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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52화 (63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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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층 답파

    그렇게 크라켄이 탱글탱글하게 구워진 후, 나는 말려들어간 다리 사이를 힘겹게 빠져나와서 마석을 캐냈다.

    마석을 캐냄과 동시에 맛있게 구워진 크라켄의 거대한 몸뚱이가 천천히 사라지는 걸 보고 살짝 아쉽다고 생각한 건 비밀이다.

    아니. 냄새는 진짜 구운 문어랑 다를 바가 없더라고.

    아무튼 그렇게 크라켄을 처리하고 난 후, 디아나는 여지없이 이번에도 거대 마석의 위치를 알아보겠다면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실 각 계층의 보스방에 거대 마석이 있는 건 기정사실이고, 거대 마석 연구는  이미 위쪽 계층에서 하고 있는 만큼 굳이 여기에서 거대 마석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우리 대마법사님 입장에서는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여기에도 거대 마석이 있는 게 기정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나.

    그런 이유로, 디아나를 제외한 나머지 파티 멤버들은 5계층으로 이어지는 통로 근처에 모여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구원씨 고생하셨어요."

    "응…. 결국 마무리는 그렇게 되어버린 거니까, 왠지 헛수고를 한 것 같은 느낌도 없잖아 있지만."

    "아, 아닙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계층의 주인만 잡고 나면, 계층의 주인이 머무르는 서식지는 던전 안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가 된다.

    그런 곳에서 휴식을 하고 있는 덕분인지, 전투 시의 늠름함은 어디로 가고 다시 귀여운 모습으로 돌아온 실비아가 오들오들 떨면서도 날 위로해줬다.

    무척이나 귀여웠지만, 내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기엔 그 정도로는 살짝 부족하단 말이지.

    "실비아야.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은 거라면, 말로만 그럴 게 아니라 몸으로 성의를 보여야하지 않겠어? 크큭."

    "당신, 말하는 게 변태 같아요."

    마틸다가 살짝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딴죽을 걸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가 내 여자한테 살짝 변태 같아지는 게 뭐가 어때서?!

    "자! 얼른 그 가련하게 오들오들 떠는 몸을 내게 맡기고, 실비아테라피를…!"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비린내 나는 주제에."

    하지만 이번에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가 딴죽을 걸었다.

    "뭐?! 너, 웃기지…! 레이아! 나 냄새 안 나지?"

    "후훗. 네. 평소처럼 안심되는 좋은 냄새가 나요."

    "아니. 헤헷. 땀 흘렸으니까 그 정도는…아무튼 사라 너! 너 웃기지 말라고! 애초에 마석을 캐면 드랍템만 제외하고 몬스터의 흔적은 깔끔히 사라지는 거니까, 비린내 같은 게 배었을 리가 없잖아!"

    "그걸 알면서 왜 레이아한테까지 물어본 건데."

    "그야 다리가 드랍템으로 나왔으니까 혹시 다리 냄새는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고…아무튼 너 웃기지 말라고! 모처럼 이 한 몸 희생해서 너희가 그런 꼴이 되는 걸 막아줬더니!"

    "알겠어. 미안해. 미안하다니까. 자기도 평소에 심심하면 장난치면서 왜 오늘따라 그렇게 필사적인 거야."

    "아니. 사과해도 늦었어. 못 받아줘."

    "우으으읏! 싸, 싸우지 마십시오오!"

    나랑 사라가 그렇게 서로 장난 식으로 투닥투닥 거리고 있자니, 실비아가 갑자기 그렇게 외치며 내 품에 달려 들어왔다.

    일단 자기가 얘기의 발단이었으니, 아무리 장난이라고는 하나 우리가 투닥거리는 자리가 상당히 불편했던 모양이다.

    "시, 실비아테라피입니다아!"

    그렇다고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니?

    아니. 그 이전에, 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니?

    그냥 뜻도 모르면서 방금 전에 내가 한 말 듣고 따라한 거지?

    그런 딴죽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일단 실비아를 끌어안고 바들바들 거리는 기분 좋은 진동을 느끼며 실비아테라피를 만끽하기로 했다.

    "만족스런 표정하기는. 하여간 이 바보는 진짜…."

    "사라야."

    "왜?"

    "내가 이렇게 평온을 되찾았다고 해서 네 막말을 용서한 건 아니니까. 아직 용서 안 했다."

    "뭐?! 남자가 속 좁게 진짜!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야…."

