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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크네 클랜의 함정
그렇게 무사히 아라크네 클랜 하우스를 빠져나온 나였지만, 정문 밖을 나서고 나서도 발걸음이 느려지는 일은 없었다.
한 가지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나는 지금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다. 맹렬하게.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 지금까지 너무 많은 유혹을 견디기만 했어.
얼른 저택에 가서 성욕을 조금 해소하지 않으면.
내 상태가 지금 어느 정도로 심각하냐면, 방금 전 루티아가 등에 가슴을 밀착시킨 것만으로도 흥분이 됐을 정도였다.
아, 냉정히 생각해보니 그건 평소에도 흥분할지도.
아라크네의 클랜장이나 앨리시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레즈비언 의혹이 있는 누님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걸 감안하더라도, 아니. 그래서 더 색기가 느껴지는…크흠!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무튼 중요한 건, 나는 지금 욕구 불만 상태라는 말이었다.
간밤에 나랑 하루 종일 뒹굴었던 디아나가 들으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만큼은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가끔 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성욕이 왕성하단 말이야.
내가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원래부터 야겜 매니아였던 놈이 무슨 말을 하냐고 하면 나도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말이었다.
왠지 이 세계에 와서 성욕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단 말이야.
정력이 강력해야하는 성자인 만큼, 정력에 비례해서 성욕도 왕성해지는 걸까?
어쩌면 가능성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나하고 마찬가지로 여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서큐버스 역시, 그 강력한 매료능력에 대한 대가로 주기적인 성관계가 필요하니까 말이야.
전에 봤던 펠리시아의 그 모습을 생각해보면, 나 같이 살짝 성욕이 강해지는 것 정도는 귀여운 수준…응? 잠깐만. 그러고 보니 나…이번에 던전에 다녀와서 성에 들른 적이 있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자신이 욕구불만 상태였다는 것도 잊고 황급히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했다.
던전에서 돌아오고 벌써 6일째. 게다가 이번에 던전에서 지낸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 아니. 길다.
물론 저번에 마지막으로 펠리시아를 만났을 때, 또 폭주하는 일이 없도록 엄청나게 해대고 오긴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역시 너무 오래 방치해두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아니. 변명을 하자면, 까먹은 건 아니었다.
다만 요즘 일이 너무 많았잖아? 나도 사람이다 보니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어서 말이야.
뭐, 이미 한 번 있었던 일인 만큼, 또 펠리시아가 폭주를 했다면 이번에는 성에서도 사람을 보내왔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지금 여기서 이렇게 혼자 머리를 싸매고 있어봐야 소용없다.
저택에 가자마자 처음 보는 애 한 명 데려다가 방으로 끌고 가는 작전은 잠시 보류하기로 하고, 일단은 펠리시아부터 처리하도록 하자.
뭐, 어차피 나 스스로의 욕구 불만 상태를 풀기도 해야 했으니, 겸사겸사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구원!"
그렇게 정하고 저택까지 황급히 뛰어간 나를 반겨주는 건, 사라의 목소리였다.
정문에서부터 대기하고 있었던 건가?
그러고 보니 얘도 아직 유아퇴행이 완치된 건 아니었지.
뭐, 방금 전에는 잠깐 나갔다 온 거니까 별 일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앨리시아와 대화를 나누러 갔다가 예상외의 사건이 터져서 살짝 시간을 잡아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시간은 점심시간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응. 바넷사는 먼저 왔지?"
"그거야…칫. 뭐야. 오자마자. 또 바넷사한테 볼 일이라도 있어?"
내게 다가온 사라의 몸을 살짝 끌어안아주며 바넷사가 왔는지 확인하자, 사라는 살짝 토라진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나, 요즘 내가 바넷사한테만 너무 신경을 썼던 것도 사실이니까 말이야. 사라 입장에서는 그야 재미없었겠지.
