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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44화 (62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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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남 구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번 던전행이 이걸로 끝이라는 건 아니었다.

    마을로 돌아간다고는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4계층 마을로 돌아간다는 얘기로, 아예 위로 올라가버린다는 얘기가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 목적은 어디까지나 삼인방이 올라가서 소문을 퍼뜨리기 전에 선수를 쳐서 사과를 하는 것.

    위로 올라가버리면 하루 종일 길드에서 죽치고 있으며 언제 올지도 모를 삼인방을 기다리고 있어야 된다는 얘기니, 차라리 4계층 마을에서 기다리는 게 편하다.

    설마하니 삼인방이 3계층이나 5계층에서 귀환을 하지는 않을 거고, 4계층의 마을은 그 규모도 작기 때문에 삼인방의 귀환을 눈치 채는 것도 더 쉽고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4계층 마을의 주변에서 사냥을 하면서 삼인방의 귀환을 기다렸다.

    나는 4계층의 마을에서 가만히 계속 기다릴 생각했지만, 그건 디아나의 의견에 의해 기각 당했다.

    디아나가 말하길, 걔들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하염없이 여기서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라고. 그리고 어차피 길게 여정을 나갔다 귀환하는 거면, 지친 몸을 이끌고 바로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이 마을에서 하루정도는 쉬고 갈 테니까 문제없을 거라고.

    그런 디아나의 타당한 의견에 의해, 우리는 일단 마을 주변에서라도 사냥을 하고 밤에는 마을로 귀환하여 여관에서 밤을 보내는 생활을 보내게 됐다는 거다.

    사실 수면을 제대로 된 여관에서 취할 수 있게 된 만큼, 어떻게 생각해보면 원래 계획대로 천천히 4계층의 주인이 있는 곳을 향하면서 사냥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측면도 있었다.

    물론 마을 근처에는 모험가들이 많은 만큼 몬스터의 수도 적었고, 때문에 직업 레벨을 올리는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역시 사람은 따뜻한 이불아래에서 자는 게 제일이네요!"

    특히 여관에서 출퇴근을 하게 된 이후로, 가장 생기가 돌게 된 건 역시나 마틸다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래도 내 품이 더 좋지 않냐고 말하며 장난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또 핑크빛 모드가 심하게 발동되면 부끄러운 꼴을 당하는 건 나 자신이기 때문에 이번엔 자제하기로 했다.

    마틸다랑 둘만 있는 거라면 아무리 핑크빛 모드 심하게 발동되더라도 대처할 수 있었겠지만, 다른 애들도 다 보는 앞에서 저걸 다 받아주는 건 아무리 나라도 부끄러우니까.

    젠장. 내 섹드립을 그런 식으로 카운터 칠 수 있다니. 어서 저놈의 저주를 풀어버리든가 해야지.

    아니. 마틸다한테 핑크빛 모드가 사라지면 그건 그것대로 아쉬운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야.

    물론 핑크빛 모드가 아깝다고 해서 또 저주를 안 풀어버릴 수도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런 고로, 우리가 마을 근처에서 느긋하게 사냥을 하면서 지낸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는 거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마친 나는, 오늘도 여관을 나서기 전에 습관적으로 여관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아줌마. 그 셋은 오늘도 안 왔어요?"

    아침과 밤. 하루에 두 번씩 벌써 며칠이나 반복된 대화였기 때문에, 이제는 이런 질문만으로도 여관주인 아주머니는 그 셋이 누군지 알아챘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거다. 최근 모험가들 사이에서 흐르는 성자에 관한 소문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아주머니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봤다.

    "호홋. 오늘도 아침부터 열심이네요. 응. 방금 전에 막 왔어요."

    "하아. 역시나. 그럼…네? 왔다고요?"

    오늘도 습관적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던 나였지만, 이내 아주머니의 대답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 황급히 몸의 방향을 뒤틀었다.

    "성자님이 그렇게나 신경 쓰는 아가씨들이 그 세 아가씨였다니. 역시 소문은 거짓말이었던 걸까?"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런 내 반응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수다스럽게 자기가 할 말만을 했다.

    게다가 그 발언이, 엄청나게 신경 쓰이는 발언들이 한 가득이었다.

    역시나 그 소문, 알고 있었던 거잖아. 대체 그 넘치는 신뢰는 뭔데? 일반인들 사이에서 내 주가가 그렇게나 높다는 얘기인가?

    그리고 말이에요. 삼인방 얼굴을 보고 소문이 거짓말이었던 거라고 말해버리면, 마치 삼인방이 못생긴 것처럼 들리잖아요.

    그런 말 하지 말라고요. 안 그래도 걔들 나름 고생 많이 한 애들이라고요.

