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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93화 (57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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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사의 본심 -->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러냐? 그럼 넌 뭐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아니라는 겁니까?"

    바넷사는 분노가 폭발하려는 것을 억지로 꾹꾹 담아 눌러서 참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 거리듯 대답했다.

    "응. 아니야."

    "…그럼 더 할 말도 없으시겠군요?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바넷사는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며, 심지어 이까지 갈았는지 으드득 소리까지 내면서 날 노려보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얘가 이러고 있으니까 엄청 무섭다.

    아니. 당연하잖아. 눈앞에 있는 우리 집사님은 나보다 레벨도 더 높고 힘도 더 세다고.

    하지만 바넷사의 진심을 듣기 위해서, 자기 자신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도발을 해서 이성을 잃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나는 바넷사의 주먹이 날라올 것을 대비해서 은근슬쩍 어금니부근에 힘을 줬다. 그리고 계속해서 뻔뻔한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말했잖아? 할 말은 있다고. 하지만 그 전에. 그래. 궁금하긴 하네. 넌 대체 내 뭐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몸이 목적이라고 했잖습니까?"

    "그게 왜?"

    "……하?"

    설마 내가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나올 거라곤 예상 못했는지, 바넷사는 주먹을 부르르 떠는 것도 잠시 멈추고는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잠시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바넷사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샤워기의 물을 끄고 욕조 주위를 뱅글뱅글 맴돌면서 뻔뻔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게 뭐 어땠냐는 거야. 그렇잖아? 넌 날 좋아하지만, 내 여자는 되고 싶지 않은 거지?"

    "……."

    "나랑 그런 관계가 되면 집사 일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넌 계속해서 디아나의 완벽한 집사로 남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끔씩 내 사랑을 받고 싶은 욕심도 있다. 아니야?"

    "……."

    "그럼 넌 내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고 받아들인 순간, 오히려 기뻐해야 되는 거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계가 될 거 아니야?"

    "…나는…저는 그런…."

    "내가 너한테 진짜로 마음이 있다면, 난 네 집사 일에 방해가 될 정도로 계속 끈질기게 널 내 여자로 만들려고 난리를 칠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네가 원하는 정도의, 딱 적당한 주기로 가끔 네 몸만 탐한다면? 완벽하잖아? 넌 가끔씩 내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거고, 난 네 몸으로 욕구를 풀 수 있을 거고. 서로…."

    쾅!

    내가 뻔뻔한 말을 계속해서 늘어놓고 있자, 결국 그 바넷사조차도 인내심에 한계가 온 모양이었다.

    바넷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그대로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내 얼굴 바로 옆, 벽 쪽으로.

    얼굴 옆으로 광풍이 휘몰아침과 동시에, 마치 방 전체가 진동하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바넷사를 바라보며 하던 말을 계속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게 아니라, 눈 하나 깜짝하지 못한 거지만.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순식간이라 반응조차 못했다.

    옆을 돌아봐서 바넷사의 주먹이 박힌 벽면을 확인하기 무섭다.

    옆방까지 구멍이라도 뚫린 거 아냐? 얘 진짜 사람 죽일 셈이었나.

    "…win-win 아니야?"

    하지만 나는 그런 속마음은 내색하지 않고, 하던 말을 끝마칠 수 있었다.

    상황을 인지하고 나서도 겁먹은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뭐냐고?

    바로 눈앞에서 흔들리는 가슴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거다.

    방금 전까지 욕조에서 물을 맞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바넷사는 당연히 알몸이었고, 그 상반신에 매달려있는 큼지막한 과실은 방금 전의 격한 움직임으로 인해 이리저리 요동치듯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야! 나는! 나는 그런 관계 원하지 않아! 나는! 나는…!"

    그리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넷사가 드디어 자신의 속마음을 폭발시키듯 그렇게 외쳤다.

