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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64화 (64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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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층 답파

    "으음…. 역시 그것보다 살짝만 더 짧은 치마를…."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를 옷을 갈아입은 바넷사를 보며, 나 역시 몇 번째 하는 건지 모를 똑같은 말은 반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계속 갈아입히면서 점점 더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살짝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이 날 가지고 패션쇼를 했을 때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아.

    "…큭! 여기서 더 말입니까…!"

    그리고 내 주문을 들은 바넷사는 치마 밑자락을 손으로 잡아당기며,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는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처음에는 발목까지 내려오던 롱스커트를 입었던 바넷사였지만, 계속해서 조금만 더 짧은 치마를 입을 것을 부탁하는 나에 의해서 지금은 치마 밑자락이 무릎 위에도 닿지 않는 길이의 치마까지 입게 됐다.

    덕분에 그 늘씬하고 멋진 종아리가 훤히 드러나 있었고, 그뿐만이 아니라 허벅지의 아래쪽까지 힐끔힐끔 엿보이는 수준까지 됐다.

    물론 나는 그 정도에서도 만족하지 않았지만.

    역시 다리가 긴 애들은 미니스커트가 잘 어울린다니까.

    내 여자들 중 장신의 롱 다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라지만, 바넷사도 그에 뒤지지 않는 각선미를 뽐내고 있었다.

    오히려 키만 보면 바넷사가 훨씬 더 크니까 말이야.

    사라가 여자치고 큰 키라면, 바넷사는 남자 키를 기준으로 놓고 봐도 제법 큰 키니까.

    같이 서있으면 나랑 눈높이가 얼추 맞을 정도니까 말 다했지.

    그리고 그 키에 걸맞게 다리도 긴 우리 집사님의 다리는, 평소에는 집사 복으로 꽁꽁 숨겨두고 있었던 게 아까울 정도로 멋졌다는 말이다.

    뭐, 나는 벌써 몇 번이나 벗은 몸도 본 적이 있으니까, 바넷사의 다리가 예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응. 살짝만 더 짧게 입어보자. 응?"

    "…대체 어느 정도 길이를 원하시는 겁니까?"

    나는 부탁하는 말투로 바넷사를 어르고 달래며 다시 한 번 더 갈아입게 만들려고 했지만, 이미 이런 내 부탁에 몇 번이나 당한 바넷사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내게 보내면서 곧장 갈아입으려 들지 않았다.

    내가 이런 식으로 마지막에는 초미니 스커트를 입히려 한다는 사실을, 바넷사도 슬슬 눈치 채버린 모양이다.

    "대충 이정도?"

    바넷사의 질문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옷걸이에 걸려있던 미니스커트를 가리켰다.

    그리고 길이가 내 손바닥 한 뼘보다 살짝 더 긴 그 스커트를 보며, 결국 바넷사도 폭발하고 말았다.

    "큭!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을 수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아니. 뭘 이제와서 부끄러워하고 그러냐. 네가 전에 줬던 그 메이드 복이랑 비슷한 길이잖아."

    "그건 열대 지방의…!"

    "아무튼 입을 수 있는 길이란 거잖아?"

    실제로 내 앞에서 한 번 입기도 했었고.

    뭐, 그때는 그것 말고는 달리 입을 옷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거기도 하지만.

    그때는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당당히 입었던 주제에 뭘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는 거야.

    뭐, 그때도 겉으로만 당당할 뿐 사실은 속으로 부끄러워하고 있었고, 내가 그걸 눈치 못 챘을 뿐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으읏…!"

    내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말하자, 바넷사가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던 두 손을 불끈 쥐고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후하핫. 어떠냐. 얼굴에 철판 깔고 대응하기. 직접 당해보니 억울해 죽겠지?

    "자, 자. 거기서 가만히 서있지 말고 어서 다음 옷으로 갈아입어봐. 아, 이 정도 길이다. 이 정도 길이."

    "크으읏…!"

    나는 바넷사의 안광에도 겁먹지 않고, 오히려 놀리듯이 방금 가리켰던 치마 길이를 강조하며 바넷사를 재촉했다.

    그리고 바넷사는 날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도, 결국 다시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사실 바넷사가 부끄러워하는 데에는 이유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나는 길이정도만 지시하고, 직접 옷을 고르는 건 바넷사인 거다.

    스스로 입을 미니스커트를 직접 고르고, 내게 평가까지 들어야 하는 상황이 부끄러움을 더욱 자극하는 거겠지.

    아무튼 바넷사는 미니스커트를 재빨리 골라 들어서 다시 탈의실로 들어갔고, 이번에는 다른 옷에 비해서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입기 편한 것만 따지면 오히려 지금까지 입었던 옷 중에서 제일 편할 텐데 말이야. 뭐니 뭐니 해도 면적이 작으니까.

    입어보니 생각보다 너무 짧은 바람에 나오질 못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는 건가?