    그리고 걔들도 일단 나름 예쁘장한 녀석들이거든요?

    물론 아주머니도 여기서 생활을 하시니, 4계층 모험가 수준의 외모에 눈이 적응되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니. 그래도 쟤들 수준이면 여기 모험가들 평균을 고려해 봐도 나름 괜찮은 수준 아닌가?

    그야 물론 우리 애들이랑 비교하면 빛이 바라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우리 애들은 특이 케이스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저 그런 의미로 걔들 애타게 찾은 거 아니거든요?

    태클 걸고 싶다. 이 아줌마의 말에 엄청나게 태클을 걸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이 아줌마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갈 뿐이다.

    나는 가슴 속에서 샘솟아 오르는 욕구를 꾹 억누르고, 할 말만 하기로 했다.

    "그래서. 걔들 지금 어디에 있어요?"

    "으응…. 원래는 투숙객들의 정보는 함부로 알려줘서는 안 되는데…."

    내 질문에, 아줌마는 몸을 배배꼬면서 이상한 시선을 보내왔다.

    아니. 아줌마가 진짜! 아오! 내 성격이 진짜 옛날만 같았으면 이 아줌마를 그냥!

    구원이 성격 많이 죽었다! 사람 다 됐어!

    "에, 에이. 아줌마. 그러지 말고요."

    "호홋.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자님이니까 특.별.히. 알려드릴게요."

    윙크하지 말라고!

    젠장. 사라! 디아나! 레이아! 실비아! 마틸다! 아무라도 좋으니까 눈 정화를…왜 다들 벌써 나가있는 거야!

    끄으으윽…. 마이 아이….

    "세 명이서 다같이 301호방을 잡았어요. 온지 얼마 안 됐으니까, 아마 지금쯤…."

    "그만! 용건은 끝났다. 더 이상의 볼 일은 없다!"

    아줌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여관을 뒤로했다.

    물론, 삼인방에게 가기 앞서서 우리 애들한테 먼저 얘기를 해놓기 위해서다.

    "얘들아! 걔들 왔대!"

    "어머. 그래? 그럼 다녀와. 아니면 같이 가줄까?"

    "그래요. 구원씨 혼자서 힘드실 것 같으면 저희도 같이…."

    "아니. 나 혼자 갈게."

    나 혼자만 보내는 게 불안한지 그런 제안을 해오는 우리 애들이었지만,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어머. 그러세요?"

    레이아는 내가 거절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로선 나름 이유가 있는 판단이었다.

    그도 그럴게. 지금부터 너희가 별로라고 말했던 건 실수였다고 설명하러 가는 거잖아.

    너희를 대동하고 가면 괜히 놀리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전에 아라크네 클랜 하우스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문에라도 우리 애들을 대동하고 갈 수는 없지.

    "응. 나 혼자 다녀올게. 경우에 따라선 오해를 푸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너희는…."

    "흠. 그렇다면 이 몸들은 사냥을 하고 오겠네."

    "응? 나 없이?"

    "음. 어차피 자네가 없어도 실비아양과 마틸다양이 전위에 서면 아무 문제없지 않은가. 후위의 안전은 이 몸이 맡으면 되고 말일세. 무엇보다, 마을 근처에서 이 몸들에게 위협이 되는 몬스터와 조우할 일도 없고 말일세."

    아니. 그야 논리적으론 타당한 얘기지만….

    뭘까. 이 찝찝한 기분은.

    "아니. 그래도 오해가 생각보다 금방 풀릴 수도 있는 거고…."

    "그럼 점심에 한 번 돌아오겠네."

    "위험할 수도 있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금방 돌아오면 그만 아닌가. 그 정도 판단은 가능하네만…혹시 이 몸들끼리 나가는 게 싫은 겐가? 이 몸은 그러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네만."

    "아니. 그래도 내가 다른 여자들이 묵고 있는 방에 쳐들어가는 건데 너희는 그렇게 태평하게…바람 안 피워! 바람 안 피울 거지만!"

    왠지 모를 찝찝한 기분에 무리수까지 던져봤던 나였지만, 무리수는 어디까지나 무리수.

    사라의 날카로워지는 안광에 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바람피우면 진짜 알아서해."

    "안다니까 그러네. 원한다면 나중에 레이아한테 냄새라도 맡게 해줄 테니까."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의혹을 지우기 위해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지만, 어째선지 레이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라? 설마 천사님마저 날 의심하시는 건….

    "…처, 천사님?"

    "그게…구원씨 냄새라면 언제 맡아도 좋은 걸요."

    나는 살짝 마음에 상처를 받을 뻔 했지만, 이어지는 천사님의 말에 그 상처는 급속도로 치유됐다.

