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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14화 (59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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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리시아의 감정

    "어머, 실비아. 자기. 어서와."

    침대에 반쯤 드러눕듯 앉아서 이쪽을 향해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펠리시아.

    화려한 드레스는 반쯤 벗겨져서 어깨는 환히 드러나 있었고, 긴 치마도 아슬아슬한 부분까지 말려 올라가서 그 섹시한 맨다리가 허벅지를 거의 다 드러내놓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침부터 계속 쌓여있었던 나로서는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아니. 애초에 쟤는 왜 멀쩡한 의자를 놔두고 침대에서 저러고 있냐?

    이전까지는 다른 놈들이랑 뒹구느라 그랬다고 쳐도, 이젠 그것도 아니잖아?

    자기 스스로 나랑 붙어먹는 동안은 다른 남자랑 안자겠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하여간 언제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알기 힘든 녀석이다.

    아무튼 저 여유로운 모습을 보니, 성문에서부터 예상했던 대로 아직 폭주의 위험은 없는 모양이었다.

    뭐, 지금도 사방으로 색기를 뿌려대고 있기는 하지만, 저건 쟤한테 있어서 패시브 스킬 같은 거니까 말이야.

    "그래. 별 일 없었지?"

    "응. 살짝 아슬아슬했지만. 그래도 위험했다고? 경고감이야. 경고."

    "이쪽도 나름 사정이 있었다고. 그치 실비아?"

    "……."

    "야. 실비아."

    "네헷?! 아, 넷! 그게, 조금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또 멍하니 있던 실비아는, 내가 그 몸을 살짝 건드리자 그제야 전원이 켜진 것처럼 움찔하고 반응하고는 입을 열었다.

    앞머리를 계속해서 손으로 쓸어내리는 동작이 엄청 어색해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실비아. 지금은 우리밖에 없으니까 존댓말 할 필요 없어. 그리고 자기. 우리 실비아한테 또 무슨 짓이라도 했어?"

    "무슨 짓이라니! 또라니! …뭐, 했지만."

    "실비아! 괜찮아?! 심한 짓 당한 거야! 너무해, 자기! 그런 짓이 하고 싶으면 대신 내 몸으로…!"

    "넌 그냥 당하고 싶은 것뿐이잖아. 이 마조야."

    "으흐응! 자, 자기도 참.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냉정하게 딴죽을 걸자, 펠리시아는 살짝 몸을 떨면서 섹시한 콧소리를 흘렸다.

    이 마조끼 있는 공주님…설마 진짜로 흥분한 건 아니지?

    직접 때리는 건 또 싫어하는 주제에 하여간 성벽하고는.

    뭐, 거칠게 다뤄지는 것 자체에 흥분하는 게 아니라, 생소한 경험 자체에 흥분하는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말이야.

    "그래서, 사실은 어떤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비, 비밀! 비밀이야!"

    펠리시아가 계속해서 흥미를 보이자, 아까부터 부끄러움에 몸을 떨던 실비아가 더는 안 되겠다는 듯이 두 팔을 좌우로 맹렬히 흔들어대며 외쳤다.

    "어머, 너무해. 나한테도 비밀인거야…? 실비아, 우리 우정이 고작 그 정도였어?"

    "웃…하지만…하지마안…."

    하지만 펠리시아가 살짝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반박할 말이 없어진 실비아는 도움을 청하듯 내 쪽을 쳐다봤다.

    물론, 나는 실비아의 기대에 응해주기로 했다.

    "후훗. 궁금하냐? 궁금해?"

    "으아아아…."

    야. 실비아. 그러니까 왜 절망한 표정을 짓는 건데.

    너도 실은 자랑하고 싶잖아? 그냥 살짝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뿐이잖아? 그러니 내가 대신 말해줄게.

    "자기도 참. 너무 애태운다니까. 나, 그런 플레이도 싫어하지 않지만, 너무 애만 태우는 건…."

    그리고 펠리시아 역시도, 실비아의 그런 반응은 완전히 무시하고 날 바라보면서 섹시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러니까 넌 왜 그런 대사를 쓸데없이 섹시하게 말하는 건데!"

    "글쎄? 선천적으로 타고난 넘쳐흐르는 페로몬 때문에?"

    "그냥 머릿속에 그 생각밖에 없는 것뿐이잖아!"

    페로몬이 넘쳐흐른다는 말을 부정할 수 없는 게 은근히 분하다.

    요망한 서큐버스 같으니라고.

    "어머. 너무해."

    "하아…. 아무튼 이거다."

    "으헷?! 헷?!"

    나는 실비아의 뒤로 돌아가서, 더 이상 앞머리를 만지지 못하도록 두 팔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저항하면 빠져나올 수 있을 실비아는, 내게 거친 짓을 할 수는 없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나랑 붙어있어서 힘이 빠진 건지, 두 눈을 꼬옥 감은 채 몸을 바들바들 떨기만할 뿐이었다.

    아니. 딱히 잡아먹으려는 거 아니니까 말이야. 그렇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 않냐?

    "어디어디…."

