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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55화 (63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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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층 답파

    "역시나. 그렇게 예쁜 여자들만 주렁주렁 데리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정말 최악이야!"

    "맞아! 아무리 자기가 잘생겼고 여신님의 사자고 성자님이라고 해서 그렇게나! …지고의 대마법사님에 추기경님. 바벳 백작가의 영애에 저기 저 사람도 길드장의 딸인 거지? 성에도 자주 드나들 정도로 공주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모양이고…역시 밤에도 굉장한 걸까?"

    "그야 당연히 끝내주겠지. 우리 클랜에 새로 들어온 신참 얘기 들었어? 걔는 아직 레벨이 낮아서 신전에서 성교육도 받을 수 있잖아. 그래서 그 소문의 영상도 봤다던데, 얘기 들었던 이상으로 엄청나데. 상대하는 여자도 얼굴은 안 보이지만 그 환상적인 몸매를 봐서는 상당히 고레벨인 것 같은데도, 제대로 저항다운 저항도 못해보고 성자가 건드릴 때마다 연속으로…으읏! 지, 지금 그런 얘기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성자님은 우리 여자의 적이라고! 적!"

    "하지만 고레벨이 돼서 예뻐졌을 때 만약 성자님이 접근해오면…."

    "그땐 당연히 첩이든 정부든 섹스프렌드든 뭐든 돼야지! 그걸 말이라고 해!"

    "중요한 건 지금의 우리한테 성자님이 다가올 일은 절대 없다는 거지만."

    "맞아! 중요한 건 지금이잖아! 지금! 우리 저 레벨 모험가는 거들떠도 안 보는, 여자를 외모로만 판단하는 최악의 남자! 여신님은 어째서 저런 남자를 자신의 사자로 보내신 걸까?!"

    "그야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너도 방금 말했잖아."

    "나, 나도 여신님의 선택을 의심하는 건 아니라고! 그래서 너희는 성자님이 여자의 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거야 당연히 최악이라고 생각…."

    하아….

    주변에서 들려오는 대화소리에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올 뻔했다.

    물론 안내원으로서 그런 실태를 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꾹 참고 겉으로는 영업용 스마일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안내원은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던전 탐험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존재다.

    괜히 이쪽이 우울한 표정을 지어서, 지금부터 던전에 들어가려는 눈앞에서 파티등록을 신청하고 있는 모험가의 일진을 사납게 만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안내원으로서의 책임감과는 별개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뿐만이 아니다. 길드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내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저레벨 모험가들끼리 저와 같은 소문을 속닥이는 게 들려오는 거다.

    구원씨가 여자를 얼굴만으로 판단한다는 소문은, 저레벨 모험가들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길드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정도가 되어있었다.

    소문이 이렇게나 빨리 퍼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여신님의 사자에, 레벨 보정을 떼어놓고 봐도 눈이 돌아갈 정도의 미남에,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성격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상당히 털털하고 소박한 성격이다.

    그럼 지위에 걸맞게 권위적인 성격인가?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 여자들한테 하는 걸 보면 여자한테 져주는 성격이다.

    저레벨 여자 모험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이상 백마탄 왕자님에 어울리는 남자는 없을 정도로 완벽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남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문이 더 극성인 것인 거다.

    여자를 외모로만 본다. 즉, 다시 말해서 저레벨 여자는 구원씨의 눈에 들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말이 된다.

    언젠가 이상적인 백마 탄 왕자님이 자신을 데려가주는, 여자라면 누구나 동경할만한 상황을 이제는 꿈조차 꿀 수 없게 된 저레벨 모험가들이 저렇게까지 집착적으로 구원씨를 험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점이 있다고 한다면, 구원씨를 향한 안 좋은 소문이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왜곡된 욕망을 원동력으로 퍼지고 있는 만큼, 소문이 이 이상 악화되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일까.

    구원씨의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들은 저레벨 여자 모험가들이라면, 구원씨를 그 누구보다도 동경하고 있는 것 또한 저레벨 여자 모험가들이니까.

    배신감과 실망감으로 욕을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동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만큼, 너무 심한 욕을 할 수는 없는 거다.

    물론 그 험담을 하루 종일 계속 듣게 되는 입장으로서는 견디기 힘들었지만.

    소문의 시발점이 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저런 헛소문이 퍼지는 걸 그냥 내버려두다니. 구원씨도 참 너무 무신경하다니까.

