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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의 본심 -->
에에잇! 어째서냐?! 분위기나 말하는 타이밍까지, 작전은 완벽했을 터인데!
고백까지 한 주제에, 이제 와서 철벽을 저렇게 치는 건 좀 심하지 않아?
아니. 그야 바쁜 건 알겠는데 말이야.
그래. 바빠서 그런 거야. 분명 그런 거라고. 그게 아니라면 방금 전 내 행동이 먹히지 않았을 리가 없어!
그렇게 최대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나는 터덜터덜 바넷사의 뒤를 쫓아 창고로 향했다.
"후우…읏?!"
창고로 돌아온 바넷사는 곧장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문을 닫으려고 했다.
하지만 문이 닫히기 전에 뒤따라 들어온 날 보고, 갑자기 몸을 움찔하고 떨면서 반응했다.
설마 그 상황에서 내가 계속 따라왔을 줄은 몰랐다는 듯이 말이다.
예상을 못한 거야 이해가 되지만, 여기까지 따라오는 동안 전혀 몰랐던 건가?
난 딱히 기척을 숨기지 않았는데 말이야.
혹시 뭐 딴 생각이라도 했나?
방금 전 내 행동에 너무 두근두근 거린 나머지 차마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든가.
…라는 건, 너무 희망적인 관측인가?
"…왜 따라오시는 겁니까?"
"왜라니. 무슨 소리야? 도와준다고 했잖아."
"더 안 도와주셔도 된다고 했습니다만."
"그러겠다고 대답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바넷사의 말투를 똑같이 따라하면서 대답해주자, 바넷사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더니 그대로 몸을 홱 돌려버렸다.
"왜 이렇게…."
"이런 식으로라도 너랑 같이 있고 싶은 거야. 아까도 말했잖아? 아님 뭐야? 너 설마 내가 아까 전까지 말했던 거 전부 다 섹스하려고 적당히 말한 거라고 받아들인 건 아니지?"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만."
"뭣이야?!"
"농담입니다."
바넷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말한 후, 목재 같은 것이 쌓여있는 창고 구석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게 진짜 아직도 사람을 가지고 놀려고…아니. 잠깐만. 얘가 보다시피 평소에 농담을 잘 하는 성격은 아니잖아.
그런데 나한텐 이런 농담을 거리낌 없이 한다는 건…오히려 좋아해야하는 건가?
놀림 당하고 좋아하는 건 조금 이상해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바넷사는 구석에서 뭔가 마법 물품 같이 보이는 물건을 차곡차곡 쌓아서 한 번에 들어올렸다.
"그럼 저는 부탁받은 물건이 있기 때문에 잠시 보급을 하고 오겠습니다."
"어? 야! 잠깐! 너 내가…!"
같이 있고 싶다고 했던 거 못 들었냐?!
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넷사는 성큼성큼 방을 나가버렸다.
아니. 이상하잖아. 오늘 창고 정리 한다면서? 보통 그런 건 수량 계산하기 좋게 비품을 밖으로 꺼낼 일이 없는 날 하는 거 아냐?
게다가 부탁받은 물건이라니. 너 아침 식사 이후부터 계속 나랑 같이 있었잖아?!
딴죽 걸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았지만, 바넷사는 이미 방을 떠난 뒤였다.
게다가 안 그래도 이미 상당히 바넷사의 방해를 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넷사의 따라가서 따지는 것도 조금 망설여졌다.
결국 나는 바넷사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물품들 확인이나 하기로 했다.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 얌전히 창고 정리를 하고 있자, 그다지 오래 지나지 않아서 바넷사가 다시 돌아왔다.
어째선지 한 손에는 커다란 과일 바구니를 들고.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아까 전에 바넷사가 왜 나갔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너…내가 도와주는 게 고마워서 과일 가져다주려고 밖에 다녀온 거였구나? 그럼 그렇다고 처음부터 말하면 좋을 텐데. 부끄러웠구나? 귀여운 녀…."
"레이첼님께서 건네주셨습니다."
나는 흐뭇한 기분이 되어 바넷사에게 장난을 치려고 했지만, 바넷사가 중간에 내 말을 끊고 예상치 못했던 말을 꺼냈다.
"…응?"
레, 레이첼 누님? 그러고 보니 어제도…아니. 어제도 과일을 가져다주고 또 가져다 줬다고?
게다가 또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레이첼님께서 정문에서 서성이시고 계시기에 다가가니, 이것만 건네주고 가셨습니다."
