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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29화 (6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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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남 구원

    내 뛰어난 화술에 힘입어, 그 이후로는 딱히 다른 여자의 이름이 언급되는 일도 없이 화기애애하고 알콩달콩하게 식사시간이 지나갔다.

    식사내내 실비아가 구석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게 살짝 마음에 걸렸지만 말이다.

    아니. 실비아 쟤는 평소에도 그렇기는 하지만, 오늘은 왠지 유독 더 심한 것 같아서 말이야.

    아까 전에 억지로 붙잡고 키스를 한 게 그렇게 충격이었나?

    "그럼 레이아, 갈까?"

    아무튼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나서, 나는 자연스럽게 레이아와 같이 방을 향하려고 했다.

    원래부터 레이아는 자기 차례 때 나랑 같이 씻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오늘은 정말로 오랜만에 돌아온 레이아의 차례다. 레이가가 나와 같이 가지 않을 이유가 없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레이아와 방에 가기 전에 먼저 바넷사한테 들르는 게 좋겠지만 말이야.

    정원에서의 키스사건을 일을 사과해야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일 던전에 가려면 미리 말해두는 게 좋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바넷사에게 들르지 않고, 이대로 레이아와 방으로 향하는 것을 택했다.

    뭐, 바넷사가 준비를 안 해주면 던전에 못 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던전에 가기위해 필요한 물품 구비는 오랜만에 다 같이 쇼핑하는 기분으로 스스로 하기로 하자.

    그런 것보다 지금은 레이아를 우선시하지 않으면.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한 나였지만, 레이아의 생각은 나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구원씨 먼저 가계시겠어요? 저는 우선 욕실에 들러서 몸을 씻고 뒤따라갈게요."

    "응? 하지만 씻는 거라면…."

    레이아가 먼저 씻고 온다고 하다니. 그것도 내가 같이 가자고 말했는데도 말이다. 혹시 뭔가 있는 건가?

    그런 의문을 품으며 다시 한 번 말을 건네려는 내게, 레이아는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었다.

    "오랜만인걸요. 조금이라도 더 완벽하게 준비된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아는 수줍은 듯 두 뺨을 살포시 붉히고는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조금 더 완벽한 모습이라니. 저기서 대체 얼마나 더 완벽해지려고. 아니. 저기서 더 완벽해지는 게 가능하기는 한가?

    가슴위에 살며시 얹어진 손에 의해 더욱더 그 크기가 강조되는 레이아의 가슴에 주목을 하면서,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내가 가슴을 쳐다봤다고 해서 딱히 가슴만 완벽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고.

    "레이아라면 며칠 안 씻어도 완벽한데 말이야."

    "구원씨도 참."

    그런 내 중얼거림에, 레이아는 농담하지 말라는 듯 한 손으로 가볍게 내 가슴을 어루만졌다.

    아니. 농담 아닌데 말이야.

    "진심이야.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증명해줄까?"

    "후훗. 안 돼요. 제가 씻고 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호색한 미소를 지으며 레이아에게 다가간 나였지만, 레이아는 그런 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면서도 살짝 몸을 뒤로 뺐다.

    쳇. 역시 안 되나.

    "후훗. 그럼 다녀올게요."

    내 실망한 표정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레이아는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해줬다.

    "응. 최대한 빨리 와."

    "으응…. 그건 약속 못 하겠어요.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으니까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그런 식으로 레이아를 보내주려 한 나였지만, 레이아는 그마저도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어!? 그럴 수가! 대체 얼마나?! 10분? 20분? 만약 30분이 넘어간다면 버틸 자신이 없어. 그땐 나도 죽음을 각오하고 욕실에 난입을…."

    "구, 구원씨도 참. 너무 엄살이 심하세요."

    "아니. 난 진심이야. 앞으로 레이아를 30분이나 더 못 본다니!"

    "후훗. 안 돼요. 참으세요."

    내가 떨어질 수 없다는 듯 레이아의 몸에 매달리자, 레이아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도 마치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그렇게 말했다.

    "대신 그동안에 할 일을 해놓으시는 게 어떤가요?"

    "내가 오늘 밤에 해야할 일은 레이아와 같이 밤을 보내는 것밖에 없어!"

    "정말로요?"

    그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엄살을 피우며 그렇게 말했던 나였지만, 레이아는 그런 날 바라보며 마치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라는 듯 되물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레이아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거 설마…그런 뜻이야?

