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642화 (62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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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남 구원

    "하아…. 역시 물속에서 자는 건 아무래도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아무래도 던전에 오는 게 엄청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뭐, 마틸다는 원래부터 던전에대한 적응력이 떨어졌으니, 그것도 한몫하는 거겠지만.

    내가 조난됐을 동안 계속 4계층에 있었던 덕분에 겨우 던전의 마력에는 익숙해진 모습을 보이는 마틸다였지만, 사라나 디아나, 레이아와는 달리 당시 수영을 못했던 실비아와 마틸다는 기본적으로 4계층의 마을 안에만 있었던 모양이니까. 물속에서 침식을 해야 하는 4계층의 생활에는 역시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 물속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며 자는 건 평범하게 살고 있으면 좀처럼 할 수 있는 체험이 아니니까. 난 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인벤토리에서 아침식사를 꺼내면서, 나는 마틸다의 말에 가볍게 대꾸해줬다.

    "당신은 여기서 조난까지 당한 거라고요? 정말로 낙천적이라고 해야 할지…."

    내 대답에, 마틸다는 살짝 어이가 없다는 듯, 하지만 정말로 내가 트라우마 같은 건 없어보여서 안심했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직도 불안해하고 있었던 거냐. 하여간 얘도 남 걱정은 엄청 한다니까.

    뭐, 저런 저주를 자기 혼자 감당하고 있는 시점에서 남을 위하는 성격이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뭐, 아무튼 그렇게까지 여기서 자는 게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생각해볼 문제였다.

    마틸다는 후위진의 안전을 책임지는 방패.

    수면문제 때문에 트러블이 생겨서는 곤란하다.

    "그럼 익숙한 환경에서 잘 수 있도록, 내가 힘 좀 쓰도록 할까?"

    "다, 당신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여긴 던전 안이라고요!"

    때문에 그렇고 그런 감정은 조금도 없이 순수한 선의로 그렇게 말했던 나였지만, 마틸다는 어째선지 얼굴을 붉히면서 외쳤다.

    "…응?"

    "뭐, 뭔가요! 그 표정! 영문을 모르겠는 건 제 쪽이라고요!"

    "아니. 자는 동안에도 지금처럼 바람의 정령을 불러내서 공간을 만들면 바닥에서 잘 수 있을 거라는 얘기였는데…. 참고로 마틸다는 무슨 생각을 한 건데?"

    "그, 그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마틸다는 새빨개진 얼굴로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거렸다.

    뭐, 말하지 않더라도, 내가 설명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변해가던 표정을 보면 대충 짐작이 되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래선 재미가 없다.

    "마틸다. 나한테 말해줄 수 있지?"

    나는 잠깐 식사준비를 중단하고, 마틸다의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달콤하게 말했다.

    물론 마틸다는 곧장 핑크빛 모드가 되며 내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줬다.

    "아, 아아…네에…. 전, 이렇게…당신의 품에서…."

    즉, 이런 거다.

    내가 말했던 익숙한 환경이라는 걸 바닥에서 자는 걸로 이해한 게 아니라, 내 품에서 자는 걸로 이해한 거다.

    하지만 마틸다가 나와 둘이서 같이 잠을 잔 적은 저번이 처음인데 말이야.

    물론 다 같이 잔적은 몇 번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품에서 자는 게 익숙해질 수준인가?

    "마틸다는 아직 내 품에서 자는 게 그렇게 익숙하지 않을 텐데?"

    "괜찮아요. 당신의 품이라면 전…. 약간의 어색함은 금방 익숙해질 수 있어요. 익숙해지고 싶어요. 당신이라면 분명…."

    핑크빛 모드가 된 마틸다는 부끄러움을 간직하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부딪혀왔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애초에 이런 분위기를 만든 건 나지만 말이야. 나도 살짝 분위기를 탔다고 할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다들 우리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있어서, 괜히 더 부끄러워졌다.

    …지금 와서 식사준비를 마저 한다고 하며 빠져나가면 엄청 없어 보이겠지?

    "어, 응. 그, 그래. 나도 마틸다랑…."

    "하아…. 자면서 정령을 쓰면, 마나는 어쩌려고 그러는 겐가. 자네 마력으로 밤새 바람의 정령을 부르고 있으면, 정작 낮에 탐험을 하는 동안 제대로 마나를 못 쓰게 될 걸세."

    내가 화끈화끈 거리는 얼굴로 횡설수설하자, 보다 못한 디아나가 한숨을 내쉬면서 내게 구원의 손길을 뻗어왔다.

    물론 나는 속으로 디아나에게 감사하며 그 손길을 덥석 잡았다

    "크크큭! 어리석인 질문을 하는군. 그야 마나는 당연히 힐링 섹스로…!"