내 마음을 잘 알겠다는 듯, 그리고 레이첼이 왜 그랬는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바넷사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과일 바구니를 내밀었다.
그 바구니를 건네받은 나는 살짝 생각에 잠겼다.
대체 이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지?
어제 하루만이라면 그냥 일하다 잠깐 짬 내서 온 거라 시간이 없어서 과일바구니만 주고 바로 갔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이틀 연속으로 일이 반복되니, 내게는 이게 뭔가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뭔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
"…조금 전에도 말했습니다만, 구원님은 더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그런 날 보면서, 바넷사가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감정이라곤 쥐뿔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지만, 나는 그 말에서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 있었다.
즉, 바넷사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고는, 궁금하면 레이첼 누님께 직접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고 있는 거다.
"아니. 됐어."
하지만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그냥 그 제안을 거절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과일 바구니가 의미하는 게 대체 뭔지 궁금해 죽을 것 같기는 하다.
당장이라도 레이첼 누님께 가서 확인해보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창고에서 벗어나게 되면, 오늘은 바넷사 얘랑 같이 있고 싶다고 말했던 내 말이 거짓말이 되어버리잖아.
물론 트라우마 치료라든가 완전히 내 여자로 만들고 싶다든가 하는 사심이 끼어들었던 것도 맞지만, 그래도 오늘 얘랑 같이 있고 싶다고 했던 그 말은 거짓말로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괜찮겠습니까?"
괜찮을 리가 있냐?! 난 궁금한 건 못 참는단 말이야!
게다가 만약 이 과일 바구니를 통해서 레이첼 누님이 중대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거라면?
예를 들어서 나는 벌써 두 번이나 찾아갔는데 넌 나한테 코빼기도 안 비춰? 언제는 절대 부족함 없이 사랑해줄 거고, 그걸 증명할 수 있다더니. 다 거짓말이었어?
뭐 그런 뜻으로 얼굴도 안 비추고 과일 바구니만 보낸 거라면?
물론 레이첼 누님이 그럴 리가 없지만 말이야.
실비아가 말을 해뒀다고 하니 던전에서 내가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거고.
아니. 문제가 있었다는 건 오해지만.
아무튼 아마도 레이첼 누님이 그런 극단적인 의미로 과일 바구니를 건네줬을 리가 없다.
애초에 이 과일 바구니가 메시지라는 것 자체가 내 망상이고, 그냥 오늘도 시간이 없어서 과일 바구니만 주고 갔을 확률이 더 높은 거니까.
그렇게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미는 불안감을 억누르면서, 나는 계속해서 바넷사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걸 택했다.
"그래. 괜찮아. 말했잖아? 오늘은 너랑 있고 싶다고."
"…그렇…습니까."
이번에야 말로 바넷사도 제대로 감동을 받은 건지, 조금 목소리를 떨기까지 하면서 겨우겨우 내 말에 그렇게 대꾸를 했다.
"…그래도 섹스는 안 할 겁니다. 훗. 농…."
"젠장!"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아니. 그러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니까!"
"……."
"…말해두는데, 나도 장난으로 해본 말이니까."
"…그렇습니까? 진심으로 그렇게 안타까워하신 것이었다면, 지금부터 섹스하려고 했습니다만."
…….
침착해. 침착하라고. 침착하는 거야. 침착해 구원아. 이건 공명의 함정이야.
저거 디아나 밑에서 자랐다고 이상하게 심리전만 잘 걸어서.
디아나는 나한테 홀딱 반한 상태라서 그나마 상대하기 쉽기라도 했지.
저건 애초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기까지 하니까 진의를 알 수가 없네.
대체 난 어떻게 대답하면 좋은 거지?
"…지, 진심 아니라니까, 그러네?"
"목소리가 떨리고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아니라고!"
"그렇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바넷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고 구석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젠장…젠장! 아니. 진짜로 그런 뜻은 없었지만 말이야. 저 몸매로, 저 외모로 그딴 말을 하면서 유혹하면 당연히 혹하게 되잖아!
솔직히 말하고 난 지금도 후회될 정도라고!
혹시 그런 뜻이었다고 말했으면 정말로 섹스할 수 있었던 거 아니야?
아냐. 그런 생각하지 말자. 난 옳은 선택을 한 거야. 그럼. 옳은 선택을….
"그럼 전 부탁받은 물건이 있기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야 이것아!"
