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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89화 (57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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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사의 본심 -->

    "아니…!"

    "디아나님. 죄송합니다. 오늘은 조금 일찍 물러나도 괜찮겠습니까?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내가 뭐라고 변명을 하기도 전에, 바넷사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로 디아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바로 뛰쳐나가지 않고 디아나의 허락을 맡는다는 점이 참 바넷사답다고 해야 할지.

    "으, 음.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어쩔 수 없구먼. 그러게. 아예 오늘은 그만 방에 가서 푹 쉬게."

    "감사합니다."

    디아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바넷사는 가볍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재빨리 식당 밖으로 모습을 감췄다.

    "뭐하는가?! 어서 쫓아가지 않고!"

    그렇게 내가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는 사이에, 바넷사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디아나가 내 등을 떠밀었다. 이제 굳이 속닥일 필요도 없다는 듯 큰 소리로 외치면서.

    애초에 다른 애들한테 들리지 않게 말한 건 단순히 배려를 해준 거였다.

    아무리 디아나의 설득을 통해 바넷사와의 관계를 인정해줬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바넷사의 마음을 완전히 얻는 과정까지 세심하게 도와주는 건 아무리 착한 우리 애들이라도 탐탁찮은 일일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다른 애들은 괜한 신경을 쓰지 않도록 디아나하고 둘이서만 속닥였던 거지만, 이렇게 들킨 이상 더 숨길 필요도 없다는 거지.

    아무튼 그런 디아나의 재촉에 나는 머리가 아파져왔다.

    쫓아간다고 해도 말이야. 쫓아가서 이 사태를 대체 어떻게 변명하라는 거야?

    사과? 그냥 무조건 가서 고개를 숙이면 그걸로 될까?

    하지만 뭘? 난 대체 바넷사한테 뭘 사과하면 되는 건데?

    차근차근 섹스까지 하는 사이로 발전해나가려고 한 거? 아니면 나 없이는 못살게 만들겠다고 한 거?

    아니. 잠깐만. 그런 걸 굳이 변명이나 사과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둘 다 내 진심인데? 딱히 사과할 말을 한 것 아니잖아?

    "…아니. 안 쫓아갈래."

    등을 꾹꾹 떠미는 디아나의 손길에 버티고 앉아서 잠시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결국 바넷사를 쫓아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자네?!"

    "흐윽…죄, 죄송해요…."

    당연히 그런 내 결정에 디아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내 정면에 있던 레이아는 어째선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해왔다.

    그러고 보니 어느 샌가 그 발은 내 고간에서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잔뜩 풀죽었다는 걸 나타내듯 완전히 접혀있는 세모난 귀까지.

    아, 그런가. 레이아는 자기가 전부 망쳤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리고 그 죄책감으로 술까지 깨버렸다는 거다.

    그렇게까지 죄책감 가질 필요 없는데 말이야.

    "아니. 레이아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

    "하지만 저 때문에…."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나도 말리지 않은 거고. 기분 좋았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엔 내가 발을 뻗어서 레이아의 다리를 쓰다듬어줬다. 다독여주듯이 부드럽게.

    물론 그런다고 해서 레이아의 풀죽은 표정이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발에 느껴지는 레이아의 다리 감촉, 역시 최고로….

    "…지금 둘이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으, 응?! 아니! 아무것도!"

    위험해. 또 정신 팔릴 뻔 했네.

    사라의 지적이 아니었으면 위험했어.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레이아를 다독이기 위해 말을 이었다.

    "아무튼 너무 걱정할 것 없어. 난 오히려 레이아의 색다른 모습도 보게 돼서 좋았는걸. 그리고 바넷사 일도, 이걸로 됐어."

    "되긴 뭐가 됐다는 겐가?! 이 몸이! 이 몸이 어떤 마음으로…!"

    하지만 그런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이번엔 디아나가 내게 달려들었다.

    거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말이다.

    "진정해. 디아나.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럼 무슨 뜻인가?!"

    "바넷사와의 관계가 진전되기 위해선,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모르겠다는 뜻이야."

    "…음?"

    "나한테 한 가지 계획이 있어.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해줄게."

    의아해하는 디아나에게, 나는 눈짓으로 다른 애들을 가리킨 후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바넷사를 완전히 넘어오게 만들기 위해 계획을 짠다는 걸 들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애들이 그 계획을 듣고 기분이 안 나빠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상황 수습을 위해서 조금 떠벌리기는 했지만, 굳이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다 얘기할 필요는 없지.

