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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남 구원
"이게 진짜! 레이아! 디아나가…!"
이 소문으로 인해 내 바람기가 조금은 잡힐 거라고 생각하는 사라와 디아나에게 분통이 터진 나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시는 천사님께 고자질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천사님마저도 내게서 살짝 눈을 돌리는 걸 보고, 나는 쌔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아까 천사님도 사라를 안 말렸어.
"레, 레이아?"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자, 레이아는 그제야 두 주먹을 가슴 언저리에서 불끈 쥐고 날 바라보며 격려를 해줬다.
"괘, 괜찮아요! 여신님의 사자의 험담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방금 전 그 사람도 살짝 머리에 열이 올랐을 뿐으로, 이 소문도 분명 조금만 지나면 금방 사라질 거예요."
네.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레이아. 꼬리는 왜 그렇게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어?
역시 레이아마저도 내가 바람기가 심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그야 내가 요즘 여자를 많이 만들고 다니기는 했지만…."
"흐응. 일단 자각은 있구나. 그러면서도…."
내 중얼거림을 들은 사라는, 또 한 번 일말의 자비도 없이 내 약점을 후벼 팠다.
"아, 아무튼! 좋아! 그럼 레이첼 누님을 끝으로, 난 이 이상 절대 여자를 만들지 않겠어! 그럼 된 거잖아?!"
내가 그렇게 외치자, 다들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레이첼씨!"
심지어 사라는 드디어 해냈다는 듯 레이첼 누님과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그리고 누님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사라의 하이파이브를 받아줬다.
아니. 누님 그거 안 받아주셔도 되니까요.
그래도 일단 사라 네 허락도 받고 이런 건데 말이야.
아니. 물론 그걸 감안하더라도 허락을 받은 이후로 너무 여자들을 많이 만든 감은 있지만.
역시 사라도 마음고생을 꽤나 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들이댄 케이스는 한 번도 없었는데. 살짝 억울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사라 저건 내가 다른 여자랑 하는 걸 보고 흥분하는 변태면서.
뭐, 그래도 결과적으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는 상황이 된 거니까, 아무 말 않겠지만.
그리고 마음고생을 했던 건 비단 사라뿐만이 아니었는지, 다들 꽤나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 우아아…."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의외로 실비아의 반응이 꽤나 격렬했다.
야. 설마 너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냐.
아니. 실비아가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애완동물 같은 이미지가 생기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애도 아니니까, 그야 마음고생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언제나 사라, 디아나, 레이아를 깍듯이 본처 취급해주고 자기는 한 발 물러나서 자기주장을 좀처럼 하지 않는 실비아가 저렇게 격렬히 반응하는 건 의외였다.
반응이 너무 격렬한 나머지, 저래선 마치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이상 여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에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가장 냉정하게 내 말을 분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우리 똑똑한 디아나였다.
"애초에 이 몸들이 자네에게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허락했을 때는, 성자라는 입장 상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른 여자를 만들어야 할 상황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가정해서 허락한 것이었네. 그런데도 앞으로 일절 여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겐가?"
"……그 경우는 예외로 하고…."
디아나의 냉정한 분석에, 나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미안. 별로 그런거 깊게 생각 안 하고 내뱉은 말이었어.
"이 바람둥이가 진짜!"
그리고 내 대답에, 방금 전까지 제일 좋아하던 사라가 다시 격렬하게 반응했다.
"그, 그건 진짜 나도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내 앞으로 여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은 어중간한 상태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덤으로 내게 이상한 소문이 붙게 된 것도.
뭐, 결과적으로 레이첼 누님의 주가가 우리 애들 사이에서 살짝 올라간 모양이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살짝 시끌벅적하게 파티 보고를 마친 우리는 곧장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향했다.
솔직히 말해서, 레이첼 누님 앞에서 계속 떠들고 있는 게 상당히 민폐였기 때문에 얼른 도망치듯 왔다.
이 이상 성자한테 안 좋은 소문이 늘어나면, 아무리 그래도 조금 위험하지 않겠어?
특히 날 여신님의 사자라고 믿고 공인해준 교황님한테 미안해지고.
"그럼 다들 4계층에서 보자."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기 전, 나는 혹시나 모를 엇갈림에 대비해서 그렇게 말하고는 텔레포트를 타려했다.
그리고 역시나, 내 예감은 멋지게 적중했다.
"3계층이 아니고? 얼음굴에 가려면 3계층으로 가는 게 더 빠를 텐데?"
사라가 살짝 불만스런 얼굴로 이런 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번엔 얼음굴에 가지 않으려고."