    "너는 뭐? 너 자신은 내 여자가 될 생각은 절대 없으면서 난 계속해서 널 마음속으로부터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이기적인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으읏…크윽…! 나는…나는…좋아…좋아한단 말입니다…그래서 사랑 받고 싶어. 하지만 집사로서의 자신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지금까지 키워주신 디아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이기적인 건 알지만, 하지만, 그게…그게 그렇게 잘못된 겁니까?"

    내 날카로운 질문에, 바넷사는 그대로 허물어지듯 욕조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드디어 자신의 진심을 내뱉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집사일이 중요한 거냐?"

    "당신은 모릅니다! 우리 일족이…내가 얼마나 디아나님께 은혜를…."

    "지금 내가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잖아? 은혜라든가 보답이라든가. 그런 건 지금 아무래도 좋아. 그런 부담감이나 책임감에서 나오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말하는 게 아니야. 네 진심. 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정말로 내 여자가 되는 것보다 집사 일을 하는 게 좋은지, 더 소중한지. 그걸 묻고 있는 거야."

    "난…난 진심으로 집사일이…!"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던 것처럼 보였던 바넷사는 결국 고집스럽게 내 여자가 되는 것보다 집사로 남는 걸 택했다.

    하지만 내 공격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는 밑밥을 깐 것에 불과했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아, 그래? 그럼 지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데?"

    "그, 그게 무슨…?!"

    "그렇잖아? 집사 일이 가장 소중한 거잖아? 나와의 관계 같은 것보다. 그런데 왜 지금 여기서, 집사일도 내팽개치고 내가 네 몸만 탐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는 건데?"

    "저, 전 몸이…!"

    정곡을 찔린 바넷사는 당황하면서 변명을 늘어놓으려고 했지만, 나는 활짝 펼친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그 말을 제지했다.

    "아, 아! 이제 와서 컨디션 불량이라든가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마. 넌 나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야. 어제 식당에서 내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쭉."

    "으읏…!"

    "그래서, 집사 일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바넷사씨. 집사 일도 내팽개치고 지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건지, 나한테 납득이 갈만한 설명을 해주겠어?"

    주도권을 완전히 잡은 나는, 바넷사를 계속해서 추궁해나갔다.

    자, 네 진심을 들려달라고.

    "…구, 구원님과는 상관없는 얘기 아닙니까?"

    바넷사는 내 추궁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고 나서, 겨우 날 노려보면서 한다는 소리가 이거였다.

    "내가 왜 상관이 없어?"

    "절…크윽…좋아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바넷사는 다시 그 생각이 나자 울고 싶은 기분이 된 모양이다.

    안 그래도 계속된 내 추궁으로 정신력이 많이 약해져있던 바넷사는 평소 같은 무표정이 아니라 살짝 슬픈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그래도 자신이 집사 일을 내팽개치고 왜 이러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보단 낫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바넷사의 그런 반응마저도 나는 염두를 해두고 있었다.

    "좋아하는데?"

    "…하?"

    "엄청 좋아하는데?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데?"

    "…읏! 자, 잠깐! 그게 무슨…!"

    "하아. 바넷사야. 바넷사. 바넷사."

    나는 당황하는 바넷사에게 눈높이를 맞추듯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 어깨를 한 손으로 누르듯 감싸 쥐고는 나머지 손의 검지와 중지로 스스로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생각을 해봐. 내가 너 안 좋아한다고 말한 적 있어?"

    "하지만 내 몸이…!"

    "네 몸만이 목적이라고 말한 적 있어? 적어도 난 그 말에 긍정한 적 없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바넷사의 동공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나와 했던 대화를 빠르게 되짚어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 하지만 win-win이라고!"

    "만약 내가 네 몸만 탐하는 거였다면 win-win 이었다는 거지."

    "마, 만약! 만약 진짜로 나한테 마음이 있다면! 집사 일에 방해가 될 정도로 계속 끈질기게 자신의 여자로 만들려고 난리를 칠거라고…!"

    "지금 그러고 있잖아?"

    "하, 하지만! 하지만 그럼 어제 그건…!"