    그리고 펠리시아도 실비아가 유독 앞머리를 만지고 있었다는 걸 진작 눈치 채고 있었는지, 내가 실비아를 구속하자마자 침대 위를 기어와서는 그 앞머리를 들췄다.

    아니. 야. 앞 좀 가려라. 너 지금 반쯤 벗고 있는 거 모르냐? 흘러내린다고 이것아.

    "훗. 그 문양으로 말할 것 같으면."

    "헤에. 이게 실비아가 말했던 그거야?"

    나는 자랑스럽게 사도 임명에 대해 설명하려 했지만, 펠리시아는 이미 실비아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으, 응…."

    "잘 됐잖아! 축하해!"

    실비아는 그런 펠리시아를 보면서 살짝 말끝을 흐리며 왠지 자신 없게 대답했지만, 펠리시아는 그런 실비아를 꽉 껴안아주며 축하했다.

    "자기도 참. 손이 빠르다니까. 내 친구를 울리면 가만 안 둘 거야!"

    그리고는 날 올려다보면서, 펠리시아는 경고를 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표정은 장난스러웠지만, 나는 왠지 펠리시아가 진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펠리시아를 보면서 나는….

    "앞으로 너랑 안 한다."

    누구의 입장이 위인지를 똑똑히 알려줬다.

    "흐윽…미안해, 실비아. 내가 약한 바람에…. 이 귀축! 울릴 거면 날 괴롭혀! 실비아는…!"

    "아니. 그러니까 은근슬쩍 자기 욕망을 끼워넣지 말라고! 네가 말 안 해도 안 울려! …난 평범하게 잘해줬는데 실비아 혼자 우는 건 상관없지?"

    "아, 응. 그건 괜찮아."

    "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와 펠리시아는 마주보고 웃고 실비아 혼자 절망하는 그림이 완성됐다.

    아니. 그러니까 울지 말라고. 잘해주겠다니까?

    "우으…그럼 전 이만 나가있겠습니다아…."

    설마 했던 나와 펠리시아의 합동공격에 정신이 피폐해진 실비아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 응. 미안해, 실비아. 아, 통신 마법 사용허가는 미리 내려놨으니까."

    "응…."

    펠리시아는 실비아를 실컷 놀린 게 살짝 미안했는지, 몸을 뒤로 뉘이고 웃던 자세 그대로 그렇게 사과를 했다.

    "우후후후. 그래서 자기, 어떻게 됐어?"

    하지만 그뿐이었다.

    실비아가 나가자, 펠리시아는 곧장 쌓아둔 베개에 기대고 있던 상반신을 살짝 일으킨 후 날 바라보면서 갑자기 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물론, 갑자기 그런 의미 불명의 질문을 던져봤자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뭐가?"

    "뭐긴 뭐겠어. 전에 내가 그렇게 되어버렸을 때 말이야. 새침이랑 실비아는 자기가 그날 직접 풀어줬지만, 그 무뚝뚝한 남장 집사씨는 방치하고 있었던 거잖아?"

    "새침이라니…너 사라한테 직접 그렇게 부르지 마라."

    "아하핫. 알고 있다니까. 그래도 잘 어울리지 않아?"

    "전혀. 어딜 봐서? 사라의 어디가 새침한데? 난 전혀 모르겠는데."

    "아하하하하하핫!"

    아니. 이것아. 농담으로 한 말 아니거든.

    시원스레 웃기는.

    "알았어. 알았어. 그러는 자기도 한 번에 알아들은 주제에. 아무튼 그래서? 그 무표정 남장 집사씨는? 실비아가 안색을 바꾸고 뛰쳐나갔을 정도니까, 엄청 큰일이었던 거지?"

    그렇게 말하는 펠리시아는 전혀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오히려 재밌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빛내며 날 바라봤다.

    역시 이 녀석, 성격 더러워. 어쩌면 사라를 놀리는 것도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원래 그런 성격인 건지도.

    그리고 바넷사도 무표정 남장 집사라고 부르지 마라.

    확실히 무표정이고, 바지를 입고 있고, 집사지만 말이야.

    걔 그래 봬도 귀여운 옷도 있다고? 저래 봬도 더운 지방에선 엄청 노출도 높은 메이드 복 같은 걸 입는다고. …뭐, 그 옷도 이제는 내가 가지고 있지만 말이야.

    아무튼 바넷사가 여기 없는 게 다행이지.

    참고로 바넷사는 아예 이 방에 오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성에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왜냐하면 마차에서 대기를 한다면서 그쪽에 눌러앉아버렸기 때문이다.

    집사인 동시에 내 여자이기도 하니까, 난 데려오려고 했는데 말이야.

    나도 꽤나 끈질기게 데려오려고 했지만, 바넷사는 요지부동이었다.

    집사 일을 할 때는 집사의 본분을 다 하겠다나 뭐라나.

    하지만 마차를 지키고 있는 게 집사의 본분이라는 바넷사의 말에는 살짝 모순이 있었다.

    왜냐하면 전에는 같이 성까지 따라왔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펠리시아의 기운에 당한 거고 말이다.

    아마 바넷사가 안 따라온 건, 전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것을 걱정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 여자니까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것 없을 텐데 말이야. 하여간 조심성은 강하다니까.

