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578화 (56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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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의 본심

    "디아나!"

    "우오왓! 뭐, 뭔가아?!"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자, 그곳에는 내 예상과는 상당히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다들 티 테이블에 앉아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던 거다.

    특히나 내게 이름을 불려서 깜짝 놀란 디아나는, 어째선지 레이아의 허벅지 위에 앉아있는 상태였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분명 내가 이 방을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디아나가 우리 애들한테 엄청 쪼여지고 있었는데?

    아니. 그야 물론 바넷사랑 있는 동안 시간이 꽤나 흐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사안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빨리 진정될 사안이 아닐 텐데?

    그래. 레이아는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상 그럴 수 있어.

    실비아나 마틸다는 비교적 발언권이 약한 위치일 테니 그럴 수 있다고 쳐.

    하지만 사라가 이렇게 쉽게 납득을 했다고?

    실비아나 마틸다 같은 경우랑 달리, 바넷사 같은 경우는 나랑 꼭 이런 관계가 되어야 할 이유도 없는 건데?

    물론 마찬가지로 아무 이유 없는 레이첼 누님과의 관계 역시 납득을 해주긴 했지만, 그것도 설득시키는 건 상당히 고생했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얘기한 것도 아니고, 디아나가 다른 여자를 더 들이겠다고 하는 말에 쉽게 납득을 했다고?

    혹시 레이첼 누님을 허락해 줄 때 날 완전히 믿는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그러는 걸까?

    아니. 날 믿었으면 더더욱 지금 이 상황에는 납득할 수 없겠지.

    최근 내가 내 여자로 완전히 받아들인 사람만 몇이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잦았잖아.

    이건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제대로 화나야 정상인 상황이란 말이지.

    뭔가 있어. 이 광경의 이면엔 분명 뭔가가 있어.

    애초에 디아나가 레이아의 허벅지 위에 앉아있는 것부터가 이상하잖아?

    머리를 굴려 빠르게 판단한 나는, 곧장 다음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얘들아! 들어줘! 너희에게 해야만 하는 말이 있어!"

    내 사뭇 진지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우리 애들의 반응은 상당히 시큰둥했다.

    다들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사라가 대표로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하아…. 우리도 전부 다 알아. 바넷…."

    "미안! 바넷사도 내 여자로 삼기로 했어!"

    사라의 말을 끊고 내가 그렇게 선언하며 바넷사의 허리를 꽉 끌어안아 내 옆으로 밀착시키자, 바넷사는 낮은 침음성을 흘리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내 옆으로 찰싹 붙어왔다.

    "…읏! 죄송합니다. 디아나님. 죄송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내 옆에 바짝 밀착한 상태에서, 바넷사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우리 애들에게 사죄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사라도 슬슬 뭔가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잠깐. 왜 디아나한테도 사과하는 거죠? 미리 허락 받은 게 아니었나요?"

    역시나 내 예상대로, 디아나는 죄를 스스로 전부 다 뒤집어쓴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저렇게 레이아의 품에 안겨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설마 레이아가 디아나의 약점을 이용해서 저런 짓을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놔둘 수는 없지. 이건 어디까지나 나와 바넷사의 문제다. 디아나가 죄를 전부 뒤집어쓸 필요는 없는 거다.

    "허락? 무슨 소리야? 그런 거 받은 적 없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디아나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면서 제발 그렇지 말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맹렬하게 흔들었다.

    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난 널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라고. 너도 평생 약점 잡힌 채로 살긴 싫잖아?

    "…그러니까. 구원은 지금.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또 다른 여자랑 눈이 맞아서, 다른 여자를 꼬드겨왔다. 그렇게 말하는 거야?"

    "응. 그런 거…."

    "지금 바람피우고 온 주제에 어디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거죠?"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라의 주변 온도가 영하로 떨어졌다.

    자, 잠깐만. 존댓말? 이, 이거 오랜만에 제대로 화난 거 같은데?

    "응? 이봐요. 구원씨. 대답 좀 해보시죠? 매번 허락해주니까 저희가 이제 만만해보이나 보죠? 그냥 조금만 마음에 들면 아무나 다 데려오고, 그래도 언제까지나 저희가 쉽게 쉽게 넘어가면서 허락해줄 거라고 생각되는 모양이죠?"

    "아, 아니. 사라야. 잠깐만. 잠깐 그게…."

    "……."