    "그러니까 날 믿고, 지금은 그냥 가만히 내게 맡겨줘."

    "…하지만. …자네, 정말로 자신 있는가?"

    디아나도 내 속마음을 알아챘는지,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사실 그렇게까지 자신 있지는…농담. 농담이야. 자신 있어. 믿어줘. 그러니까 지금은 다들 바넷사 걱정하지 말고, 우선 식사나 하자. 응?"

    "…알겠네."

    "…네에."

    나는 겨우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는 식사를 재개했다.

    디아나는 조금 복잡한 표정이었고, 레이아는 여전히 죄책감에 휩싸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내 말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데."

    다만, 사라만큼은 여전히 나와 레이아를 수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말이다.

    위험해. 어서 화제를 바꾸지 않으면!

    "애초에 말이야. 결국 레이아는 왜 취한 거야? 그렇게 될 때까지 마신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네, 네?! 벼, 별일 아니었었어요!"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레이아에게 말을 걸었던 나였지만, 어째선지 레이아의 반응이 무척이나 수상했다.

    방금 전까지 풀죽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주제에,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당황하기 시작한 건다.

    저래서야 대놓고 뭔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왜? 무슨 일인데? 레이아가 그렇게 마실 정도면 별일 아닐 리 없잖아?"

    "저, 정말이에요. 그저 마틸다 추기경님이 잠이 안 오신다고 하셔서, 간단하게 와인이라도 조금 마시면 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얘기가 나와서, 그래서 조금 마신 것뿐이에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잠이 안 와? 아직 잠을 자기엔 이른 시간인데?

    아, 그러고 보니 마틸다는 어제 안 잤다고 했지.

    하지만 그래서 잠을 자려고 했던 거라면, 잠이 안 올 이유가 없는데?

    게다가 그런 이유로 둘이 술을 마신 거라면, 레이아가 방금 전에 그렇게 부끄럽단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레이아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말이야.

    "둘이서 마신 거야?"

    "네, 네에…."

    "무슨 얘기하면서?"

    "…몰라요."

    역시나 대화 주제가 문제였나.

    레이아는 그렇게만 대답한 후, 이제 밥 먹는데 집중할 테니까 말 걸지 말라고 말하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식사에만 열중했다.

    레이아야. 그러면 괜히 더 궁금해지잖아.

    하지만 저 모습을 보아하니, 여기서 내가 더 추궁한다고 해서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거야?

    나한테 말하기 싫어하는 걸 보니, 뭔가 나에 대한 얘기를 한 것 같기는 한데.

    설마하니 둘이서 성적인 얘기를 했을 리도 없고 말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레이아랑 마틸다라는 성직자 콤비가 말이다. 그럴 리가 없지.

    수수께끼는 깊어져만 갈 뿐이었다.

    "그럼 자네. 믿겠네."

    "그래. 맡겨둬."

    아무튼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내내 조용히 있던 디아나는 내게 짧게 그렇게만 말했다.

    내가 확신을 가지고 믿어달라고까지 했으니 일단 간섭은 안하겠지만, 역시나 조금 불안하다는 얼굴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디아나 역시도 이 이상 내 여자를 늘리는 건 탐탁지 않을 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넷사는 디아나 스스로가 나서서 내 여자로 만들려고 한 거다.

    그것만으로도 복잡한 심경일 텐데, 뭔가 일이 꼬여가는 느낌마저 드니까 더더욱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내가 그런 디아나에게 해줄 수 있게 있다면, 바넷사를 확실히 내 여자로 만들어 보답하는 것밖에 없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어. 내일까지만 두고 보자고.

    나는 디아나가 식당을 나서기 전에, 그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줬다.

    "구, 구원씨…오늘은 정말 죄송했어요…."

    그리고 디아나가 가고 나자, 이번엔 레이아가 내게 다가와서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까도 말했다시피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레이아가 미안할 거 전혀 없어."

    "…네. 바넷사씨도, 꼭 제대로 달래주셔야 돼요? 안 그러면 저, 바넷사씨를 볼 낯이 없을 것 같으니까요."

    내가 달래주듯 그렇게 말해도, 레이아는 내게 기대듯이 몸을 밀착해오면서 한층 더 그런 말을 해왔다.

