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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99화 (68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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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호가 되기 위한 조건

    실비아는 먼저 가라고 했지만, 신사로서 또 그렇게 무정하게 내 여자를 내팽개치고 갈 수는 없지.

    때문에 나는 실비아가 마차 준비를 마칠 때까지 마차 밖에서 기다려주기로 했다.

    여전히 마부석에 위치하고 있는 바넷사와 대화나 하면서 말이다.

    "바넷사는 왜 안 내려?"

    "…저는 여기서 마차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바넷사는 마차를 지키고 있을 모양이었다.

    "아니. 굳이 네가 안해도 성에는 관리해줄 사람도 많고, 어차피 한참 걸릴 텐데 같이 가서 방에서 편하게 있지?"

    "…아뇨. 괜찮습니다."

    일단 나는 설득을 해봤지만, 바넷사는 고집스럽게 마차에서 내릴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하여간 조심성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너 또 공주가 전처럼 됐을까봐 걱정하는 거지?"

    "……아닙니다."

    중간에 침묵이 길다 이것아.

    아니. 뭐, 확실히 이번에도 꽤나 오랜만에 오기는 했지만.

    그러고 보니 얼마만이더라?

    전에 펠리시아가 폭주했을 때랑 비교하면…아직 아슬아슬 괜찮은가? 아니면 조금 늦었나?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바넷사의 설득을 계속하기로 했다.

    아니. 딱히 바넷사가 또 펠리시아의 기운에 당해서 발정나거나 하는 게 보고싶은 건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마차보다는 따라와서 기다리는 게 편할 거 아냐.

    다 바넷사를 생각해서 이러는 거라고. 진짜다?

    애초에 마음만 먹으면 나도 바넷사를 발정상태로 만드는 것쯤은 간단하고.

    …뭐, 그랬다가는 나중에 바넷사가 화나서 눈도 안마주쳐줄 것 같지만.

    "이제 딱히 상관 없잖아. 어차피 만약 또 영향을 받아도 내가 풀어줄 수 있으니까. 이제 우리도 이런 관계가 되기도 했고…."

    "지금은 집사입니다."

    우선은 농담조로.

    마부석 옆으로 훌쩍 뛰어올라가 바넷사의 허리를 끌어안으려 했던 나였지만, 바넷사는 그런 내 손을 가볍게 탁 쳐내고 차갑게 말했다.

    "과연 언제까지 집사로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진심이 되면…농담이다. 농담이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니까. 하여간 얘는 농담도 못해요."

    그런 바넷사에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던졌던 나였지만, 바넷사는 만년설과 같은 차가운 시선으로 날 쏘아보기만 할뿐이었다.

    평소 내가 이런 농담을 던질 때보다도 더 시선이 차갑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아침에있었던 사라 사건 때문이겠지.

    젠장. 그 사건 때문에 평소에는 가볍게 넘어갈 농담이 이제는 괜히 의미심장한 말처럼 되어버리잖아.

    그렇다고 사라가 했던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걸 밝힐 수도 없는 일이고.

    의외로 그 변명을 통해 내가 본 손해가 클지도 모른다.

    이 대가는 밤에 사라에게서 듬뿍 받아내지 않으면.

    "공주의 그 기운에 네가 당한 덕분에 우리 사이가 이어진 거니까, 난 오히려 좀 더 감사해도 좋을 지경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고있습니다."

    "오호라. 과연. 바넷사 역시도 나랑 이어져서 행복하다라."

    "……."

    "야. 네가 가만히 있으면 나 혼자 떠드는 것 같잖아. 대답 좀 해줘라."

    "지금은 집사입니다."

    "너 요즘 그거 치트키처럼 쓰고 있지 않냐?"

    야. 그러니까 자기가 불리할 때만 눈을 피하지 마라.

    하여간 자기가 부끄러운 말은 죽어도 안하려고 한다니까.

    언젠가 나중에 단 둘이 있을 때 실컷 부끄러운 말을 하게 만들고 말테다.

    "아무튼 괜찮으니까 따라와. 되레 네가 마차에서 이러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불편할 거 아냐."

    "그러니까 저는…."

    "주인님의 곁을 따르는 것도 집사의 의무잖아?"

    "……."

    내가 집사를 들먹이자, 바넷사도 할 말이 없어졌는지 드디어 말대답을 하지 못하게 됐다.

    훗. 어떠냐. 맨날맨날 집사란 위치만 강조하니까 이렇게 되는 거다.

    바넷사가 약아빠진 성격이었으면 여기서 내 여자라는 위치를 강조하면서 버틸 수 있었겠지만, 바넷사는 그런 성격이 아니니까.

    "따라오다가 공주방에 가기 전에 갈라져서 접객실에서 쉬고 있으면 되니까. 어차피 네가 또 공주의 영향을 받을 걱정은 없다고."