    "사, 사라님?"

    "잠깐만 기다려 달래서 기다려 줬잖아요. 어디 한 번 변명해보시죠? 말해두겠는데, 만약 절 납득시킬 대답이 안 나오면 그걸로…!"

    진짜 엄청나게 화났네.

    하긴. 이러는 게 정상이지. 이 며칠 사이에 레이첼 누님을 그런 식으로 허락받고, 실비아나 마틸다에게도 사도 임명을 한 거다.

    게다가 이번엔 바넷사마저, 그것도 사전에 허락조차 받지 않고 이렇게 내 맘대로 관계를 맺고 사후 보고.

    무슨 보살도 아니고 그야 화가 안 나는 편이 이상한 거지.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사라가 제대로 화를 내며 저렇게 몰아붙이자 나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내 생각이 너무 짧았어. 디아나에 대한 고마운 마음 때문에 너무 디아나만 신경 쓰느라, 반대로 다른 애들의 기분은 신경을 안 쓰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사라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요즘 너무 쉽게 쉽게 넘어가 주니까, 주제도 모르고 기고만장해져서는 이번에도 쉽게 넘어가줄 거라고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지도.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니.

    얘들 입장에서는 내가 여자를 한 명 한 명 늘릴 때마다 말 그대로 속이 타들어갔을 텐데.

    감사한 줄 모르고 오히려 그런 이기적인 판단을 하다니. 완전히 내 실수다.

    "사라야! 들어…으읍!"

    "바넷사!"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물러날 순 없다.

    여기서 어중간하게 얼버무려봐야 모두에게 상처만 남을 뿐이다.

    벌써 늦은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자신의 실수는 스스로의 힘으로 어떻게든 바로잡지 않으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디아나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바넷사의 이름을 외쳤다.

    그리고 이름을 불린 바넷사는 한 손으로 내 입을 황급히 틀어막고는, 가열된 분위기를 식히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디아나님이 허락해주신 것 맞습니다."

    "……."

    바넷사의 그 말을 통해, 차갑게 분노를 폭발시키던 사라가 다시 한 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시선이 디아나를 바라보자, 디아나는 황급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사라는 다시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한숨 섞인 말투로 중얼거렸다.

    "하아…. 구원. 진짜로. 거짓말 하지 말고. 바른 대로 말해. 나 진짜로 화나려고 하니까."

    이미 엄청 화낸 거 같은데 말이야.

    물론 그런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나는 바른대로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바넷사의 일에 관한 죄를 디아나 혼자 뒤집어쓰게 되는 게 싫어서 일부러 바넷사와 짜고 이런 일을 벌였다고 말이다.

    "자네. 마음씀씀이는 고맙네만 말일세. 이 몸이 제대로 설명을 잘 해서 다들 납득을 해줬네."

    "진짜 바보 아니야?! 우리가 그렇게 나쁜 년으로 보여?! 디아나 약점 잡고 평생 괴롭힐 정도로?!"

    그리고 내 설명을 전부 듣고 난 후, 디아나와 사라는 각각 그런 반응을 보였다.

    진짜로 디아나가 전부 설득을 시켰다고? 대체 어떻게? 그 수완, 꼭 좀 전수를…아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아니. 그게 말이야. 디아나가 레이아한테 안겨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 오해가 생길만도 하잖아? 디아나 저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말이야."

    "네?! 저, 저 말인가요?! 아, 아니에요! 구원씨! 이건…!"

    "이 몸이 미안한 마음에 뭐든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먼저 말을 했네. 사정이야 어찌됐든 이 몸이 독단적으로 허락해버린 것이니 말일세."

    과, 과연. 하긴 레이아가 자기가 우위인 점을 이용해서 억지로 자기 욕심을 채울 리가 없지.

    아마 디아나가 뭐든 들어줄 테니 빨리 말해보라고 부추긴 거겠지. 그래서 레이아는 그냥 디아나를 안고 있게 해달라고 했다고.

    그건 그거대로…뭐, 천사님답지만.

    하지만 그렇단 말은 진짜로 그게 끝이었다고? 사라도 납득했고?

    "진짜 사라가 안 괴롭혔어?"

    "야. 구원! 너 진짜…."

    "아니. 미안. 난 분명 네가 이걸로 본처는 자기라는 둥 떠들면서 괴롭힐 줄…."

    "……흐흐흐흥."

