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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53화 (63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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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층 답파

    잠깐 내려가서 5계층의 모습을 보고 오기로 한 우리는, 근처에 있던 통로로 헤엄쳐나갔다.

    직경이 20미터는 될 것 같은 넓은 통로는, 우리 파티 전원이 나란히 헤엄치고도 남을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대략 30분정도, 상당한 시간을 헤엄쳐간 끝에, 우리는 겨우 수면 밖으로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며칠 만에 겨우 얼굴에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버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래도 4계층에서 이어지는 통로는 5계층의 호수가 출구로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어쩐지 통로가 넓은 것 같더라니.

    하긴. 물에서 다시 육지로 나가는 거니까, 이런 구조가 타당한가.

    그렇게 단순히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엄청나게 위화감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왜 우리가 수면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거지?

    아니. 솔직히 4계층 전체가 물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살짝 의아하기는 했다.

    5계층은 다시 평범한 숲속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래도 던전은 기본적으로 뭐가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다.

    애초에 각 계층마다 180도로 바뀌는 기후부터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곳이니까.

    하지만 진짜로 이렇게 되다니.

    아니. 혹시 오는 도중에 내 감각이 뒤틀렸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런 생각에 맵을 열어 확인까지 해봤지만, 역시나 내 감각은 정상이었다.

    5계층부터 중력이 뒤바뀌어있었다.

    그래. 저기 위…아니. 여기선 아래쪽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길드에서부터 4계층까지, 우리는 계속 아래를 향해 내려왔었다.

    그리고 4계층에서 여기로 오기위한 통로를 지날 때도, 우리는 일단 아래를 향해 잠수해나가고 있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거다.

    통로가 U자로 꺾인 것도 아니다. 맵을 확인해본 결과, 통로는 확실히 일자 형태로 이어져있었다.

    "디아나. 이건…."

    "음. 역시나 자네는 바로 눈치 챈 모양이구먼."

    내가 이름을 부르자, 디아나는 기특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내밀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렇다네. 여기 5계층부터는 일류 모험가들만이 발을 디딜 수 있는 곳. 일명 등산 코스의 시작일세."

    "네? 등산? 아앗! 그러고 보니 저희, 어느 샌가 위를 향해 헤엄치고 있었네요?!"

    그리고 디아나의 그 말을 듣고, 레이아가 귀를 쫑긋 세우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귀여우시다.

    "음. 이곳부터는 중력이 반대로 되어있으니 말일세. 더 아래 계층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위를 향해야 한다는 것일세."

    엄청나게 이상한 표현이었지만, 디아나의 말이 정확했다.

    아래계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위를 향해야 한다.

    전에 의뢰로 왔을 때 이곳 계층의 주인인 와이번까지 잡고 왔었지만, 5계층은 계층 전체가 거의 평지에 가까운 숲이었기 때문에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디아나는 중력이 뒤바뀐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어디까지나 던전에서 흔히 일어나는 지형변화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확실히 그랬다.

    위아래가 바뀐 게 신기한 사건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만한 요소는 없었다.

    나무가 위에서 아래를 향해 자라있다든가, 발은 땅을 밟고 있는데 중력은 위로 느껴진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마치 나 자신이 작은 요정이 된 것 같은 이 거대한 풍경에만 익숙해지면, 평소 하던 대로 몬스터를 잡고 다음 계층을 향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아, 그래. 풍경! 일단 물 밖으로 나가자."

    우리는 일단 이 호수 밖으로 나가서 천천히 풍경을 둘러보기로 했다.

    아직 입구 근처고, 몬스터가 튀어나오면 다시 호수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니 그다지 위험할 것도 없다.

    "정말로, 듣던 대로 굉장하네요."

    "네. 역시 압도되네요."

    그리고 물 밖으로 나가서 배율이 이상해진 것 같은 5계층의 풍경을 천천히 둘러보며, 레이아는 감탄에 가까운 탄성을 내질렀다.

    마틸다 역시도 위에서…아니. 아래에서? 아으 헷갈려! 아무튼 4계층 주인을 잡고 한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인지, 5계층의 풍경에 압도당하는 모습이었다.

    "…흐응."

    그리고 또 한 명. 우리 파티에서 5계층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라는 여전히 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래서, 감상은."

    "왜 구원이 그렇게 잘난 척 하는 표정을 짓는 거야…. 감상이라고 해도 딱히. 크다고 알고 온 거니까. 뭐, 이런 거네. 라고 밖에는."

    내가 다가가서 감상을 묻자, 사라는 살짝 한숨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또, 또 쿨한 척 한다. 솔직하게 자연의 거대함에 압도되면서 오빠 품에 안겨도 된다고?"