너 내가 같이 있고 싶다고 한 말 듣긴 했냐?!
내 그런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고, 바넷사는 또 다시 순식간에 창고 밖으로 사라졌다.
저 녀석, 지금 나갈 때 손에 꼴랑 시약 같은 거 하나 들고 있었지? 그런 건 방금 전에 가면서 한꺼번에 옮길 수 있는 거였잖아!
저게 지금 사람 놀리려고 일부러 그러나!
아까는 그냥 넘어갔지만, 이젠 못 참아! 다녀오면 반드시 한 마디 해줘야겠어!
바넷사의 태도에 격분한 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다시 물품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이래 봬도 주어진 일은 확실히 하는 착실한 남자라고.
"다녀왔습니다."
"바넷사! 너 잠깐 이리 와봐! 나랑 얘기 좀 하자!"
"네."
그리고 바넷사가 돌아오자마자, 나는 다짐했던 대로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바넷사를 불렀다.
바넷사는 그런 내 태도에 표정하나 깜박하지 않고, 창고의 문을 닫은 후 아예 잠가버리기까지 하고 내게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바넷사를 똑바로 바라보며, 난 큰 소리로 외쳤다.
"너 왜 이렇게 예쁘냐?!"
…아니. 잠깐 기다려봐. 내 얘기를 들어보라고. 원래는 화내려고 했어. 화내려고 했는데 말이야.
얘가 용인족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게다가 이미 집사복을 입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손에는 차곡차곡 접힌 바지를 하나 들고 있었다.
즉, 아마 갈아입고 온 거다. 원래 구멍이 뚫려있던 바지로.
그래서 곧장 나간 거였다고 생각하니까, 화를 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 그것뿐입니까?"
"당연히 아니지! 섹스할까?"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할 말이 끝나셨으면…."
내가 능청맞은 대답에도 바넷사는 살짝 안광을 조금 더 빛내기만 할 뿐, 그 이상의 격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아직 부족해. 예뻐. 귀여워. 이렇게 예쁜데 왜 감추려고 그러냐? 나랑 있을 때만이라도 좋으니까 계속 이러고 다녀라. 응? 응?"
"그러…흐읏…! 뿌, 뿔은…그만두십시오!"
내가 마구 칭찬을 퍼부어도 볼만 살짝 붉힐뿐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던 바넷사였다.
하지만 나는 칭찬만으로 그치지 않고 손을 뻗어서 그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했고, 그 와중에 내 손이 바넷사의 뿔까지 건드리게 되자 결국 바넷사는 살짝 무릎에 힘이 풀려서 앞으로 고꾸라지듯 내게 매달리며 필사적으로 그렇게 외쳤다.
"예뻐서 그러는데 왜 그래? 너도 나한테 안긴 걸 보면…."
"후읏!"
물론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안긴 바넷사의 몸을 한 손으로 꽉 끌어안아 밀착시켰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이젠 아예 뿔을 중점적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바넷사는 더욱더 섹시한 콧소리를 흘리게 됐고, 결국엔…인간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앗…하앗…역시 그런 뜻 맞지 않습니까."
섹시하게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날 노려보고 그렇게 말하는 바넷사.
만약 다른 애들이 상대였으면 난 여기서 더 몰아붙였을 거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건, 바꿔 말하자면 지금 바넷사의 엉덩이 부분에 구멍이 뚫려있다는 거니까.
하지만 내 목적은 그저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는 게 아니다.
바넷사의 트라우마를 치료해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몰아붙이기보다는 타협을 해야 할 때였다.
"미안. 미안.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미안. 이제 안 할 테니까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 와줘."
"……."
내가 그렇게 빌 듯이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넷사는 여전히 날 노려보기만 할뿐이었다.
"정말이라니까 그러네. 나 못 믿어?"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진짜로! 약속할게! 다신 네 몸에 손 안 댈 테니까!"
"…읏!"
"아, 실수했다. 다신 안 대는 게 아니라 오늘은 안 댈 테니까. 그 멋진 몸에 평생 손을 안 댈 수는 없지. 응. 응."
"…성희롱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바넷사는 결국 다시 자신의 모습을 용인족의 모습으로 바꿨다.
그렇게 나와 바넷사는 문이 잠긴 창고 안에서 단 둘이서 하루 종일 창고 정리를 했다.
결국 그렇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 어차피 얘가 나한테 고백한 이상, 그렇고 그런 일이 일어날 기회는 나중에도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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