    "응? 어떻게 된 건데? 얘기해봐? 그 집사씨랑 했어?"

    아무튼 펠리시아가 저렇게까지 기대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나는 반대로 반격을 하고 싶어졌다.

    나도 성격 더러운 걸로 남 말할 처지는 아니라고?

    알아. 그래서 내가 쓰레기잖아.

    "아니. 별 일 없었는데. 그러는 너야 말로 어떤데? 전에 봤을 때 대충 세어도 열 명은 넘게 영향 받은 것 같았는데."

    "그게 왜? 전부 느끼게 해주면 그만이잖아? 그런 것도 신선해서 재미있었어."

    하지만 내 반격에도 불구하고, 펠리시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표정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라서, 나는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 뭐, 얘 성격이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을 아예 못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재밌었다니.

    "아니. 같은 여자였잖아. 그래도 괜찮은 거냐. 공주님."

    "하지만 그렇게 된 건 딱히 내 잘못이 아닌 걸? 굳이 따지자면…."

    "그래서 해결해줬잖아!"

    "아하핫. 그래도 조금 책임을 느끼기는 했었나 보네? 괜찮아. 책망하는 거 아니니까. 말했잖아? 그런 것도 신선해서 재밌었다고."

    "아니. 그래도 그걸 재밌어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

    여자 둘이서 뒤엉키는 건, 물론 남자인 내 입장에선 꽤나 흐뭇한 광경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됐다고 생각해보면…그러니까 나로 치면 내가 다른 사내새끼랑 붙잡고 뒹구는 느낌이란 거잖아? 난 때려 죽여도 못한다.

    아니. 만약 그래야 되는 상황이 오면 상대를 죽인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었잖아? 그럼 즐기는 게 좋잖아?"

    …그래. 너 엄청 긍정적이다.

    아니. 그냥 쾌락주의자인 것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그쪽은?"

    "뭐가?"

    "또 시치미 떼기는. 설마 이런 걸로 말을 돌리 셈이었어? 그 집사님 말이야. 아무 일도 없었을 리가 없잖아? 한 거지? 그치?"

    마치 미인을 운 좋게 따먹은 친구에게서 무용담이라도 들어보려고 하는 것 같은 태도.

    물어보는 게 차라리 같은 사내 새끼였으면 나도 무용담을 떠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저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게 퇴폐적인 색기를 뿜어대는 미인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위화감이 느껴졌다. 하여간 별난 녀석이라니까.

    그리고 야. 그런 차림 하고서 앞으로 숙이지 마라.

    아까도 생각했는데 말이야, 너 지금 자기가 반쯤 벗고 있단 자각이 있기는 하냐?

    "아니. 안 했는데? 그냥 애무로 풀어주고 끝났어."

    물론 나는 펠리시아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생각이 없었다.

    기대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표정을 망쳐주고 싶다는 짓궂은 마음도 살짝 있었고, 무엇보다도 진짜로 안 했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펠리시아의 기운을 풀어줄 때는 안 했다.

    그 이후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엄청 했지만 말이다.

    "거짓말!"

    "진짜로 안했거든?! 너 예전에 네가 유혹할 때도 내가 거절했던 거 까먹었냐? 나 이래 봬도 꽤나 순정남이라고."

    "아하하핫! 자긴 진짜 재미있다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펠리시아는 다시 배를 잡고 폭소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진짜! 나 농담한 거 아니거든?!

    "아하, 하아…아무튼 나 때랑 집사씨 때랑은 다르지. 이번엔 같이 잘 합법적인 이유까지 있었잖아? 그런데도 그 기회를 마다하고 안 했다고? 그것도 집사씨가 엄청 들이댔을 텐데? 자기, 내 눈 똑바로 보고 사실대로 말해봐."

    한참을 웃던 펠리시아는 장난 그만 치고 진실을 말해보라는 듯 또 다시 눈을 반짝이며 날 쳐다봤다.

    "진짜라니까 그러네. 매혹 걸 생각하지 마라."

    "자기도 참. 자기한테는 이제 그런 짓 안 한데도.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진짜로 안 한 거면…자기, 괜찮은 거지? 나 이번에도 엄청 기다렸는데, 만약 자기랑 못 한다고 하면 울 거야."

    내가 무뚝뚝하게 진실을 고하자, 펠리시아는 이번엔 두 주먹을 눈가에 가져다대고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물론 자기가 말해 놓고도 내가 고자가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눈은 웃고 있었지만.

    "미안. 실은 나 불능이…자, 어서 울어봐."

    "에잇!"

    "우왓! 너 뭐하냐?!"

    이 녀석! 아무 준비자세도 없이 갑자기 내 고간을 만졌어! 아니. 지금도 만지고 있어!

    야! 주물거리지 마라! 장난감 아니거든?!

    그리고 앞 좀 가려라! 아니면 아예 그냥 다 벗던가!

    "후훗. 자기도 농담은. 어머 손 안에서 팔딱팔딱 신선하게 뛰는 게…."

    "생선 아니거든?!"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정시 연참!

    난 키보드를 두드리고 떡씬을 쓰려했지만, 거기엔 오직…만담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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