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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진짜로?! 그럼 돌아갈 땐 정문으로 돌아갈까."
"…돌아갈 때도 창문을 넘어갈 생각이셨습니까."
내 중얼거림에, 바넷사는 살짝 기가 찬다는 시선을 보내며 중얼거렸다.
오, 뭐야. 웬일로 고작 이런 걸로 표정이 바뀌지?
아니. 그야 겉보기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기는 하지만.
아까 창문너머로 봤을 때는 미동도 안하고 있어서 조금 걱정이 되기까지 했었지만, 역시나 대기시간인만큼 바넷사도 평소보다는 살짝 긴장을 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뭐, 표정이 바뀐건 아주 잠시뿐으로, 곧바로 다시 완벽한 무표정으로 원상복구됐지만 말이다.
"돌아가셔야한다는 건, 아직 용무가 끝난 건 아닌 겁니까?"
"응? 아, 응. 마틸다가 교황님께 인사를 드리고, 여신님께 기도도 아직 안 드렸어."
"그럼 구원님은 왜 여기로 나오신 겁니까."
"아니. 그야 뭐, 마틸다가 교황님과 대화를 마칠 때까지 할 일도 없고…심심해서."
내가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바넷사의 시선도 다시 점점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래. 여신님의 사자씩이나 되면서 심심하다고 신전 창문너머로 뛰쳐나와서 미안하다 이것아.
"상관 없잖아.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내 여자와의 관계를 돈독히 다지는 것도."
"전 지금 집사로 있는 겁니다."
"그럼 집사로서 조금 시간 때우기에 어울려줘."
나는 바넷사의 그런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그렇게 말하며 마부석쪽으로 훌쩍 올라탔다.
작은 크기의 마차를 가져온만큼 마부석까지 두명이 넉넉하게 앉을 정도로 공간이 여유로운 건 아니었지만, 내가 엉덩이를 들이밀자 바넷사는 옆으로 움직이며 공간을 마련해줬다.
"…좁습니다만."
뭐, 불평은 들었지만 말이다.
"그럼 내 위에 앉을래?"
"흑심이 느껴집니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너 내가 무릎에 디아나 앉히고 식사하는 거 자주 봤잖아?! 너 그럼 디아나가 내 무릎에 앉아있는 거 볼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었단 말이야?!"
"아닙니다. 그것과 이것과는…."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표정을 지으며 몰아붙이자, 바넷사는 황급히 변명을 했다.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얘 지금 살짝 당황하고 있어. 여전히 디아나 얘기랑 연관지어서 몰아붙이면 바넷사도 너무 엄한 말은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전혀 안 달라. 둘 다 내 여자를 무릎 위에 앉히는 거잖아. 뭐가 다른데?"
그리고 그걸 눈치 챈 나는 바넷사를 더더욱 밀어붙였다.
애초에 저런 말로 변명을 한 게 실수였어.
요즘 왠지 우리 애들이 나한테 써먹는 일이 많았지만, 원래 저 대사는 내 18번이었다고.
그리고 그런 내가 판단하건데, 넌 지금 활용법을 틀렸어.
"그러니까 전 지금 집사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 구원님의 여자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내가 내 여자인 바넷사를 무릎에 앉히는 건 문제가 없지만, 집사인 바넷사를 무릎에 앉히려고 하는 건 흑심을 품고 있는 거다. 다시 말해서 난 내 여자보다 집사를 더 그런 눈으로 본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냐?"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스스로도 무슨 말인지 잘 알아먹기 힘들 정도로 얼토당토않은 주장이었지만, 중요한 건 그 말이 바넷사를 살짝 혼란에 빠뜨렸다는 거였다.
"역시 안 되겠어. 이렇게 된 이상 억울한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직접 몸으로 증명해보이는 수밖에! 자!"
"큿!"
아직도 내 말도안되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 바넷사의 허리를 붙잡고, 나는 강제로 그 몸을 들어올려서 내 무릎위에 앉혔다.
내 두손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자 살짝 몸을 긴장시킨 바넷사였지만, 자포자기한 건지 어떤 건지 의외로 아무런 반항도 없이 순순히 내 무릎 위로 앉았다.
"…이걸로 만족하십니까."
"…응. 그런데 역시 그림은 안 사네."
그리고 내 무릎위에 앉아서 감정을 절제한 목소리로 묻는 바넷사에게, 나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원래부터 키가 크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무릎에 앉히니까 그 어깨너머로 얼굴도 못내밀겠어.
