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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27화 (61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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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남 구원

    "그럼 저는 식사의 준비가 있으므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다행히도 우리가 저택에 도착한 것은,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살짝 이른 시간이었다.

    마차에서 바넷사와 투닥투닥 거렸던 게 전혀 의미가 없었을 정도로,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는 거다.

    물론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는 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고,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바넷사의 기준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때문에 바넷사는 마차의 주차는 말 관리를 담당하는 메이드에게 맡기고, 자신은 서둘러 식당으로 향하려고 했다.

    얘도 참 바쁘신 몸이란 말이야.

    식사 준비 같은 건 사실 얘가 꼭 직접 갈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야.

    집사라는 위치상 요리를 직접 하는 건 절대 아닐 테고, 할 일이라고 해봤자 재료 관리 상황 파악이나 오늘의 메뉴 확인 후 승인 같은 일이 전부일 테니까.

    실제로 바넷사가 다른 일 때문에 식사 준비에 참여를 못한 적도 아예 없는 건 아니고 말이다.

    아니. 뭐,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매번 이렇게 뭐든 다 자기 눈으로 확인하며 일처리를 하려고 하는 건, 뭐든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이러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행위지.

    다만 바넷사를 집사로 두고 있는 주인이 아니라, 바넷사를 애인으로 두고 있는 남자로서는 살짝 아쉬운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조금 더 나랑 알콩달콩 거려도 좋을 텐데 말이지.

    평소에 얼굴 마주치는 횟수는 엄청 많은 바넷사지만, 너무 이것저것 일이 바쁘다보니 하루에 같이 있는 시간은 의외로 엄청 짧으니까 말이야.

    오늘처럼 같이 어디로 나가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

    "잠깐 기다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저택에 들어가려는 바넷사의 손목을 붙잡아 멈춰 세웠다.

    "뭡니…으읍!"

    그런 내 행동에 무뚝뚝하게 반응하며 뒤를 돌아봤던 바넷사였지만, 이어지는 내 행동에 그대로 시간이 정지한 듯 딱딱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바넷사도 내가 갑자기 정원 한복판에서 키스를 해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모양이다.

    뭐, 확실히 보는 눈이 많기는 하지.

    "꺄아악!"

    그리고 그 관객들은 어째선지 새된 비명을 질러댔다.

    아니. 메이드씨들. 내가 다른 여자한테 키스하는 거,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다른 여자들한테 하는 것도 종종 봤잖아. 그보다 애초에 다른 여자들한테 할 때는 그런 비명 안 질렀잖아.

    바넷사라서? 상대가 바넷사라서 그런 거냐?

    그러고 보니 전에 바넷사의 화장 소동이 있었을 때, 바넷사가 메이드들한테 엄청 인기 많은 것 같다는 얘기가 있었던 것…아니. 이제 와서는 별 의미 없는 얘기지만 말이야.

    이제 얘는 내 여자라고. 넘보지 마라.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기회에 확실히 각인시켜 주겠어.

    나는 바넷사와 입술을 맞붙인 채로, 한 팔을 그 허리를 휘어 감고 내 쪽으로 바짝 밀착시켰다.

    그리고 바넷사도 그런 내 행동에 아무런 저항을 보이지 않고, 내가 이끄는 대로 자연스럽게 몸을 내게 기대왔다.

    하지만 바넷사가 저항을 보이지 않은 건 딱 거기까지였다.

    "아얏!"

    혀를 내밀어 바넷사의 닫힌 입술사이를 별 저항 없이 가볍게 파고든 순간, 갑자기 바넷사의 몸이 움찔하고 떨리는가 싶더니 내 얼굴을 손으로 확 밀어낸 거다.

    게다가 의도한 건지 의도하지 않은 건지 그 손가락이 정확히 내 두 눈에 파고들고 있어서, 나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뒤로 넘어질 기세로 밀려난 후에야, 내 얼굴은 겨우 바넷사의 손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젠장. 그냥 헤어지기 전에 가볍게 키스만 한 것뿐이잖아. 그것도 안 되는 거냐.

    아니. 물론 헤어진다고 해도 어차피 식사시간에 다시 만날 거지만 말이야.

    아무튼 찔린 눈을 문지르며 내가 겨우 눈을 떴을 때, 바넷사는 이미 저만큼 멀리서 성큼성큼 빠르게 저택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설마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대로 도망가 버릴 줄이야.