    "더, 던전에서 삽입까지 하는 건가요오…? 하, 하지만 다른 분들의 시선도 있고…아아…! 그래도 텐트를 친다면…."

    아, 아차! 최대한 장난스럽게 넘어가려고 한 거였는데!

    핑크빛 모드의 마틸다는 오히려 내 장난스런 말을 덥석 물어왔다.

    젠장! 안 돼! 이럴 순 없어! 이 핑크빛 분위기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어! 디아나!

    "……."

    나는 다시 한 번 디아나에게 구원을 갈구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디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그대로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아니. 야! 포기하지 말라고! 도와달라고! 야! 사라! 너 평소 같으면 곧장 질투하면서 끼어드는 주제에 왜 지금은 아무 말도…!

    "던전에서…내 앞에서 둘이 섹스하는 모습 보이기만 해봐…!"

    아니. 야. 이럴 때 특이 성벽에 발동 걸려고 하지 말라고 이것아! 안 한다고!

    젠장. 역시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우리 천사님밖에 없는 건가! 천사님!

    "마, 마틸다 추기경님! 안 돼요!"

    다행히도, 천사님까지 내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천사님은 나와 마틸다의 사이에 끼어들어서 강제로 우리를 떼어놓았다.

    살았다! 드디어 핑크빛 공간 해방이다!

    위험했어. 예전에는 저 핑크빛 공간을 내 입맛대로 이용만 했는데, 마틸다랑 사도 임명을 할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되고 나니까 이젠 나까지도 부끄러워져 버리잖아.

    마틸다 녀석. 저런 분위기 속에서 저렇게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부딪혀오다니.

    앞으로 핑크빛 모드를 이용할 때는 엄중히 주의하며 써야겠어.

    아무튼 이번엔 레이아 덕분에 살았다. 역시 천사님은…어, 어라? 천사님?

    천사님에게 시선을 돌린 나는, 천사님이 나름 화난 표정이라고 표정을 만들면서 날 쳐다보고 있는 걸 깨달았다.

    저런 표정마저도 가련하시고 아름다우시다.

    "구원씨이! 저희 사제들의 금기를 아시는 분이…!"

    "아니. 미안. 응. 죄송합니다."

    아름다우시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 장난을 칠 수는 없어서 나는 솔직하게 사과를 했다.

    디아나의 도움의 손길도 그런 식으로 쓸모없이 만들어버린 직후니까 말이야.

    적어도 아침동안은 더 이상 장난은 치지 말자.

    레이아의 꾸중을 듣고 나서, 나는 드디어 아까 중단했던 식사 준비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식사가 전부 내 인벤토리에 있는 만큼, 내가 마틸다와 장난치는 동안 식사준비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후우. 어쩌다가 이런 일이.

    그래. 마틸다가 4계층에서 적응하기 힘들어한다는 얘기가 이렇게까지 번진 거였지.

    뭐, 마틸다의 얘기는 시발점이었을 뿐, 얘기가 커진 건 괜히 내가 마틸다를 핑크빛 모드로 만들어서 그런 거지만.

    마틸다 탓을 할 건 전혀 없다는 얘기다.

    애초에 마틸다의 반응이 정상인 반응이기도 하고.

    오히려 마틸다와 완전히 똑같은 조건이었던 주제에 완벽히 적응하고 있는 실비아가 특이한 거다.

    시선을 살짝 마틸다의 옆으로 돌리자, 거기에는 기다려를 명령받은 강아지처럼 가만히 앉아서 식사 준비가 되는 걸 기다리고 있는 실비아가 있었다.

    내게 식사준비를 전부 떠맡기는 건 황송하다.

    하지만 식사준비는 기본적으로 내 인벤토리에서 음식을 꺼내놓기만 하면 되는 거니, 자신이 도울 일이라곤 없다.

    방금 전처럼 내가 꺼내놓은 식기를 방치하고 딴 짓을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런 느낌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실비아는, 역시나 4계층에서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을 끝낸 모습이었다.

    뭐, 반대로 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상황에는 아직도 적응을 못하겠는 모양이었지만.

    쟨 대부분의 일을 기사의 수행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넘어가는데 말이야.

    대체 기사의 수행이라는 게 대체 뭘 하는 걸까? 기회가 있으면 꼭 한 번 뭘 하는 건지 보고 싶다.

    물론 스스로 하는 건 절대 사절이지만.

    "실비아."

    "네, 네힛?!"

    내가 이름을 부르자, 실비아는 빤히 보고 있던 게 들켜서 부끄럽다는 듯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던전 안이라고는 하나, 자고 일어난 직후에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거다 보니 아직 전투 모드에는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처음부터 보고 있는 건 알고 있었거든?

    애초에 넌 위에 있을 때도 틈만 나면 스토킹하면서 날 엿보잖아. 뭘 이제 와서.

    "그렇게 긴장하지 말라고."