    나는 일부러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내게 찰싹 달라 붙어있는 실비아의 등 너머로 내 발을 바라보기 위해.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시선을 들어서, 사라의 굳게 닫힌 입술을 빤히 쳐다봤다.

    솔직히 이것만으로 알아들을지 살짝 불안했지만, 다행이도 사라는 충분히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과연 평소에도 독심술을 쓰는 게 아닐지 의심이 될 정도로 내 마음을 잘 아는 사라답다니까.

    "구, 구원이야 말로 웃기지…! 일부러 화냈겠다! 안 할 거야! 안 할 거니까!"

    "그거야 나중에 두고 봐야 알 일이지."

    "진짜 안 할 거니까! 진짜로 그런 짓 시키기만 해봐!"

    "자, 그럼 얘들아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항의하는 사라를 깔끔히 무시하고, 나는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네? 어떻게 하다니요? 이제 돌아가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내 말을 마틸다가 덥석 물었다.

    4계층에서의 생활에 제일 적응 못하고 있는 마틸다로서는 내가 당장 돌아갈 생각이 없어보이자 불안해진 거겠지.

    뭐, 나로선 적절하게 사라와의 대화 흐름을 끊어줘서 고마울 따름이었지만.

    "물론 금방 돌아갈 거지만, 그 전에 잠깐 5계층에 들러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는 아깝잖아? 5계층도 상당히 다른 계층과 차별화된 곳이니까 말이야. 미리 봐두는 것도 앞일을 생각해보면 좋을 테고."

    "…그건 확실히 그러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미 나와 같이 5계층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는 마틸다가 충분히 일리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5계층이 얼핏 보기에는 1계층과 마찬가지로 그냥 숲과 같은 지형이라고는 하지만, 몬스터부터 나무, 바위까지 모든 게 전부 뻥튀기 된 것처럼 크니까 말이다.

    처음 5계층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마치 자신이 난장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압도될 수  밖에 없는, 그런 곳이었다.

    뭐, 나는 게임 같은 걸로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5계층에 내려갔을 때도 딱히 압도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게임 같은 걸로 익숙해져 있는 주제에 다른 곳에 처음 갈 때는 당황하지 않았냐고?

    그거랑은 얘기가 다르지.

    5계층에서는 주로 시각적인 요인으로 압도되지만, 다른 곳은 촉각 때문에 적응하기 힘든 거니까 말이다. 사막이라 덥거나, 설원이라 춥거나, 여기처럼 온통 물속에서의 생활이라든가.

    원래 세계의 가상현실 게임은 촉각을 실감나게 구현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고 있었던 만큼, 아무래도 촉각 관련으론 모든 게 신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가상현실 게임도 시각효과까지 제한했던 건 아니니까 말이야.

    5계층처럼 그저 눈에 보이는 모습만 다를 뿐이라면, 가상현실 게임으로도 충분히 익숙해 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 역시 얘들도 가볍게나마 5계층을 체험시켜 주는 게 좋을 것 같지?"

    "…그렇게 다른 거야?"

    마틸다까지 저런 반응을 보이자, 내가 말을 돌리려고 꺼낸 얘기가 일단 진지한 얘기라는 걸 사라도 깨달은 모양이었다.

    새빨간 얼굴로 항의하는 걸 멈추고는, 사라가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상당히 다르지. 네가 손바닥 크기로 작아져 버렸다고 생각해봐. 아무리 너라도 그렇게 쿨한 표정만으로 있지는 못 할 걸?"

    "그 정도 인가요? 으응…얘기만 들어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네요."

    내 얘기를 듣고, 레이아는 상상을 해본 건지 두 손을 가슴께에 모은 후 눈을 살짝 감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뱉으면서 눈을 뜨고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가련하시다.

    "그래도 그렇게 걱정 할 건 없어. 일단 레이아랑 사라만 제외하면 다들 5계층 경험은 있는 거니까. 경험자인 우리들이 잘 이끌어줄게. 그렇지?"

    "네, 네헷!"

    "그, 그러…네요…."

    내 말에, 실비아와 마틸다가 둘 다 불안하기 그지없는 대답을 해왔다.

    아니. 실비아는 여전히 내 품에 안겨있으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말이야, 마틸다 너는 왜 그렇게 불안하게 대답하는 거냐?

    나는 미심쩍은 시선을 마틸다에게 보냈고, 내 시선의 의미를 눈치 챈 마틸다는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때는 당신이 정말 여신님이 사자인지 지켜봐야 했고, 한 명의 남성분께 계속 눈을 떼고 있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제 저주가…! 게다가 제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명감에 필사적이어서, 주변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고요!"

