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639화 (6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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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남 구원

    카페에서 오랜만에 다 같이 밖에서 느긋한 한 때를 보낸 우리는, 한나에게서 장비를 건네받은 후 곧장 길드로 향했다.

    "구원, 또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그리고 길드에 도착하자마자 사라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게, 왠지 엄청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길드에는 사람이 바글바글 거리지만, 그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모험가다.

    즉, 나에 대한 관심이 일반적으로 그렇게까지 크지 않은 사람들이란 거다.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이렇게까지 시선을 집중시키니, 사라의 반응이 저런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것도 그냥 호기심 넘치는 시선을 던지는 게 아니라, 뭔가 말로 형용하기 힘든 오묘한 시선을 던지고 있으니 더욱더.

    뭐, 모험가들이 나에게 별 관심 없다는 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이 얼마 전에 밝혀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항상 주변에 여자를 끼고 있어서 접근을 못했을 뿐이라는 얘기까지 들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사라는 그걸 모르니까 말이야.

    뭐 그걸 알고 있다고하라도, 지금은 이렇게 다 같이 뭉쳐있는 거니까 저렇게 사방에서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오는 이유는 설명이 불가능하고.

    "사라 얘도 참. 일은 무슨. 넌 내가 매일 사고만 치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냐?"

    "……."

    야. 찔리니까 그런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 짓지 마라.

    "그래. 내가 평소에 사고를 잘 치고 다니는 건 인정하는데, 아무튼 이번엔 아니야."

    사라의 시선이 주는 압박감을 이길 수 없었던 나는, 결국 한 발 물러서면서도 끝내 지금 이 시선은 나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말은 진심이었다. 진짜로 영문을 모르겠다.

    아니. 실은 말이야. 이유가 아예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야.

    나랑 레이첼 누님이 얼마 전에 길드에서 그런 소동을 벌였으니, 그 얘기가 소문이 퍼져서 주목을 받게 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은 해.

    나는 성자고, 레이첼 누님의 길드장의 딸이니까 말이야. 화제성은 충분하지.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저 시선들에 담긴 감정이 묘하단 말이지.

    이건 역시 자세한 사정을 알기 위해선 레이첼 누님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레이첼 누님이라면 분명 뭔가 알고 있을 거다.

    만약 누님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길드에 계속 있으셨을 테니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정도는 있을 테고.

    "아무튼 시선 같은 거 신경 쓰지 말라고. 어차피 던전에 가면 자연히 없어질 테니까. 그럼 얼른 다녀올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 황급히 레이첼 누님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역시나, 거기에는 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있는 레이첼 누님이 계셨다.

    "누님. 저 왔어요."

    "어, 어서오세요…."

    내가 말을 걸자, 누님은 그제야 기어들어갈 것 같이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해왔다.

    평소의 완전무결한 안내원 누님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

    이런 누님의 모습을 보는 건 엄청 드문데 말이야.

    아니. 어쩌면 처음 아니야?

    물론 누님이 보기보다 연애에 숙맥인 건 눈치 채고 있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이미지 트레이닝을 완벽하게 해오는 누님이다.

    그래서 적어도 내 앞에서는 연애에 통달한 성숙한 누님을 연기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런 누님이 여유를 완전히 잃고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라니.

    심지어 힐끔힐끔 눈동자를 돌려서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동공지진이 심하게 일어나는 모습까지 보였다.

    "누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뇨?! 무슨 일이라니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누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게 동요하잖아요. 일단 조금 진정하세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러는 거야.

    마지막에 누님과 헤어질 때, 살짝 누님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으로 헤어진 것 맞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평소의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어떻게든 극복 가능한 수준일 거다.

    게다가 지금의 누님 모습은,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느낌도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

    하지만 누님이? 나를 두려워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누님과 깊게 관련해서.

    "누님?"

    "…죄, 죄송해요!"

    내가 다시 한 번 누님을 부르자, 누님은 죄책감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는 고개를 푹 숙여 사과를 해왔다.

    "아니. 이유도 모르는 채로 사과를 받으면 곤란한데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혹시 사고라도 쳤어요?"

    "저, 저기…그러니까…그게…."

    나는 그런 누님의 사과에 일부러 가벼운 말투로 응대했지만, 그래도 누님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진짜 사고라도 친 듯, 표정을 더더욱 흐리며 제대로 된 대답은 들려주지 않았다.

    "누님. 저 믿죠?"

    "네, 네? 그, 그야…."

    "그럼 절 믿고 한 번 말해 봐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제가 누님한테 화를 낼 것 같아요?"