확실히 얼음굴이 직업 레벨을 올리기 상당히 좋은 조건인 건 맞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난이도에 비해 그렇다는 얘기로, 4계층에서도 능숙하게 몬스터와 전투만 할 수 있다면 역시나 4계층에서 전투를 하는 것이 시간대비 효율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4계층을 중점적으로 탐험할 생각이었지만, 내 말에 사라는 살짝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사라뿐만이 아니다. 다들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뭐, 얘들이 어떤 생각으로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는 나도 잘 안다.
얼음굴에 가지 않는 게 불만인 게 아니라, 내가 4계층을 다니는 게 불안한 거다.
"걱정 마. 그리고 말했잖아? 이런 건 질질 끌수록 오히려 더 안 좋을 수도 있다고. 내 재활훈련도 겸해서 이번엔 4계층에서 놀자고."
"그거야 알지만요…."
"그럼 이번엔 다들 4계층으로 가는 거다?"
나는 가벼운 말투로 그렇게 안심을 시키고는, 다시 한 번 텔레포트 마법진에 올라타려고 했다.
"내가 먼저 갈 거야!"
하지만 사라가 그런 내 어깨를 잡아채서 멈추고는, 자기가 먼저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했다.
그 행선지는 내가 말했던 대로 4계층.
내가 가장 먼저 가면 아주 잠깐이나마 나 혼자 4계층에 남게 되는 거니까, 아마 그게 불안해서 자기가 먼저 간 거겠지.
하여간 사라 쟤도 쿨한 얼굴과는 달리 은근히 잔걱정이 많다니까. 귀여운 녀석.
아니나 다를까, 사라는 자기 다음으로 내가 4계층에 도착하자마자 내 팔을 단단히 붙잡고는 몸을 밀착 시켰다.
굳이 안 그래도 갑자기 트라우마로 발작하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래도.
"자, 그럼 가볼까!"
그리고 다들 4계층에 도착하게 된 후, 나는 일부러 평소보다 더 기운차게 출발 신호를 외쳤다.
"정말 괜찮으신 거죠? 혹시 조금이라도 불안해지시면, 곧장 말씀하셔야 해요?"
"음. 무엇보다도 자네의 안전이 최우선이란 사실을 잊지 말게나."
"만약의 경우에는 당신 대신 제가 실비아씨와 전위에 서는 것도 가능하니까요."
"구, 구원님은 제가 지키겠습니다아!"
하지만 역시나 내 목소리만으로 불안감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다들 한 마디씩 내게 건네 왔다.
결국 사라뿐만이 아니라, 다들 걱정이 많은 거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그, 그래? 사실은 나…4계층에 온 것만으로 살짝 불안해서…."
나는 눈동자를 일부러 떨면서 최대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중얼거렸다.
"괘, 괜찮으세요?"
아니나 다를까, 내 반응을 보자 다들 내게 바싹 달라붙어서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내 팔을 붙잡고 있는 사라의 손에는 살짝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힘이 잔뜩 들어가기까지 할 정도였다.
"으, 응…조금만…조금만 이대로…."
"네? 네에? 이대로 말인가요?"
"아니. 잠깐만. 살짝 자세를 바꿔서, 그래. 일단 둘이 마주보고…."
"잠깐. 당신. 이건 대체."
"히야으읏!"
나는 레이아와 마틸다를 마주보게 하고, 마주 눌린 가슴 사이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양 손으로는 각각 디아나와 실비아의 허리를 잡아서 끌어당기려고 했다.
"좋아. 이대로…끄아아악!"
하지만 내 코끝이 레이아의 마틸다의 가슴골 사이에 파묻히기 바로 직전에, 옆구리에 엄청난 격통이 느껴졌다.
"야! 구원! 너 진짜 장난해!?"
"장난이라니! 난 이러면 정신이 안정…끄아아악! 야! 꼬집은데 또 꼬집는 건 치사하잖아! 잠! 타임! 타임!"
나는 진지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반론을 하려했지만, 돌아오는 건 또 한 번의 격통뿐이었다.
"하여간 이 바보는…."
"흐엑…헥…. 너, 너말이야. 요즘 은근슬쩍 날 너라든가 바보라고 부르고 그냥 넘어가더라? 약속 안 지키냐?"
"흥! 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
"무서워 이것아! 평소에 그렇게 부르라고! 평소에!"
"이번엔 구원이 잘못했잖아."
뭐, 그거야 그렇지만.
나도 일단 생각하고 일부러 그렇게 행동한 거라고.
"사, 사라씨…. 구원씨도 나름 생각하시고…."
다행히도 우리 천사님은 내 행동의 의미를 알아줬는지, 살짝 곤란한 표정으로 사라를 말려줬다.
