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00화 (68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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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가 되기 위한 조건

아니. 상황 파악이 안되는 건 아니다.

다만, 너무 예상치 못한 장면을 봐서 잠깐 혼란스러웠을 뿐이지.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런 거다.

이번에도 내가 조금 늦었다.

펠리시아는 또다시 폭주하기 직전까지 왔고, 일시적이나마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같은 여자까리 하는 걸 선택했다.

아니. 그러니까 남자랑 해도 된다니까 그러네.

보통 그런다고 같은 여자랑 할 생각을 하냐?

다른 사람들보다 성적으로 훨씬 개방적인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쟤 혹시 진짜로 양성애자 아니야?

혹시 사라만 보면 놀려대던 것도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사라가 자기 취향이라서….

그렇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 넘어가자.

아무튼 펠리시아가 폭주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태까지 몰렸다는 것을, 미리 한 번 성에 왔었던 실비아는 알고있었다.

그래서 나보다 먼저 자기가 펠리시아의 상태를 살피고 난 다음에 날 들여보낼 생각이었겠지.

내가 갑작스레 들어가면, 펠리시아가 치태를 보이고 있는 와중일지도 모를 일이니까.

뭐, 펠리시아는 이미 다른 남자와 떡치는 장면까지 똑똑히 목격했었는데, 이제와서 그 이상 내게 보이지 말아야할 치태같은 게 있기는 한건지 의문이었지만.

아무튼 실비아가 말했던 용무가 바로 그런 거였던 모양이다.

서큐버스라는 종족 특성상 정액을 몸에 받지 않으면 점점 몸이 달아오르게 된다고는 하지만, 저런 식으로라도 절정을 느끼면 일시적일지라도 잠깐 해소가 되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 증거로 능수능란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신음하는 펠리시아와 다르게, 실비아는 전혀 표정변화가 없었다.

알몸으로 동성의 소꿉친구와 몸을 뒤엉키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무표정으로, 그저 담담하게 펠리시아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을뿐이었다.

아니. 평소에 내가 보던 실비아와는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무표정하고 무덤덤한 말투라서 알아채기 힘들지만, 일단 지금 이 상황에 조금 곤혹스럽기는 한 모양이다.

아직도 내가 방 안에 들어온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여보세요? 공주님? 기사님?"

내가 아까보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둘에게 말을 걸자, 그제야 둘은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동시에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구야? 내가 남자는 절대 방에 들이지 말라…고…."

"엣? 구, 구, 구, 구원님…!"

몸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신경질 적이 된 건지, 평소의 고혹적이고 여유로운 모습은 사라진 채 약간 앙칼진 목소리로 짜증을 부리는 펠리시아.

그리고 무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날 확인하고는 눈을 커다랗게 뜨는 실비아.

전혀 다른 둘의 반응이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둘 다 도중에 굳어져 버렸다는 점이었다.

저런 점은 진짜 호흡이 잘 맞는다니까.

"으, 으아, 아, 아아…구, 구워…아, 아니. 그런 게 아니…."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완벽하게 무표정이었던 실비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는 아랫입술을 덜덜 떨면서 고장난 로봇처럼 변명을 내뱉으려고 했다.

"으, 으으으읏!"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흥분으로 고양되어있던 펠리시아는, 얼굴을 살짝 창백하게 만들더니 황급히 침대에 달려있던 커튼을 쳐서 자기들의 모습을 가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벽쪽에 붙어있던 몇몇 메이드들이 커튼이 쳐진 침대쪽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그렇게 한동안 가려친 커튼 안쪽에서 허둥지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후, 다시 갑옷을 차려입은 실비아가 커튼 안쪽에서 튀어나와 황급히 내게로 달려왔다.

"구원님.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런 거 아닙니다. 전 그런 의도로…."

손을 이리저리 허둥지둥 움직이면서 빠르게 변명을 하는 실비아.

나한테 접근하고도 전혀 목소리가 떨리고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지금 실비아가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응. 알아. 그냥 상태확인만 하려고 했는데 펠리시아한테 덮쳐진거지?"

물론 나는 실비아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애초에 얘는 성감대라는 게 존재하지를 않으니, 펠리시아가 전처럼 폭주해서 그 이상한 기운을 뿌려대지 않는 이상 느끼지도 않을 거니까.

방금 전 같은 행위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거다.

실제로 실비아는 완전 무표정으로, 오히려 곤란한 목소리로 펠리시아를 진정시키려고 하고있었고.

"아, 아니. 그런 것이…."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또 이번엔 친구를 팔아먹는 것 같아서 미안한 건지, 실비아는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리며 어떻게든 펠리시아를 옹호해주려고 머리를 굴렸다.

