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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87화 (57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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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사의 본심 -->

    점심도 간단하게 레이첼 누님이 주신 과일로 때우고 계속 일한 덕분에, 다행이도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는 창고 정리를 끝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바꿔 말하면, 저녁시간이 될 때까지 계속 창고에만 처박혀있었다는 뜻이다.

    그나마 바넷사는 점심 식사 준비를 위해 잠깐 자리를 비우기도 했지만, 나는 중간에 팔씨름이다 뭐다 하며 방해한 게 미안해서 계속 창고에만 있었다.

    참고로 바넷사 녀석, 점심 식사를 준비하러 갈 때는 역시나 인간모습으로 변해서 가더라고.

    준비해온 바지까지 갈아입으면서. 뭐, 덕분에 바넷사의 스트립쇼를 구경할 수 있었던 나는 무척이나 흡족했지만.

    아무튼 저녁 식사가 다가올 시간까지 계속 창고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아침 이후로 우리 애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 내가 방으로 돌아가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 사라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구원!"

    "우왓! 깜짝이야!"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내게 달려드는 사라를 보고,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아니. 사라가 무서운 게 아니야.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뭔가 눈앞에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면 누구나 깜짝 놀라잖아?

    "어디 있었어?!"

    사라는 살짝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따지면서 내 몸을 꽈악 끌어안았다. 절대 놔주지 않겠다고 말하듯이 말이다.

    나는 그런 사라를 안심시키듯이 그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라니. 계속 저택에 있었어. 왜 그래?"

    "그치만…목걸이는 계속 빛나고 있는데, 구원은 아무데도 안 보이고…."

    아아. 과연. 그런 건가.

    전에 사라를 빼놓고 밖에 싸돌아다녔다가 사라가 불안해졌던 것처럼, 이번에도 오랫동안 날 보지 않게 되자 살짝 불안해진 모양이다.

    아무리 목걸이가 빛나고 있다고는 하나, 정작 내 모습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으면 그야 불안해지겠지.

    "바넷사가 바쁘다고 해서 창고 정리를 도와주고 있었어. 점심시간에 바넷사가 말 안 해줬어?"

    하지만 바넷사한테 물어보면 알려줬을 텐데?

    걔가 날 독점하고 싶어서 일부러 안 알려 준다든가 그럴 애는 아니니까 말이야.

    물론 바넷사도 나랑 계속 같이 있기는 했지만, 점심시간에는 아마 얼굴을 봤을 테니까.

    "아…점심…안 먹었어…."

    사라는 고개를 돌려서 힐끔 시계를 쳐다보고, 마치 그제야 점심시간이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대체 얼마나 패닉상태였기에 점심까지 거른 거야? 이거 잘못한 것도 없이 조금 미안해지네.

    "그럼 배고프겠네. 조금만 기다리면 저녁 준비가 될 거야."

    "응…."

    나는 사라의 옆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겨서 귀를 드러내게 만들고, 그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어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자 사라는 살짝 간지러운 듯, 그리고 과민반응을 한 게 조금 부끄럽다는 듯 목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까지 날 보고 싶었어?"

    "아, 아니거든 바보야! 목걸이에 장난쳐놓은 것 같아서 조금 걱정됐을 뿐이야!"

    "그런 걸로 사기 친 거 아니니까 좀 믿어달라고."

    사라가 안정된 걸 확인한 나는, 그제야 평소 분위기로 돌아와서 살짝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도 그걸 알고 있는지,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장난을 맞받아줬다.

    "애초에 바넷사가 아니더라도, 디아나한테 갔으면 확인할 수 있었을 걸."

    "디아나도 구원이랑 짜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내 이…아무튼 날 위한 일이라면서."

    뭐, 확실히. 듣고 보니 좋은 지적이로군.

    사라 말대로 목걸이가 계속 빛나도록 사기를 쳐놓고 멀어진 다음에, 나중에 그 사실을 밝히면 어쩌면 트라우마 극복이 될지도.

    아니. 얜 그냥 패닉 상태라 경황이 없어서 확인 못 한 주제에 뭘 이렇게 제대로 맞받아치고 그러냐.

    "아니. 디아나한테서 목걸이 상태를 확인받으라는 게 아니라, 디아나한테 갔으면 내 위치를 알 수 있었을 거란 뜻인데."

    "그게 무슨 뜻이야?"