    쟤 성격에 화났으면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저렇게 가버릴 리가 없는데?

    설마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워하는 건가?

    "야! 잠깐! 바넷사 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희망적인 예측에 불과하다.

    직접 얼굴을 확인해보기 전에 성급히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바넷사를 부르며 그 뒤를 재빨리 쫓아갔다.

    아니. 쫓아가려 했지만…쟤 진짜 왜 저렇게 빠른 거야. 사기 아냐? 나도 일단 암살자에서 전직한 몸이거든?! 쟤 대체 뭐야?! 아니. 애초에 집사란 게 대체 뭐야?!

    "허억. 허억. 야. 실비아. 방금 전에 바넷사 표정 어땠어? 화난 것 같았어?"

    결국 나는 바넷사를 따라잡는 건 포기하고, 내 옆에서 바넷사의 표정을 똑바로 봤을 실비아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네, 네헷?! 그, 그게에…. 그, 그러니까아…."

    물론 갑자기 화살이 자기쪽을 향한 실비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이걸 말해도 되나 망설이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뭐, 그렇겠지. 얘도 괜히 바넷사랑 척지기는 싫겠지.

    "미안. 그냥 화난 것 같은지 아닌지만 말해줘."

    "그, 그게에…아, 아마도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두손을 모아서 부탁하는 포즈를 취하자, 실비아는 눈동자를 굴려대면서 애매모호한 말투로 그렇게 말을 끌었다.

    "아, 역시 그래?"

    "하, 하지만 조금 화났을 수도오…."

    말투가 조금 애매하긴 했어도 아무튼 화가 안 났다는 말을 듣고 안심한 나였지만, 실비아는 그런 내 반응을 보고 또 황급히 말을 바꿨다.

    "아니. 어느 쪽인데."

    "우으으…. 바넷사공의 표정은 저로선 파악하기가 힘듭니다아."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실비아는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드디어 본심을 털어놨다.

    아, 그쪽이었냐. 바넷사랑 척지고 자시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괜찮아. 이따가 식당에서 확인하지. 뭐."

    나는 그런 실비아의 머리를 가볍게 톡톡 토닥여주고, 일단 저택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지금은 저택에도 내가 신경 써줘야 할 사람이 있고 말이다.

    "아, 왔어?"

    바로 얘 말이다. 얘.

    팔짱을 끼고 쿨한 자세로 로비의 한쪽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사라는, 내가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쿨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마치 이제야 내 귀가를 눈치 챘다는 듯이 말이다.

    아니. 너 목걸이로 알고 있었을 거 아니야. 너 지금 목걸이 옷 밖으로 빼두고 있거든?

    게다가 방금 바넷사가 들어온 것도 봤을 거 아니야.

    애초에 로비에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시점에서 날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명백하거든?

    뭐, 정원이 아니라 저택 내부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평소와는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묘한 고집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할까.

    혹시 자신의 유아퇴행이 다 나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

    뭐, 확실히 나랑 하루 종일 떨어져있던 것 치고는 상당히 멀쩡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굳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완치를 주장하는 것 같은 사라를 보고 있자니, 나는 왠지 묘한 장난기가 발동했다.

    "응. 다녀왔어."

    사라에게 다가가서 가볍게 키스를 해주며, 은근슬쩍 사라의 목에 둘러진 목걸이를 풀었다.

    암살자…이제는 월영무사지.

    아무튼 월영무사의 버프에 힘입어 은밀하게 손을 움직일 수 있었고, 목걸이 자체가 사라의 옷 위에 꺼내져 있었기 때문에, 오감이 민감한 사라에게도 들키지 않고 겨우 목걸이를 푸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뭐, 사라에게 들키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사라가 나와의 키스에 정신을 뺏기고 있었다는 게 가장 크겠지만.

    "후후훗."

    아무튼 그렇게 목적을 달성한 나는, 키스를 마치고 입술을 떼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응? 뭐야 갑자기."

    "훗. 짜잔!"

    "아앗! 잠깐! 그거!"

    사라는 그런 날 보고 이상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내 손에 들린 자신의 목걸이를 보고 안색을 바꾸며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더듬었다.