    하지만 뭐, 나도 진짜로 바넷사를 몰아붙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날자상 진짜로 펠리시아가 폭주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

    아니. 뭐 전처럼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허둥지둥대지 않는 걸 보면, 아마 폭주는 안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아뇨. 방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응? 아니. 그럴 필요 없는데. 어차피 방에가면 바로…하게 될테니까."

    "그래도 구원님의 말대로, 대동하는 것이 집사의 의무니까요."

    "그래? 그럼 공주랑 할때도 옆에 있으면서 거들어…죄송합니다. 농담이 심했습니다."

    "……."

    야. 너 오늘 나한테 보인 표정중에서 지금이 제일 차가운 거 아냐?

    하여간 나한테 애정표현은 좀처럼 안하는 주제에 질투심은 또 은근히 있다니까.

    "끄, 끝났습니다아…."

    아무튼 그렇게 바넷사와 실속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드디어 마차 안에서 실비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빨개진 얼굴을 죄인처럼 푹숙이고 부끄러워 죽겠다는 듯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는 게 무척 귀여웠다.

    그렇게 실비아와 바넷사를 대동하고, 우리는 메이드의 안내를 받아 펠리시아의 방으로 향했다.

    응. 역시 이번엔 성 안이 소란스럽지 않다.

    역시 아직 폭주는 하지 않은 건가.

    기간 상으론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했지만, 펠리시아 걔도 조금 참을성이 늘어난 걸까?

    아니. 하지만 전에는 나하고 하고나서부터 점점 더 참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으음…. 모르겠다. 하여간 이 세계는 내가 잘 모르는 히든 시스템들이 너무 많아.

    뭐, 그 점은 게임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다만.

    그렇게 생각하며 발검음을 옮기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펠리시아의 방 근처까지 도착해 있었다.

    "바넷사. 정말 괜찮아? 그냥 넌 여기서 접객실로…."

    "아뇨. 괜찮습니다."

    "혹시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거 아니지?"

    "……."

    아니. 그러니까 일일이 차가운 표정으로 보지 말라고.

    "앗! 저, 저기! 구원님!"

    나와 바넷사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 갑자기 실비아가 화들짝 놀라더니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응?"

    "저기, 두 분은 잠시 접객실에서 쉬고 있어 주십시오. 제가 먼저 가서…대화를 나누고 오겠습니다."

    "응? 아, 혹시 할 일이라는 게 펠리시아한테 할 말이 있다는 거였어?"

    "네엣!"

    "하지만 펠리시아 걔 지금…아, 그러고보니 실비아는 먼저 봤겠구나. 어때? 저번에 왔을 때는 괜찮아 보였어?"

    "네, 네헷! 물론입니다! 전혀 문제없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실비아는 과장될 정도로 크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뭔가 수상한데. 실비아가 내게서 뭔가를 감추려고 하고 있어. 그것도 펠리시아를 위해서.

    거기까지 유추해내는 건 간단했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대체 뭘? 대체 무슨 이유로? 실비아가 펠리시아를 위해서 내게 감춰야할만한 것.

    게다가 실비아가 나보다 먼저 방에 들어가서 상태를 살피려고 한다는 사실까지 종합해보면…아, 설마.

    "…실비아."

    "네, 네히이이…."

    내가 진지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살짝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자, 방금 전까지 어딘지 모르게 필사적이었던 실비아는 순식간에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딱히 위협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혹시 펠리시아가 성욕을 못참고 남자랑 뒹굴고 있는 거고, 네가 펠리시아를 위해 숨겨주려고 하고 있는 거라면, 난 별로 신경 안 쓰니까 괜찮아. 전에 펠리시아한테도 말했지만, 내가 걔한테 다른 남자랑 자지 말라고 할…."

    거기까지 말했을 때, 실비아가 내 두 팔을 덥석하고 잡았다.

    그리고는 방금 전까지 짓고 있던 표정과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왕실친위대의 기사님이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결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뭐,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 눈동자는 살짝 떨리고 있어서, 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평소처럼 목소리조차 떨지 않고 또박또박 확실히 말하는 실비아의 모습에, 내가 설득당하지 않을 리 없었다.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말하다니. 친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싶지 않다는 건가.

    하여간 둘이 성격은 전혀 다른 주제에 의리는 끝내준다니까.

    펠리시아 걔도 그래 봬도 실비아는 끔찍하게 신경쓰고 있는 것 같았고.

    "그래. 알았어. 믿어. 그럼 우리는 접객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러면 되지?"

    "햐읏! 가, 감샤합니다아."

    그리고 내가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실비아는 그제야 자기가 얼마나 지근거리에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지 자각한 모양이었다.

    내 팔을 강하게 붙잡았던 두 손에서 힘이 흐물흐물 풀리며, 실비아의 결연한 표정은 그대로 녹아내려버렸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우선 바넷사와 접객실에서 대기를 하기로 했다.

