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643화 (62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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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남 구원

앨리시아한테 그렇게 굴려지면서도 나름대로 활기를 잃지는 않았던 삼인방이다.

때문에 내 안에서 얘들의 이미지는 반쯤 개그캐로 굳어져가고 있었던 중이었는데, 그런 삼인방이 미적지근한 태도로 인사를 해오니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특히 그 야생마 같던 칸나까지 저 지경이니까 더욱더.

설마하니 앨리시아한테 해방된 게 의외로 쓸쓸하다든가?

아니. 파티원 셋이 동시에 마조히스트가 아닌 이상 그럴 리가…설마 진짜로 그런 건 아니지?

애초에 앨리시아한테서 어떻게 해방된 건지도 의문이다.

얼마 전에 앨리시아의 함정에 빠질 뻔하기도 했으니, 앨리시아의 동향도 파악하는 겸해서 물어볼까.

"오랜만. 오늘은 셋이네? 드디어 앨리시아한테서 해방된 거냐?"

"그야 뭐…."

내 질문에, 칸나는 또 다시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끝을 흐렸다.

잠깐만. 야. 그런 태도를 보이면 너희 셋이 동시에 마조히스트라는 내 의심에 더욱더 신빙성이 더해지잖아.

한참 예전일이고 미수로 끝났다고는 하지만, 얘들이랑 4P를 하자는 약속까지 한 적이 있는 내 머릿속에 한순간이지만 엄한 이미지가 스쳐지나갔다.

각자 전혀 다른 셋을 일렬로 늘어놓고 한 번에 엉덩이를 때리…아니. 그냥 잠깐 머릿속에 스친 것뿐이니까. 귀중한 4P 조교경험을 놓쳐서 아깝다거나, 그런 생각 전혀 안 했으니까.

"아까부터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냐?"

"너 지금 그걸 몰라서…!"

"칸나."

내 질문에 칸나가 드디어 본성을 드러내며 욱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삼인방 중 가장 침착한 성격인 세레나가 그 앞을 가로막으며 칸나를 말렸다.

그리고는 날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해줬다.

"앨리시아 교관님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루키의 육성. 4계층에서 모험을 하게 된 시점에서 저희는 더 이상 루키가 아니니까요. 원래는 3계층에 도착한 시점에서 앨리시아 교관님의 역할은 끝난 것이었습니다만, 저희의 성장성을 눈여겨보신 교관님께서 4계층에 올 실력까지 성장시켜주신 것뿐입니다."

과연. 그런 건가.

확실히 세레나의 설명은 충분히 납득이 될 만한 설명이었다.

앨리시아와 다닐 때는 항상 너덜너덜해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었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 이 셋도 처음 1계층에서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걸치고 있는 장비도 잘 손질된 것이 숙련된 모험가의 분위기가 풀풀 풍기고, 외모 역시도 레벨에 걸맞게 더 화사하게 물이 올라있었다.

하지만 그런 세레나의 설명을 듣고도, 나는 납득하지 않았다.

방금 전에 칸나가 보여준 욱하는 반응이 아마 진실일 테니까 말이다.

저 녀석은 단순하고 알기 쉬워서 좋다니까.

하지만 얘들이 나한테 욱할 일이 있나? ‘그걸 몰라서?’ 대체 뭘 모른다는…아. 잠깐만. 이거 설마….

"너희 설마 그 소문 믿는 거냐?"

"아? 소문? 무슨 소문?"

"무슨 소문이기는. 내가 여자들 얼굴에 점수메기고 다니면서 그 점수로만 평가한다는 소문 말이야. 말해두는데…."

칸나가 고개를 갸웃거린 게 살짝 의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그 소문 말고는 얘들이 나한테 이런 태도를 보일 이유가 없다.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 입을 열었다.

우리 애들은 그 소문을 나름 입맛대로 이용하려는 모양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아는 애들한테까지 오해를 사고 있을 필요는 없지.

내가 얘들이랑 그런 관계가 될 일도 없고 말이야.

창작물로 치자면 얘들은 히로인이 아니라 개그캐라고. 개그캐.

"그랬던 건가요? 그럼 저희는 몇 점인가요?"

하지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에이미가 내 얼굴을 엿보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 반응이 왠지 마침 잘됐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인 걸까?

"에, 에이미?!"

"아, 걱정 마. 꼬리칠 생각 없으니까. 그냥 점수를 매긴다고 하니까 조금 궁금하잖아. 성자씨, 심미안은 뛰어나 보이고."