    "네가 언제까지 그렇게 태연히…쿠에엑! 자, 잠깐만요! 항복입니다! 목걸이는 돌려드릴 테니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나는 그런 사라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유지한 채 뒤로 내빼려고 했지만, 그보다 사라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사라는 망설임 없이 신속하게 내 배에 숄더 태클을 걸고, 그대로 내 배 위를 깔고 앉아서 마운트 포지션을 유지했다.

    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반응이 신속한 거 아니냐? 더러운 용사 버프 같으니라고.

    "싫어."

    물론 사라의 대답은 냉혹했다.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그런 식으로 빼앗아간 날 용서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사라야. 잘 생각해봐. 그거 선물해준 거 나거든?

    그런 내 마음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사라는 두 손을 들어올리고…잠깐 고민하는 것 같더니 그대로 내 겨드랑이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뭣?! 크흡! 흐앗! 야! 잠! 푸합! 야! 진짜로! 흐합!"

    설마 이런 식의 변칙 공격을 해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사라의 손바닥이 가져올 충격에만 대비하고 있었던 나는, 사라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때?! 얍! 얍! 반성했어?! 응? 반성했어?!"

    "바, 반성! 크합! 반성했으니까! 봐, 봐주…."

    "싫어."

    저항할 수단이 없는 나로서는 무조건 항복을 외쳐댔지만, 사라는 아직 날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실비아아아! 헬프으으!"

    "실비아라면 방금 씻으러 간다고 방으로 돌아갔어."

    때문에 비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도움까지 요청했던 나였지만, 그마저도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젠장. 그러고 보니 성에서 실비아하고도 했으니까 말이야.

    아무리 물의 정령으로 처리를 했다고는 하나, 그야 당연히 제대로 다시 씻고 싶겠지.

    "노오오오우!"

    "포기해. 걱정 마. 숨이 끊어지기 전엔 멈춰 줄 테니까."

    절망하는 날 보고, 사라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사라야. 왠지 즐거워 보인다?

    오빤 널 그런 식으로 키운 기억이…크흡. 젠장. 진짜 못 참겠어.

    그렇다면 이제 최후의 수단이다! 웬만해선 이 수단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앗흥! 사라야! 거기야! 좋아!"

    나는 허리를 흔들면서, 일부러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사라가 내 하복부에 걸터앉아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허리를 흔들면 그 탄력 있는 엉덩이에 물건이 스쳐서 꽤나 기분 좋았다.

    물론 내가 이런 소리를 낸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지만.

    "에, 헷?! 자, 잠깐!"

    내 의도대로, 사라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뚝 멈추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간지럼 공격이 멈춘 시점에서 이미 내 계획은 성공한 거지만, 나는 여기서 멈추기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지금부턴 반격의 시작이다.

    로비 한복판에서, 어디 한 번 부끄러워 죽어보라고.

    응? 부끄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훗. 적의 뼈를 취하기 위해선 때론 내 살을 줄 각오도 해야 하는 법이지.

    "거기야! 좀 더!"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쿠에엑!"

    물론 내 반격은 몇 초 가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사라의 손바닥 공격에, 나는 그대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사람은 적당히 하는 게 중요하다.

    사라와의 가벼운 소동도 끝나고, 나는 우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몸부터 씻기로 했다.

    오늘 밤은 오랜만에 레이아 차례니까 말이다.

    아무리 물의 정령을 이용해서 한 번 씻었다고는 하나, 냄새에 민감한 레이아다.

    최대한 몸에 남아있는 냄새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나는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구석구석 꼼꼼히 몸을 씻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드디어 저녁 시간이 됐다는 얘기인데.

    …바넷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평소라면 디아나의 뒤에서 서있어야 정상인데 말이야.

    오늘은 어째선지 바넷사가 아니라, 메이드 한 명이 서있었다.

    "저기, 바넷사는?"

    "네? 아, 바넷사님이라면 아직 할 일이 남아있으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대신 시중을 들게 됐습니다."

    일단 확인 차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뻔하디 뻔한 내용이었다.

    저거 분명 핑계겠지?

    "음? 왜 그런가? 바넷사에게 볼 일이라도 있는가?"

    그런 날 보면서, 디아나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넷사가 일 때문에 시중을 안 드는 게 오늘 처음 있는 일도 아닌 만큼, 디아나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요즘 피로가 쌓인 건지 일요일만 되면 하루 종일 기절을 하네요.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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