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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45화 (62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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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남 구원

    "앨리시아 마음을 알아?!"

    "뭐?! 우리 클랜이 네 코를 꿴다고?!"

    서로의 말이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나와 칸나는, 다시 한 번 동시에 입을 열어서 완전히 상반된 얘기를 내뱉었다.

    그제야 우리는 서로 뭔가 어마어마한 오해가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칸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난 죽었다.

    표정으로, 아니. 온몸으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 같은 그 모습은 상당히 불쌍해 보이였지만, 지금의 나는 칸나에게 신경을 써줄 상황이 아니었다.

    "…야. 잠깐 정리해보자. 먼저 나부터 얘기할게. 오케이?"

    "…그, 그러던가."

    칸나의 영혼 없는 대답을 듣고, 나는 천천히 머릿속에서 할 말을 정리했다.

    우선 내가 그런 오해를 하게 된 경위부터 차근차근.

    내가 평소에 장난만 치고 다녀서 생각 없는 놈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래 봬도 나름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놈이라고.

    아라크네 클랜이 날 노리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논리적으로 생각한 결과였다.

    우선 처음 계기는 의뢰.

    거기서 나만 있으면 어떤 몬스터의 성기라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음을 깨달은 아라크네 클랜은, 내 능력을 탐내기 시작했다.

    보통 성기를 얻기 위해선 어떤 방법으로든 몬스터를 흥분시켜야 한다. 그래. 언젠가 봤던 여자 모험가들이 몬스터를 제압해놓고 성기를 자극했던 것처럼.

    하지만 강한 몬스터일수록 그런 짓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을 테니까.

    던전 공략의 최선단에 서있는 아라크네 클랜으로서는 내 능력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겠지.

    그래도 거기까진 별로 상관없었다.

    그 의뢰 이후로 너희 클랜과 우리 클랜은 협력 관계가 됐으니, 또 성기가 얻고 싶으면 나한테 의뢰를 했으면 됐을 테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앨리시아가 클랜 내 최고 유망주라는 이 셋을 데리고 저 윗 계층부터 여기에 올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을 시킨 거다.

    아무리 원래 교육 담당이라고는 하지만, 앨리시아는 명색이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 중 한명.

    원래는 초보 모험가의 뒷바라지를 하는 게 아니라, 이미 틀이 잡혀있는 중급 모험가가 더 아래계층으로 내려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을 거다.

    예전에 앨리시아가 본인 입으로 자기는 주로 5계층에서 활동한다고 얘기하기도 했었으니, 이 추측은 거의 확실하다.

    다른 간부는 대부분 6계층을 탐험을 주력으로 하는데, 혼자 5계층에서 주로 활동한다는 건 아무래도 그런 의미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저번에 만났을 때 세레나의 말에 납득 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세레나는 앨리시아의 역할이 루키의 육성이고, 자기들이 충분히 성장했기 때문에 앨리시아가 더 이상 교육을 담당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앨리시아의 직책과 평소 활동 영역을 생각해보면, 앨리시아는 분명 얘들이 5계층에 적응할 수준까지 키워낼 생각이었을 거다.

    때문에 나는 세레나의 말이 일견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납득하지 않았던 거다.

    물론 그때 보였던 칸나의 반응 때문에 의심수준에서 그쳤던 게 확신으로 변했던 거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앨리시아가 굳이 아직 초보 중의 초보라고 할 수 있었던 얘들을 담당했다는 말은, 얘들에 대한 기대가 아라크네 클랜 내에서 얼마나 컸는지를 말해주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리고 앨리시아는 쉬는 날도 없이 밤낮으로 얘들을 굴려가면서 최선을 다해 키워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파티를 추월할 수 없었다.

    아니. 추월하기는커녕 발끝을 겨우 따라잡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앨리시아가 날 만났을 때마다 너희는 어디까지 내려갔냐고 묻는 걸로 보아, 우리의 진행 속도를 의식하고 있는 건 명백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삼인방은 우리를 따라잡지 못했다.

    심지어 우리 파티는 얘들과 달리 그렇게까지 열심히 던전에 다닌 것도 아니라, 한 번 올라가면 족히 일주일은 푹 쉬면서 느긋하게 다니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를 통해 앨리시아는, 아니. 아라크네 클랜은 내 진정한 가치를 깨달은 거다.

    몬스터의 성기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건, 내가 가진 능력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내 능력의 진짜 가치는, 바로 무한한 정력을 통해 파티원의 성장속도를 엄청나게 가속시킬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심층 공략을 목표로 하는 아라크네 클랜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손에 넣고 싶은 능력이었겠지.

    아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면, 굳이 그런 방법까지 써가며 날  클랜에 메어두려고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기는 이런 세계인만큼 모험가의 성생활도 개방적이니까. 아마 협력을 구하는 정도로 끝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우리 애들 이외에는 성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물론 펠리시아라는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예외 중의 예외.