    아니. 치유가 과하게 되어서 오히려 더 생생해질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천사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천사님 최고에요. 사랑해요.

    "레이아! 치사해요!"

    그리고 사라 역시도 설마 레이아가 이렇게 치고나올지는 생각도 못했는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훗. 천사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고.

    "아무튼 그럼 난 다녀올게."

    결국 그렇게 내가 오해를 푸는 동안 우리 애들끼리 가볍게 근처에 사냥을 다녀오기로 결정되고, 나는 홀로 삼인방이 묵고 있는 방으로 가게 됐다.

    "이리 오너라!"

    "…뭐야. 시끄럽게…너냐."

    다행히 아줌마가 제대로 방 번호를 알려주기는 했는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칸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건만을 걸친 반라차림으로.

    젠장. 씻는 중이었던 건가!

    "으, 음. 간만이다."

    "아? 며칠 전에 봤잖아."

    "아니. 그게 말이지."

    "하아. 됐다. 할 말 있으면 일단 들어와라."

    솔직히 칸나 성격상 그런 말을 하고 내뺀 날 보면 바로 덤벼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칸나는 어째선지 나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날 방 안으로 초대했다.

    제아무리 야생마 같은 성격의 칸나라도, 며칠에 걸친 던전 탐험을 마치고 돌아온 날에는 역시나 지쳐서 화낼 기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뭔데?"

    칸나는 제대로 옷을 입을 생각도 하지 않고, 침대에 다리를 벌리고 털털하게 걸터앉은 후 내 용건을 물었다.

    "나머지 둘은?"

    "앙? 세레나! 에이미!"

    "응? 왜 그래, 칸…앗…."

    "당신은…."

    칸나는 상체를 살짝 뒤로 기울이며 뒤를 향해 둘의 이름을 불렀고, 칸나의 부름에 둘은 곧장 욕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수건이라도 걸친 칸나와는 다르게, 이 둘은 전라였다.

    "성자님께서 우리한테 할 말이 있으신 모양이다. 그래서, 뭔데?"

    "아니. 할 말이 있기는 한데. 일단 옷부터 입는 게 어떠냐?"

    "아? 성자님은 발톱의 때가 벗은 걸 보고도 흥분하냐? 자! 자!"

    역시나 피곤해서 덤벼들지 않았을 뿐, 내가 한 말을 엄청 마음에 두고 있는지 칸나의 태도는 상당히 가시가 돋쳐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일부러 수건을 벌리지 말라고. 이건 진짜 부끄럽지도 않나.

    그야 그런 클랜 하우스에서 지내다보면 부끄러움 같은 감정은 사라질 만도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그럼 그냥 이대로 사과하자.

    "그러니까 그걸 사과하러 온 거라고. 미안하다."

    "핫. 할 말 다 해놓고 미안하단 한 마디로 끝나면…."

    "칸나. 잠깐 조용히 해봐."

    나는 곧장 셋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다.

    물론 그래도 칸나의 분노는 진정되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다행히도 그나마 냉정한 세레나가 그런 칸나를 막아섰다. …알몸으로.

    야. 너 냉정한 거 맞지? 아니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내가 이상한 거야?

    거기 사제님. 뭐라고 한 마디 하라고. 왜 너까지 아무것도 안걸치는 건데.

    젠장. 그러고 보니 쟤도 초면에 4P 유혹을 해왔던 막장 사제였지. 겉보기엔 전혀 그렇게 안 보이지만.

    "저희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가 곧장 사과를 했다는 건, 그때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라도 있었다는 겁니까?"

    다행히도 차림새와는 다르게 냉정하기는 한 건지, 세레나는 내 말을 차분하게 들어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알몸이지만.

    "그게 말이야. 오해…라고 하기는 좀 그런가. 너희는 안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래 봬도 난 너희 속셈을 다 눈치 채고 있었거든."

    "뭐, 뭐라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칸나가 상상도 못했다는 듯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너 그럼 다 알고도!"

    "그래. 다 알고 있으니까 괜히 더 패닉 상태에 빠져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그렇게 말하다보니, 나도 살짝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물론 내가 얘들한테 그런 말을 내뱉은 건 잘못이 맞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잘못은 얘들이 나한테 먼저 한 거잖아.

    그런 식으로 코를 꿰려고 하다니!

    어떻게 보면 난 정당방위 아니야?

    "야. 그래도 너희도 너무 했잖아. 사람을 그런 식으로 유혹해서 자기 클랜에 코를 꿰게 하려고 하면, 누구라도…."

    "앨리시아 교관님의 마음을 알고도 그런 말을 한 거냐!"

    …응? 야. 잠깐만. 지금 뭐라고?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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