    "디아나 걔는 목걸이만 가지고 내 위치를 알 수 있는 모양이던데? 내 마나와 목걸이가 공명을 이루며 빛이 나는 거니, 그 마나를 추적하면 정확한 위치도 알 수 있다나 뭐라나."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분명 전에 디아나가 그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것도 가능한 거야?!"

    그리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라가 눈을 반짝이면서 정말이냐고 말하듯 내 얼굴에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차. 이거 혹시 괜한 걸 가르쳐준 건가?

    바넷사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디아나는 그래도 여차할 땐 나이에 걸맞게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여주니 괜찮지만, 만약 사라 얘가 일일이 내 위치를 파악하게 되면…아니. 위치가 파악된다고 해서 찔릴만한 짓을 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

    "나도 배우면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을까?

    애초에 누군 전직해야 다룰 수 있는 마나 공격을 저 레벨부터 다뤘던 애니까.

    그러고 보니 전에 그 쓰레…레온은 성자의 파동을 피하기까지 했었지?

    더러운 사기직업 용사 같으니라고. 성자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 글쎄? 아무리 그래도 힘들지 않을까? 디아나는 지고의 대마법사니까 가능한…."

    "응! 왠지 가능해질 것 같아! 나중에 알려달라고 해야지!"

    아니. 힘들 것 같다니까?! 좀 들어라!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불안한 표정 짓고 있었던 주제에 이젠 만면의 미소를 짓고 있기까지 하고 말이야. 뭐, 이건 좋은 거지만.

    아무튼 나 진짜 괜한 말 한 거 아냐?

    스스로의 경솔한 발언에 조금 후회하면서, 나는 바넷사가 부르러 올 때까지 사라와 시간을 보냈다.

    "구원님.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난 후 바넷사가 날 부르러 왔다.

    다만, 그 표정은 평소와 달랐지만 말이다.

    "…사라님도 계셨습니까.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평소와 똑같았다.

    하지만 내 방에 사라도 같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자, 바넷사의 표정이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묘하게 변했다.

    그 표정은 마치…‘창고 정리가 끝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한 판 한 겁니까? 발정난 개가 따로 없군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뭐, 내 과장이 조금 섞여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는 감상이지만 말이다.

    "말해두겠는데, 아무 짓도 안했다."

    그 표정을 보게 되니, 나는 저도 모르게 변명이 튀어나왔다.

    아니. 애초에 변명을 할 만한 것도 아니지만 말이야.

    만약 내가 사라랑 그 사이에 한 판 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사라는 내 여자고, 얘는 그냥 날 좋아하기만 할뿐 내 여자가 되는 건 거부하고 있는 앤데.

    뭐, 그렇게 딱 잘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성격이 모질지 못하니까 변명이 튀어나온 거지만 말이야.

    하아. 나란 놈은 대체 왜 이렇게 착한 걸까.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그래. 입으로는 아무 말도 안했지.

    하지만 바넷사야. 난 다 알고 있다고?

    "아니. 질투하는 것 같이 보여서. 훗. 숨겨도 소용…."

    "훗."

    "……."

    얘 지금 콧방귀 뀐 거야?

    오냐.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고!

    어디 내가 진짜로 딴 여자랑 하는 걸 봐도 질투를 하나 안 하나 두고 보자고!

    "사라야! 하자! 지금! 당장!"

    "구원."

    "그래. 사라야!"

    "추해."

    "크허허허헉…."

    하지만 당연히도 사라는 이 자리에서 당장 나랑 할 생각은 없어 보였고, 오히려 단 두 음절의 말을 내뱉음으로써 날 침몰시켰다.

    "사라야…넌 대체 누구 편…."

    "누구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여자한테 나랑 안 잤다고 변명한 구원씨."

    "죄송합니다…."

    역시 얜 가면 갈수록 말싸움만 세지는 거 같아.

    나 이러다가 나중 되면 잡혀 사는 거 아니야?

    이미 잡혀 살고 있다고? 그, 그럴 리가? 이래 봬도 나름 하렘까지 꾸리고 있다고! …정작 하렘 플레이는 한 번도 못 해봤지만.

    …어라? 나 설마…진짜로 잡혀 살고 있어?

    "하아. 장난 그만치고 빨리 가자. 나 진짜로 배고프단 말이야."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엔 날 다독여주려고 하는 건지 내 팔을 자신의 가슴사이에 끼우듯이 꼬옥 끌어안았다.

    "그럴까?"

    물론 효과는 굉장했다.

    단순하다고? 무슨 소리. 남자라면 누구라도 미인의 가슴에 이렇게 된다고.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그런 우리를 보고, 바넷사는 미묘하게 평소보다 더 저음으로 들리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뒤를 돌았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질투하는 걸로 보이는데 말이야.