    굳이 나와의 행위가 시작되기 전에 실비아가 용무를 마치려는 걸 보면, 꽤나 급한 일인 거겠지.

    아니면 나와의 행위 후에 녹초가 된 펠리시아와는 나눌 수 없는 내용의, 중요한 안건이라든가.

    뭐, 전에 왔을 때 까먹고 그냥 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일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리고 바넷사와 대기하기를 어언 한 시간.

    아니. 바넷사와 이런 시간을 가질 기회도 좀처럼 없으니, 솔직히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바넷사 이 녀석은 이렇게 단 둘이 있는데도 지금은 집사라면서 꼬박꼬박 집사로서의 자세를 유지하잖아.

    아니. 물론 완전히 단 둘은 아니고, 옆에서 메이드들이 시중을 들어주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철벽 아니냐? 메이드들정도는 신경 안써도 되는데.

    아무튼 바넷사가 이런 태도다 보니, 나도 할 수 있는 건 농담 따먹기정도밖에 없었다.

    게다가 슬슬 할 농담도 떨어져가는 상황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늦어. 너무 늦잖아.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얘기하는 거 아냐?"

    "…확실히. 늦군요."

    바넷사까지 인정할 정도로, 실비아가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아까 말하는 것만 보면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좋아. 한 번 직접 가볼까?"

    "…아무리 구원님이라도, 실비아님이 왕실친위대의 기사로서 공주님과 대화하고 계신 와중에 난입하는 걸 실례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일단 가면 얼마나 더 걸릴지 정도는 들을 수 있겠지. 나도 공주한테 부탁을 받고 도와주기 위해서 찾아온 몸이니까. 그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건."

    내 의견에 이번에는 바넷사도 이견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난 가볼게. 바넷사는 여기서 기다리고있어."

    "…다녀오십시오."

    나 혼자면 모를까, 아무리 시중역이라도 집사까지 가서 난입하는 건 조금 그러니까.

    바넷사를 접객실에 놔두고, 나는 메이드의 안내를 받아 공주의 방문 앞까지 갔다.

    거기에는 여기사 두 명이 묘하게 붉은 얼굴로 문앞을 지키고 있었다.

    "서, 성자님! 오셨습니까!"

    "네. 잠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지금 실비아랑 공주님은 안에 있는 거죠?"

    "네, 넵! 그렇습니다!"

    "꽤나 오래 기다렸는데 아직도 안나와서 그런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네, 네엣?! 그, 그건…."

    뭐야. 이 기사. 반응이 좀 묘한데?

    혹시 그런 건가? 이 기사도 내 팬이라든가?

    요즘 은근히 있단 말이지. 하여간 이 놈의 인기란.

    "모르겠으면 안에 가서 물어보고 와줄 수 있어요?"

    "넵?! 그, 그것이…그러니까…."

    자신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다.

    기사의 표정은 마치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그도 그런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도 성미에 안맞는다.

    "그럼 제가 잠깐 들어가서 물어보고 올게요."

    "앗, 성자님! 잠…!"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기사가 방심하고 있는 틈을 찔러서 덜컥 방문을 열어버렸다.

    뭐, 아까 바넷사가 말한대로 확실히 실례겠지만.

    설마 실비아랑 펠리시아가 고작 이런 일로 문제시하겠어?

    그렇게 생각한 면도 없잖아있었다.

    그리고 방의 문을 여는 순간, 내가 안고있던 여러 의문이 동시에 풀렸다.

    왜 펠리시아가 아직도 폭주를 안하고 있는지.

    왜 실비아가 나보다 먼저 펠리시아와 만나려고 했는지.

    왜 실비아가 늦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문앞을 지키는 기사의 태도가 묘했는지까지. 전부 말이다.

    "흐으으읏! 흐아앙! 하응! 흐이잇! 으으으으으응읏!"

    "페, 펠리시아. 그만! 진정해! 진정하라니까!"

    문을 여는 순간, 방 안에서 쾌락으로 가득찬 여성의 신음소리가 울려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 안의 침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위가 얼마나 화끈한지 알려주듯, 덥혀진 방 안의 공기가 후끈하고 전신에 엄습해왔다.

    "…뭐하는 거냐 너희들?"

    나는 침대 위에서 뒤엉켜있는 실비아와 펠리시아를 바라보며,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펠리시아는 침대 위체서 완전히 알몸이 되어서는, 마찬가지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실비아와 열심히 가위치기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안 여기저기에, 얼굴을 붉히고 거친 숨만을 내뱉으며 몸을 움찔움찔 떨고 있는 묘령의 여성들이 널부러져있었다.

    이, 이건 대체….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개인적인 일때문에 쉬는 날이라 어젯밤에 조금 방심했더니 그만 그대로 잠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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