    같이 의뢰를 다녔을 때 내가 유혹에 빠지지 않는 걸 보고 이미 내 성향을 파악한 아라크네 클랜은, 협력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아예 날 자기들 클랜으로 끌어들이기로 결정했다는 거다.

    설령 그 방법이, 몸으로 유혹을 하는 것일지라도.

    그리고 그걸 제일 먼저 시도한 게, 나와 가장 친해서 단 둘이 될 기회도 많은 앨리시아였다는 거다.

    어때? 엄청 논리적이잖아?

    일련의 흐름과 인과관계 전부 맞아떨어지고, 어디 하나 흠잡을 수 없을 만큼 논리적이잖아?

    나는 뛰어난 머리로 그런 내막을 전부 파악해내고, 얘들이 더 이상 날 유혹할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그런 막말을 내뱉었다는 거다.

    물론 생각보다 단어선정이 살짝 과해진 감은 없잖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도 설마 너희까지 날 유혹하려 들 거라곤 생각 못했단 말이야.

    기껏 해봐야 간부들이나 유혹해올 줄로만 알았지.

    그런데 그게 전부 오해였다고?

    "드, 들켰으니 어쩔 수 없군! 젠장! 알고 있었던 건가!"

    내 설명을 전부 들은 칸나는 이상할 정도로 고양된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슬아슬하게나마 몸을 감싸고 있던 수건을 완전히 내팽개쳐서 세레나와 에이미에 이어 자신까지 전라가 되어버린 후, 위험할 정도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게 다가왔다.

    "이, 이렇게 된 이상…예전에 해줬던 약속을 지켜줘야겠어! 우리랑 4P를 하고! 우리 아라크네 클랜의 종마가…!"

    "아니. 너 방금 전에는 앨리시아가 날 좋아한다면서."

    "내, 내가 언제! 내가 언제 그랬는데! 언제 좋아한다고 했는데! 난 그저 앨리시아 교관님의 마음을…! 망할! 네 놈! 속였겠다!"

    아니. 누가 봐도 네가 자폭한 거잖아.

    그리고 거짓말인거 들켰으면 가슴 출렁이지 말고 좀 가려라.

    성격이랑 안 어울리게 제법 여성스런 녀석을 달고선 말이야.

    원래라면 나도 엄청나게 당황해야 했겠지만, 칸나가 저렇게까지 당황을 해버리니까 반대로 난 조금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앨리시아의 마음이란 말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우선은 당초 목적대로 사과부터 하자.

    아라크네 클랜이 날 노리고 있다는 게 단순히 내 오해였다면, 더욱더 지금 아라크네 클랜과의 관계를 망칠 수는 없다.

    "아무튼 그런 오해 때문에, 난 저번에 너희한테 그런 막말을 했던 거야. 미안해. 본심은 아니었어. 너희는 물론 너희 클랜 사람들 전부 한 미모 하는 사람들뿐이라고 생각해."

    "그거야, 그런 오해가 있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거고, 사과까지 했으니까 나도 괜히 더 화 낼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그런 쪼잔한 여자도 아니고."

    내가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자, 칸나는 어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해줬다.

    얘 성격이 이럴 땐 참 좋다니까.

    "저도 이해했습니다. 사과를 받아들이죠."

    "응…. 하지만 난 이대로 사과를 받아주긴 싫은데. 제법 상처 받았는걸요."

    그리고 세레나까지도 순순히 내 사과를 받아줬지만, 예상외로 에이미가 순순히 넘어가주지를 않았다.

    "성자님. 그러니까 성자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한테 성자님이 그런 얘기를 했다는 사실을 퍼뜨리지 않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리고 에이미는 내게 다가오더니, 뭔가 꿍꿍이가 느껴지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니. 그러니까 옷을 입으라고.

    게다가 말이야. 사제 주제에 성자님을 협박하려 하다니.

    진짜로 나도 성자라는 직책을 이용해서 협박해 버릴까 보다.

    아니. 행위를 다른 사람한테 보이면 안 된다는 규율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어기는 녀석이다. 그게 통할 리가 없지.

    "원하는 게 뭔데?"

    "지금부터 앨리시아 교관님한테 가서 제대로 대화를 나눠주세요. 아, 그리고 덤으로 칸나가 실수한 것도 잘 얼버무려 주세요."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에이미는 의외로 정상적인 부탁을 해왔다.

    오해로 인한 사고라고는 하나, 앨리시아의 마음이 들킨 거다.

    그러니까 내가 가서 앨리시아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라고.

    심지어 그냥 앨리시아의 마음을 받아주라고 우기는 게 아니라, 앨리시아와 대화를 나누라고 하는 점에서 그 마음씀씀이가 느껴졌다.