    아무래도 레이아는 나뿐만 아니라, 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을 바넷사에게도 미안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게 다른 여자를 잘 다독여주란 말을 하다니.

    역시 레이아는 천사야.

    뭐, 지금 행동은 조금 그렇지만 말이야.

    "응. 그런데 레이아."

    나는 레이아의 두 어깨를 잡아서 내 몸에 꼭 밀착시키고는, 그 귀에 입을 가져다 대서 조그맣게 속삭였다.

    사라조차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네?"

    "손은 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랬다. 레이아는 아까부터 내 바지 위로 내 물건을 살살 쓰다듬고 있었던 거다.

    유혹하는 표정이 아니라 죄송스런 표정으로 저러는 걸 보니, 아마 ‘방금 전에는 괜히 여길 괴롭혀서 죄송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말이야.

    아까보다 멀쩡해 보인다고해서 방심했어. 역시 레이아 아직 취해있구나.

    "…읏! 저, 저 그럼 이만 갈게요!"

    역시나 술김에 무의식중으로 그런 거였는지, 내 지적을 들은 레이아는 화들짝 놀라서 순식간에 내게서 떨어진 후 도망가듯 식당을 나섰다.

    레이아! 모처럼 내가 몸을 끌어당겨서 다른 애들한테 안 보이게 만들었는데, 그러면 괜히 오해받잖아!

    "…구원. 지금 무슨 얘기…."

    "실비아!"

    "네, 네헷?!"

    안 그래도 아까부터 우리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던 사라는 당연히 그런 레이아의 모습에 반응을 했다.

    하지만 사라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나는 황급히 아직 구석에 있던 실비아를 불렀다.

    아까부터 혼란했던 우리 모습을 보면서도 홀로 휩쓸리지 않고 조용히 있던 실비아는, 내가 이름을 부르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너도 봤다시피, 나 오늘 좀 많은 일을 겪었어."

    "네, 넵. 봤습니다."

    "그래서 사실 머리가 좀 아파."

    "괘, 괜찮으십니까?!"

    내가 살짝 머리를 짚으며 두통에 시달리는 척을 하자, 실비아는 화들짝 놀라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실비아가 다가오는 순간,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흐야앗!"

    당연히 실비아는 속았다는 표정으로 깜짝 놀라서는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 전에 나는 실비아의 어깨를 덥석 잡아 멀리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리 귀여운 누구씨가 내 품에 안겨주면 조금 나아질 것 같은데. 내가 누굴 안고 있으면 진정되는 기분이…."

    "…됐지?"

    하지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누군가 내 몸을 끌어안았다.

    누군가라고 해도, 한 명밖에 없지만 말이야.

    "아, 응."

    "뭐야? 그 반응은. 나론 불만이란 거야?"

    "아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요."

    "반복해서 말하는 게 더 수상해."

    그치만…그치만 실비아 테라피가!

    아니. 사라야. 너론 부족한 게 아니야. 하지만 실비아 테라피는!

    "웃!"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번엔 실비아가 정면에서 내 몸을 끌어안아왔다.

    그리고는 역시나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실비아는 내 몸을 꽉 끌어안은 채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역시 사도 임명까지 받은 만큼, 이제 고작 포옹정도로는….

    "우…어, 얼마나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아?"

    정정하자. 아직 힘든 모양이다.

    "고마워.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아."

    "후아앗! 하앗! 하앗! 그,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몸에서 떨어진 실비아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도망치듯 식당을 벗어났다.

    "하아…. 야. 바보."

    그리고 겨우 나와 단둘이 남게 되자, 사라는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이 내게 폭언을 해왔다.

    "너 갑자기 무슨…."

    "너 진짜 나 같은 여자를 잡은 걸 감사해야 돼."

    "으, 응? 그게 대체 무슨…아니. 그야 감사하지만. 하루 한 번 여신님께 절하면서 너와의 만남을 감사하고 있지만."

    "정말로?"

    "…절하는 건 속으로만 했어."

    "하아. 아무튼 다녀오려면 지금밖에 없으니까. 방에 가서는 안 놔줄 거야."

    내 대답에 사라는 내 몸에 두르고 있던 손으로 가볍게 내 옆구리를 꼬집더니, 빙글하고 내 몸을 반 바퀴 돌린 후 날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응? 뭐가?"

    "뭐기는. 바넷사 말이야. 정말 안 가 봐도 되겠어?"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닭구, 14C2A58H2 //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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