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594화 (57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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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의 본심 -->

"그래서, 그럼 너도 이제 그냥 집사로 남는 건 싫다고 인정한 거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렇다고 집사 자리를 포기하겠다고 한 건…."

"나랑 일, 뭐가 더 소중해?! 선택해!"

드디어, 드디어 나는 이 대사를 바넷사에게 날릴 수 있었다.

얘한테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대사였는데, 지금까지는 일을 선택할까봐 할 수 없었단 말이지.

"으읏…."

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채, 바넷사는 낮은 침음성을 흘리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고민을 하는 거냐. 어쩔 수 없지. 조금만 더 밀어붙여볼까.

"참고로 일을 선택하면 평생 너랑 말도 안 할 거다."

"으, 으윽…구, 구원님이…읏…."

내가 그렇게 퇴로를 차단해버리자, 바넷사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대답을 하려했다.

…이러니까 꼭 내가 괴롭히는 것 같잖아.

원래 얘는 언젠가 꼭 한 번 울리겠다고 마음먹었던 나지만, 막상 울리려고 하면 항상 마음이 약해진단 말이야. 나도 참 사람이 너무 착해서 탈이야.

"농담이야. 농담. 전에 디아나도 말했잖아? 내 여자가 된다고 해서 딱히 집사 자리를 포기할 필요는 없어. 둘 다 하면 되는 거잖아."

"하지만 그렇게 되면 위계질서가…."

"무슨 위계질서? 설마 집사인 너랑 주인인 디아나가 동등한 위치가 되는 걸 걱정하는 거야? 꿈 깨. 내 처는 사라, 디아나, 레이아 셋뿐이야. 넌 어차피 내 여자가 되도 첩으로 끝나. 알았어? 처랑 첩이랑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고. 그러니까 괜한 걱정은 할 필요 없어."

사실 난 처첩 구분 같은 건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따지고 싶지 않았다. 뭔가 차별하는 것 같아서 싫잖아.

물론 먼저 만나서 지금의 생활을 지지해주고, 다른 여자도 받아들여준 셋부터 더 신경을 쓰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비아나 마틸다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냐? 그건 또 아니다.

그랬다면 애초에 사도 임명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하늘과 땅차이라니. 헛소리에도 정도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되도록 그런 발언은 안 하도록 하면서 살아왔던 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바넷사를 안심시킬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일부러 그래봐야 첩이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바넷사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날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다.

첩으로 받아들여지려는 입장에선 화내거나 실망해도 될 만한 내 발언에, 바넷사는 오히려 가볍게 한숨까지 내쉬며 중얼거렸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 구분이 허울뿐이란 걸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구원님 자신은 전혀 구분없이 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허, 허울뿐이라니. 무슨 소리야? 난…."

"만약 구원님의 목숨을 바쳐서 실비아님이나 마틸다님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안 하실 겁니까?"

"야. 그거야 당연히 살리지. 아무리 그래도 일단 내 여잔데 어떻게 버리냐?"

"구원님이 죽으면 처 세 분이 슬퍼하실 텐데도 말입니까?"

"……."

이게 정곡 찌르지 마라.

너 패닉상태 아니었어? 왜 은근슬쩍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는 건데?

"그, 그래도 디아나는 자기가 처고 너희는 첩이라는 걸 확실히 하고 있으니, 위계질서가 무너질 일은 없잖아?"

"저도 아는 걸 디아나님이 모르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디아나님이 정말로 첩에게 상하관계를 확실히 하려고 하는 그런 분으로 보이십니까?"

"……."

그건 아니지.

사라랑 둘이서 자기가 본처라고 싸우는 주제에, 사실 사라도 디아나도 다른 애들한테 그런 걸 따지는 걸 본적이 없다.

그냥 실비아나 마틸다가 알아서 낄 데 안 낄 데를 구분하고 있다는 느낌이지.

그런 내 생각은 바넷사도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처첩들 간에 위계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첩으로 받아들여지신 두 분이 제대로 대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넷사가 스스로 이렇게 말함으로서, 나는 반격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반격의 기회를 주는 걸 보면, 얘도 아직 표정만 무표정이지 완전히 냉정해진 건 아닌 모양이다.