이래선 그냥 바넷사의 뒷덜미에 코를 박고 있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말한겁니다. 어차피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그래도 이렇게 하면 문제 없잖아?"
"읏…!"
바넷사의 목소리에서 미약하게나마 실망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나는 황급히 다리를 양옆으로 벌렸다.
그리고 벌어진 다리 사이로 생겨난 공간에 바넷사를 앉히기 위해서 그 몸을 살짝 앞으로 미끄러뜨렸다.
그렇게 바넷사의 머리 높이가 낮아지자, 나도 얼굴을 바넷사의 어깨 너머로 내빼서 그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어때? 이러니까 그림이 살지?"
그 귀를 살짝 덮고 있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준 후, 귓가에 숨을 불어넣듯이 입을 가져다대서 부드럽게 속삭여주자, 바넷사는 몸을 흠칫하고 떨었다.
그래. 그래. 아무리 그렇게 무표정으로 있으려고 해봤자 네가 날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해주면 너도 싫을 리가….
"…엉덩이를 찌르고 있습니다만."
하지만 바넷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을 훨씬 벗어난 말이었다.
뭔가 억누르고 있는 것 같은 그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려서 바넷사의 멋진 엉덩이를 바라봤다.
그러자 거기에는, 확실히 내 물건이 살짝 팽창해서는 바넷사의 엉덩이사이를 찌르고 있었다.
야. 설마 방금 전에 몸을 떨었던 거, 내 속삭임이 기분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이것 때문에 그런 거였냐.
"아니. 잠깐만. 이건 그냥 네가 내 무릎사이에서 다리사이로 이동하는 사이에 닿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말해두지만. 전 그런 취미 없습니다. 이런 곳에선 절대 안 할 겁니다."
나는 바로 변명을 하려했지만, 바넷사는 내 변명을 다 듣지도 않고 그렇게 딱잘라 말했다.
나도 그런 취미는 없거든?! 그런 취미가 있는 건 네가 존경해마지 않는 네 주인님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래도 디아나 체면이 있지.
아무리 나라도 바넷사한테까지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진짜로? 딱 한 번도 안되는…."
"내리십시오!"
"으악! 야, 잠깐! 장난! 장난이었다니까! 농담도 못하냐?!"
그래서 아예 반대로 그럴 마음이 있는 척을 해봤지만, 그 순간 바넷사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정색을 하고 날 쫓아내려고 했다.
아무리 내 이미지가 조금 호색한 같은 이미지가 있어도, 이정도 수준의 발언은 당연히 농담으로 여겨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바넷사는 내 말을 상당히 진심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아니. 뭐, 생각해보니 어제밤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있는 거다.
바넷사가 이렇게 나오는 것도 당연한 건가.
"애초에 다시 정문을 돌아서 들어가려면 지금 가봐야하는 것 아닙니까? 마틸다님께서 돌아오셨을 때 구원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걱정하실 겁니다!"
"그때는 그냥 창문으로…알았어. 갈게 가면 되잖아."
쳇. 이번엔 진짜로 농담이었는데.
나는 결국 바넷사에게 떠밀리다시피 다시 신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넷사의 판단은 꽤나 정확했다.
내가 원래 있던 위치로 돌아가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통신마법을 마친 마틸다가 계단을 올라왔다.
"오, 왔네. 어때? 얘기는 잘 끝냈어?"
"…네에."
그런데 어째선지, 돌아온 마틸다의 안색은 꽤나 어두워보였다.
할머니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고 온 사람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수준으로 말이다.
"왜 그래? 무슨 일있어?"
"아뇨. 별 일은…으응. 그렇군요. 그저 교황님께서 조금 편찮아보이셨던 것 같아서요. 교황님께서는 그저 업무가 많아 피로하신 것뿐이라고 하셨지만, 괜히 마음에 걸리네요."
마틸다는 처음엔 내 질문을 얼버무리려고 하는 것같은 말을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은 건지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는 표정이 어두운 원인을 얘기해줬다.
"뭐? 교황님이? …그럼 한 번 직접 가보는 게 어때? 던전 걱정이라면 하지말고…."
"아뇨. 괜찮아요."
그냥 교황님이 몸이 아프다는 소식만으로도 사제들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될 텐데, 하물며 그 교황님이 마틸다에게는 친할머니가 되는 거다.