    "아, 아니요…하지만…."

    "누님."

    그렇게 설득을 하고 나서야, 누님은 겨우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날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공이 떨리고 있는 걸 보면,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실은 임기응변에 엄청 약해요."

    …네. 알고 있는데요.

    사라 때문에 몰래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완벽히 끝마치고 온다는 것도 폭로됐고.

    애초에 처음 둘이서 식사를 하러 갔을 때, 디아나가 오니까 긴장해서 엄청 횡설수설하면서 있는 말 없는 말 다 했었잖아요.

    누님이 임기응변에 약한 거야 누구보다도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죠.

    뭐, 그런 점도 귀여운 점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임기응변에 약한 대신,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라면 완벽하잖아요.

    실제로 사라가 폭로하기 전까지는, 난 누님이 진짜로 연애경험 풍부한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그게, 다른 사람들이 막 몰려서 질문공세를 퍼부었을 때…."

    "네? 질문공세? 다른 사람들이라니 누구요?"

    내가 그렇게 되묻자, 레이첼 누님은 자신이 횡설수설하느라 순차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듯, 눈동자를 굴려가며 차근차근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진짜로 예측지 못한 상황에는 엄청 약하시네.

    "그, 그러니까 제가 구원씨 저택에서 묵었을 때 그런 일을 벌이면서 퇴근하고, 다음 날 전날 복장이랑 똑같은 복장으로 지각해서 출근하게 됐잖아요?"

    "아, 네."

    "그래서, 그게…구원씨하고의 관계가 완전히 폭로되어서, 여러 사람들한테 엄청 질문공세를 받았어요."

    "아, 그럼 우리 이제 공인된 사이에요?"

    뭐, 거의 99%는 넘어온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누님은 아직 내 여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약간의 진심을 섞어서, 나는 농담조로 그렇게 말했다.

    누님의 긴장도 조금 풀어줄 의도로 말이다.

    "지,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누님은 역시나 내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예상도 못했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행동에 화들짝 놀랐다는 듯 움츠러들었지만 말이다.

    "아, 아무튼! 그래서 그게, 여러 질문들을 받았어요. 언제부터 그런 사이가 됐는지. 누가 먼저 고백을 했는지."

    그래도 내 의도가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닌지, 누님은 아까보다는 살짝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가…어떻게 구원씨를 유혹했는지 끈질기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누님은 그렇게 말하고, 잠시 말을 끊고 숨을 고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안 그래도 부끄러워서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니까 왠지 더 울컥해서. 그리고 그 사람들도 너무 끈질겨서 그만…."

    "뭐라고 했는데요?"

    "…구원씨는 당신 같은 사람들 상대도 안 해줄 테니까 꺼지…저리 가라고 했어요."

    …꺼지라고 했구나. 누님. 의외로 세시다.

    아니. 안내원을 하다보면 진상이란 진상은 다 겪어 봤을 테니까, 저 정도는 기본인가.

    "…어라? 그게 끝이에요?"

    아무튼 누님의 대화를 다 듣고 난 후, 내 감상은 이게 전부였다.

    그야 그렇잖아? 정말로 그냥 저게 끝이라면, 대체 뭘 두려워한 건데? 난 오히려 잘 대응했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괜히 부드럽게 대응했다가 다른 여자들이 호시탐탐 날 유혹하려고 들었다면 그게 더 위험했을 거다.

    주로 내 목숨이. 우리 애들에 의해서.

    "…아뇨. 문제는 그 다음이에요."

    하지만 누님은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을 오물거리며 몇 번을 망설이더니,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구원씨를 유혹하는 방법을 물었던 여자들, 대부분이 레벨이 그다지 높지 않은 모험가들이었어요."

    그야 그렇겠지. 만약 레벨이 높은 모험가라면, 굳이 날 유혹하려고 그렇게까지 애를 쓸 필요가 없다.

    아니. 그야 물론 유혹하면 좋기는 하겠지. 레벨업도 빨리질 거고.

    하지만 던전 심층 탐사에 정말로 의욕적인 게 아니라면, 굳이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다는 거다.

    하지만 저렙 모험가들은 다르다. 날 유혹하는 것만 성공하면 그야말로 인생이 바뀔 테니까.

    그런 당연한 얘기를 누님은 왜?

    "이해를 못하신 것 같네요. 그러니까, 대부분 외모가…."

    "아아…."

    누님이 그렇게 말하고 난 후에야, 나는 겨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날 유혹하는 방법을 캐내려던 사람들은 대부분 외모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누님은 이렇게 말한 거다. ‘구원씨는 당신같은 사람  상대도 안 할 거에요.’라고.

