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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66화 (65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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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층 답파

    심심하다. 아무것도 할 게 없다. 맹렬하게 할 게 없다.

    저택에 돌아오고, 바넷사도 일을 하러 간 지금. 홀로 남은 나는 방으로 돌아와서 멍하니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던전에 가는 걸 하루 미루기까지 했는데, 왜 난 이러고 있는 거지?

    뭔가, 뭔가 할 걸 찾아야돼.

    하지만 사라는 어젯밤 일로 아직도 부끄러워하고 있고, 디아나는 아까 전에 지나가면서 얼핏 보니 마법사 협회 누님들과 같이 마법개발인지 뭔지를 하는 건지 엄청 바빠보였다.

    레이아는 신전에 가버렸고, 마틸다는…마틸다랑 지금부터 같이 저주 해제 작업을 해도 괜찮겠지만, 어차피 내일 같이 신전에 가기로 한 거다. 이왕이면 마틸다와의 저주 해제도 내일 같이하기로 하고, 오늘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딱 4일만 있다가 다시 던전에 가는 건데, 이틀씩이나 낮동안 마틸다하고 보내면 다른 애들이 질투할 수도 있잖아. 마틸다도 괜히 눈치보일 수도 있고.

    하지만 실비아조차도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는단 말이지.

    내가 이렇게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니, 평소라면 어떻게인가 알고 은근슬쩍 나타나서 방안을 엿보기 시작해야 정상인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바넷사까지 불러 확인해본 결과, 실비아는 지금 이 저택에 없다는 모양이었다.

    분명 나랑 같이 돌아왔던 바넷사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건지는 일단 무시하고, 중요한 건 지금 나랑 놀아줄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이렇게 된 이상 레이첼 누님에게…그건 그거대로 이미 늦었단 말이지.

    레이첼 누님이 낮동안 시간을 낼 수 있는 건 점심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으니까.

    바넷사와의 카페 데이트가 끝난 후 저택으로 돌아오는 일 없이 곧장 길드로 향했다면 점심시간에 맞게 도착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은 많이 늦었다.

    그런 고로, 레이첼 누님을 만나러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길드에 가서 잠깐 얘기를 나누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일하는데 괜히 방해하는 것도 미안하고.

    누님도 나하고의 소문으로 꽤나 고생한 모양이니까 더욱더.

    그럼 대체 난 지금부터 뭘…아, 잠깐만. 그러고 보니 레이첼 누님하면….

    방안을 정신사납게 서성이며 필사적으로 뭔가 할 일이 없을지 고민하던 나는, 드디어 할 일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도 전부터 계속 해야지해야지 마음만 먹고, 계속 까먹어서 미뤄뒀던 일을.

    문제는 그 일을 해결하려면 디아나의 방해를 해야된다는 건데…뭐, 괜찮겠지. 설마 큰일 나기야 하겠어.

    지독한 심심함에 몸을 주체못하던 나는, 결국 마법사 협회 누님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디아나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저택 지하에 있는 디아나가 마법공방으로 쓰고 있는 넓은 방으로 가니, 디아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마법사 협회 누님들과 뭔가 분주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 건지, 내가 왔다는 사실을 신경도 못쓰고 있을 정도로.

    대체 뭘 하는 거지? 뭔가 만들고 있는 건가?

    "디아나."

    "음? 후앗?! 자, 자네?! 토와아아앗!"

    문쪽에서 디아나의 이름을 불러보자, 디아나가 고개를 들어서 날 보더니 갑자기 동공을 지진시키고는 이상한 기합성과 함께 힘차게 내게 달려와 몸통박치기를 했다.

    물론 디아나가 그런다고 해서 나한테 뭔가 충격이 전해지는 건 아니었지만.

    "너 갑자기 뭐하냐?"

    "자, 자네야 말로! 갑자기 무슨 일인가?!"

    내 배에 있는 힘껏 스피어를 날린 디아나를 가볍게 받아내고 되묻자, 디아나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내 몸을 문밖으로 꾹꾹 밀어대며 외쳤다.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혹시 바빠?"

    "아닐세! 전혀! 전혀 바쁘지 않네! 자, 이런 곳에 있지 말고 올라가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눠보세!"

    디아나는 삑사리까지 날 정도로 그렇게 다급하게 외치고는, 다시 한 번 내 배에 찰싹 달라붙어서 꾸우욱 하고 밖으로 밀어내려했다.

    어떻게든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다만, 누가 봐도 날 방에서 쫓아내려는 움직임이지, 마법사 협회 누님들에게세 탈출하려는 움직임은 아니란 말이지.