    "바보. 구원은 그냥 내가 안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잖아. …뭐, 확실히 굉장한 광경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사라는 내가 원하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이 해준다는 느낌을 풀풀 풍기며 가볍게 내 품에 살짝 안겼다가 다시 금방 떨어져버렸다.

    하여간 보는 눈이 있다고 부끄러움은 엄청 탄다니까.

    뭐, 이번엔 그래도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한 거니까, 이정도로 만족하기로 할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라 역시도 이 광경에는 압도되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시골에서 할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하면서 자란 사라니, 이런 거대한 자연에는 뭔가 더 느끼는 바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뭐, 아무튼 5계층은 이런 모습이란 거야. 말해두지만, 풍경만 이런 게 아니라 몬스터들도 하나 같이 크니까 말이야. 위…아래…전 계층! 그래! 전 계층까지 있었던 대형 몬스터 정도 크기는 여기선 일반 몬스터급이니까. 크라켄 크기 정도의 몬스터도 심심찮게 보이니, 여기부터는 더 주의를 해서 사냥을 해야 할 거야."

    "음. 잘 말했네."

    내가 그렇게 파티장다운 말을 하자, 디아나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 내게 다가와서 까치발을 하고 팔을 쭉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 아까부터 틈만 나면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고 있지 않냐?

    혹시 그거야? 아까 자기 혼자 멋대로 함정에 빠진 게 부끄러워서, ‘이 몸은 그저 이 몸이 누님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뿐일세! 이렇게 말일세!’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부러 연상 티 팍팍 내고 있는 거야?

    아니. 뭐 딱히 그래도 상관은 없다만.

    "뭐, 주의해서 사냥해야 된다고는 해도, 지금 당장 여기서 사냥을 할 건 아니지만 말이야. 우선은 순서대로 차근차근 4.5계층부터 가야지. 아니면 일단 시험 삼아서 여기서 한 마리만이라도 상대해볼까?"

    "음.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구먼. 여기서 대형 몬스터들과의 전투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4.5계층에서 여기 5계층으로 통하는 출구를 찾게 됐을 때에 그곳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는 이점도 있으니 말일세. 다만, 이 몸은 일단 돌아가는 걸 추천하겠네."

    "응? 어째서? 칭찬하는 걸 보고 찬성하는 줄 알았더니."

    "조금 전에 4계층의 주인과 전투를 치르고 온 직후 아닌가. 이 몸의 마력도 온전한 상태가 아닐 뿐더러, 체력 상황 역시도 처음 만나는 몬스터를 상대하기에 적합한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하긴. 그것도 그런가."

    확실히 디아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특수 직업이 주는 스탯 덕분에 체력이 넘치는 나나 사라, 고레벨 전위직인 실비아나 마틸다와는 달리, 디아나나 레이아같은 경우는 무식하게 체력이 높은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나마 디아나는 수영을 마법으로 해결하니 체력적인 부담은 덜했을지도 모르지만, 레이아는 4계층의 주인과 전투가 끝나고 여기까지 계속 헤엄쳐온 거다.

    확실히 여기서 새로운 모험을 하는 건 위험한가.

    안 그래도 만약 뭔가 문제가 터지게 되면, 우리 중에서 제일 위험한 건 레이아니까.

    "아, 저라면 괜찮아요. 전 전투할 때 딱히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아니. 지금은 일단 돌아가자. 디아나 말대로 괜히 무리를 할 필요는 없지."

    "우오읏!"

    내 속마음을 눈치 챈 레이아가 두 주먹을 가슴께에서 불끈 쥐고 흔들며 자신은 아직 쌩쌩하다는 어필을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디아나의 머리에 턱하고 손을 얹었다.

    레이아. 습관적으로 저런 행동을 많이 한단 말이지.

    저러면 자기 팔에 가슴이 꽉 끼어서 가슴골이 강조되는 걸 모르는 걸까?

    덕분에 내 아들만 괜히 더 쌩쌩해질 것 같다.

    그리고 디아나야. 너 요즘 왜 그러냐?

    너 옛날에는, 아니.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이러는 거 좋아했잖아.

    내 무릎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먼저 만져달라고 머리를 내밀기도 하고.

    그런데 왜 갑자기 내가 머리를 쓰다듬는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아까도 다른 때 같았으면 내가 머리를 쓰다듬는 정도로 어린애 취급한다는 식의 얘기는 안 했을 거다.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나 얘한테 뭔 짓 했었던가?

    진심으로 짚이는 바가 전혀 없는데.