    "구워어언…!"

    내가 가벼운 말투로 실비아의 긴장을 풀려고 하자, 옆에서 사라가 질리지 않고 또 그러냐는 눈길을 보내왔다.

    아니. 이번에는 장난 치려는 거 아니라고!

    "식기 분배하는 거라도 도와줄래?"

    사라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나는 황급히 하려던 말을 했다.

    황송하다는 듯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는 했지만, 그래도 계속 저 상태로 내버려두는 건 조금 불쌍하다.

    그래서 나는 친절하게 실비아에게 할 일을 주기로 했다는 거다.

    이번엔 장난이 아니라 친절심이라고. 봤냐?

    "네, 네엣!"

    하지만 내 제안에, 실비아는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뭐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진짜로 뼛속부터 충견 타입이라니까.

    저렇게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또 꽉 끌어안고 부비부비 해주고 싶은 욕망이 샘솟았지만, 방금 전에 장난치다가 그런 꼴을 겪고 또 장난을 칠 수는 없지.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욕망을 꾹 억눌렀다.

    아무튼 오랜만에 4계층의 물속에서 잠을 자고, 식사까지 마친 우리는 다시 던전 탐험을 나서기로 했다.

    우리 실은 더 이상 이런 곳에서 힘쓰고 있을 필요 없이, 그냥 바로 4.5계층으로 넘어가도 되는 수준 아니야?

    어제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몬스터를 쾌적하게 사냥하며 하루를 보낸 우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지금부터 4.5계층에 갈 생각은 없었다.

    여기가 4계층의 중간정도 위치라고는 하나, 그래도 마을 근처다.

    모험가들이 많이 드나드는 장소인 만큼, 위험한 몬스터들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실제로 어제도 고래 같은 대형 몬스터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직 자만하기는 이르다는 얘기지.

    그런고로 나는 오늘도 느긋하게 4계층의 주인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며 몬스터를 사냥을 하기로 했다.

    중간에 점심도 해결하고 저녁 무렵이 될 때까지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없이 평범하고 쾌적하게 몬스터를 사냥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니. 어제보다도 더 순조로웠다.

    계속 장난을 치는 내 모습을 보고 드디어 완전히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어제는 과하게 분발하던 사라도 실비아도 적당히 힘을 빼고 사냥을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 기회도 드디어 생겨나서, 나는 마음껏 월영무사의 힘을 시험해봤다는 얘기다.

    뭐, 전직을 했다고는 하나 애초에 직업 레벨자체가 4계층의 수준에 비하면 낮았고, 물속이라는 특성상 그 빠른 몸놀림을 제대로 살리기는 힘들었지만 말이다.

    물론 그래도 레벨에 비해서 한참 높은 스탯 덕분에 전투에서 고생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사냥을 하던 우리였지만, 저녁 무렵이 되었을 즈음에 드디어 평소와는 다른 사건을 맞닥뜨리게 됐다.

    뭐, 평소와는 다른 사건이라고 거창하게 말은 했지만, 실은 그다지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냥 단순히 아는 얼굴을 발견했을 뿐이다.

    우리가 1계층에서부터 알고지낸, 바로 그 아라크네 삼인방 말이다.

    오늘은 웬일로 앨리시아가 동석하지 않은 건지, 삼인방은 셋이서 물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앨리시아한테 끌려 다니며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모습만 보였던 셋이었기 때문에, 저렇게 팔팔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은 어딘지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가. 쟤들도 드디어 앨리시아의 마수에서 해방된 건가.

    물론 쟤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얼마 전에 앨리시아의 마수에서 탈출한 경험이 있는 나로선 살짝 동질감이 느껴졌다.

    아니. 따지고 보면 쟤들도 아라크네 클랜이니까, 쟤들도 한통속일지도 모른다고 경계해야 되는 거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뭐, 별 문제 없겠지. 저 삼인방이고.

    "야! 칸나! 세레나! 에이미!"

    가볍게 생각한 나는 반가운 마음에 셋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물속이기 때문에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목소리가 들린 건 아니었겠지만, 쟤들도 4계층을 셋이서 모험할 수 있게 됐을 정도로 성장한 거다.

    주변에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 건지, 곧장 손을 흔드는 날 발견하고는 이쪽으로 헤엄쳐왔다.

    "오랜만입니다. 구원씨."

    "…오랜만."

    "안녕하세요…. 레이아! 오랜만이야!"

    하지만 동질감을 느끼며 반가워하는 나와는 달리, 셋은 어째선지 어색한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해왔다.

    딱히 적대한다든가 경계한다는 느낌은 아니지만…대체 왜 저러는 거지?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wh08100 // 월영무사는 무투가와 암살자의 상위직입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인페르니우스 // 소제목이 .인 이유는 저도 스토리가 어떻게 튈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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