하지만 사라도 사정을 이해하는 만큼 이렇게 대놓고 질투하는 모습은 안 보였었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나랑 떨어져있었던 거랑 겹쳐서, 살짝 본심이 흘러나와버린 건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런 모습을 보면 얘가 우리 중 제일 어리다는 게 실감이 난다니까.
"그런 거 아니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볼 일이 없는 건 아니기는 하지만. 마차를 부탁하려고 했던 거야."
나는 그런 사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면서, 타일르듯이 그렇게 말했다.
마치 어린애를 대하는 것 같은 태도에 사라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면서, 그래도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을 치우려고 하지는 않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차? 또 어디 나가게?"
"응. 생각해보니 돌아와서 아직 성에 안 갔잖아. 공주한테도 슬슬 한 번 들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네."
내 말에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사실이 떠올라버렸다는 듯, 사라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같이 갈래?"
"…됐어. 구원이나 갔다 와."
아직 유아퇴행이 완전히 나은 게 아닌데다가, 성에 가면 또 얼마나 시간을 잡아먹게 될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사라도 같이 가자고 제안해봤던 거였지만, 사라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결국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 괜히 또 그 여자 얼굴 보면 화날 것 같고."
"아니. 그건…."
"뭐야?"
그래 봬도 펠리시아 걔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 건데.
그런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결국 말을 아끼기로 했다.
괜히 그런 것까지 내가 참견할 필요는 없겠지. 말했다간 펠리시아 본인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고.
"아니. 아무것도. 그럼 난 다녀올게. 만약 정 못 참겠으면 디아나라도 데리고 같이 성으로 와. 디아나정도면 그냥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뭐니 뭐니 해도 걘 쿠데타를 일으키겠다고 날뛰면서도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신분이니까."
"바보. 저녁이면 볼 건데 그렇게까지 할 리가 없잖아."
나는 이전까지의 대화내용을 얼버무리듯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을 했지만, 돌아오는 건 사라의 부끄러움을 감추듯 쏘아붙이는 말투뿐이었다.
하여간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과연 저녁이면 볼 수 있을…."
"뭐야?"
"아닙니다. 저녁때까지 돌아오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바넷사를 불러 마차를 준비시키고 성으로 향하게 됐다.
안 그래도 내가 아라크네 클랜에 들를 때부터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바넷사는, 이번엔 또 성에 가겠다며 마차를 준비시키니 더더욱 기분이 안 좋아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바넷사도 내가 성에 무얼 하러 가는지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바넷사. 너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이건 그냥 의무로 하러 가는 거라니까 그러네."
그런고로, 마차에 탄 나는 또 아까 전처럼 마부석 쪽에 난 창문으로 열심히 바넷사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이번엔 아예 마차에 탈 때부터 마부석에 같이 타려고 해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방해라는 바넷사의 차가운 한 마디에 얌전히 마차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그런 내 노력에도 바넷사는 이쪽을 보지도 않고 있었지만, 그냥 운전을 위해서라고 믿고 싶다.
"또 그런다. 또. 너 내가 네 표정도 못 읽을 것 같아?"
뭐,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반쯤 감으로 찍는 거지만 말이야.
아니. 진짜로 표정 읽기 힘들다니까. 얘.
"괜찮아. 펠리시아하고는 너랑 할 때처럼 사랑이 담겨있지…."
"성희롱입니다."
"뭣이?! 진짜로?! 이정도도 안 되는 거야?! 우리 사이에?!"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고 할지라도, 성희롱이 성립되지 않는 건…."
"오, 우리가 사귀는 사이란 건 인정하는구나."
"……."
똑바로 앞만 본 상태로 냉정하게 대응하던 바넷사였지만, 이번만큼은 스스로 말하고도 살짝 부끄러워진 건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바넷사. 할 말 없으면 입을 다물어버리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어디 시험 삼아서 구원님이 아니라 자기라고…."
"구원님."
"아니 그러니까 구원님이 아니라, 자기라고…."
"방해됩니다. 조용히 하십시오."
"네."
치사한 녀석.