"아니기는. 주위를 둘러봐."

나는 그런 실비아의 머리에 손을 턱 올려놓고, 강제로 주변을 둘러보게 만들었다.

그래. 여전히 방 안에서 몸을 움찔움찔 떨면서 나뒹굴고 있는 묘령의 여성들을 보도록 말이다.

저 인원들은 전부 저렇게 만들다니. 펠리시아 녀석. 동성이랑 할 때도 테크니션인…아니. 그러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으…."

과연 그 광경을 보고나니 실비아도 더 이상 펠리시아를 옹호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는 건지, 실비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안타까운 목소리를 흘렸다.

"그래. 그래. 넌 최선을 다 했어."

친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참으로 눈물겨운 우정이다.

"감사합니다. 구워…아, 아, 아, 아아아…."

그리고 실비아는, 내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겨우 자신의 위치를 눈치 챈 모양이었다.

내게 바짝 밀착해서 두손으로 옷깃을 잡고 있고, 머리는 쓰다듬어지고 있다.

그걸 눈치 챈 순간, 실비아는 온몸을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하여간 방금 전 공주한테 덮쳐졌을 때도 무표정이었던 애가 내 앞에선 이렇게 귀엽다니까.

"어머, 구원씨. 오셨나요? 평안하셨는지요?"

내가 그런 실비아를 보면서 살짝 장난이나 쳐줄까하는 생각을 한 바로 그 순간, 드디어 침대의 커튼이 열리며 펠리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내가 펠리시아에게 한순간 신경이 쏠린 틈을 타, 실비아는 잽싸게 내 품에서 벗어나 벽쪽에 찰싹 달라붙어버리고 말았다.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펠리시아쪽에 시선이 쏠려버리는 건 나로서도 불가항력이었다.

왜냐하면 펠리시아의 모습이 평소와 180도 달라져있었기 때문이다.

평소보다도 훨씬 더 단정하고 기품있는 복장으로, 마치 요조숙녀같은 태도와 말투로 말하는 펠리시아.

평소의 팜므파탈같은 분위기는 온데간데 사라져있었지만, 저건 저것대로 어울리기는 했다.

기본 바탕이 우리 애들이랑 비교해도 꿀릴 게 없는 미인이다보니, 뭘 해도 어울린다는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딴죽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뭐하냐 너?"

"네? 뭘 하시냐는 말씀은 대체? 소녀, 성자님께서 어서 돌아오시어 소녀의 몸을 달래어 주실 것만을 손꼽아…."

"으아아악! 그만 둬! 무슨 짓이야! 닭살돋잖아!"

"…하여간 자기는 공주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다니까. 닭살이라니. 실례잖아. 모처럼 자기가 좋아할만한 모습으로 맞이해줬더니."

"누가 그런 모습을 좋아한다는 거냐?"

"어머, 순종적인 여자가 취향인 게 아니었어?"

"너 내 여자가 누구누구인지는 알고 있는 거지?"

누가 봐도 연기인 게 보이는, 일부러 과정되게 놀라는 척을 하는 펠리시아.

그런 펠리시아의 모습에 나는 머리를 감싸쥘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이 녀석 마이페이스인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방금 전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놀라서 숨어버린 주제에, 나오자마자 이러기냐.

"으음…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렇네. 그래도 순종적인 여자가 싫다는 건 아니잖아? 어때? 이건 이것대로 매력있지 않아?"

펠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커다란 눈을 귀엽게 깜빡깜빡 움직여보였다.

얼굴이 되니까 예뻐보이기는 예뻐보여서 뭔가 더 열받는다.

오냐. 너 예쁜 거 다 아니까 그만 해라.

하여간 공주병은…아니. 진짜로 공주니까 공주병이 아닌 건가.

"넌 그냥 평소 모습이 제일 예쁘니까 평소대로해라. 평소대로."

"어, 어머. 평소의 네가 제일 예쁘다니…너무 멘트가 구식이잖아. 그래서 잘도 그렇게나 여자들을 만들었네."

내가 질린 목소리로 말하자, 펠리시아는 부끄럽다는 듯 두 손으로 붉게 물든 자기 뺨을 감싸쥐었다.

그러니까 안 어울리는 짓 그만두래도.

"아무튼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자기가 원하는대로 평소대로 행동해줄게. 난 또 그만 오해했지 뭐야."

"애초에 어디서 그런 오해를 하게 된 건지 궁금할 지경인데."

"어머? 몰라서 물어? 그야 자기가 저번에 너무 몰아붙이니까 그런 취향인줄 알았던 거지."

"너 전에 했던 플레이가지고 아직도 꽁해있었던 거냐?!"