    계속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했던 게, 아니. 애초에 나랑 같이 방에 가지 않고 먼저 씻고 오겠다고 한 것부터. 이걸 위해서 그런 거야?

    "응. 정말이야. 오늘 밤은 레이아한테만 집중할거야."

    "구원씨이…."

    그걸 깨닫고 나서도, 나는 굳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한없이 부드럽기만 했던 레이아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너도 사실은 내가 직전에 다른 여자를 만나고 오는 건 싫잖아?

    "구원씨. 고마워요. 하지만 그래도 전 할 일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 천사님은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가 한 발 양보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우리 천사님은 대체 얼마나 천사 같은 거야.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자꾸 그러면 손해 보는 역할만 한다니까? 실제로 지금도 그러고 있고.

    아니. 그렇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거다.

    오늘만큼은 절대로 천사님이 손해 보는 역할을 하도록 두지 않겠어.

    "아니. 그럴…응읍."

    그렇게 결심하고 입을 연 나였지만, 나는 한 문장도 채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다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말해두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레이아가 내 목을 두 팔로 꼬옥 끌어안았단 말이야.

    즉, 그 커다란 가슴에 내 얼굴을 파묻었단 말이야.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입을 열어.

    큭. 역시 천사님. 내 약점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셔.

    "구원씨도 아까 말하셨잖아요? 이런 감정적인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는 법이에요."

    손쉽게 내 입을 틀어막은 레이아는,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이르듯 내게 말을 했다.

    아니. 확실히 그 비슷한 말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난 감정적인 문제 전체를 두고 말한 게 아니라 트라우마에 한정해서 말한 거였는데 말이지.

    "그러니까요. 네? 아셨죠?"

    "아니. 하지만…."

    "구원씨. 절 너무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구원씨가 자꾸 그러시면 저도 마음이 흔들려버려요."

    아니. 레이아가 바넷사의 상황을 무시하고 지금부터 날 독차지한다고 해서,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심지어 당사자인 바넷사조차도 그런 생각은 안 할 거다.

    "후우. 알았어."

    하지만 레이아가 모처럼 이렇게 말을 하는 거다. 실은 자기도 지금부터 쭉 나와 함께 있고 싶을 텐데도 말이다.

    그런 레이아의 양보를 계속해서 무시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말다툼으로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얼른 바넷사를 달래주고 레이아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신, 일부러 시간 끌면서 굳이 오래 씻을 필요는 없어. 아니. 오히려 서둘러. 얼른 씻고 내 방으로 와. 나도 후다닥 정리하고 금방 갈 테니까."

    "후훗. 네. 알겠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레이아는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나도 얼굴을 반쯤 레이아의 가슴에 묻은 채, 그대로 레이아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그 따스한 시간을 즐겼다.

    "…저, 저기. 구원씨? 저…슬슬 정말로 씻고 싶은데요…."

    그리고 먼저 입을 연 건 레이아였다.

    레이아는 어째선지 살짝 부끄러운 표정으로 몸을 꼼지락꼼지락 거리면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몸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일 때마다 모양을 바꾸며 내 뺨에 짓눌리는 가슴의 감촉이 무척이나 환상적인…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레이아의 이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레이아가 아까 말했던 오랜만에 같이 밤을 보내는 거니까 완벽히 준비하고 싶다고 했던 말은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다지 신경쓸 필요 없는데 말이야.

    내가 아까 말했던, 레이아라면 며칠 안 씻어도 전혀 문제없다는 말 역시 진심이었으니까.

    "쓰으으읍."

    "꺄아아아아아악!"

    그렇기 때문에 장난삼아서 레이아의 가슴에 코를 파묻고 있는 힘껏 숨을 들이켜 본 건데, 레이아의 반응이 상상이상으로 격렬했다.

    "아, 아직 오늘은 안 씻었으니까 그렇게 냄새를 맡으시면 안 되요오!"

    레이아는 화들짝 놀라서 내게 떨어진 후,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내게 등을 돌리며 그렇게 외쳤다.

    얼마나 놀랐던 건지, 엉덩이 아래로 보이는 부드러운 꼬리가 바르르 떨리고 있을 정도였다.

    "괜찮아. 냄새 좋았어."

    "그럴 리가 없어요! 땀 냄새가 이렇게…!"