"뭐, 내가 좋은 여자를 알아보는 눈 하나는 타고나서 말이야."

"지금 그런 자랑을 듣자고 하는 게 아닙니다만."

"너도 그 좋은 여자들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읏!"

처음엔 내가 그냥 자랑하는 건 줄 알았는지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던 바넷사였지만, 내가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해주자 또 두 뺨이 붉게 물들었다.

"결국 너도 첩으로 들어오면 알아서 잘 할 거 아냐? 아니야?"

"하지만…."

"야. 너 그렇게 내 여자가 되기 싫냐?"

"싫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아! 진짜! 하지만 하지만 시끄러워! 이제 됐어! 넌 지금부터 내 여자야!"

"하, 하지만!"

"너한테 거부권은 없어."

"그렇게 제멋대…으응…."

나는 바넷사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그 목뒤로 뻗어서 얼굴을 잡아끈 후, 그대로 바넷사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제대로 말로 설득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마지막에 결국 이렇게 억지로 밀어붙이게 될 줄이야. 스스로가 생각해도 조금 한심하게 생각됐다.

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바넷사도 말로만 거부할 뿐 내 키스를 피하거나 하진 않았다는 거다.

아니. 오히려 참기 힘들었다는 듯이 적극적으로 내 혀를 얽혀왔다. 정열만 느껴질 뿐 상당히 서툴렀지만 말이다.

나는 두 손을 올려서 바넷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계속해서 키스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바넷사의 머리 쪽에서 딱딱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용인족 모습에 구애됐던 걸 기억하고 스스로 변신한 걸까?

아니면 예전에 극도로 흥분한 나머지 변신이 풀린 것처럼, 지금도 나와의 키스가 황홀한 나머지 변신이 풀린 걸까?

뭐, 어느 쪽이든 상관 없지만.

나는 계속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덤으로 손끝에 닿는 뿔도 가끔 톡톡 건드려줬다.

"이걸로 넌 지금부터 내 여자야. 알았어?"

"응…하아…알겠…습니다…."

그렇게 긴 키스가 끝나고, 난 두 손으로 바넷사의 머리 양옆을 잡아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고정시킨 다음 그렇게 선언했다.

바넷사는 거칠게 숨을 내뱉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대답해줬다.

"네 입으로 확실히 말해."

"구, 굳이 그럴 필요는…."

하지만 아무리 인정했다고는 하자, 과연 자기 스스로 선언을 하는 건 꽤나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스스로 선언하라는 말에는 얼굴을 붉히면서 거부하려는 바넷사.

하지만 나는 여기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고백했을 때도 내 여자가 될 것처럼 굴더니 결국 디아나 앞에서는 내 여자가 되지 않고 집사로 남을 거라고 떠들어댔으니 말이다.

확실히 자기 입으로 말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그러면 못 믿겠어. 네가 고백하고 나서 한 짓을 생각해봐라."

"…저, 저는 지금부터…구원님의…여자…."

바넷사 자신도 찔리는 게 있긴 한지,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선언을 하려 했다.

"첩."

"읏! 그거나 이거나 마찬가지…!"

"첩."

"…으읏…전 지금부터…구원님의…처, 첩…입니다."

"음. 참 잘했습니다."

"…전 어린애가 아닙니다만."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주자, 바넷사는 답지 않게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살짝 시선을 피하곤 중얼거렸다.

"하긴 나보다 열배는 더 살았지. 할머니라고 불러줄까?"

"…할머니한테 세우는 이상성욕자가 되고 싶으면 그러십시오."

부끄러워하는 바넷사의 기분을 돌리기 위해서 살짝 농담을 던져봤지만, 역시나 이런 상황에서도 바넷사는 바넷사였다.

설마 저 상태에서도 이런 식으로 카운터를 날릴 줄이야.

나는 황급히 말을 돌리기로 했다.

"자, 그럼 바넷사. 어디 한 번 마지막 의식을 거행해볼까?"

"…의식?"

"에이 얘가 또 모르는 척은. 다 알면서 그런다."

나는 한쪽 손을 내려서, 그대로 바넷사의 풍만한 가슴을 살짝 움켜쥐었다.