    디아나님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래. 구원씨에게 달라붙는 여자가 적어질 거라는 이유로 저런 소문을 내버려 둔다니.

    물론 디아나님은 아마 이렇게 될 걸 예상했을 거다.

    소문이 퍼지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악화되지는 않을 거라고.

    가끔 들리는 디아나님 자신에 대한 안 좋은 소문 역시도 대부분 그런 식이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다른 여자들이 달라붙는 걸 방지하고 싶다는 마음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충분히 이해가 됐다. 특히나 사방에서 구원씨의 얘기가 들려오게 된 요즘은 더더욱.

    첩이든 정부든 섹스프렌드든 뭐든 되겠다니.

    혹시 내가 첩이라는 위치는 불안하단 이유로 튕긴 걸 알고 은근슬쩍 디스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건 그냥 변명이었을 뿐인데.

    사실은 구원씨와 정말로 그런 관계가 됐을 때, 만약 구원씨를….

    속으로 누구한테 하는 건지 모를 그런 변명을 할 정도로, 소문을 쑥덕이는 여자들은 구원씨가 말만 하면 간이든 쓸개든 다 빼줄 기세였으니까.

    구원씨의 파티 여러분들은 저런 모습을 아마 상당히 옛날부터 의식하며 봐왔을 거니, 그야 경계심이 그렇게 강해지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구원씨는…내가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자기 좋다는 여자를 잘 거절 못하는 성격인 것 같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나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 험담을 계속 듣고 있는 건 불편해.

    차라리 내가 나서서 뭐라고 할까?

    아니. 하지만 그러면 이번엔 길드장의 딸이 모험가들을 자기 맘대로 주무르려 한다는 소문이 퍼질지도….

    길드장의 딸이 이렇게 평범하게 안내원을 하기 위해서는, 보기보다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길드원들의 공용 기숙사에 묵는 것도 그 일환으로, 결코 길드장의 딸로서의 권위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말도 행동도 더 조심해서 행동해야하는 입장인 거다.

    만약 나한테 안 좋은 소문이 조금이라도 나게 되면, 안 그래도 내가 안내원 일을 하는 걸 탐탁지 않아하는 엄마가 당장이라도 그만두게 할지도 몰라.

    그럼 대체 어쩜 좋지. 이대로 구원씨 험담을 계속 듣고 있고 싶지는 않은데.

    "야! 거기! 너희 지금 뭐라고 했어?!"

    그렇게 속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을 때, 귀에 익숙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네?! 다, 당신은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인…?!"

    "그래. 꼴에 내 얼굴은 아나 보네? 그래서, 구원이 뭐 어쩌고 어째?!"

    "아, 아니. 저기, 그게…."

    오랜만에 길드에 얼굴을 보이신 앨리시아씨는 화통한 목소리로 방금 전까지 구원씨의 험담을 하던 무리에게 윽박지르고 있었다.

    아라크네 클랜과 성자 일행이 친한 관계라는 건 소문을 좋아하는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퍼진 사실.

    험담을 하던 사람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상당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 목구멍 막혔어?! 똑바로 말 못해?! 너희도 나름 모험가일거 아냐?! 길드에서 그렇게 떠들어 댄 건데, 설마 못할 말을 했을 리는 없을 거 아냐! 나도 궁금하니까 한 번 다시 한 번 말해달라는데, 왜?! 내가 못 할 부탁했어?! 앙?!"

    앨리시아씨. 그런 식으로 부탁하면 설령 험담을 하고 있던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겁먹어서 제대로 말하기 힘들 거예요.

    그렇게 생각했던 나였지만, 굳이 안내원석을 벗어나서 앨리시아씨를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쌤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 저기…그러니까…저흰 어디까지나 소문을…."

    "그러니까 그 소문이란 녀석이 나도 궁금하다고! 오랜만에 길드에 행차한 거라서 말이야! 소문에 어두운 나한테 정보 좀 주지?! 괜찮은 정보면 쏠쏠하게 사례도 해줄 테니까!"

    "그…그게에…."

    앨리시아씨에게 윽박질러지고 있는 모험가들은 이제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됐다.

    사실 앨리시아씨도 위치가 위치인 만큼, 저런 식의 행동은 거대 클랜이 약소 모험가 파티를 핍박한다는 식으로 소문이 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앨리시아씨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게 뭐?!"

    "흐윽…성자님이…그러니까…여자를 외모로…."

    "구원 걔가 여자를 외모로만 판단한다고?!"