    내가 그 얘기를 하는 순간, 사라가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은 또 쓸데없이 엄청 잘 부네.

    "…역시 했구나."

    "아, 아니야! 디아나가 울려고 해서 그만 뒀거든?!"

    "심지어 울리기까지 했어!?"

    "아, 안 울렸다니까?! 직전에 그만 뒀다니까!"

    "자네! 들어보게! 이 몸이 부탁을 들어준다고 말하자마자 사라양이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글쎄 본처는 사라양이라고 인정하는 발언을 이 몸에게 직접 하도록 시키려고…. 우우…."

    사라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디아나가 내게 다가와서는 연기인 게 다 티 나는 거짓 울음소리를 내면서 두 손으로 자기 눈가를 마구 비벼댔다.

    "디, 디아나!"

    "농담일세. 사라양도 이 몸이 우는 척 하자 금방 그만 뒀네."

    "그거 우는 척이었어요?!"

    "후흥. 여자의 눈물은 무기라는 것일세."

    "그걸 같은 여자한테 쓰면 안 되잖아요! 치사해요! 지금이라도 말해요!"

    "낭군님! 사라양이 괴롭히네!"

    "구원! 디아나가 계속 나 가지고 놀려고 그래!"

    아니. 나한테 말해봤자 난 누구 편도 못 들어주거든?

    분명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심각한 분위기였는데, 뭔가 순식간에 가벼운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뭐, 아까 전의 분위기를 없애려고 일부러 둘이서 너스레를 떠는 것일 가능성이 컸지만.

    안 그래도 이 둘은 가끔 진짜로 싸우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으니까 말이야.

    아무튼 생각이랑 뭔가 다른 전개가 되기는 했지만,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해보기로 했다.

    "…뭐, 아무튼. 결국 다들 바넷사가 내 여자가 되는 건 동의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는 거야?"

    여전히 내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묘하게 얌전히 있는 바넷사를 가리키며 그렇게 질문하자, 다들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제대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네. 구원씨. 저희 모두 동의했어요."

    "…그런 사정을 듣고 나면 동의를 안 해줄 수가 없잖아."

    "정말로요. 저 역시 이 또한 여신님의 인도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바넷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야, 대체 그 사정이란 게 대체 뭐야?

    난 그런 거 모르는데 말이야. 혹시 또 뭔가 있는 거야?

    나는 힐끔 바넷사를 쳐다봤지만,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그 무표정에선 그 어떤 정보도 얻어낼 수 없었다.

    "…여러분. 정말로 감사합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얘가 지금 무척이나 감격하고 있다는 정보는 얻어낼 수 있었지만.

    "좋아. 그럼 지금부터 얘도 내 첩이란 걸로 다들 사이좋게…."

    "싫습니다."

    "…바넷사야. 너 진짜 배짱도 좋다. 너도 방금 전에 사라가 화내는 거 봤잖아? 그걸 보고도 반항할 생각이 들던?"

    "잠깐. 구원. 그거 무슨 소리야?"

    "아, 아니. 그만 본심이…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그래! 난 바넷사를 설득하려는 거야! 바넷사! 너도 계속 가까이서 봐왔던 거니까 대충 우리 사정은 알잖아? 첩으로 만족해주면 안 될까? 물론 네가 날 좋아하고, 나도 널 좋아하기는 하지만…."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으, 응?"

    "제가 싫다고 한 건 첩이 되라는 것입니다만."

    "……."

    아…음…. 얘는 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래. 지금 내가 그렇게 얘기하고 있잖아. 첩이 되는 걸로 만족해달라고.

    그렇게 생각한 나였지만, 바넷사가 하는 얘기는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첩이되기 싫다는 것 자체는 맞았지만 말이다.

    "굳이 절 첩으로 받아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집사로 대해주시면 됩니다."

    "…야. 혹시 내가 착각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겠는데 말이야, 너 나 좋아하는 거 맞지?"

    "…맞습니다. 그…사랑합니다."

    과연 우리 철가면 바넷사도 이렇게 다들 모여 있는 자리에서 새삼 사랑을 속삭이는 건 부끄러웠던 건지, 바넷사는 살짝 주저하면서도 그렇게 얘기했다.

    그래. 그렇지? 내가 착각한 거 아니지?

    그런데도 첩보단 본처 자리를 원해서 거절한 게 아니라, 그냥 첩도 되기 싫어서 거절한 거라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다만, 첩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쭉 디아나님의 집사입니다. 그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고, 변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대해주시면 됩니다."

