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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바넷사라는 가장 큰 고비를 이상할 정도로 쉽게 넘긴 우리는,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바넷사의 뒤를 따라 식당에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방을 한발자국 나선 순간, 나는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시야가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이게 있었지.
"디아나."
"음? 아, 아우…그, 그러고 보니 아직 안 풀어줬었구먼."
어려진 내 모습을 보자 어젯밤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지, 디아나는 얼굴을 붉히면서 황급히 내 팔찌를 톡하고 건드렸다.
그러자 간밤에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풀리지 않던 팔찌가 스르륵하고 간단히 풀려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시 내 시야가 울렁이며 눈높이가 평소대로 돌아왔다.
"뭐야? 이거 어떻게 푼 거야?"
"이, 이 몸의 마력을 주입하면 되네."
"즉, 네가 아니면 못 푼다고."
어젯밤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진짜 준비 하나는 철저하게 해놨네.
"다, 다 끝난 얘기 아닌가! 이 몸이 그래서 어제…우읏!"
내가 기가찬다는 시선을 보내자, 디아나도 찔리는 게 있는지 살짝 떼를 쓰는 것처럼 그렇게 외쳤다.
뭐, 바넷사가 있으니 끝까지 말을 내뱉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죄의 뜻으로 어제 그런 플레이까지 어울려줬으니 끝난 얘기다.
아마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겠지.
"알아. 알아. 그래도 이 팔찌는 압수다."
나도 괜히 길게 따지고 들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뭐, 방금 전 내 어려진 모습만 보고도 어젯밤 일을 떠올리며 부끄러워한 걸 보니, 디아나도 더 이상 이걸 내게 채우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 같지만 말이야.
혹시라도 나중에 이걸 쓸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거니 챙겨둬야지.
아, 제대로 쓰려면 나중에 디아나의 방에서 그 마력 공급기도 챙겨두지 않으면 안되는 건가.
뭐, 이걸 쓸 상황이란 게 잘 상상은 안 되지만.
"므으읏…."
압수라는 잘난 것 같은 표현이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아니면 머리를 쓰다듬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기껏 만들어놓은 팔찌가 아까운 건지 디아나는 살짝 불만스런 목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디아나도 자기가 지은 죄가 있다보니 팔찌를 돌려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도 피하려고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쓰다듬는 디아나의 머리는 역시나 비단결처럼 고왔다.
그렇게 얘기를 마치고 더이상 내 손길을 피하려 하지 않는 디아나에게 흐뭇해하면서, 나는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그리고 바넷사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견 평소와 다름 없는 무표정처럼 보이고, 대체 어떤 감정이 숨어있는 건지 파악하기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뭔가 표정이 이상하다는 것만큼은 왠지모르게 알 수 있었다.
"왜 그래 바넷사?"
"읏!"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가가자, 바넷사가 짧은 침음성과 함께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응? 설마 부끄러워하고 있는 건가? 대체 왜?
아, 설마 그런건가. 레이아는 대놓고 어린애를 좋아한다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설마 얘도 그런 과였다니.
"뭐야. 너도 내 어려진 모습에 빠져버린 거야? 그렇게 깜찍했어? 원한다면 이 팔찌 차고 다녀줄까?"
"…바지를 입으십시오."
내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하자, 바넷사가 차가운 시선을 내게 보내며 딱딱하게 말했다.
그 시선이 향한 끝은, 어린애로 잠깐 변한 사이에 바지와 속옷이 벗겨져서 완전히 드러나버린 내 물건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네."
나는 곧장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입었다.
아무튼 그렇게 한차례 소동이 지나가고, 우리는 겨우 식당을 향할 수 있었다.
예기치 못했던 해프닝 덕분인지, 디아나는 바넷사와 얼굴을 마주할 때처럼 긴장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디아나와는 달리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디아나는 어제 일을 전부 기억 못해서 저럴 수 있는 거지만, 나는 아니니까.
아직 방심할 단계는 아니다.
만약 메이드들 중 누구 하나라도 우리가 어젯밤에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면, 메이드들 사이에서 소문이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소문이 퍼졌다면 이 수많은 메이드들 중 누구 하나정도는 수상쩍은 반응을 보일 거다.