나는 마틸다와 처음 만났을 때 교황청에서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서 금방 여기까지 왔던 걸 기억해내고는 그렇게 제안했지만, 마틸다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아요. 어차피 이런 몸인 제가 가봤자 할 수 있 것도 없는걸요. 그리고 교황님께서 거짓말을 하실 이유도 없는 걸요. 거짓말을 하시는 것 같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만약 교황님게서 정말로 어딘가 편찮으신 거라고 하더라도, 교황청은 전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에요. ‘교황청 한가운데에서 병으로 죽을 사람’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어요?"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자기위로가 많이 들어간 것 같은 말을 늘어놓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당신도 그런 표정 짓지 마시고, 제 저주를 풀기 위해 힘쓸 준비부터 하시는 게 어떤가요?"
"아니. 그야 뭐 굳이 준비 안해도 된다고할까, 네 상대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말이야."
"어머. 그건 참 믿음직스럽네요."
내가 살짝 노골적인 말을 해도, 마틸다는 얼굴을 붉히거나 핑크빛 모드에 빠져들 낌새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핑크빛 모드는 마틸다의 정신상태 여부에 따라 충분히 컨트롤 가능한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러니 지금도, 마틸다는 겉으론 웃고 있지만 핑크빛 모드가 될 기분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정말로 괜찮은 걸까?
살짝 걱정이 됐지만, 마틸다 본인의 의지는 꽤나 완고해보였다.
얘가 평소에는 심심하면 핑크빛 모드가 되어서 안 그래보여도, 필요한 때는 추기경님답게 상당히 자기주장이 확실한 애니까 말이야.
그런 성격덕에 꽤나 설교를 듣기도 했었고.
애초에 정말료 교황님이 위독해 보였으면 내가 뜯어말려도 교황청에 갔을 거고, 나도 너무 신경 안쓰는 게 마틸다를 위하는 건가?
"그럼 지금 당장 갈까? 기도는?"
"아, 그렇네요. 당신도 가끔은 같이 어떠세요?"
"그럼 그렇게 할까."
추기경님이 여신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까지 까먹을뻔 한 거냐.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참고, 나는 마틸다와 같이 기도나 드리기로 했다.
우선 기도를 하고, 얼른 가서 마틸다의 저주 해제에 힘쓰기로 하자.
마틸다 자신이 원한대로 말이다.
"당신도 참. 여신님의 사자라는 분이 기도는 상당히 건성이네요."
그렇다곤 해도, 애초에 기도하는 습관같은 게 없었던 내가 착실히 기도를 드릴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기도가 다 끝나고 마차로 돌아가면서, 마틸다에게 살짝 핀잔까지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여기 오기 전에는 완전히 무신론자였는걸.
여신님을 통해 이런 세계에 떨어진 게 아니었다면 평생 무신론자였을 거다.
그리고 이왕이면….
"일방적으로 기도를 드리기보다는 빨리 여신님 본인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말이야."
그래. 여신강림을 통해 직접 여신님과 대화를 나누고 모든 의문을 푼다.
던전에서 성장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게 제일 중요한 과제이기도 했다.
뭐, 결국 던전에서 마틸다를 성장시킴으로서 여신강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빨라지게 되는 거니, 그게 그거지만 말이다.
"…죄송해요. 제가 조금 더 빨리 성장하면…."
"아니. 미안. 마틸다를 탓한 건 아니었어. 애초에 마틸다가 성장을 빨리 못하는 건 나때문이잖아. 내가 빨리 레벨을 올렸어야 했는데."
사실 여신 강림을 위해서 필요한 건 마틸다의 패시브 스킬 레벨이니, 내 레벨하고는 그다지 상관 없지만.
나는 괜히 마틸다가 자책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내 잘못인 것처럼 말했다.
크으. 나란 남자. 진짜 멋지지 않냐?
"…그런가요. 그럼 당장 가서 레벨업과 저주 해제에 전념하도록 해요."
마틸다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단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기도를 통해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건지 두뺨을 살짝 붉힐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나와 신체접촉을 하고 섹스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도 핑크빛 모드는 되지 않는 마틸다였다.
마틸다의 머릿속에서 교황님의 걱정을 좀 더 떼어내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제대로 힘쓰지 않으면.
아니. 그렇다고 해서 평소에 힘을 아꼈다든가 하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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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