    "바넷사아! 아직이야?!"

    "…다 됐습니다."

    결국 내가 바넷사를 재촉하고 나서야, 바넷사는 겨우 탈의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전과는 달리 상당히 차분해진 표정인 걸 보니, 아무래도 안에서 마인드 컨트롤이라도 좀 하고 온 모양이었다.

    "휘이. 멋진데. 환하게 드러난 허벅지가 눈부시…."

    "크윽!"

    뭐, 그 마인드 컨트롤도 내 말 몇 마디에 순식간에 깨졌지만.

    바넷사는 얼굴을 붉히며, 두 손으로 어떻게든 허벅지를 가려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게 다 가려질 리가 없었지만.

    오히려 묘하게 더 흥분되는 모습이었다.

    "예쁘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짧네. 딴 놈들 눈 호강을 이렇게까지 시켜주기도 싫고. 역시 방금 전에 입었던 길이 정도가 적당하네."

    하지만 바넷사가 너무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바넷사에게 굳이 치마를 입히려고 했던 또 다른 목적과도 부합하지 않아서, 나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왜 입으라고 한 겁니까!"

    바넷사는 그런 내 미소를 보고 자길 가지고 논 거라고 생각했는지, 슬슬 폭발하려는 조짐이 보였지만 말이다.

    "에이. 입어보기 전엔 몰랐지. 그리고 내가 강제로 입힌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 너도 자기가 직접 골라서…바넷사야. 그 주먹은 뭐냐? 설마 때리려고?"

    "…안됩니까? 지금은 집사가 아니라 여자 친구의 신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엄살을 피우는 내게, 바넷사가 부끄러움이 한계를 넘어서서 오히려 냉정해진 표정으로 날 향해 무뚝뚝하게 말했다.

    …어, 어라? 잠깐만. 그 얘기가 그런 식으로 쓸 수 있게 되나?

    "야. 잠깐만. 진정해. 냉정을 되찾아."

    "전 지금 지극히 냉정합니다."

    "아냐! 그런 말 하는 놈치고 냉정한 놈은 한 명도 없어! 진정해! 여자 친구가 예쁜 차림으로 있는 걸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했던 게 그렇게 잘못은 아니잖아?!"

    "…읏! 또 그렇게…!"

    내 변명을 들은 바넷사는, 그런 말만을 남기고는 황급히 뒤를 돌아 탈의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또 다시 꽤나 시간이 걸린 후 나온 바넷사는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초미니 스커트를 입기 전에 입었던, 무릎 위까지 오는 길이의 치마를 입은 채로.

    "아무튼 옷은 이거면 되는 겁니까."

    "네. 아름다우십니다."

    아무래도 이 이상 놀리는 건 신변에 위협이 될 것 같아서, 나는 이번엔 바넷사의 질문에 성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게도 방금 전 차림보다 노출은 살짝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나가던 남자들이 군침을 흘리면서 뒤돌아볼 만큼 예뻤다.

    결국 옷은 노출이 많다고 다 좋은 게 아니라는 거다.

    "크읏!"

    뭐, 이건 이것대로 부끄러운 건지 엄청 노려봐졌지만.

    "…그럼 이제 구원님 차례로군요."

    그리고 내 최종승인을 받은 바넷사는, 마치 드디어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는 것처럼 내 앞에 섰다.

    하긴. 바네사한테는 데이트에 어울리는 차림이 아니라면서 갈아입게 해놓고, 난 천 옷인 채로 있을 수도 없으니까.

    실은 인벤토리에 천 옷 말고도 우리 애들이 사준 옷 몇 벌이 들어있기는 했지만, 옷 가게에서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 가는 건 비매너가 되겠지?

    나도 일단 여신님의 사자라는 신분이 있으니, 되도록 그런 점은 주의하지 않으면.

    "응. 그럼 맡길게. 골라줘."

    "…여기 있습니다."

    지금부터 반격이 시작될 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자, 바넷사는 몇 초 망설인 끝에 내게 옷 한 벌을 내밀었다.

    완전히 내 예상대로였다.

    "어때?"

    "…좋습니다."

    그리고 내가 곧장 갈아입고 나오자, 바넷사는 무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즉, 이런 거다. 방금 전의 복수로 바넷사도 날 갈아입히면서 괴롭히고 싶었겠지만, 그 너무나도 뛰어난 안목 덕분에 순식간에 내게 잘 맞는 옷을 고르고 끝나버렸다는 얘기다.

    뭔가 착잡함이 느껴지는 바넷사의 표정만 봐도 명백했다.

    능력이 너무 뛰어나면 이런 게 문제네.

    "뭘 그런 표정을 짓냐.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랑 지금부터 데이트하는 건데."

    "……."

    나는 자신의 유능함에 착잡해하는 바넷사를 보며, 멋진 미소로써 기운을 북돋아주기로 했다.