물론 자신들의 주인님. 그것도 다름아닌 지고의 대마법사 디아나의 앞에서 대놓고 소란을 피울 배짱이 있는 메이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사람인 이상 하다못해 우리가 지나갈 때 움찔하고 몸을 떤다든지 얼굴을 붉힌다든지 하는 사소한 반응정도는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바넷사의 뒤를 따라가면서 옆을 스쳐지나가는 메이드들의 반응을 주의깊게 살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뭔가 특별한 반응을 보이는 메이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일단 메이드들 역시 눈치를 못챘다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이런 반응이라면 그래도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지금은 더 신경을 써야할 문제도 있으니까.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식당에 들어온 우리를 향해 인사를 하는 레이아의 모습을 보고, 나는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살짝 상기된 얼굴. 뭔가를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시선.
그리고 그런 레이아의 표정을 본 순간, 디아나의 두 눈도 좌우로 맹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디아나로서는 방을 나선 후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 바로 레이아와 만난 것이니, 저런 반응을 보면 긴장을 할 수밖에 없겠지.
게다가 입으로는 아무리 부정한다고는 하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을 거다.
레이아를 만난 이후의 기억이 왜 날아가버렸는지 정도는 말이다.
레이아 앞에서 변태같은 플레이를 하며 이성이 날아갈 정도로 흥분해버렸다.
그리고 흥분한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
응. 나라도 긴장할 것 같다. 아니. 나였으면 벌써 도망갔다.
"으, 으음! 자, 잘잤는가!"
하지만 이런 점은 과연 대마법사님이라고 해야할까?
디아나는 불안해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일단은 태연을 가장하고 레이아의 인사를 받아줬다.
뭐, 살짝 삑사리가 나기는 했지만, 그정도는 애교로 넘어가줄 수 있는 수준이지.
"좋은 아침.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혹시 어제 일 때문에 그래?"
"흐힛!"
아무튼 이대로 디아나에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레이아에게 인사를 하면서 아예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설마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낼지는 생각도 못했는지, 디아나는 완전히 당황해서는 내 옆에서 손을 파닥파닥 움직이며 허둥지둥 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런 디아나를 옆구리에 꼬옥 안아서 진정시키고는, 태연하게 자리에 가서 앉았다.
물론 디아나의 위치는 내 무릎 위다.
"네에. 그게…어제 두 분의 방해를 한 게 죄송해서요."
"읏…!"
레이아의 그 말에, 디아나는 다시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설마 이 녀석, 레이아의 말을 ‘노출 플레이를 즐기는 와중에 방해해서 죄송해요.’라고 해석한 건 아니겠지?
뭐, 죽어도 자기는 노출증이 아니라고 우겨대는 노출증 환자니까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알겠지만 말이야, 좀 침착하라고.
평소에는 나랑 관련된 일만 아니면 침착한 주제에.
아, 이것도 나랑 관련된 일인가.
뭐, 그럼 어쩔 수 없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줄 테니까 제발 여기서 흥분하지만 마라.
아직 디아나의 엉덩이가 맞닿고 있는 부분에 습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엉덩이를 묘하게 달싹거리는 게 괜히 불안했다.
나는 일단 디아나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 허벅지를 몇 번 가볍게 토닥여줬다.
"향…!"
하지만 그런 내 행동을 디아나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까지 야한 짓을 하려는 바보 짓으로 받아들인 건지, 귀여운 소리와 함께 몸을 움찔하고 떨더니 고개를 위로 올려서 날 노려봤다.
아니. 미안. 그런 뜻이 아니었어.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으면 다른 애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일부러 테이블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데를 토닥인 건데, 설마 오해를 살 줄이야.
"괜찮아. 그정도까지야. 디아나도 별로 신경 안 쓰고 있으니까."
디아나가 괜히 오해를 더 하기 전에, 나는 레이아와의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불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레이아가 정말로 우리가 노출 플레이 중이란 걸 알았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주의를 주려고 해도, 나중에 다른 사람들 없는 곳에서 몰래 주의를 줬겠지.
애초에 레이아가 노출 플레이를 알았으면, 저정도 반응에서 끝날 리가 없다.
안그래도 레이아는 거짓말같은 걸 못하고 얼굴 표정에 다 나와버리는 성격이니까.
저 레이아의 표정이 다 알면서 연기하고 있는 거라고 주장하느니, 차라리 아까 바넷사의 반응이 연기였다고 주장하는 게 더 신빙성이 있겠다.
그러니까 레이아가 저렇게 다시금 사과를 하는 건, 그저 레이아가 너무 착해서 그런 것뿐이다.