    즉, 이렇게 해석 될 여지가 있다는 거다.

    ‘성자는 여자 얼굴을 엄청나게 밝혀서, 웬만큼 예쁘지 않으면 상대도 안 해준다.’

    게다가 내 주변에는 하나같이 절세미녀들밖에 없으니, 그 소문은 더더욱 설득력을 얻는다는 얘기다.

    솔직히 말해서, 난 그게 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게, 인간이라면 사람 외모를 보는 건 당연하잖아?

    아니. 굳이 인간에 한정하지 않더라고, 생물이라면 누구나 상대방 외모는 보잖아?

    하지만 아무리 그게 진실이라고 해도, 그런 소문이 퍼지면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가 박힌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과연. 그래서 나한테 몰리는 시선들이 그랬던 건가.

    그 묘한 시선들. 나는 그 시선들의 정체를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외모에 자신 없는 사람들의 분노. 그리고 내 여자들에 대한 시기심.

    그리고 자기 외모에 자신 넘치는 사람들의, 날 한 번 유혹해보려는 도발적인 시선들.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서, 묘한 그 묘한 느낌을 만들어냈던 거다.

    그리고 누님이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이유 역시도, 이걸로 확실해졌다.

    나한테 미움 받을까봐 두려웠던 거다.

    "정말 죄송해요. 전 그 말이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나중에 해명을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소문이 퍼져버려서…! 죄송해요! 진심이에요! 그러니까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버리지 말아주세요!"

    누님은 내게 사과를 하면서, 필사적으로 그렇게 말하며 내게 매달렸다.

    지금만큼은 언제나 여유 있는, 연애에 통달한 것 같은 누님의 모습은 완전히 벗어던지고, 누님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아 필사적인 가련한 여성에 불과했다.

    "버리지 말라니…. 애초에 누님은 아직 제 여자도 아니잖아요."

    "아, 아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내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던 누님의 눈동자가 절망의 색으로 물들었다.

    "일단 누님이 제 여자가 되면 버릴지 말지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한 번 제 여자가 되겠다고 해줄래요? 그러고 나서 버릴지 말지 고민해볼게요."

    "아, 아아…!"

    하지만 내 다음 말을 듣는 순간, 누님의 표정이 이번에는 희망으로 가득 찼다.

    응. 역시 누님은 밝은 표정이 어울리신다.

    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기는 했지만.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고생이 꽤나 심했던 모양이다.

    "좋아하긴 아직 일러요. 아직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니까요."

    "네, 네에…."

    내가 그렇게 말해도, 누님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가 살며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서, 누님이 겨우 안정된 것 같이 보였을 때 나는 다시 말을 걸었다.

    "그래서 대답은요? 제 여자가 되는 거죠?"

    "…아니요."

    하지만 내 질문에, 누님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네?"

    "구원씨 여자가 안 되면 안 버려지고 끝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든 누님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니. 평소의 영업 스마일보다도 훨씬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사이에 마음을 가다듬고, 내 질문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끝난 모양이었다.

    "아차! 그런 맹점이! 내 무덤을 내가 판 건가?!"

    "후훗. 구원씨는 아직 누나한테 안 되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누님은 내 코끝을 손끝으로 가볍게 튕기고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마치 용서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듯이 애정을 듬뿍 담아서.

    애초에 용서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데 말이야.

    누님 말을 오해하고 이상한 소문을 퍼트린 녀석들이 잘못이지, 누님이 잘못한 게 아니니까.

    그리고 뭐, 솔직히 말해서 그런 소문 퍼진다고 해서 내가 신경 쓸 성격도 아니고.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누굴지? // 그러네요. 이름은 안 불렀는데 그렇게 써버렸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닭구 // 언제나 지적 감사합니다.

    다만, 지적해주신 부분 중 전자에 관해서는 ‘지금으로선’이 맞는 표현입니다.

    로서는 신분, 지위, 자격, 관계를 나타낼 때 쓰이는 말이고,

    로써는 수단, 방법, 도구에를 나타날 때 쓰는 말입니다.

    약간 헷갈릴 수도 있는데요. 조사 앞에 오는 명사가 어떤 의미로 쓰인 것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지금으로서는’과 같은 표현의 경우에는, ‘지금’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시간을 나타내는 명사로 한정되어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입장으로서는’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거죠.

    그래서 이 경우에는 로써가 아니라 로서로 쓰는 것이 맞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문장에서 로써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시면 편하죠.

    나머지 부분들은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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