짝 울쌍을 지으며 사라를 손가락으로 척 가리켰다.

    "뭔가 변명이라도 해보게!"

    "…아니. 그러니까. 그게. …잠깐만. 영문을 모르겠는데."

    "자네가 모르면 어떻게 하나아아!"

    아니. 야. 침착해. 멘탈이 바스라질 것 같은 심정은 잘 알겠는데, 침착하라고.

    왜 디아나 네가 울려고 그러냐?

    "아니. 진짜로. 얘 갑자기 왜 이러는데?"

    "자네가 이렇게 만들지 않았나!"

    "그게 무슨…잠깐만."

    잠깐 기다려봐.

    아침에 있었던 일을 사라가 뭐라고 변명하기로 했더라?

    화난 나한테 섹스로 혼나서….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런가! 그랬던 건가!

    어쩐지 낮부터 바넷사가 뭔가 엄청 할 말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짓더라니!

    어쩐지 실비아가 이상할 정도로 떨더라니!

    이거 때문이었냐?!

    "야! 사라 너!"

    "꺄악! 왜, 왜 그래요? 오빠?"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내가 윽박지르려고 하자, 사라는 자기가 고분고분한 여동생 캐릭터라도 된 것 마냥 겁을 먹으면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은근슬쩍 내게서 시선을 피하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 이 녀석…설마 이런 식으로 뒷통수를 칠 줄이야.

    내가 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는데!

    "지금 자네가 사라양에게 겁을 줄 입장인가아! 설명을 해보게!"

    그리고 그런 우리를 보면서, 디아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날 토닥토닥 때려댔다.

    아니. 설명을 하라고 해도 말이지….

    완전히 겁먹은 디아나를 보면서, 나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섣불리 사라가 거짓말했다고 하면 또 아침에 내가 왜 사라를 끌고 갔었는지부터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얘기가 복잡해지고, 기껏 변명을 한 보람도 없다.

    뭐, 사라한테 뒷통수를 맞아버린 시점에서 이미 보람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사라가 거짓말이라고 하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해서 그냥 이 상황을 쿨하게 인정해버리는 것도 곤란했다.

    어차피 내가 쿨하게 인정해도 곤란한 건 앞으로 계속 나한테 오빠라고 하면서 여동생 캐릭터를 연기해야 할 사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거든.

    문제는 디아나다.

    레이아나 마틸다가 조금 곤란한 표정만 짓고 있는데에 반해서, 디아나는 왜 이렇게 혼자서 유독 안달하고 있겠어?

    간단한 이유다.

    애초에 레이아는 내가 괴롭힌 적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마틸다도 평소라면 모를까 둘이서 몸을 섞을 때는 그다지 괴롭힌 적이 없다. 어제 있었던 안달하게 만드는 플레이 같은 경우도, 해주 작업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을뿐이다.

    그러니까 이 둘은 내 섹스로 완전히 조교되어버린 사라의 모습을 보고도 그다지 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디아나는 다르다.

    그도 그럴 게, 지금까지 난 잠자리에서 심심하면 디아나를 괴롭혀 왔으니까.

    디아나로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았지만, 내 장난기가 조금만 더 심해지면 자신도 사라처럼 조교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디아나는 지금 이렇게 겁을먹고 안달을 내고 있는 거다.

    "그게 말이지…죄송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안하겠습니다."

    상황파악은 완벽하게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 이 상황을 타개할 수단이 생긴 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냥 순순히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사라 저 녀석. 이따가 두고보자.

    그러면서 곁눈질로 사라를 노려봤지만, 사라는 필사적으로 나와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막나갔으면 그 사라양이 저렇게 되는 겐가!"

    "아니. 응. 네. 반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과했습니다."

    "사람이 정도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정도라는 것이! 사라양 어떻게 할 겐가! 자네가 앞으로 또 이러지 않을 거라고 이 몸이 어떻게 믿겠는가?!"

    …디아나야. 너 그거 절대로 사라 걱정보다는 자기 앞일이 더 걱정되서 하는 소리지?

    아니. 뭐, 이해는 된다만. 내가 디아나만 유독 좀 괴롭히기는 했지. 응. 앞으로는 조금 자제하자.

    "아니. 그러니까 그게…."

    디아나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나는 필사적으로 사라에게 눈짓을 했다.

    야! 네가 벌인 일이니까 네가 어떻게 좀 해봐! 장난을 칠게 있고 안 칠게 있지! 나한테만 그러는 거면 몰라도 왜 디아나까지 끌어들여!

    "저기, 디아나. 그렇게 불안해 할 것 없어요."

    평소에도 내 속마음 하나만큼은 독심술이라도 쓰는 것처럼 기가 막히게 읽는 사라다.

    다행히도 이번 역시 사라는 내 마음을 읽어준 건지,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디아나를 달래줬다.

    "으음?"

    "오빠가 디아나한테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는걸요. 아침에도 그래요. 제가 전부 나빴던 거고, 오빠는 하나도 잘못 없어요. 오빠는 그저 사라의 잘못된 행동을 고쳐주기 위해서 잠깐 사랑의 훈육을 해준 것뿐이…."

    "사, 사라양이 망가졌네에에!"

    "야 이것아아아아! 디아나! 아니니까! 진짜로! 야! 사라!"

    "네, 오빠?"

    "오빠는 무슨! 너 진짜 장난 그만 안 칠래?! 너 그러다가 오빠한테 진짜 혼난다?!"

    "여, 여기서 사라양을 더 혼낼 생각이라는 겐가아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끝까지 오빠오빠 거리면서 장난치는 사라.

    조교가 완료되어 변해버린 사라를 보고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미래를 걱정하며 멘탈이 바스러지는 디아나.