    "뭐?! 그 말은 내 여자가 되지 않겠다는 뜻이야? 그럼 고백은 왜 한 건데?"

    "그건…솔직히 말해서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습니다. 만약 구원님께서 괜찮으시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허락해주신다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모시면서 가끔 구원님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전 그걸로 족합니다."

    그 철가면이 무너질 정도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을 정도로 날 좋아하는 주제에, 계속 집사로 남겠다고?

    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나 집사란 위치에 집착하는 건데?

    아니. 그보다 아까 전에는 내 여자가 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었어?

    뭔가 아까 전이랑 미묘하게 말이 좀 다르지 않아?

    설마 섹스 한 번 하고 나니까 타오르던 마음이 정리되어서 개운해졌다든가? 그래서 마음이 변한 거야?

    물론 섹스운운에 관한 생각을 하진 않았겠지만, 그 얘기를 제외하면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건지, 바넷사의 말을 듣고 나서 다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바로 디아나였다.

    "바넷사. 굳이 이 몸을 신경 쓰느라 사양할 것 없네. 만약 집사일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라면 집사도 그대로 하게 해주겠네. 그러니 첩의 자리를 굳이 사양할 필요는 없다네."

    "아뇨. 디아나님. 구원님께 제 마음을 밝히도록 허락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그 자리는 제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니 부디 그저 집사로만 남게 해주십시오."

    디아나까지 나서서 말해봤지만, 바넷사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디아나는 살짝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고 한숨을 한 번 쉬더니, 까치발을 하고 손을 뻗어서 내 귀를 끌어당겼다.

    "자네. 바넷사의 마음을 제대로 잡은 게 아닌 겐가?"

    "…응. 너한테 졌어."

    "음?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말 그대로의 뜻이야. 너한테 졌다고. 나도 굴욕적으로 느끼고 있으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아무리 존경해마지 않아도 그렇지, 동성한테 지다니.

    뭐, 바넷사는 디아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건 아니라고 확실히 말했지만.

    "아,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난 제대로 잡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면 바넷사가 나한테 고백 같은 걸 할 생각조차할 리가 없잖아? 네가 그렇게 못박아놨었는데 말이야."

    "그거야 그러네만…. 후우…. 아무래도 차분히 얘기를 나눌 필요가 있을 것 같구먼."

    "동감이야."

    안 그래도 나 역시 바넷사의 사정이란 게 대체 뭔지 궁금하던 찰나였다.

    디아나도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니, 마침 잘 됐다.

    디아나와 나는 서로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는 잠시 눈빛을 주고받은 후, 우선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하아…. 알겠네. 바넷사. 자네가 정말로 그걸 원한다면, 그렇게 하게나. 이 몸은 자네의 뜻을 지지하겠네."

    "감사합니다. 디아나님."

    "그리고, 자네의 다른 부탁도 허락하겠네. 가끔씩 낭군님과 사랑을 나누게나. 이 몸은 전혀 신경 안 쓸 테니 말일세. 다들 그래도 괜찮겠나?"

    디아나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디아나님. 그리고 여러분. 다시 한 번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디아나가 그렇게 얘기하자, 어느 샌가 내 곁에서 살짝 떨어져있던 바넷사는 살짝 미소지으며 다시 한 번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를 했다.

    고작 그 정도로 저렇게 기뻐할 거면서, 그럼 첩이 되도 상관없잖아? 집사 일까지 해도 된다고 했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그럼 바넷사. 집사로서, 슬슬 저녁준비를 해주겠나? 슬슬 시장하구먼."

    그리고 그런 바넷사를 바라보면서, 디아나는 일부러 바넷사를 방에서 내보내려는 게 티가 나는 어설픈 연기를 선보였다.

    뭐, 디아나한테 절대 복종하는 바넷사가 상대니 연기가 어설프든 말든 어차피 먹힐 테지만 말이다.

    "네. 곧장 가서 준비를 하겠습니다."

    "아니. 서두를 필요 없네. 천천히 해도 되네. 천천히 말일세."

    "알겠습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으로 돌아온 바넷사는, 그렇게 식사 준비를 위해 살며시 내 방을 뒤로 했다.

    그 두꺼운 꼬리가 걸음에 맞춰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이, 바넷사의 현재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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