"레이아는 너무 구원 편을 든다니까요. 그러다가 나중에 버릇없어져요."
"그, 그런가요?"
물론, 곧바로 사라의 말에 넘어갔지만.
아니. 천사님. 그런 표정으로 절 보지 마세요. 저런 얼토당토한 말에 넘어가지 말라고요.
나중에 버릇없어진다니. 제가 사라 쟤보다는 나이 많거든요?
뭐, 아까 내가 잠깐 어려졌을 때 레이아가 보였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나중에 애를 레이아한테만 맡겨두면 버릇없어질 것 같기는 하지만.
뭐, 그땐 내가 잘 하는 수밖에.
"아무튼 봤다시피 난 별문제 없으니까."
"하여간 자네도 솔직하게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을. 언제나 장난을 치려고 하니까 그렇게 되는 걸세."
디아나 역시도, 내가 아까 그런 행동을 한 게 긴장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란 사실을 깨닫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까치발을 하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니. 처음엔 그냥 괜찮다고 했는데도 너희가 너무 걱정해서 장난을 친 건데.
뭐, 상관 없나.
"그럼 가자고. 안 그래도 장비 점검 때문에 살짝 늦었는데, 이러다가 오늘은 변변히 사냥도 못 해보고 끝나겠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오랜만에 던전 탐험을 시작했다.
뭐 사실 날짜를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오랜만인 것도 아니지만, 위에 있는 동안 워낙 사건사고가 많이 터졌다보니 체감 상으로는 엄청나게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우리 애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내가 트라우마로 발작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뭐, 애초에 펄슨을 보고 반가워했을 뿐, 난 4계층에 트라우마 같은 거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의 탐험은 꽤나 순조롭게 진행됐다.
사실 우리가 4계층에서 할 것이라고는 좀 더 힘을 키우고 수중 전투에 익숙해지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별 장애가 될 만한 일도 없었지만 말이다.
얼음굴에서 수컷 펭귄의 성기는 이미 얻어놨기 때문에, 4.5계층으로 가는 길은 이미 확보한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때는 황제 펭귄에 뚫어놓은 구멍들이 막힐까봐 황급히 빠져나오느라 4.5계층까지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더 이상 길을 찾으로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굳이 탐험을 하자면 우리의 능력도 시험해볼 겸, 그리고 디아나가 또 근처에서 거대 마석을 발견할 겸, 4계층의 주인을 잡으러 가는 것 정도겠지.
하지만 그마저도 길드에서 사온 지도에 위치가 표시되어 있으니 그다지 힘들지는 않을 거다.
뭐, 일단 진행 방향은 그쪽으로 해둘까. 이번엔 느긋하게 탐험하면서, 만약 계층의 주인까지 가면 좋고 아니면 말고 라는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그런 것보다, 최우선 과제는 역시나 수중 전투에 익숙해지는 걸로 설정해야겠지.
코볼트 동굴, 개미굴, 얼음굴이 모두 직전의 계층과 환경이 비슷했던 만큼, 아직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 4.5계층에서도 아마 수중전투를 하게 될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수중 전투 역시, 지금의 우리에겐 그다지 문제될 게 없었다.
제일 문제였던 실비아와 마틸다의 수영능력이 대폭으로 개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수영 연습을 더 도와주지 않게 된 이후에도, 얘들은 틈틈이 욕실에서 수영연습을 해왔던 모양이다.
특히 실비아의 수영능력이 굉장했다.
마틸다는 후위진을 지키는 역할이기 때문에 향상된 수영능력이 잘 티가 안 났지만, 실비아는 전신갑옷을 입고도 종횡무진 움직이며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몬스터는 다가오기도 전에 사라의 화살에 뚫려버리는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아니. 너희들 말이야. 너무 신나하는 거 아니냐?
…혹시 아직도 내가 걱정돼서? 내가 몬스터 어그로를 끌 일도 없도록 처리해버리는 거야?
나도 일단 월영무사의 능력을 제대로 시험해보고 싶은데 말이야.
내가 어그로를 끌기도 전에 처리해버리면 할 게 없어지잖아.
그렇다고 해서 성자의 파동 같은 걸로 어그로를 끌려고 하면 괜히 바쁘게 움직이는 실비아한테 맞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할 게 없어서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라와 실비아의 활약은 엄청났다.
웬만하면 자신의 마력은 보험용으로 아껴두고 있는 디아나가, 그 날은 단 한 번도 공격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물론, 후위진에게 몬스터가 접근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일도 없이, 우리는 아무 탈 없이 그날 탐험을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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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laaaaaaaazy // 하하하. 무슨 말씀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들레이몬 // 연참은…일단 이 생활 리듬에 적응이 되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