    그리고 그런 사라와 디아나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평소의 사라와 디아나가 싸우고 내가 말리는 양상의 삼파전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으로 혼란스러운 시간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어떻게 됐냐면….

    "정말로 믿을 수가 없구먼! 사람이 장난을 칠 것이 있고 치지 않을 것이 있지 않은가!"

    "옳소! 옳소! 좀 더 반성해…."

    "자네도 잘 한 거 하나도 없네! 사라양이 아침에 조금 오해하고 몰아붙였기로서니, 그런 식으로 혼을 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나?!"

    "여기…아니. 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죄송합니다."

    "둘 다 반성하게!"

    "미안해요."

    "죄송합니다."

    나와 사라는 둘이서 디아나에게 사과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상황을 호전시키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아침에 내가 사라를 섹스로 혼냈고, 사라는 그거에 조금 삐져서 날 골탕먹일 생각으로 하루종일 조교된 척을 했다.

    그렇게 변명을 함으로써 겨우 디아나의 혼란상태를 풀 수 있었다.

    뭔가 나까지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게 억울하기 그지없었지만, 겨우 안심하고 상쾌한 얼굴이 된 디아나를 봐서라도 지금은 일단 얌전히 있기로 했다.

    "후우. 정말로. 내일은 던전에 가야한다고 하는데, 자네들 때문에 쓸데없이 하루종일 괜한 걱정을 하지 않았는가."

    "미안. 미안. 그래도 이제 안심했지?"

    "정말일세. 던전에 가기 전날에 사라양이 어떻게 된 줄 알고 이 몸이 얼마나…."

    "아니. 난 사라 얘기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내 절륜한 정력을 무서워하다니. 하여간 귀엽…죄송합니다."

    디아나야. 너무 매섭게 노려보는 거 아니냐.

    한마디라도 더 하면 마법까지 날리겠다.

    아무튼 그렇게 간신히 소동을 진정시키고나니, 이미 시간은 상당히 늦은 시간이 되어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재빨리 저녁을 마치고, 내일 던전에 갈 것을 대비하여 티타임도 없이 빠르게 각자의 방으로 해산했다.

    물론, 나는 사라와 같이 내 방에 왔다.

    "…그래서. 결국 대체 왜 그런건데? 너 아침에는 나한테 고마워하지 않았었냐? 대체 왜…핫! 서, 설마! 레이첼 누님한테 가라고 했던 게 함정?! 내가 진짜로 가버리니까 화나서 저지른 거냐?!"

    "아, 아냐! 내가 그렇게 속좁은 애로 보여?"

    "그럼 대체 왜 그런 건지 이유나 들어보자. 속 넓은 사라양."

    "그냥 조금…."

    "조금?"

    "…거, 거짓말하는 거니까, 의심받지 않으려면 그런 식으로 연기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

    과연. 그런거였냐.

    그러니까 딱히 날 엿먹일 생각같은 건 전혀 없었고, 그냥 순수하게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 때문에 벌어진 헤프닝이었다고.

    "뭐, 뭐라고 말 좀 하지?"

    "너 진짜 거짓말 한번 무지막지하게 못한다."

    "나, 나도 알거든?!"

    "자기한테 맡기라고 든든하게 말했으면서."

    "그, 그게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란 말이야!"

    "믿고 갔더니, 설마 날 함정에 빠트리고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덕분에 내가 하루종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바넷사는 계속 이상한 놈 보는 눈으로 날 쳐다보지 않나, 실비아는 완전히 겁먹어서 나한테 다가올 생각조차 못하고 있지를 않나."

    일단 자기가 잘못한 건 아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나와 제대로 시선도 못맞추는 사라를 보며, 나는 보란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주절주절 신세한탄을 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과장만 살짝 했을뿐.

    "그, 그러니까 미안하대두!"

    "말로만?"

    "……."

    "말로만?"

    "……."

    "말로…."

    "아아! 정말!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뭘 하면 되는데! 이 변태 귀축 오빠!"

    "그래? 그렇게 나한테 몸을 써서 사죄를 하고 싶다고? 난 딱히 그럴 생각없었지만! 사라 네가 정 그러고 싶다면야! 그렇게해야만 네 기분이 풀린다면야!"

    "이, 이 변태는 대체…낮에 그렇게 해대고 대체 또 뭘 할 생각인 거야…."

    내가 과장되게 말하며 함박 미소를 짓자, 사라는 살짝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계속 그 얘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조금 궁금하지 않아?"

    "뭐?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진짜로 널 섹스로 조교 가능한지."

    "…뭐?"

    "한 번 시험삼아서 해볼까?"

    "잠…!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걱정 마. 아프게는 안 할 테니까. 그냥 조금…아니. 많이 기분 좋게해줄 뿐이야!"

    "미, 미쳤어! 미쳤어! 아무리 그래도 조교라니…!"

    "왜? 자신없어?"

    "…그런 거 아니거든."

    "자신 없으면 지금 항복해도 되는데. 그럼 평범하게 해줄게. 딱 한 마디만 하면 돼. 사라는 구원오빠한테 섹스로 조교당하지 않을 자신이 없으니까 용서해주세…."

    "이, 이게 진짜! 조교든 뭐든 어디 한 번 해보시지!"

    내가 일부러 빈정 상하는 말투로 도발하자, 결국 사라는 도발에 넘어가서 홧김에 그렇게 외치고 말았다.

    "그럼 사양않고."

    "아앗…!"

    물론, 나는 사양하지 않았다.

    내 반응을 보고 곧장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후, 절망으로 물든 사라의 얼굴이 꽤나 귀여웠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