    애초에 요즘에는 디아나도 마법사 협회 누님들과 있는 걸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으니까 말이야.

    같은 저택에서 함께 지내며 생활하다보니 서로 익숙해졌다고 할까.

    디아나도 마법사 협회 누님들이 달라붙는 것에 어느정도 익숙해졌고, 마법사 협회 누님들도 디아나와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예전과 같은 극성 빠순이 같은 모습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마법사 협회 누님들과 같이 있는 디아나를 빼낼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거고 말이다.

    "그럼 누님들. 죄송하지만 디아나를…진짜 잠깐만 빌려갈게요!"

    우와…엄청 노려보고 있어.

    겉으로 대놓고 극렬 빠순이 짓은 안 하게 됐지만, 한시라도 디아나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나는 누님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디아나의 몸을 안아들어 달아났다.

    "이 몸은 잠시 다녀오겠네! 자네들은 하던 일을 계속해주게!"

    그리고 디아나는 그런 누님들의 시선을 눈치 챈 건지 못 챈 건지, 내게 안긴 채로 태평하게 누님들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이쯤 왔으니 그만 놓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안고 갈 셈인가!"

    그리고 저택으로 올라오자, 디아나가 몸을 파닥거리며 저항을 했다.

    또 이런다. 분명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을, 아니. 오히려 좋아했을 행동인데.

    하여간 얘도 요즘 좀 이상하단 말이야.

    이것도 왜 이러는지 조금 알아보고 싶지만, 지금은 일단 됐어.

    어차피 오늘 밤은 디아나의 차례다.

    같이 하루 종일 밤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디아나의 이 이상한 태도의 이유도 캐물어낼 수 있겠지.

    그러니 지금은 우선 디아나를 데려온 이유, 레이첼 누님에 대한 질문이나 하기로 하자.

    "자."

    "음."

    방으로 돌아와서 테이블 의자를 살짝 빼주자, 디아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안고 가는 건 싫어도 이건 또 좋은 모양이다. 하여간 이상한 녀석.

    "그래서, 갑자기 무슨 일인가? 그사이에 이 몸의 품이 그리워지기라도 한 겐가?"

    자리에 앉은 디아나는 아까와 같은 당황한 표정은 전혀 없이, 오히려 여유로운 분위기까지 풍기며 ‘후흐흥’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공방을 나오자 마자 이런 태도라니. 이 녀석, 설마 아래에서 나랑 관련된 뭔가를 꾸미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방금 전 태도가 설명이 되는데 말이야.

    뭐, 좋아. 이것도 일단은 넘어가자.

    "그럴 리가 있냐. 그냥 조금 궁금한 게 있어서."

    "음? 궁금한 것?"

    "응. 레이첼 누님에 관한 건데. 디아나, 혹시 레이첼 누님이 던전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든가, 그런 얘기 들어본적 있어? 아니. 만약 얘기하면 안 될 얘기면 말 안해줘도 돼! 그런 거면 그냥 무시해줘!"

    그래. 디아나에게 할 말이란, 바로 전부터 계속 물어보려고 벼르고 있었던 이 일에 관한 얘기였다.

    솔직히 레이첼 누님이 던전에서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다는 건 이젠 거의 확신으로 변해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레이첼 누님과 오래 알고 지낸, 심지어 누님의 어머니와 친구이기까지 한 디아나라면 분명 그 일을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디아나에게 이렇게 물어봤다는 얘기지만…중간에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깨달은 나는 살짝 말을 덧붙였다.

    생각해보면 지금 내 행동은 여자의 과거를 캐고다니는 행동이 되는 거잖아.

    누님이 내게 직접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는 건, 내게 알려지고 싶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난 그걸 아는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캐내려고 하고 있는 거니까.

    혹시 나 지금 엄청나게 실례되는 짓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음? 레이첼양이 던전에서 소중한 사람을? 이 몸이 알기로 그런 사실은 전혀 없네만."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디아나는 뭔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면서 딱 잘라 그렇게 말했다.

    "어? 없어?!"

    레이첼 누님은 분명 던전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그런 물증만 없을뿐 심증은 굳히고 있었던 나였기 때문에, 디아나의 그 대답에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언젠가 레이첼 누님과 식당에서 데이트 도중 우리 애들이 들어왔을 때, 레이첼 누님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진심으로 결혼을 생각하고 만나는 분이고, 태어나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라고.