    물론, 돌아오는 건 완벽히 무표정한 시선뿐이었지만.

    "야. 무표정 무반응으로 응대하지 마라. 나 상처받는다? 네가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 유리 하트로 유명했던…."

    "…자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야 자랑이 아니니까. 그래서? 멋있지 않다고? 미리 말해두는데, 대답을 잘못하면 내 섬세한 유리 심장이…."

    "…습니다."

    결국, 내 끈질김으로 인해 바넷사의 무표정은 무너졌다.

    "잘 안 들리는데?"

    "…멋…있습니다."

    바넷사는 살짝 고개를 대각선 아래쪽으로 숙여서 시선을 피하고는, 조그만 목소리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 옷을 고르는 과정에서도, 복수는커녕 다시 한 번 당하기만 한 바넷사였다.

    지금까지는 쭉 내가 당하고만 살았으니까, 가끔은 이런 날이 있어도 괜찮잖아?

    예전에는 언젠가 울리겠다고 다짐했을 정도였으니까.

    뭐, 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라는 거다.

    "음. 그럼 그렇지! 하긴 바넷사는 원래부터 나한테 홀딱 반…으갸가각!"

    "다 골랐으면 계산이나 하러 가시죠."

    "잠깐! 그전에 팔! 야! 이건 팔짱이 아니니까! 관절기니까! 야! 듣고 있냐?! 너 주인님…!"

    "지금은 애인입니다."

    "너 왜 이럴 때만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말하는 건데?! 야! 진짜로 부러질…!"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겨우 옷을 사입고 옷가게를 빠져나와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됐다.

    객관적으로 보면 옷가게에서도 그러고 쇼핑한 것도 충분히 데이트였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저걸로는 부족해. 좀 더. 좀 더 커플다운 짓을 하고 싶어! 바넷사가 좀 더 부끄러워 죽을만한 짓을!

    물론 커플다운 짓을 하겠다는 의욕만 충만할 뿐, 뭔가 구체적인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 그러고 보니 전에 우리 애들이랑 카페에 갔을 때….

    좋아. 첫 목적지는 거기로 할까.

    "…이런 곳에 오는 건 처음이군요."

    카페에 도착하자, 바넷사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참고로 바넷사는 지금 옆에서 제대로 팔짱을 끼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치마가 신경 쓰이는 건지 안절부절못하면서.

    치마도 치마지만, 주위의 시선이 쏠리는 게 상당히 부담되는 모양이었다.

    뭐, 차려입은 바넷사는 엄청 예쁘니까 당연한 얘기다.

    물론 집사 복 차림도 근사하고 멋있지만, 역시 이렇게 제대로 꾸민 것하곤 차원이 다르지.

    "평소 집사 복을 입고 있을 때처럼 당당하게 있으라고. 여신님의 사자를 손에 넣은 여자로서."

    나는 신사적으로 바넷사의 앉을 자리의 의자를 빼주고, 바넷사를 앉힌 후 마주보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일부러 부담주시는 겁니까?"

    "조금은?"

    "……."

    내가 장난스럽게 대답하자, 바넷사는 살짝 눈에 힘을 주고 날 바라봤다.

    그러니까 그거 이제 안 무섭대도 그러네.

    "어차피 나 없이 너 혼자 있었어도 충분히 주목 받았을 거니까, 바넷사 너도 이런 시선에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나는 바넷사의 안광을 미소로 흘려 넘기고는 은근슬쩍 그런 말을 내뱉은 후,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뜻…."

    "아, 네. 커플 한정 심쿵 두근 러브 러브 스위티 파르페 하나 주세요."

    "…뭘 시키시는 겁니까?!"

    "응? 여기 이 메뉴 말이야. 커플 한정 심쿵 두근 러브 러브 스위티 파르페."

    "크, 큰 소리로 말하지 마십시오!"

    내가 일부러 살짝 목소리를 높아서 말하자, 바넷사는 손을 뻗어서 내 입을 아예 틀어막아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살짝 안심했다.

    아니. 바넷사가 부끄러워하는 반응을 보려고 일단 시키기는 했는데, 부끄럽다고. 뭐야 저 이름. 뭐어 심쿵이고 뭐가 두근인 건데?

    이름만 봐서는 대체 뭐가 들어가는 음식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고.

    얼마나 쪽팔린 이름이었으면 전에 우리 애들끼리 왔을 때도 다들 언급조차 안 하고 넘어갔을 정도였다고. 분명 메뉴판에서 발견 했을 텐데도.

    덕분에 내가 지금 이렇게 써먹고 있는 거지만.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낮에 연참을 하겠다고 했는데 이 시간에 하게 됐네요.

    잠 푹 자고 일어나서 복싱 경기 보고 나서 썼더니, 한 편을 다 썼을 땐 이미 저녁에 가까워진 시간이 되어버려서 그냥 한 번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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