    하지만 방금 전에는 콧방귀까지 꼈고.

    진짜 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음. 자네 왔는가."

    "어머, 구원씨. 사라씨도. 오셨어요?"

    아무튼 바넷사의 뒤를 따라서 사라와 같이 식당에 들어가자, 역시나 사라 말고는 다들 내가 저택에 있다는 걸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평소와 다름없는 반응으로 우릴 맞이해줬다.

    "구원씨. 창고 정리 고생하셨어요."

    아니. 저택에 있었다는 것뿐 아니라, 내가 창고 정리를 도와준 것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레이아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게 다가오더니, 사라가 붙잡고 있는 것과는 반대쪽 팔을 잡고 그대로 날 식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내 등 뒤에 서서는, 두 손으로 부드럽게 어깨를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손에 힘을 줘서 주무르는데 부드럽단 느낌이 들 수 있다니. 이것이 바로 천사의 힘인가.

    아니. 그냥 목 언저리에 닿고 있는 부드러운 감촉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아니. 고생이랄 것 까지야. 물건 나르는 건 전부 바넷사가 했고, 나는 그냥 장부 정리만 도와…우와아아…천사님…거기 좋아요오…."

    "후훗. 여기인가요?"

    "네…."

    녹아내릴 것 같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내 성역 선포는 쓰레기야. 천사님의 곁이야 말로 진정한 성역이야.

    "코홈! 코홈!"

    내가 그렇게 레이아의 안마를 만끽하고 있자, 디아나가 주먹 쥔 손을 입 앞으로 가져가더니 티나게 헛기침을 해댔다.

    아무래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상태론 제대로된 대화가 불가능할 것 같단 말이지.

    쳇. 어쩔 수 없지. 이러고 싶지 않지만….

    "천사님. 이제 괜찮아요."

    "네? 별로 기분 좋지 않으신가요?"

    "그럴 리가! 기분 좋아 죽을 것 같아요!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코홈! 코홈!"

    "그게. 물론 천사님의 손길은 환상적이지만, 식사도 하셔야죠. 천사님이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거든요."

    "어머. 후훗. 구원씨도 참. 너무 그러지면 잔뜩 먹어서 돼지가 되어버릴 지도 몰라요?"

    "상관없어요. 그래도 천사님은 천사님이니까."

    이건 진심이다.

    그리고 뭐, 솔직히 매력 수치가 이렇게 높은데 돼지가 될 거란 생각도 안 들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우리 천사님는 보기완 달리 꽤나 대식가임에도 불구하고 먹는 영양분이 전부 한쪽으로만 쏠리는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으니까 말이야.

    오히려 앞으로도 잔뜩 먹어주세요!

    "구원씨도 참. 아부가 지나치세요."

    아무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상당히 기분이 좋아졌는지, 레이아는 날 타이르듯 말하면서도 기쁜 표정을 지으며 내 옆에 앉아서 찰싹 달라붙어왔다.

    천사님. 기쁜 건 잘 알겠는데요, 식탁 아래에서 꼬리로 제 허벅지를 간질이는 건 그만둬 주세요. 진짜 위험하니까.

    아무튼 그렇게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리게 될 뻔 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천사님의 마사지 천국에서 벗어난 나는 드디어 디아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까부터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니까 말이야.

    나와 시선을 마주친 디아나는, 조금 삐진 듯 불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빛으로 뭔가를 전해왔다.

    텔레파시 같은 것도 쓸 줄 아는 주제에 왜 굳이 저러는 거지?

    뭐, 나 정도 수준이 되면 눈빛만 봐도 디아나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알아들을 수 있지만 말이야.

    이게 바로 인연의 힘이란 거라고.

    아무튼 디아나는 눈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창고에서 바넷사와 하루종일 있었잖은가. 어떻게 진전이 조금 있었는가?’라고 말이다.

    역시나 디아나는 바넷사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뭐, 자기 곁에서 몇 대에 걸쳐 내려온 용인족의 공포심을 깨부술 실마리가 드디어 나타난 거니까 말이야.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는 그런 디아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진한 미소를 지어주며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그러자 디아나의 이마에 살짝 혈관이 솟아올랐다.

    어, 어라? 이게 아니야?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레이첼 공기 아니에요….

    사실 예정대로라면 벌써 몇 화 전에 나왔어야 되는데, 바넷사 얘기가 생각보다 훨씬 길어지는 바람에 이렇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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