    앨리시아의 마음을 받아주고 말고는 내 판단에 맡긴다는 거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얘도 사제는 사제구나.

    "에이미이이!"

    덤으로 칸나 역시도 에이미에게 달려들어서 서로 꽉 끌어안고 몸을 비벼댔다.

    야. 그렇게 다 큰 여자 둘이서 알몸으로 서로 감싸 안고 비벼대면 땡큐 베리 감사합니다!

    "크흠. 그거면 된다고?"

    "네. 그 이상은 욕심일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사제로서 성자님을 협박할 수도 없고요."

    "그런 점은 확실히 하는 거냐."

    "그런 점이라뇨. 저 이래 봬도 신앙심만은…."

    "사제의 규율은 어떻게 된 거냐. 너 예전에 나랑 4P 하자고…."

    "쉿! 쉿이에요! 다른 사람한텐 비밀이에요?"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에이미가 손가락을 세워 입에 가져다대고는 비밀로 해달라고 졸라왔다.

    어라? 이거 아까랑 공수관계가 역전된 거 아니야?

    "훗. 비밀로 하고 싶으면…."

    "아앗! 성자님 치사해요!"

    "뭐, 농담은 이쯤하고. 그래서 진짜로 앨리시아가 날 좋아한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대로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은근슬쩍 넘어가버리고 싶다.

    그 정도로, 앨리시아가 날 좋아한다는 건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상황이었다.

    머리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래. 완전 홀딱 빠졌어."

    에이미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난 칸나는, 드디어 속이 후련하다는 듯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다리를 꼬고는 편안한 자세로 말했다.

    아니. 너 그러니까 알몸으로 그런 자세…! 후우. 뭐 됐다.

    "아니. 대체 왜?"

    "그건 내가 알고 싶을 정도라고! 덕분에 우린 네놈을 따라잡아야한다면서 지옥 같은 시간을…."

    "…잠깐만. 그럼 앨리시아가 널 키운 이유가, 단순히 날 따라잡기 위해서? 그러니까 나랑 같은 계층에 있으면서 은근슬쩍 같이 모험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머리 잘 돌아가는 놈이 왜 지금까지 눈치를 못 챈 건데."

    "저희가 구원씨와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겠습니다만."

    "…그, 그러냐. 왠지 미안. 아니. 하지만 말이야. 눈치 채는 게 이상하잖아! 애초에 걔가 날 좋아할 이유가 없잖아!"

    "내 말이 그 말이라고! 뭐가 좋다고 이런 녀석을! 확실히 얼굴은 제법 잘 생겼지만…."

    "야. 얼굴만 잘 생긴 거 아니거든? 물건 크기랑 테크닉도 끝내주거든? 한 번 맛보면 너희도 빠져나올 수가…."

    "그럼 바지 까고 한 번 맛보게 해주던가."

    "됐다. 못들은 얘기로 해라."

    거기. 세레나. 에이미. 은근슬쩍 눈 빛내지 마라.

    하여간 이 녀석들은 진짜. 누가 아라크네 클랜 아니랄까봐.

    "그런가. 앨리시아가 나를. 그 앨리시아가…."

    뭔가 그렇게 알고 나니까, 그건 그것대로 퍼즐이 딱딱 맞아떨어져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나랑 던전에서 만나면 같이 파티라도 맺자는 얘기도 있었지.

    그거 그냥 나랑 같이 있고 싶다는 의미였던 거냐.

    아니. 헷갈린다고! 내가 원래하고 있던 오해도 너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잖아!

    심지어 앨리시아 그 녀석은 욱하면 주먹까지 날리던 녀석이라고!

    그걸 내가 무슨 수로 눈치 채!

    "하아. 아무튼 알겠어. 그래서, 지금 앨리시아는 어디에 있는데?"

    "또 클랜에서 술이라도 퍼마시고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너한테 알몸으로 들이밀고도 차인 이후로 우리가 던전에 내려올 때까지 쭉 그 상태였으니까."

    "…그러냐. 그럼 난 간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막말해서 미안하고."

    "그래. 교관님하고 꼭 제대로 얘기해야 한다. 꼭! 반드시!"

    "오냐. 더 이상 너희한테 폐는 안 끼치게 해줄게."

    그렇게 겨우 사과를 마치고 오해를 푼 나는, 삼인방의 방을 뒤로 했다.

    앨리시아와의 대화라….

    에이미도 지금부터 얘기하고 오라고 했으니, 지금 바로 가는 게 좋겠지?

    우리 애들한테도 어쩌면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얘기는 했었지만, 이건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리게 될 것 같네.

    나는 여관 주인장에게 점심에 우리 애들이 오면 나 대신 얘기 좀 전해달라고 말해놓고, 마을의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위로 올라갔다.

    목적지는 물론, 아라크네 클랜 하우스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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