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665화 (64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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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층 답파

    "네. 주문 확인하겠습니다. 커플 한정 심쿵 두근 러브 러브 스위티 파르페 하나. 맞으신가요?"

    물론 내 입을 막았다고 해서, 주문을 복창하는 웨이터의 입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특이한 이름의 메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단 하나를 시킨 걸 굳이 이렇게 복창하다니. 이 웨이터, 제법이다. 아니. 그냥 접객 매뉴얼대로 행동한 것뿐이겠지만.

    "크으읏…!"

    그렇게 불의의 기습을 당한 바넷사는, 이제 귀까지 빨개져서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그런 바넷사를 보고도, 웨이터는 용서가 없었다.

    "손님?"

    "넷?! 큭!"

    웨이터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는 주문이 끝나지 않는다.

    바넷사는 그걸 깨달았는지 황급히 내 입에서 손을 떼려고 했지만, 물론 그렇게 둘 내가 아니었다.

    나는 내 입을 틀어막은 바넷사의 손을 위에서 덮듯이 잡았다.

    하지만 그것으론 아직 부족했다.

    "크읏…! 잇…!"

    으앗! 얜 대체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애가 뭔 힘이 이렇게 센 거야?!

    "흐읏!"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바넷사의 손바닥을 낼름 핥아 버리자, 바넷사가 섹시한 콧소리를 흘리며 손가락을 움츠렸다. 그리고 겨우 그 팔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크윽…네. 맞습니다."

    스스로 이름을 부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수긍하는 것뿐.

    그것만으로도 부끄러워 죽겠는지, 바넷사는 굴욕적이란 표정까지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어쩌면 방금 전 콧소리가 부끄러웠을 수도 있고.

    "주문 받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 바넷사의 굴욕으로 빨갛게 물든 얼굴까지 감상하고 난 다음에야, 웨이터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 저 웨이터, 제법이다.

    "그래서 아까 하던 말을 계속 하자면, 너도 이제 집사 복이 아니라…."

    "…지금 그 말을 계속하시는 겁니까?"

    웨이터가 가자마자, 나는 바넷사의 손을 내 입에서 떼어주고 다시 아까 하던 말을 계속하기로 했다.

    하지만 바넷사는 뭐가 불만인 건지, 원망 가득한 시선을 내게 보내왔다.

    아니. 무표정이지만. 왠지 모르게 원망이 느껴진다고 할까.

    "응? 뭐 문제라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시치미를 뚝 떼자, 바넷사는 결국 시선을 옆으로 홱 돌려버렸다.

    아, 얘 좀 삐진 건가.

    "아무튼 이제 나랑 종종 데이트도 해야 되는데, 사복도 익숙해져야하지 않겠어?"

    "…딱히 사복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게 빤히 보이는데."

    "그건 옷이 문제가 아니라 시선이…."

    "그게 그거야. 결국 사복 차림의 바넷사가 예뻐서 그렇게 주목받는 거니까. 사복차림일 때 받는 주목에도 익숙해져야지."

    "큿…!"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바넷사는, 내 말을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서는 시선을 내게 돌렸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일단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얼굴로 날 노려보더니, 다시 침음성과 함께 시선을 옆으로 돌려버렸다.

    "말해두는데, 너 앞으로 집사 아닐 때는 그런 차림으로 있어야 된다? 저택에서도 마찬가지야."

    "읏! 저택에서도 말입니까?"

    "당연하지. 그래야 조금은 내 여자라는 자각이 생기지 않겠어?"

    "그런 자각…."

    "아직 별로 없잖아."

    "큭…."

    "그리고 덤으로 내 눈도 호강하고."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유리 테이블 너머 바넷사의 다리로 향하자, 바넷사가 테이블 밑으로 손을 내려서 치마 끝자락을 잡고 어떻게든 무릎까지 덮으려고 애를 썼다.

    "…그게 주목적이신 것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해도 아무 문제없어."

    "……."

    그리고 내 뻔뻔한 대답에, 바넷사는 대답을 하지 않고 안광을 빛내며 날 노려보기만 했다.

    "그리고 뭐, 치마가 여러모로 편하잖아."

    나는 그런 바넷사의 시선을 가볍게 받아넘기며 태평하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속으로는 꽤나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진짜 목적을 말할 때가 됐어.

    자연스럽게.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는 거야.

    "…대체 어디가 말입니까."

    "몰라서 물어? 치마는 구멍 뚫을 필요도 없잖아."

    "읏…! 그런 목적이셨습니까!"

    내 말을 들은 바넷사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눈에 힘을 주며 자신의 엉덩이 부근을 두 손으로 가렸다.

    그 한 마디로 알아듣다니. 역시 대단한데.