    여러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말이었지만, 이 말을 통해 단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해져 있었다.

    디아나는 그때까지 레이첼 누님이 연모의 감정을 품은 상대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는 둘째치더라도.

    그러니 레이첼 누님이 사랑했던 사람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디아나가, 레이첼 누님이 그 상대를 던전에서 잃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또한 어찌보면 당연한 흐름이었다.

    역시 이런 식으로 과거를 캐내서 레이첼 누님과의 진전을 바라는 건 무리라는 건가.

    한편으로는 후련하고 한편으로는 아쉬운 감정을 맛보면서,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아. 어차피 이렇게 과거를 캐지 않더라도, 나는 정정당당하게 누님의 마음을 쟁취….

    "개라면 있네만."

    그렇게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 내 귀로, 디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 응? 지금 뭐라고?"

    "개라면 있다고 했네."

    당황해서 되묻는 내게, 디아나는 다시 한 번 방금 전에 했던 말을 반복해줬다.

    아니. 그렇게 다시 한 번 말해줘도,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던전에서 잃은 소중한 것 말일세. 레이첼양은 던전에서 소중한 애완견을 잃었네."

    내 표정을 보고 내가 전혀 이해못했다는 걸 깨달은 건지, 디아나는 다시 한 번 똑바로 내게 말해줬다.

    개라니. 아니. 모험가들 중에는 애완동물을 모험의 동료로 데려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애완동물이라고 해서 레벨을 올릴 수 없는 것도 아니고, 훈련하기에 따라서는 사람만큼이나 든든한 동료가 되어줄 수 있다.

    그러니 레이첼 누님이 애완견과 함께 던전을 탐험했다고 해도, 그리고 탐험도중에 애완견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한 얘기는 아니다.

    전혀 이상한 얘기는 아니지만….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내가 늑대개들을 사냥하면서 개를 싫어한다고 하니까 상당히 어색한 반응을 보였지.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전에 3계층에서 같이 구출 의뢰를 수행했을 때도, 구출한 멤버중에 견인족이 있지 않았던가?

    그것도 레이아처럼 꼬리나 귀만 튀어나온 인간에 가까운 수인족이 아니라, 전신이 털로 북슬북슬한 동물에 가까운 수인족이.

    "디아나. 혹시 견인족이 아니라…."

    "음. 개였네. 평소에는 늠름하면서도 꼬옥 끌어안으면 털이 북슬북슬한 것이 안는 감촉이 무척이나 좋아서 말일세. 이 몸이 찾아 갈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모습은 또 어찌나 사랑스러웠는지…."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디아나는 레이첼 누님의 애완견과의 추억에 잠기며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너도 좋아했던 거냐.

    아니. 그보다. 진짜로? 레이첼 누님이 던전에서 잃었다는 게, 사랑하는 사람같은 게 아니라, 애완견?

    아니. 그야 레이첼 누님의 그 연애 처음 해보는 것 같은 반응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게 오히려 어색한 얘기기는 하지만 말이야.

    애완견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지만 말이야!

    아니. 난 애완견의 가치를 낮게 보는 게 아니야.

    애견인들이 사람만큼이나 애완견을 소중히 생각한다는 것 정도는, 애완동물을 키워본적 없는 나도 충분히 알아.

    그리고 그런 소중한 개를 던전에서 잃었으니, 또 다시 소중한 누군가를 던전에서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돼.

    그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내 추리가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결국 던전에서 소중한 존재를 잃었고, 그 충격으로 던전에 다니는 날 잃을까봐 두려워서 관계 진전을 망설이는 거라는 골자는 같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지금까지 나하고 진전이 없었던 이유가 애완견을 던전에서 잃은 경험때문이었다니.

    이성은 이해하겠다고 하는데 감정은 납득을 못 한다고 해야할지. 머릿속이 엄청나게 복잡한 기분이었다.

    "으아아아! 역시 납득이 안 돼!"

    그리고 아무래도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없었던 내가 머리를 마구 헤집으며 버럭하고 고함을 지르자, 귀여운 강아지와의 추억에 잠겨있던 디아나는 깜짝 놀랐는지 의자에서 펄쩍하고 튀어올랐다.

    "우오왓! 가,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는 겐가!"

    그리고 눈가에 살짝 눈물을 고인 채, 무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내 머리를 토닥토닥 때렸다.

    아, 미안. 그렇게 많이 놀랐냐?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드디어 연재재개합니다.

    일이란 게 어설프게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니 괜히 할 일만 늘어나게 되서 힘드네요.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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