"하지만 모처럼 구원씨와 디아나씨만의 시간을, 제가 괜히 흥분하는 바람에 길게 붙잡고 늘어져서는 추태를…."
"그정도는 괜찮다니까. 뭐, 그만큼 내 어렸을 때 모습이 깜찍하기도 했고. 그렇지 디아나?"
"음?! 코, 코홈! 음! 그렇다네. 레이아양. 미안해할 필요 없네. 이 자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무시하더라도 말일세. 이 몸은 전혀 기분 상하지 않았으니 더이상 신경쓰지 말게."
그리고 우리의 대화를 통해서, 디아나도 겨우 머리를 식히고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레이아는 정말로 우리가 노출 플레이를 하고 있었단 사실을 깨닫지 못했고, 그저 순수하게 우리 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자기가 채워놨으면서 그렇게 말하기냐."
그리고 디아나의 말을 받아서 너스레를 떠는 것으로, 나는 드디어 어제 사건의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었다.
"셋이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 대화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사라와 마틸다, 실비아는 우리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말이다.
"그럼 마틸다. 신전에는 어떻게 할래? 곧장 갈까?"
아무튼 그렇게해서 식사를 마치고, 나는 곧장 마틸다와 어제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말을 걸었다.
참고로 디아나는 긴장이 탁 풀어지니 피곤이 몰려온 건지, 식사를 마치자마자 잠을 잔다면서 곧장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아무리 힐링 섹스라고 하더라도, 긴장에서 오는 정신적 피로까지는 어쩔 수 없다는 건가.
"앗, 네. 그렇게 해주실래요?"
"그야 물론. 원래는 어제 가려던 걸 나 때문에 못 간 거니까."
"그런…당신이 때문이…으응. 아무튼 그럼 바로 준비하고 올게요."
내 말에 마틸다는 살짝 핑크빛 모드가 되려고 하면서도, 직전에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레이아는? 오늘도 신전에 갈거야?"
"후훗. 네. 그럼 저도 준비하고 올게요."
그리고 식사 전에는 어젯밤 내 어린 모습을 보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추태를 부렸다면서 부끄러워하던 레이아도, 식사를 하면서 겨우 부끄러움이 가신건지 평소대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하고는 식당을 나섰다.
"좋아. 그럼 난 미리 마차를…."
"마차라면 제가 끌고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준비가 필요한 여자들과 달리 딱히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던 나는, 미리 나가서 마차와 마차를 끌어줄 메이드 한 명을 준비시켜 놓기 위해 자리를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날 멈춰세우면서, 아직 식당에서 대기하고 있던 바넷사가 대답했다.
"응? 하지만 너, 일은?"
성에 가는 거라면 모를까, 신전에 가는데에 바넷사가 직접 몰아야하는 커다란 마차는 필요 없다.
아니. 오히려 길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방해만 된다.
그런데 굳이 바넷사가 마차를 직접 끌겠다고?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 의문에도, 바넷사는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어제도 낮동안 내가 끌고 다녔고, 내일은 성에 갈 예정이니 또 다시 바넷사의 시간을 뺏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까지 이렇게 솔선수범해서 나서다니.
얘가 할 일이 없지는 않을 테고, 아하. 얘 설마 나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건가?
그래서 어제처럼 야근까지 각오해가면서 이러는 거야? 그런 거야?
안 된다고. 나랑 같이 있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기쁘지만, 너무 야근을 자주하면 그 아름다운 피부가 거칠어질지도 모른다고.
그런 살짝 닭살돋는 느끼한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바넷사가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바넷사가 이렇게 자기주장을 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럼 같이 갈까?"
"네."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나와 대조적으로, 바넷사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러면서 속으론 나랑 한시라도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니까. 요 귀여운 녀석.
그리고 그렇게 바넷사와 마차가 있는 곳까지 가는 도중, 주변에 아무도 없는 통로에서 갑자기 바넷사가 뒤를 돌더니 갑자기 내 머리를 손으로 공격해왔다.
쾅!
깜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옆에 있는 벽쪽으로 피했고, 바넷사의 그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내뻗은 손의 방향을 꺽어서 그대로 내 머리 옆 벽을 강타했다.
이른바 벽쿵 자세라는 거다.
…나, 전에도 얘한테 이거 당한 적 있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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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 쓰고 기다리다가 깜빡 잠들었네요.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