에이미의 그런 행동에 옛날부터 친구사이라던 레이아가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지만, 에이미는 그런 레이아에게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고는 다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왠지 엄청 걸리는 말투인데.

"아니. 그러니까 그 소문 헛소문이라고 말하려는 건데. 너희 혹시 소문 못 들었던 거냐?"

그리고 에이미의 그런 반응을 보고, 나는 내가 괜한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소문은 몰랐던 건가.

아니. 어차피 지금 모르더라도 길드에 다니다보면 언젠간 소문을 듣게 될 테고, 그러니까 미리 오해를 풀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괜한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얼굴을 보는 건 사실이잖아요? 만약 점수를 매긴다면 저희는 몇 점정도 될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미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 파티원의 면면을 보고는, 뺄 생각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다시 빤히 내 얼굴을 엿봤다.

아니. 그러니까 왜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 건데.

내가 너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왜 그렇게 중요한…잠깐만. 야 설마 예전에 내가 4P 약속 바람맞힌 거,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너희 얼굴만 보고 바람맞힌 거 아니니까. 오히려 외모만 따졌으면, 그때도 사라나 디아나한테 가려져서 그렇지 너희도 제법 괜찮다고 생각은 했을 정도라고.

그러니까 자신을 가지고….

"그래서 몇 점인데요?"

아니. 그러니까 이미 임자 있는 남자한테, 그것도 그 임자들이 다 보고 있는 앞에서 그런 질문하지 말라고. 곤란하잖냐.

애초에 점수 같은 거 안 매긴다니까!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는 주제에 안 맞게 그런 짓도 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안 한다고!

"그야. 뭐, 너희도 꽤나 괜찮다고 생각해."

결국 나는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애들 앞에서 다른 여자 외모 칭찬을 너무 대놓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 잘라 별로라고 하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일단 얘들은 나름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이고.

그러니까 이 대답은, 나 나름대로 최선의 대답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꽤나? 꽤나?! 새끼. 성자님이라고 꽤나 거만하잖아? 뭘 품평하듯 말하는 거야?!"

아니. 따질거면 네 동료한테 따져라. 쟤가 대답해 달라고 달라붙은 거거든?

넌 안 그래도 야생마 같던 녀석이 이젠 말투까지 앨리시아를 닮아가냐? 너 그러다가 나중에 진짜로 앨리시아처럼 된다. 앨리시아 2세가 된다고.

얼굴은 예쁘면서 남자하나 제대로 못 꼬시게 되고 싶냐?

"꽤나…. 역시 그런 정도인가요."

칸나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에이미는 역시도 내 표현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살짝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잖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라고. 좀 봐줘라.

"저희가 꽤나라면, 그렇다면 저희 간부님들은 어떻습니까? 그렇군요. 예를 들어 구원씨와 가장 친하신 앨리시아 교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그런 내 바람과는 달리, 삼인방은 아직 납득하지 못했다는 듯 재차 질문을 해왔다.

이번엔 에이미가 아니라, 옆에서 듣고 있던 세레나가.

"어, 응?! 아니. 그야 얼굴만 따지자면 앨리시아 걔도 엄청…."

셋이서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에, 정신이 사나워진 나는 그만 반사적으로 솔직히 대답을 할 뻔했다.

하지만 말을 끝내기 직전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맛보며 말을 끊었다.

아니. 물론 우리 애들이 앨리시아를 많이 견제하니, 그 앞에서 앨리시아 칭찬을 하면 위험하다는 이유도 있어.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물론 우리 애들이 화나는 것도 상당한 문제지만, 그보다도 더 큰 문제를 깨닫고 말았다고.

이 삼인방…왜 그렇게 내게서 점수를 듣고 싶어 하는 건가 싶었더니.

역시나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거야!

내 코를 꿰기 위해서는, 어떤 여자로 유혹해야 좋을지 알아본다는 목적이!

방금 전 질문. 자기들 간부의 외모 점수. 그리고 앨리시아의 외모 점수를 묻는 것으로 명확해졌다.

자기들 점수를 묻는 건 단순히 뒷말을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만에 하나 자신들이 내게서 상당한 고득점을 받아낸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

하지만 아니라도 딱히 상관없다. 각양각색의 매력을 가진 자기 클랜의 간부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내 눈에 맞는 사람이 있으면 되는 거니까.

일단 앨리시아의 점수를 물음으로써 어느 정도 선이면 내 유혹에 실패할지를 알아보고, 앨리시아보다 더 점수가 높은 간부를 알아내서 이번엔 그 간부로 날 유혹한다.