    마틸다야. 말이 길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말이잖아?

    의뢰를 하는 내내 내게 붙어서 감시하느라 핑크빛 모드가 되지 않도록 억누르는 것도 힘든 상태였고, 때문에 5계층에 익숙해지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고.

    그런 것치고는 몬스터로부터 날 구해준 적도 있지 않냐?

    아니. 그런 와중에도 날 구해주는 것에 필사적이었던 건 고맙지만 말이야.

    "너도 참 고생이다."

    "아, 알면…! 으읏!"

    빨리 저주를 풀어달라고요!

    아마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마틸다는 중간에 하고 싶은 말을 꾹 참는 모습을 보였다.

    저주를 풀어달라는 말은 다시 말해서 섹스를 왕창 해달라는 말이니까.

    부끄러운 건가? 아니면 사라나 레이아 앞이라서 사양한 건가?

    그런 건 딱히 사양 없이 말해도 될 텐데. 얘들도 사정은 다 알고 있는 거니까.

    "괜찮아. 괜찮아. 마틸다가 불안해도 여전히 나랑 디아나, 실비아는 5계층에 익숙하니까. 너희가 익숙해질 때까지 우리가 제대로 도와줄게. 뭣하면 찰싹 달라붙어서 일대일 개인 교습을…."

    불안해하는 레이아와 마틸다를 위해, 나는 일부러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장난스런 말투로 말했다.

    "그러는 자기도 5계층에 갔다가 거기가 없어질 뻔한 주제에. 자기 거기나 잘 지키시죠."

    물론 겁이 없는 사라는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고, 때문에 내 장난에 그런 식으로 대응하기까지 했지만 말이다.

    "그야 당연하지! 돌아가자마자 사라 네가 빨아야할 소중한 소중이니까! 그야 잘 지켜야지!"

    "야! 안 빤다고 했지?!"

    "뭐?! 안 빨아준다고 한 건 발이잖아! 여기도 안 빨아준다고?! 진심이야!?"

    "이, 이, 이 바보가 지금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 아들 얘기는 네가 먼저 꺼냈잖아!"

    "…그,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지껄이자, 오랜만에 사라가 내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훗. 어떠냐. 이게 바로 바넷사에게 직접 전수받은 얼굴에 철판 깔고 공격하기다!

    뭐, 전수받은 적 없지만.

    아무튼 사라와 이런 식으로 투닥투닥거린 덕분에, 레이아와 마틸다를 감싸고 있던 긴장도 조금은 풀어지는 게 보였다.

    "또 무슨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싸우는 겐가?"

    그리고 타이밍 좋게, 거대 마석의 조사를 마친 디아나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어째선지 내 뒤로 살그머니 돌아들어오기는 했지만.

    얘 설마 바로 얼마 전에 한 번 우리 말다툼에 끼어들었다가 데인 경험이 있어서 이렇게 조심하는 건가?

    "아니. 들어봐. 어쩜 글쎄 사라가 내 아들을 입으로…응으읍!"

    "5계층! 5계층에 내려가서 일단 눈으로 한 번 5계층의 모습을 봐두기라도 하자는 얘기였어요!"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사정을 토로하려 하는 내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사라가 황급히 외쳤다.

    야. 그러면서 은근슬쩍 한 손으로 옆구리 꼬집지 마라.

    네가 아무리 그래봤자 실비아테라피를 받고 있는 지금의 나는 무적…끄으윽. 진짜로 그만둬주세요.

    "음. 좋은 의견이구먼. 잠깐 보고 온다고 해서 5계층의 모습에 바로 익숙해지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네만,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에 도움은 될 걸세."

    그리고 디아나는 그런 사라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해줬다.

    일단 내 얘기도 중간까지는 들은 거니까 사정은 파악했을 텐데.

    얼마 전에 당했던 사라에게 반격을 할 절호의 찬스였는데도 그냥 넘어가주다니.

    이렇게 보면 역시 우리 파티에서 제일 애는 사라고 제일 어른은 디아나라니까.

    나는 속으로 감탄하면서,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뭔가. 이 손은."

    "응? 착하지. 착해."

    "이 몸은 어린애가 아니네만. 오히려 이 몸에 비하면 자네가…핫! 갑자기 왜 이런 함정을 파는 겐가?!"

    아니. 딱히 함정 판 거 아니거든.

    그런 속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지 말아줄래?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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