대화가 자기한테 불리해지면 대화를 중단해버리는 것도 좋은 습관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하아…대체 쟤는 왜 이렇게 몰라주는 걸까? 왜라고 생각해?"
결국 그 이상 바넷사를 방해할 수 없어진 나는, 얌전히 포기하고 내 무릎 위에 올라가 있는 정신안정제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사실 나는 마차에 혼자 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실비아와 같이 타고 있었다. 그것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내 품에 꽉 껴안은 상태로.
아니. 실비아 얘도 간간히 집에 연락도 하고 해야할 테니까 말이야.
성에 볼 일이 있으면, 실비아도 같이 따라가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
"실비아?"
"흐햣! 네, 네헷!? 무, 무슨 일이십니까아?!"
아까부터 계속 바들바들 떨고 있던 실비아는, 처음엔 내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는지 눈치 채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것에 신경쓸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해야 하나.
사도 임명 전에 살짝 면역이 생기는 것 같더니, 결국 사도 임명을 하고 나니까 다시 원상복구 되어버렸단 말이지.
아니. 오히려 증상이 더 악화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아니. 그러니까 바넷사 말이야.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라고 생각해?"
"그, 그건…!"
"그건?"
솔직히 답변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는데, 실비아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해주려는 모양이었다.
"다, 다른 여자를 이런 식으로 껴안고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아!"
결국 제대로 된 답변이 아니라, 내 품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강한 소원을 드러낸 것뿐이었지만.
얘도 참.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그래도 안 놔줄 거다."
"히이이잉…."
내가 냉정하게 딱 잘라 말하자, 실비아는 두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가리고는 귀여운 목소리를 흘리며 몸을 웅크렸다.
그런 자세를 취하면 내 품에 더더욱 파고들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아, 그래서 이마를 가리고 있는 건가. 혹시라도 내 몸에 닿지 않도록.
"왜 싫어?"
"우윽…조, 죠습니다아아! 히잉!"
아니. 야. 좋으면 좋은 거지 왜 울려고 그러냐.
아무튼 그렇게 달리는 마차 안에서 실비아테라피를 만끽하며 지내고 있자니, 어느 샌가 마차는 성문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창문 밖으로 꺼낼 기세로 창문에 달라붙어서, 밖에 있는 병사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전에 공주가 폭주했을 때는 성문 앞에서부터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직 기한이 맞은 건지, 적어도 성문 앞은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괜찮아 보이는 것 같지?"
"…그런 것 같군요."
뭐가 괜찮은 건지 정확히 설명을 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하고자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눈치 챈 듯 바넷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니 바넷사 역시도 꽤나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얘도 공주의 그 기운에 당했었지. 그래서 결국 내가 몸을 달래주게 됐고 말이다.
아마 그때 내가 엄청난 자제심을 보였던 것이, 바넷사의 마음의 벽을 허무는데 크게 도움이 됐을 거다.
어라? 그렇게 따지고 보면 공주의 그 기운은 나랑 바넷사 사이를 이어준 큐피트의 화살이었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네?
"혹시 긴장 돼?"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걸 보니까 신경은 쓰고 있었던 모양인데? 걱정 마. 또 그 기운데 당하더라도, 내가 다시 해결해줄 테니까. 그러니까 이번엔 화장 같은 것도 할 필요 없다고. 아니. 물론 화장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야. 넌 맨얼굴도 엄청 예쁘지만 화장도 엄청 잘 받으니까 가끔은…."
탁!
야. 이래 봬도 안심시켜 주려고 한 말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냥 창문을 닫아버리는 건 너무하지 않냐?
뭐, 창문이 닫히기 직전에 바넷사의 귀가 살짝 빨개진 건 볼 수 있었으니,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성문을 통과하고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성에서 메이드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에서 우릴 맞이해준 건, 폭주 상태가 아니라도 요염한 기운을 사방에 뿌리고 있는 우리의 퇴폐적인 공주 펠리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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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짝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글 쓰던 중간에 코피가 터지는 바람에 조금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