    "그, 그러니까 저흰 어디까지 소문을…."

    "야. 너희 눈엔 내가 못생겼냐?"

    다시 한 번 구차하게 변명하는 모험가들에게, 앨리시아씨는 갑자기 정색을 하며 뚱딴지같은 말을 꺼냈다.

    "네…네에?"

    "너희 눈엔 내가 못생겨 보이냐고 묻잖아!"

    앨리시아씨…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히익! 아, 아뇨! 엄청 아름다우십니다!"

    "아첨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

    "정말입니다! 정말로 아름다우세요!"

    "근데 이런 나도 구원한테 고백했다 차였는데? 너희 말대로 구원이 여자 외모만 보는 쓰레기면, 내가 고백하자마자 군침 질질 흘리면서 받아줘야 되는 거 아니야?"

    "네, 네에…?"

    그리고 앨리시아씨의 이어지는 폭탄 발언에, 모험가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런 반응을 보인 건 그 모험가들뿐만이 아니었다.

    네에에에?!

    애, 앨리시아씨가 구원씨에게 차여…? 그 구원씨가 자기 좋다는 여자를 차?! 그것도 저렇게 예쁘고 친했던 사람을?! 아니. 앨리시아씨는 대체 언제부터 구원씨를…?!

    험담을 하던 모험가 무리와, 주변에서 엿듣던 모험가들, 그리고 나까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 전원이 그렇게 패닉상태에 빠지든 말든, 앨리시아씨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차였다고! 그러니까 구원은 여자를 얼굴로만 판단하는 쓰레기가 아니야! 똑똑히 알아둬! 얘들뿐만이 아니야! 너희 전부다 마찬가지야! 만약 다음에도 그런 이상한 소문이 내 귀에 들려왔다가는! 내 외모를 뒷담 깠다는 걸로 알아듣고 찾아가서 죽여 버린다!"

    눈앞의 모험가들뿐만이 아니라 주변 전체를 둘러보며 당당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앨리시아씨는 그러고도 분이 다 안 풀린다는 표정으로 씩씩거리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여, 여어. 레이첼. 오랜만. 파티 등록하러 왔는데. 전처럼 저 셋이랑 같이 4계층으로 갈 거야."

    그리고 내게 다가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씩씩하게 말하는 앨리시아씨는, 말투와는 달리 그 커피색 피부 위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네, 네에. 어서 오세요. 앨리시아씨. 파티등록 말이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도 방금 전 앨리시아씨의 폭탄발언에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어떻게든 안내원 업무는 반사적으로 해낼 수 있었다.

    앨리시아씨도 분명 내가 구원씨와 그런 관계라는 걸 알 텐데….

    대,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지?!

    위, 위로를…! 아니. 내가 그러면 이상한가?! 그럼 구원씨의 험담을 막아줘서 감사를…! 그, 그것도 이상한가? 괜히 구원씨 애인이라고 티내는 것처럼 보이나?

    아, 아으으! 어, 어쩌면! 어쩜 좋아!

    "그…레이첼. 너도 방금 내가 한 말 들었지?"

    "흐엣?! 네, 네헷?! 그, 그게…!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당황할 거 없어. 다 끝난 얘기니까. 그보다 그게, 방금 전에 있었던 일, 그 녀석한테는 비밀로 해줘라."

    당황한 나를 오히려 다독여주면서, 앨리시아씨는 여전히 살짝 붉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네? 하지만…."

    이미 주변 사람들한테 다 들리도록 외친 거니, 굳이 제가 말 안 해도 소문 엄청나게 날 텐데요?

    특히 구원씨가 외모만 본다는 소문이 부정된 거니, 다시 신데렐라 드림의 희망이 생긴 저레벨 모험가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소문이 퍼질 거다.

    "나도 알아. 하지만 알다시피 그 새끼는 조금 둔하잖아? 그리고 길드에서는 레이첼 말고는 제대로 얘기도 거의 안 하는 것 같고. 그러니까 레이첼만 입 다물고 있으면 아마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그 뭐냐. 괜히 내가 그 새끼 험담하는 거에 화냈다는 얘기를 들으면, 내가 아직도 미련이 있는 것처럼 보일 거 아냐."

    그렇게 말하는 앨리시아씨의 표정은, 내 눈에는 아직도 구원씨를 좋아하는 사람의 그것처럼 보였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생활 패턴을 바꾼 지 얼마나 됐다고, 민속놀이 한 번에 다시 이렇게 되어버리네요.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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