    하긴. 바지와 속옷에 구멍이 뚫렸던 당사자니 당연한 건가.

    뭐, 살짝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니. 오히려 잘된 건지도 모른다.

    이걸 이용해서 조금 더 장난스런 분위기를 만들어볼까.

    "너 그러고 있으면 주변에서 괜히 더 의심하는 거 알지? 혹시 엉덩이 속에 뭔가 집어넣고 있는 것 아니냐는…으읍!"

    "이상한 소리하지 마십시오! 흐읏!"

    하지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바넷사의 손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물론, 나도 다시 한 번 그 손바닥을 핥는 걸로 대응해줬다.

    또 섹시한 콧소리를 흘리기는.

    "이상한 소리라니. 바넷사가 먼저 의심 살 행동을 했으면서."

    "먼저 이상한 소리를 한 건 구원님입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여전히 무감정한 말투로 들리겠지만,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바넷사 치고는 상당히 언성을 높아졌어. 이렇게 당황한 지금이라면 은근슬쩍 말해도 괜찮으려나?

    "무슨 소리야. 난 용인족 모습으로 돌아가도 편리할 거란 얘기를 한 건데."

    그래. 실은 바넷사한테 계속 치마를 입히려고 했던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아무래도 꼬리가 있을 땐 치마가 편하니까 말이다.

    물론 구멍을 뚫어놓으면 바지라도 별문제는 없겠지만, 아직 용인족 모습에 거부감이 있는 애 바지를 전부 구멍 뚫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우선 이렇게 치마차림에 익숙해지게 만든 다음, 가끔씩 용인족 모습으로 다니게 만들어서 익숙해지게 만든다.

    이게 바로 내 전략이었다.

    그저 바넷사의 맨다리를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만 치마를 고집한 게 아니었다고.

    "읏…!"

    하지만 그렇게 당황하고 있었으면서도, 내가 그렇게 내뱉은 순간 바넷사는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 눈동자를 진동시켰다.

    마치 주위에 누가 들은 사람이 없는지 두려워하는 것처럼.

    이런. 역시나 용인족 얘기를 밖에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건 아직 무리였나.

    "아니면 뭐야. 혹시 바넷사는 섹스할 생각이라도 한 거야? 나랑 섹스하기 편하도록 바지에 구멍을 뚫는다는 얘기로 받아들인 거야?"

    일단 계속해서 장난스런 분위기를 유지해봤지만, 바넷사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에 굳어져있었다.

    내가 카페에서 대낮부터 이렇게 섹스 섹스 떠들어대는데도 입조차 틀어막지 않는 걸 보면, 바넷사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내 앞에서야 겨우 용인족 모습을 드러내게 됐을 뿐, 바넷사의 트라우마는 여전하다는 건가.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장난인 척 넘어가자.

    "야.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러냐. 만약을 말하는 거잖아. 혹시라도 변신이 풀렸을 때를 가정하는 것뿐이라고."

    "…만에 하나라도, 제가 변신을 풀 일은 없습니다."

    "그건 또 모르는 일이지. 혹시 아냐? 내가 너랑 골목길 같은데서 진하게 섹스를 하다가…."

    "…하아. 그러니까. 그런 걸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계속 섹스라는 단어를 연발하면서 야한 얘기로 몰고가려하자, 바넷사도 겨우 내가 장난으로 그랬다고 받아들일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아니면 내 진짜 의도가 용인족 모습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이란 걸 눈치 채고도, 일부러 눈치 채지 못한 척 내 야한 얘기에 편승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한숨을 푹 쉰 바넷사는, 겨우 몸에서 긴장을 조금 풀고 그렇게 대답해줬다.

    "하지 말라니! 그럴 수가! 넌 나랑 하기 싫은 거야?!"

    "적어도 밖에서는 그렇습니다."

    "내가 부탁해도?"

    "…애초에 그런 부탁을 하지 마십시오."

    "쳇. 너 너무 냉정한 거 아니냐? 살짝은 고민 해봐도 되잖아."

    "고민할 가치도 없습니다. 누가 그런 걸 승낙합니까."

    …너희 주인님.

    아니. 진짜 제대로 된 야외 플레이를 해본 적은 없지만, 내가 마음먹고 진심으로 부탁하면 해줄걸?

    아마 중간부터는 정신 놓고 자기가 더 좋아하면서.

    "뭐, 아무튼 집사 일을 안 할 땐 사복차림. 꼭 치마를 입고 있을 것! 알겠지? 편한 건 맞으니까. 알겠지?"

    "의도가 불순하다고 생각합니다만…생각해보겠습니다."