    "바넷사. 잘 생각해봐."

    나는 다시 한 번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난 행위를 통해 네가 나 없이는 못 사는 몸으로 만들겠다고 했어. 즉, 완전히 내 여자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 거야. 좋아하는 게 아니면 그냥 대충 편한 섹스파트너로 남고 말지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겠어? 어차피 그대로 시간만 지나면 너랑 내가 정기적으로 육체관계를 맺을 건 뻔했잖아? 내가 진짜로 네 몸만 노리는 거였다면, 그런 말을 했을 것 같아?"

    "잠깐…하? …그, 그럼…난…."

    내 말을 멍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바넷사는,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동공을 더더욱 진동시켰다.

    위험해. 평소 완전 철가면이었던 애가 이런 반응을 보이니 묘한 쾌감이…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무것도 아닌 일에 혼자 착각하고 우울해져서는 처량하게 이러고 있었다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다시 샤워기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바넷사의 머리 위로 다시 비처럼 물줄기들이 떨어지면서, 처량한 분위기를…솔직히 말하자면 처량해 보이는 게 아니라 섹시해 보였지만.

    젠장. 이래서 미인이란 것들은!

    "집사 일도 내팽개치고 말이야."

    "으읏!"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바넷사는 자신이 한 짓을 깨닫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바넷사 자신은 ‘지금부터라도 당장 집사로서 맡은 바 역할을 다 해야 해!’라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저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도망가려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 손으로 감싸 쥐고 있던 바넷사의 한쪽 어깨를 지그시 눌러서, 바넷사가 어디 다른 데로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나보다 더 힘이 센 바넷사라면 물론 뿌리치고 갈 수 있었겠지만, 바넷사는 어깨를 누르는 내 손에 저항하지 않고 다시 욕조에 주저앉았다.

    "즉, 너랑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널 좋아하고 있는 나는, 널 추궁할 권리가 있다는 거지. 자, 그럼 바넷사씨. 어디 한 번 얘기해 보시겠어? 왜 집사 일도 내팽개치고 여기서 이러고 있었는지."

    "나, 난…난…."

    "말해."

    "지, 집사의 본분을 다 하는 것보다…다 하는 것만큼이나…다, 당신을…."

    "…날?"

    "…당신을 향한 이 마음이…소중한…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드디어, 드디어 나는 바넷사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날 향한 마음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려다가 중간에 동등한 수준으로 소중하다고 말을 바꾼 점이나, 마지막에 애매모호하게 그럴 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을 한 건 살짝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집사의 본분을 다 하는 것. 즉, 디아나에게 충성을 다 하는 것.

    이것들은 다시 말해서 디아나의 은혜에 대한 보답, 디아나에 대한 바넷사의 감정을 뜻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바넷사가 저렇게 말을 했다는 건, 디아나를 향한 감정의 크기와 날 향한 감정의 크기가 동등하다고 인정했다는 게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디아나와 말이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 대답을 듣고 나자,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진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이런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반쯤은 도박이었다.

    바넷사가 단 둘이서 고백을 했을 땐 분명 내 여자가 되려고 했다는 점.

    그리고 나에 대한 의심이 생기자 그렇게 고집하던 집사 일까지 내팽개치고 방에 틀어박힌 점.

    이 두 가지를 고려한 끝에, 그 철가면을 벗겨내고 맨얼굴을 드러내게 만들면 충분히 승산 있는 도박이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래도,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내게 고백을 한 그 순간부터, 날 향한 바넷사의 호감도는 최대치였던 거다.

    애초에 얘 성격상, 그런 게 아니면 아무리 디아나와 뭔가 얘기를 나눴다고는 하나 내게 고백을 할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물론 사도 임명이 실패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넷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아직 디아나를 더 우선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방금 전 발언으로 인해, 바넷사도 드디어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있던 강박 관념을 벗어던지게 됐다.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분명 사도 임명을 성공할 수 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확신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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