    나는 그런 레이아에게 엄지를 들어올리며 칭찬을 해줬지만, 레이아에겐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땀 냄새라니. 그런 거 전혀 없었는데.

    하지만 레이아는 진심으로 자기 몸에서 땀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 혹시 레이아.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아?

    레이아. 보통 사람은 너처럼 그렇게 후각이 발달되어있지 않아요.

    그렇게 말해도 상관없었겠지만, 나는 굳이 다른 표현을 쓰기로 했다.

    "레이아는 땀 냄새도 향기로워."

    "으으으읏!"

    내가 그렇게 말하자, 레이아는 아무 말도 못하고 꼬리로 내 가슴을 탁탁하고 몇 번 때리더니 그대로 도망가듯 욕실로 가버리고 말았다.

    이런. 너무 놀렸나.

    그래도 우리 천사님의 귀여우신 모습을 만끽했으니 나는 만족이다.

    조금 많이 부끄럽게 만든 모양이지만, 이따가 바넷사한테 다녀와서 사과하면 용서해주시겠지. 누가 뭐래도 천사님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일단 바넷사와의 일부터 처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똑똑.

    "…네. 누구십니까. 큿!"

    바넷사의 방문을 두드리자, 다행이도 안에서 바넷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당에 모습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날 피하고 있는 모양이니, 만약 여기 없었다면 찾기 상당히 힘들었을 거다.

    아니. 얜 보통 부르면 오니까 말이야. 내 쪽에서 찾는 건 반대로 힘들다고.

    그렇다고 해서 또 그 바넷사와 연이 있는 빈 방의 욕조에 쭈그리고 있을 리도 없고 말이다.

    아무튼 대답과 동시에 방문을 열었던 바넷사였지만, 내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침음성을 흘리면서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고 얼굴을 뒤로 살짝 뺐다.

    아까 전에 마틸다가 해줬던 설명을 생각해보면, 또 내가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니 일단 주변에 다른 메이드가 있는지부터 확인한 거겠지.

    그리고 기습 키스를 방지하기 위해 고개를 뒤로 뺐다는 거다.

    역시 마틸다의 설명을 정확했다는 건가. 설명하던 도중에 핑크빛 모드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그건 그렇고 저런 식으로 반응하니까 괜히 더 기습 키스가 하고 싶어지네.

    아까는 굿바이 키스였으니, 이번엔 굿 이브닝 키스라도 해볼까?

    뭐, 진짜로 했다가는 상황이 더 꼬이기만 할 것 같으니까 안 할 거지만.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아까 키스…."

    "일단 들어오십시오."

    키스라는 단어가 들린 순간, 바넷사는 문 앞에 서있던 내 몸을 황급히 끌어당기고는 자신의 방문을 닫았다.

    혹시라도 누가 듣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너무 서둘러서 내 몸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나하고 바짝 밀착해버리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야 말로 이대로 얼굴만 살짝 내밀면 그대로 키스가 가능할 정도로.

    딱히 몸을 붙잡고 있는 것도 아니니 떨어지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떨어질 수 있었겠지만, 바넷사는 아까 전 생각이 난 건지 몸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떨어질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굳이 바넷사와 떨어지려고 하지는 않고, 그대로 아까 하려던 말을 계속했다.

    "아까 돌아오고 나서 내가 기습적으로 키스를 했잖아?"

    "…네."

    내가 그 말을 꺼내자, 바넷사는 몸을 한 차례 움찔하고는 한 박자 늦게 대답을 했다.

    "그거 사과하려고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부하들 보는 앞에서 그러는 건 좀 심했지? 그것도 일하는 중에. 미안. 사과할게."

    "……."

    내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자, 바넷사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그 무표정 속에서 왠지 모르게 바넷사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얘, 지금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고 있지 않아?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사과를 받아들이죠. 앞으로 그런 일은 삼가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일하는 중에 키스를 하는 건 말입니다."

    그리고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후, 바넷사가 드디어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마틸다야. 얘 아무래도 그런 이유로 화난 게 아닌 모양인데?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늦어서 죄송합니다.

    냉장고에 있던 오래된 치즈를 먹었더니 살짝 장트러블이 생겨서요.

    노트북이면 화장실에 들고가서 계속 쓸 수 있었을 텐데 데스크탑은 이런 점이 불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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