    뭐, 겉으로는 이래도 우리 중에서 제일 정신적으로 성숙한 디아나다. 정말로 뭔 일이 있었던 거라면 내게 얘기를 해서 대화로 풀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튼 우리는 5계층의 장엄하기까지 한 풍경을 좀 더 눈에 담으면서 그 자리에서 쉬고, 다시 4계층의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4계층의 마을로 돌아가는 것도 생각보다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내가 폭주를 하는 바람에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도착하기는 했지만, 원래대로라면 그런 속도로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물론 돌아갈 때도 그런 속도로 돌아가려고 하면 못할 건 없었지만, 안 그래도 체력 배분 문제로 5계층에서 전투도 안 해보고 돌아가는 거다.

    괜히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우리는 천천히 조심하며 이동을 했고, 결국 갈 때보다 더 긴 시간을 들이고 나서야 겨우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나마 갈 때와는 달리 맵이 밝혀져 있었기 때문에, 이것도 시간을 상당히 단축한 거라고 봐야겠지.

    "겨우, 겨우 돌아왔네요! 아앗! 당시이인!"

    그리고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환호성을 지른 건 아니나 다를까 마틸다였다.

    마틸다야. 드디어 물속에서 해방되는 거니까 그렇게 좋아하는 건 이해한다만, 너무 기쁜 나머지 날 끌어안아놓고 핑크빛 모드에 빠지지는 말아줄래? 여기 일단 마을 한복판이거든?

    "그럼 곧장 위로…우와옷! 다들 지쳤을 테니까 일단 여기 여관에서 묵는 게 어때?!"

    곧장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위로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려고 했던 나였지만, 마을에 돌아오자 긴장이 풀린 건지 핑크빛 모드에 과하게 잠식당한 마틸다가 목덜미에 키스를 해대는 걸 느끼고 황급히 말을 바꿨다.

    이 상태로 길드에 올라가서 저택까지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

    "하아…어쩔 수 없네."

    마틸다가 이러는 게 저주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라는 질투를 하지도 못하고 한숨만을 푹 내쉬며 내 말에 찬성해줬다.

    "넌 왜 한숨을 쉬고 그러냐. 너한테는 차라리 잘 된 거 아냐?"

    "응? 잘 됐다니? 뭐가? 체력 얘기를 하는 거라면, 저택으로 돌아갈 정도의 체력은 남아있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빠는 날이 하루 늦…."

    "바보! 그러니까 안 한다고 했지!"

    "아니. 어디를 빠는 거라곤 얘기 안 했는데. 혹시 어딜 생각…오호라? 야. 여긴 내가 생각했던 곳이 아닌데."

    내가 계속 놀려대자, 사라가 결심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서는 부드럽게 내 갑옷의 가슴 파츠를 벗겨냈다.

    설마 내가 계속 놀리니까 화가 나서, 더 이상 놀리지 못하게 진짜로 빨아버릴 생각인가?

    물론 내가 생각했던 곳이 가슴은 아니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여기가 마을 한복판만 아니었다면.

    "아무리 그래도 마을 한복판에서 너무 대담하다고 생그아아악!"

    물론, 사라가 마을 한복판에서 내 가슴을 빠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쓸데없는 얘기하지 말고 빨리 가서 여관이나 잡아! 쉬고 싶은 거잖아?!"

    "야! 잠깐! 타임! 거길! 거길 꼬집으면서 가는 건 안 되지! 얘가 부끄럽지도 않나! 헬프! 얘들아 헬프!"

    "자업자득일세."

    "이번에는 구원씨가 너무하셨어요."

    아니. 너희 너무하지 않냐?!

    확실히 몇 번이나 우려먹으면서 장난친 내가 잘못이기는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냉정하게 버리는 거냐?!

    심지어 천사님마저도!

    "아아…당시이인…!"

    마틸다 넌 이런 상황에서도 핑크빛 모드냐?! 아무리 저주 때문이라지만 너무 마이 페이스잖아!

    크윽. 젠장. 그렇다면 이제 믿을 수 있는 건…!

    "실비아!"

    언제 어느 때라도 내 말을 따라주는 우리 귀염둥이밖에 없지!

    자! 이 사악한 용사의 손에서 어서 빨리 날 구출해내는 거다!

    아니. 진심으로. 슬슬 젖꼭지가 끊어질 것 같은데.

    아니. 그 이전에,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데요!

    "무리입니다아!"

    "크흐윽! 실비아투스! 너마저!"

    "실비아투스는 또 뭔가."

    그런 게 있어! 저쪽 세계 얘기야!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한민국 고유의 민속놀이가 새 단장하고 등장한 걸 보고 추억에 잠겨서 잠깐 즐겼는데, 의외로 시간이 엄청 지나가 있더군요.

    휴일이라고 너무 안심하고 놀았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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