그러고 보니 전에 좀 강제로 하기는 했지.

아니. 이 녀석이 자기 몸 생각 안하고 할 기분이 아니라면서 버티니까 그런 거지만.

일단 나도 생각해서 해준 거라고.

실제로 저번에 그렇게해서 정액을 주입해주지 않았으면, 지금쯤 펠리시아는 확실히 폭주하고 있었다.

"어머, 당연하잖아. 그런 굴욕. 태어나서 처음 맛봤는걸."

"일단 너 도와주려고 그런 거라는 건 알고 말하는 거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아무리 기분 좋아도 그렇지, 이 내가 잠자리에서 그렇게나…."

펠리시아는 다시금 저번 플레이가 생각났는지, 살짝 말을 흐렸다.

원체 이런 태도다보니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농담인 건지 구분하기 힘든 녀석이지만, 일단 진짜로 부끄럽기는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나한테 제발 정액을 달라고 무릎까지 꿇고 빌었던 애가 뭘 이제와서."

"그러니까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니까. 그때는 내 의…아무튼. 그래서 자기는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야?"

"뭐가?"

"뭐가라니…안 할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펠리시아는 긴 드레스에 감싸인 다리를 살짝 움직여서 스스로의 허벅지를 비벼댔다.

그러고보니 태도가 너무 확 바뀌는 바람에 잊고있었지만, 이 녀석 방금 전까지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발정나있었지.

아니. 지금도 이성으로 억지로 억누르고 있을뿐, 발정나있는 상태인 건 변함이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이 녀석의 이런 태도가 새삼 대단해보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은근히 자기 컨트롤이 뛰어난 녀석이라니까.

"아니면…소녀가 벗겨드릴까요?"

"그러니까 그거 하지 말래도!"

"아하핫. 화내는거 봐. 알았다니까. 평소의 내 모습이 제일 예쁜 거지?"

"아니. 확실히 방금 전에 내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는데, 시원스러울 정도로 기분 좋은 표정지으면서 예쁘다는 단어에 힘줘서 말하지 말아줄래? 은근히 열받는데."

예쁘다는 말은 부정하기 힘들다보니 괜히 더.

"응…그치만, 그걸 노리고 말하는 건 걸."

"이게 진짜!"

"꺄악! 또 덮쳐져버려!"

"안 덮칠 거거든!"

"안…덮쳐…?"

내가 화를 내자, 펠리시아가 이번에는 마치 버림받은 비련의 여주인공같은 표정을 지으며 날 올려다봤다.

"그러니까 그런 연기 그만두라고!"

"아하하핫! 또 화내는 거봐. 하여간 자긴 너무 재밌다니까. 아, 실비아. 그렇게 됐으니까 그만 나가도 돼. 미안해. 모처럼 미리 말해주러 왔는데. 그런 모습까지 보이게 만들어버리고."

마치 저번 플레이의 복수를 마쳤다는 듯 후련한 표정을 지으면서, 펠리시아는 다시 한 번 시원하게 웃고는 이번엔 표정을 바꿔서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실비아에게 사과를 했다.

"아니. 그건 괜찮지만…펠리시아는 그게…."

"으응. 괜찮으니까. 정말로. 정말 고마워. 앞으론 내가 알아서 잘 해볼게."

앞으로는 내가 잘해본다니…그야 당연하잖아. 뭘 새삼스럽게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아니면 뭐 설마 실비아가 우리 행위까지 보조해준다는 얘기가 나왔던 건가?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그 미묘한 말투에 살짝 의구심이 들었지만, 둘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대화가 잘 통하는 모양이었다.

"응…. 그, 그럼 구원님…."

"응. 기다리고 있어."

실비아는 뭔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한번 꾸벅 숙이고는, 마지막으로 펠리시아와 아이컨택트를 한 번 더 주고받은 후 방을 나섰다.

그렇게하여, 방 안에는 드디어 나와 펠리시아 단 둘만이 남게됐다.

참고로 말하자면, 방 여기저기에 널부러져있던 나신의 여성들은 나와 펠리시아가 떠드는 사이에 메이드들이 옷을 입히고 그대로 방 밖으로 옮겼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윈도우 업데이트를 했는데 무슨 업데이트인지 한참이 걸렸네요.

덕분에 하마터면 오늘도 못올리고 자버릴뻔 했습니다.

솔져69, 운명이란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마지막에 지적해주신 부분은 후끈하고가 덥여진 공기와 이어지는 게 아니라 그 뒷내용과 이어지도록 쓴 문장이었습니다.

제가 순서를 오해하기 쉽게 썼네요. 적절하게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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