    결국 섹스하기 좋으니까 치마를 입힌 척 억지로 그렇게 얘기를 완결짓는 내게, 바넷사는 무감정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줬다.

    "주문하신 커플 한정 심쿵 두근 러브 러브 스위티 파르페 나왔습니다."

    그리고 노리기라도 한 듯 정확히 우리 얘기가 일단락 된 타이밍에 맞춰서, 웨이터가 거대한 파르페를 하나 들고 왔다.

    그 파르페를 본 순간, 나는 이 기묘한 음식의 이름이 가지는 의미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쿵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압도적인 사이즈.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큼지막한 하트 모양의 초콜릿.

    장담하는데 건너 건너 테이블에서도 확실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 하트 초콜릿에는, 이것 역시 커다랗게 내 이름과 바넷사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물론 중간에 하트까지 넣어서.

    하트 안에 하트라니.

    아니. 그보다 우리 이름은 대체 어떻게 안 건데?

    나야 그렇다치고, 바넷사는? 설마 내가 바넷사 이름을 부르는 걸 보고 그걸로 써넣은 건가?

    아니면 그냥 디아나의 집사라서 얘도 나름 유명한 건가?

    게다가 파르페가 담긴 컵 모양도 하트.

    같이 건네받은 스푼의 모양도 하트.

    그리고 마치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내는 것처럼, 마법인지 뭔지로 파르페 위에 뿅뿅하고 핑크빛 하트가 튀어오르고 있었다.

    말그대로 여러모로 심장이 쿵쿵 떨리고 두근거리는, 러브 러브하고 스위티한 파르페였다.

    내가 시키기는 했지만, 솔직히 나도 차마 제대로 못 보겠다.

    바넷사를 놀리려고 주문했던 게 설마 내 항마력까지 뚫고 들어올 줄이야.

    "크읏!"

    바넷사도 나와 완벽히 같은 감상이었는지, 일단 황급히 하트모양 초콜릿부터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하트모양 스푼으로.

    "아아…우리의 하트가…."

    "이, 이상한 소리하지 마십시오!"

    미안. 나도 멘탈이 살짝 나가서 그만 헛소리가.

    결국 우리는 대략 두 시간 가까이 악전고투한 끝에, 겨우 그 커다란 파르페를 다 먹어 치울 수 있었다.

    먹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파르페 위로 하트가 뿅뿅 솟아올라서 상당히 부끄러웠다.

    특히 둘이 같은 타이밍에 파르페 쪽으로 얼굴을 가져갈 때는 더더욱.

    "…힘든 싸움이었어."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카페를 나온 우리는, 그저 디저트를 먹은 것뿐인데도 녹초가 되어있었다.

    솔직히 다 때려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들 정도였지만, 나는 굳게 정신을 다잡았다.

    안돼. 즐거워야 할 첫 데이트를 이런 식으로 끝낼 수는 없어.

    "좋아! 아무튼 다음이다! 다음! 이번엔 어딜 갈까?!"

    "…구원님."

    하지만 억지로라도 기운차게 말하는 나와는 달리, 바넷사는 평소보다도 조금 더 낮은 톤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만약 돌아가고 싶다는 소리면 승낙 안 해줄 거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집사로 돌아가야할 때입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은 시간 비우라고 했잖아?"

    "…설마 그…데이트를 할 거라고는 생각못했기 떄문에, 하루를 통째로 비우지는 않았습니다."

    바넷사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얘 처음에는 내가 섹스할 테니까 시간 비우라고 한 줄 알았지.

    아니. 그땐 그런 뜻으로 비우라고 한 게 맞았지만.

    "잠깐만. 그건 그것대로 자존심 상하는데. 너 나랑하는 섹스가 설마 몇 시간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한 거야? 네가 아직 내 진심을 안 봐서 모르는 모양인데, 내가 진심만 되면 하루종일도 할 수 있거든?"

    "…죄송합니다."

    내 살짝 장난스런 말에, 바넷사는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차림은 아직 사복차림이라도, 마음가짐은 벌써 집사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이렇게 솔직히 사과하면 괜히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

    "아니. 사과할 필요는…내가 미안하지. 괜히 첫 데이트를 이런 식으로 끝내서."

    "…아닙니다.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미안해하는 내게, 바넷사는 드물게도 솔직하게 그렇게 말해줬다.

    "하는 수 없지. 오늘은 이만 돌아갈까. 다음번엔 꼭 하루를 통째로 비워두라고. 만약 섹스하겠다는 뜻으로 알아들어도. 나 진짜 하루종일 할 수 있으니까."

    "…거리에서 그런 말은 삼가십시오."

    그렇게 집사로 돌아온 바넷사와 실없는 얘기를 나누며, 우리는 저택으로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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