물에 푹 젖은 채로 몸에 있던 물기가 자연 건조 되고 있던 중이었던 바넷사는, 그 사이에 살짝 추워진 건지 그 풍만한 가슴 위의 꼭지가 살짝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 딱딱한 돌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듯 검지와 엄지 사이에 넣고 문질러봤지만, 바넷사의 유두는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져만 갈뿐이었다.

"으응…흣…그저…구원님이 하고 싶으신 것뿐 아닙니까?"

바넷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가슴을 희롱하는 내 손을 치우려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행동에 더더욱 자신감을 얻어서, 나머지 한 손마저 바넷사의 가슴에 가져다 대고는 비열하게 웃었다.

"크크큭. 맞아. 나는 네 몸만이 목적인 쓰레기니까 말이야."

"으읏! 그, 그만두십시오! 그런 말을 들으면 착각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바넷사도 눈치를 챈 듯, 바넷사는 살짝 격한 반응을 보였다.

얘 아까부터 금방금방 무표정으로 돌아가는 주제에, 또 금방금방 깨져버리네.

한 번 벗겨진 철가면은 다시 벗기기 쉽다는 건가.

"하아…. 맞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럴 수도 있지."

"사, 사랑한다고…! 하지…않았습니까…."

"정말일까? 그치만 사도 임명도 이미 한 번 실패했고 말이야."

"그건 절대로 제 탓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살짝 생각에 잠겼다.

잠깐. 내 탓? 확실히 사도 임명의 발동 조건은 호감도 최대인 상태에서 안에 사정을 할 것이다.

하지만 호감도 최대라는 게, 과연 상대방의 호감도만을 말하는 걸까?

게임에선 당연히 NPC의 호감도만 충족시키면 됐지만, 애초에 호감도가 수치로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측정되는 건지조차 모르는 현실에서는?

혹시 상대방뿐만 아니라, 내 호감도 역시도 최대치일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바넷사의 두 눈을 빤히 쳐다봤다.

"…뭡니까."

내가 갑자기 손의 움직임까지 멈추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바넷사는 살짝 부끄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응. 나 때문은 절대 아니야."

"읏…!"

"그보다 바넷사. 방금 절대 자기 탓이 아니라고 했겠다?"

"…구원님도 지금 막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야 난 널 엄청나게 사랑하니까. 그래서 너도 그렇다고?"

"문제…있습니까?"

"그야 문제는 없지만…아니. 잠깐만. 잠깐 기다려봐. 그러니까 넌, 전에 사도 임명을 시도했을 때부터 자기 마음엔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

내가 그렇게 말하자, 바넷사는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돌리고는 침묵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대답을 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잠깐. 그 말은 즉. 그때부터 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내가 널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실패한 거라고? 그래서 갑자기 태도가 변한 거였어?! 네 몸만 노린다는 의심도 그래서 한 거고?!"

"딱히…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은…."

"야. 그럼 말을 했어야지! 아무리 자기 속마음을 노출 안 시키는 성격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런 오해는 서로 대화를 해서 풀어야지! 나 너 진짜로 좋아한다니까?! 못 믿겠어?!"

"…믿고 있습니다."

바넷사는 자기의 행동 때문에 일이 이렇게 꼬인 게 상당히 미안했는지, 살짝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야 믿게 된 거잖아! 너 내가 오늘 안 왔으면, 아니. 눈치 못 챘으면 어쩌려고…! 넌 안 그래도 무표정이라 알기도 힘들단 말이야! 안되겠어. 너 지금 여기서 확실히 말해."

"…뭘 말입니까."

"만약 앞으로도 이런 의심이 생기거나, 나와의 관계로 뭔가 삐걱대는 일이 생기면, 솔직히 다 털어놓고 대화로 풀기로."

"…알겠습니다."

"좋아. 지금부터 우리 서로 숨기는 거 없기다?"

"…네."

"좋아. 그럼 시험 삼아 질문 하나 해보지. 제일 느끼는 성감대는…야. 장난이니까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지 마라."

물론 바넷사의 태도 때문에 일이 꼬였던 건 맞다.

하지만 결국엔 이렇게 무사히 해결한 거고, 이제 와서 그걸 추궁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 이 쳐진 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살짝 농담을 해본 건데, 바넷사는 생각보다 더 차가운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저도 장난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네 장난은 알기 힘들대도.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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