그래. 얘들은 지금 날 유혹해서 자기네 클랜에 코를 꿰게 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고 있었던 거다!

젠장! 개그캐 삼인방이라고 방심하고 있었어!

결국 너희도 아라크네 클랜이란 거냐!

무서운 녀석들 같으니라고! 구미호나 서큐버스가 있는 것도 아닌 주제에 남자 클랜원들이 정기가 빨려 죽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무서운 클랜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든 자기들한테 이익이 되는 남자 코를 꿰고 말겠다는 그 집념. 소름이 돋을 정도다.

"…글러 먹었어."

"네? 지금 뭐라고…."

"글러먹었다고 했다! 너희 간부들! 아니 너희 클랜 소속원들 중에는 아무도 내 눈에 차는 여자가 없어!"

결국 저 클랜의 집념을 꺾으려면, 이쪽에서도 강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정말로 내 성격에 맞지 않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지.

"뭐, 뭣…!"

"글렀어! 너희 클랜원들 전원, 우리 애들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큼도 안 된다고! 그러니까 엄한 생각하지 말고 가라! 훠이! 훠이훠이!"

나는 손짓을 해서 삼인방을 쫓아내는 시늉을 하고는, 그대로 우리 애들을 이끌고 그 장소를 뒤로했다.

내게 자신들의 속셈이 간파당해서 상당히 당황한 건지, 삼인방은 그런 우리 뒤를 따라올 생각도 하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구, 구원씨. 그런 말씀을 하셔도 괜찮았던 건가요?"

그리고 삼인방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레이아가 내 몸에 달라붙어서 일단 날 멈춰 세우고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 아무리 우리가 그 소문으로 조금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굳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소문을 확인시켜줄 필요는…."

심지어 사라마저도 이런 말을 해올 정도였다.

내가 답지 않은 행동을 한 게, 자신들이 그 소문을 이용하려 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는 죄책감이 생긴 모양이다.

내 바람기를 억제할 수 있겠다면서 좋아할 때는 언제고. 하여간 생긴 거랑 다르게 마음은 은근히 여리다니까.

"아니. 딱히 소문을 더 퍼뜨릴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야. 그러니까 사라 네가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겐가? 아라크네 클랜과는 협력 관계가 아닌가. 방금 전 발언은 그 관계를 한 번에 무너뜨리는 말이었네."

솔직히 말해서 당황한 나머지 별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막 내뱉은 말이었는데, 디아나까지 저렇게 심각하게 말을 하자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라크네 클랜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일단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말을 과하게 했다는 자각은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런 세계다. 여자의 미모를 무시하는 발언은, 원래 세계에서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발언이 될 테니까.

물론 아라크네 클랜에서 날 유혹하려 했다는 얘기를 하면, 우리 애들도 내 행동을 이해해줬을 거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또 괜한 걱정만 끼치는 꼴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 나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는 거니까 말이다.

괜히 그 사건까지 얘기해서 걱정을 끼칠 필요는 없지.

때문에 나는 아라크네 클랜하우스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그냥 내 눈에는 너희밖에 안 보인다는 걸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서…그래도 역시 좀 너무했나?"

"네. 저희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건 기쁘지만, 당신의 방금 그 발언은 아라크네 여러분 모두들 무시하는 말이었으니까요."

내 눈에 너희밖에 안 보인다는 꽤나 가슴을 울릴 대사를 했는데도 마틸다가 핑크빛 모드도 되지 않고 그렇게 말하자, 내 불안감은 더 커지기 시작했다.

"음. 소문이 퍼진다면 지금 같은 관계는 유지할 수 없을 걸세. 모처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클랜. 괜히 척을 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네. 역시 돌아가서 사과하시는 편이…아, 이렇게 떨어져서는 돌아가도 다시 만나는 걸 기대하기는 힘들겠네요."

"…그럼 일단 마을로 돌아가는 게 어때? 그 셋도 결국 위로 가기 위해선 마을에 돌아가야 할 거 아니야. 기다리고 있다가 오해를 풀면 되잖아."

"네! 그래요! 그게 좋겠어요!"

"…그렇게 할까."

결국 그렇게 해서, 우리는 4계층 마을을 떠나고 하루 만에 다시 마을로 돌아가는 게 결정되어 버렸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아루꿍 // 물론 플롯은 엔딩까지 세워져있습니다.

다만 플롯대로 안 써지는 경우가 많아서요.

예를 들어 바넷사 같은 경우 원래는 더 나중에 공략될 예정이었죠.

OKOr7l // 제가 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진행해나가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여러 사건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시켜나가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보니 소제목 선정이 더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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